48. ‘9.30사태’의 전말(顚末) > 전문가 칼럼

본문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전문가 칼럼 48. ‘9.30사태’의 전말(顚末)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김문환의 주간포커스
작성자 jktbizdaily1 댓글 0건 조회 5,180회 작성일 2014-07-14 00:00

본문

제5부  일일천하(一日天下)
 
10월 1일 아침 7시 20분, 국영라디오방송(RRI)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긴급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1965년 9월 30일부로 수도 자카르타에서 진보적인 육군그룹이 중심이 된 혁명군에 의해 반역적인 ‘장군 위원회(Dewan Jendral)’를 겨냥한 군사작전이 전개되었으며 이 작전의 지휘자는 대통령 경호대대장인 운뚱 중령이다.”  <중략>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 국민들은 일손을 놓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4시간 후인 오전 11시 정각, 운뚱 중령을 위원장, 수빠르조 준장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혁명위원회 최고회의’가 구성되었음을 알리는 ‘포고문 제1호’가 발표되었다. 거사가 시작되면 대통령을 할림 지역 안가로 모시는 임무를 맡고 있던 수빠르조 준장은 아침 내내 행방이 묘연하던 대통령이 공군 작전상황실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대통령을 모셔오기는커녕, 오히려 대통령에게 훈계만 듣고 지휘 본부로 돌아와, “대통령 본인은 여전히 국가 통수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거사를 당장 중지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고 전한다. 운뚱 중령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수빠르조와 대통령을 싸잡아 비난하며 격하게 반발하였으나, 할림 지역 군사통솔권을 쥐고 있는 오마르 다니 장군의 제동으로 어쩔 수가 없었다.
 
오전 7시 20분과 11시 두 차례에 걸쳐 방송된 혁명위원회 포고령에 자신의 이름이 완전히 배제된 사실을 알게 된 대통령은 11시 30분 자신의 안가로 지정되어 있는 할림 지역 수산또(Susanto) 장군의 사택에서 측근들과 함께 오찬을 하고 있었다. 이때 혁명위원회 ‘포고문 제2호’가 전파를 타고 있었다. ‘내각 해산’이 선포되고, 45명의 혁명위원회 위원명단이 발표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수까르노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아울러 현역 군인의 계급 중 ‘대령급’ 이상은 모두 ‘중령’으로 강등되고, ‘중령’ 이하의 계급은 모두 일계급씩 특진한다는 기상천외한 발표문을 내보내고 있었다. 혁명위원회 쪽에서는 이렇게 포고령을 줄지어 내보내고, 대통령은 아이딧과 줄다리기를 하면서 시간을 허송하는 사이, 강 건너 수하르또 장군 진영은 진압작전을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벌고 있었다.  
 
한편 지난 밤 육군병원에서 혁명군 측 라띱 대령의 방문을 받고 자택으로 급히 돌아왔던 수하르또 소장은 전투복 차림으로 새벽 6시경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전략사령부로 출근한다. 급히 달려온 우마르 장군과 전략사령부 참모들 앞에서 수하르또는 혁명군이 표방한 ‘9.30운동’을 운뚱 중령이 주동한 ‘군사쿠데타’로 규정하고, 인질이 된 대통령을 조속히 구출하여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납치작전에서 총상을 입고 모처에 피신 중인 나수띠온 국방부장관은 8시 30분 수하르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군 지휘서열에 따라 수하르또 소장을 공석중인 ‘육군참모총장 대행’에 임명하기로 합의하였다. 수하르또는 마침 전략사령부로 달려온 야니 총장의 보좌관 헤르만 수디로(Herman Sudiro) 대령을 전략사령부가 보유하고 있는 두 대의 장갑차 중 한 대에 탑승시켜, 사르워 에디 위보워(Sarwo Edhi Wibowo) 특전사령관에게 급파한다. 사르워 에디 대령은 고향 선배로서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멘토였던 야니 총장과 육군 수뇌부가 납치되었다는 자초지종을 듣고 충격에 휩싸인 채, 반사적으로 수하르또 진영과 행동을 같이 하기로 결심한다. 헤르만 대령이 자리를 뜨자마자, 이번에는 혁명군 측에서 보낸 사부르 대통령 경호실장이 한발 늦게 사르워 에디 대령의 집무실로 들어 선다. 특전사가 혁명군 편에 서 달라는 사부르 장군의 요청을 사르워 에디 대령은 단호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점부터 사르워 에디 대령 휘하의 특전사는 혁명군이 장악하고 있던 주요 거점과 할림 지역의 혁명군 소탕작전에 선봉으로 나서자, 판세는 수하르또 군의 우위로 기울기 시작했다. 수하르또 진영은 우선 방송국과 전신전화국을 탈환하는 임무를 특전사에게 부여하였다. 오후 6시 특전사 제3대대 제1중대장인 화이잘 딴중(Faisal Tanjung) 중위와 소대장인 신똥 빤자이딴(Sintong Pandjaitan) 소위는 대통령궁 지척에 있는 국영라디오방송과 전신전화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였다. 큰 저항 없이 불과 30분만에 두 건물을 제압하자 그곳을 점령하고 있던 혁명군 일부는 투항하였으나, 나머지는 트럭에 분승하여 할림 지역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혁명군이 진퇴양난에 처하자 아이딧은 자신의 아지트에서 비상회의를 열었다. 회의가 끝난 시각인 밤 9시부터 아이딧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공군 통신망을 이용해 베이징을 포함한 어딘가로 비밀스런 접선을 시도한다. 그러는 사이 ‘일일 천하’로 막을 내리는 10월 1일 운명의 밤은 점점 깊어만 가고 있었다.     
 –계속-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PT. Inko Sinar Medi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