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과 달관 사이 > 전문가 칼럼

본문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전문가 칼럼 체념과 달관 사이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597회 작성일 2018-08-02 00:00

본문

* 필자 인재 손인식 주
이 글은 2005년 3월 자우 스님과 자카르타 대담이다.
2006년 3월 <한 타임스>에 실렸고, 이듬 해 발간한 책 『아름다운 한국인』에 실렸다. 스님의 귀한 말씀 다시 새기고자 여기에 올린다.
당시 자우 스님께서 주지로 계시던 자카르타 인탄지역 <해인사인도네시아포교원>은 지금은 자카르타 슬라딴 부미마스 아파트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자우 스님은 지금 서울 홍제동 <비로자나 국제선원>의 주지 스님이시다.
 
 
 
체념과 달관 사이
 
-해인사 인도네시아포교원과 자우 스님-   
 
길 끝의 답
 
세 번을 물었다. 출발하기 전 길을 물었고 골목 어귀에 들어선 다음 두 번을 더 물었다. 길 끝에 답이 있었다. 은유로 빚은 서정시풍의 절집 <해인사인도네시아포교원>이 답으로 있었다. 고풍의 석탑이 없는 절이다. 이끼 두른 석등도 없다. 단청으로 단장한 웅장한 대웅전 또한 없다. 그래도 절이다. 절집다운 고즈넉함으로 찾아온 길손을 맞는다. “큰절이나 작은 절이나 믿음은 하나”라는 편운 조병화의 시가 또렷히 읽힌다.
 
단숨에 찾아왔으면 싱거울 뻔했다. 서둘러 안으로 들고 싶지 않다. 서성이는 동안 얄궂은 생각이 스친다. 눈은 해인사인도네시아포교원(이하 해인원) 경내 정취에 홀렸는데, 생각이 뜬금없다. 오래 전 한순간을 꺼낸다. 천불천탑(千佛千塔)의 운주사(雲舟寺)를 끄집어 온다. 수묵화 풍으로 맞아주던 절, 전라남도 화순의 운주사.
 
그날도 한바탕 스친 비로 대지가 촉촉했었다. 늦가을 들판 길을 몇 번이나 휘돌았던가. 농부의 마지막 손길을 기다리는 들녘이 정겨웠다. 노모의 등같이 굽은 시골 국도였다. 더듬거린 끝자락에 운주사가 있었다. 필자는 오늘처럼 선뜻 절집 안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한참을 서성였다. 절 주변 다정한 풍경이 꾸역꾸역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닮은 곳이라곤 절이라는 이름뿐 운주사와 해인원, 한데 느낌은 어찌 이리 같느뇨.
 
“절을 세우는 불사보다는 저는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불사를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해인원을 이끄는 자우(慈友) 스님의 일성이다. 어느 고승의 할(割)처럼 마음을 파고든다. 아담한 타국의 포교원이렷다. 사람 불사란 말씀 그래서 더 따뜻하다. 불가의 자비가 진하게 묻어난다. ‘바로 지금 선에 들어야 한다(卽今禪)’는 의미이리라. 조곤조곤 이어지는 스님의 설법, 시간도 따라 시나브로 흐른다. 연기(緣起)론이 지금 이 자리의 원천쯤으로 이해될 즈음, 지금 여기 해인원의 자카르타 존재 이유 또한 또렷해진다.
 
▲ 자우(慈友)  스님
 
“인연에 따라 생멸을 가르치는 것이 불가의 법입니다. 사람마다 다른 사회적 조건과 개인적 차이에 걸맞게 응병시약(應病施藥)하는 것이 불법이죠. 참 다양한 가르침이 불법입니다. 자기 길을 찾지 못하면 오히려 갈등할 수도 있는 것이 불법이죠. 자카르타 중생의 실존에는 나름의 화두가 있을 겁니다. 모두 현명하게 스스로 알맞은 약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큰 도로가 주차장 같았었다. 연휴 전날 자카르타 모습다웠다. 아무래도 약속 시간에 늦겠다. 후회는 늘 한 걸음 늦다. 일찍 출발하지 못한 것을 탓한들 아무 소용없다. 길은 오직 길대로 흐를 따름이다. 멈칫거렸다간 서고, 섰다간 다시 멈칫거린다. 또 놀란다. 운전기사의 자세다. 무념무상이다. 둘러보니 다른 차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수도자들 같다. 너나 할 것 없이 길 사정에 순응한다. 뒷자리에 앉은 필자 엉덩이만 좌불안석, 소리 없이 아우성이다. 멈칫거리는 차 사이 오토바이 몇 대 좁은 공간을 요리조리 곡예를 부리며 내달린다. 그래 양념이다.
 
일주문(一柱門)이 바로 여길까? 사천왕(四天王)문, 청심교(淸心橋)도 여길까? 절집에 들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관문들이 이국 도심 대로에서 환상으로 다가온다. 필자의 조급한 마음을 제도하려는가 보다. 마음 차분히 내려놓고 살라고. 시간 속에 갇혔으니 시간을 누리라고. 그래! 절집에 들려니 속진(俗塵)을 떨치자. 하심(下心)을 갖추자. 실천은 멀더라도 이참에 진리 언저리라도 서성여보자.
 
절밥 맛은 언제라도 참 별미다. 담백한 그 맛에 담긴 가르침 헤아릴 틈도 없이 염치 불고 허겁지겁 뚝딱 축냈다. 스님께서 후식을 다실(茶室)에서 하자고 하신다. 그렇게 대담이 시작되었다. 좌정한 스님의 승복이 정갈함 세 글자다. 아담한 체구의 스님, 그래서 더 단단한 느낌이다. 세상 번뇌 툭 털어놓고 싶은 미소도 지녔다. 이리 여성스럽고 맑으실 수가 있나 싶은 것도 잠간, 몇 마디 가벼운 말씀으로 감응이 바뀐다. 천년 천근의 경주감은사(感恩寺)지 3층 석탑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찻잔의 따스한 기운을 빌린다. 대뜸 불도와 인연부터 여쭸다. 중생의 속다운 호기심이야 부처님이 용서하시리라.
 
“무엇이 가장 바람직한 삶인가하는 고민으로 몹시 가슴앓이를 한 때가 있었어요. 답을 찾으려는 노력 중에 우연처럼 국제포교를 하고 계신 원명 스님을 만났지요. 스님은 연등국제 불교회관에서 영어로 외국인들에게 불교를 가르치고 계셨어요. 저도 그곳에서 여러 외국인 스님들과 함께 일을 돕게 되었지요. 당시 그곳에는 해인사의 스님들도 공부하고 있었어요.”
 
“출가야 말로 사람으로 태어나 인생을 걸어 볼만한 일이다.”
 
“스님들께서 제게 출가를 권하는 말이었어요. 그중에 한 분이 원택 스님이죠. 어느 날 제가 출가를 할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여쭸지요. 그러자 스님은 “글쎄요, 근데 출가자의 길이라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하시는 겁니다. 스님의 말씀에는 권유와 염려가 함께였어요. 마음을 굳히는 계기였고요.
 
그 길로 저는 청주의 어느 비구니 스님 암자로 가 7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108배를 겨우 하던 제가 매일 2천 배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매일 지장경을 독송했습니다. 3일째 되던 날 저는 지장보살의 커다란 서원(誓願) 앞에 서게 되었어요.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이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나는 성불하지 않고 저 중생들을 건지리라.”라는 구절을 읽을 때였습니다. 커다란 환희가 일었지요. 저 또한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 안으로 자신을 닦고 밖으로 고통받는 여러 중생을 건지리라는 확고한 신념이 생겼습니다. 그 길로 출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화합이라는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절집이 있어 출가자 있으리. 출가자 있어 절집이 있으리. 그래서 불도 늘 꽃을 피우리. 인도네시아 한국인들 다 인연 있어 바로 여기 살리라. 그렇게 한 사회를 이뤘다. 해인원은 1990년 가정법회로 자카르타에서 그 시작을 열었다. 1991년 용산 스님이 포교를 하다가 1996년 원명 스님이 주지로 취임함에 따라 해인원으로 개원했다. 자우님은 원명 스님과의 인연으로 2004년 2월부터 주지로 취임했다.
 
“출가자의 자세요?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렵지요. 승가대학의 특징을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대학이 다 그렇듯 승가대학도 공부가 목표입니다. 경전과 조사어록을 공부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승가의 삶을 익히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승(Sangha)이란 승가 또는 중(衆)이라 번역하여 집단을 의미해요. 이를 화합중(和合衆)이라고도 일컫지요. 승가에서는 무엇보다 화합을 중요시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동학사 승가대학에서 150명 스님과 한 방에서 숙식하며 공부했습니다. 사람의 세상과 자연에도 규율이 있듯 승가대학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청규가 있습니다.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는 대중공사를 통해 결정합니다. 대중공사란 그 도량에 사는 스님이면 모두가 참석해야 하고 누군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모두의 의견에 따라야 합니다. 물론 가장 큰 죄는 대중화합을 깬 경우입니다.
 
다행히 참회를 하고 대중이 받아주면 그 도량에서 함께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승가대학에 남을 수 없습니다. 물론 대중이 받아 준 경우라 해도 그 반 전원이 동업 중생이라는 이유로 밤새워 3천 배를 하고 1주일간 수업은 못 받고 일만 해야 합니다. 이곳 자카르타 사는 우리 교민들은 누군가 아플 때 같이 아파해야 하는 동업 중생입니다. 우리의 인연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서로의 가슴에 새길 때 이곳 교민사회가 아름다운 꽃향기로 가득할 것이란 의미입니다.”
 
▲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비로자나 국제선원
 
오늘 우리의 현실을 불법으로 진단해보면
 
“불도는 사람을 영원한 행복으로 이르게 하는 길입니다. 부처님은 깨달으신 다음 외쳤지요. ‘비구들이여!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라.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라.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니라. 조리와 표현을 갖춘 진리를 말하라. 사람 중에는 착한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로 가리라’ 했습니다.”
 
“모든 존재를 행복하게 하겠다.” 이것이 불가의 전도 선언이다. 하지만 불도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도 배우고 행해야 내 것이 된다. 마음을 여는 자만이 진리를 소유한다.
 
▲  비로자나 국제선원 청소년 캠프
 
▲  비로자나 국제선원 성지순례(낙산사)
 
▲  불교문화마당 한국 참선 지도 부스 운영
 
“불도는 참회를 중요시합니다. 바로 참회의 절 수행입니다. 절은 자신의 잘못과 무명을 자각하게 하고 바른 생각으로 돌아오게 하지요. 불교는 모든 법회를 수행 정진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수행 정진은 참회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어느 법회든지 108배 참회하는 것이고요. 108배는 자각을 위한 것입니다. 선행으로 가는 길이고요. 해인원은 매월 첫째 토요일 밤 8시 500배 정진을 합니다. 절을 마치면 한 달 동안의 잘못을 참회하며 참선을 통해 마음을 고요히 하지요. 1년에 한번 3000배 참회정진을 실시하기도 합니다.”
 
해인원에는 유 · 초등부, 중 · 고등부 법회를 비롯하여 각종 법회가 있다. 법회 후에는 다양한 여가활동도 한다. 법회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하루 동안 스님 생활을 체험해보는 일일 출가 프로그램도 있다. 이 외에도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상담실을 운영한다. 그동안 교민사회를 위해서 몇 가지 대외행사를 하기도 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부닥친 분들께 잠시라도 기쁨을 드리자는 의미에서 서울에서 L.M.B Singers 초청 <연등음악회>를 열었습니다. 경내를 개방하여 전시를 열기도 했어요. 불우학생 돕기 바자회를 개최하여 한국국제학교 학생 2명에게 학비 전액 보조도 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도 합니다. 불교 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계기 마련입니다. 불교 이해를 위해 월간『海印』을 정기 발간하고 있습니다. 신도뿐만 아니라 교민들께도 잔잔한 삶의 여운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하루에 단 2초간이라도 남을 위해 기도하자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사실 이곳의 많은 수의 교민들이 살아온 날보다는 활기차게 살아갈 날이 적을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악업을 짓는 말이나 행동보다는 선업에 해당하는 칭찬하고 감사하는 말들을 많이 했으면 합니다.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다른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고 칭찬한다면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동업 중생으로서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의 연기법에 따르면 네가 슬프면 내가 슬프고 네가 기쁘면 내가 기쁘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포교원에서는 만날 때나 헤어질 때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초간 남을 위해 기도하기’의 실천이지요.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어떤 선사께서는 ‘달을 가리키는 손을 보라. 한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지만, 나머지 다른 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구도자와 더불어 세사한담(世事閑談) 참 감동이다. 번뇌 많은 중생 큰 자비를 입는 순간이다. 만나는 세상 다 관용의 바다이니 환희로 만나라 한다. 시간의 끝 시간의 유한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가르쳐 주신다. 내세를 논할 것이 무엇인가? 한 생각 뒤집으면 지옥이 극락 된다 하거늘.
 
질문과 답이 뒤섞인다. 질문이 곧 답이고 답이 곧 질문이다. 추스르지 못한 질문들 입안에서 사그라진다. 자성(自醒)이란 단어 앞에서 사정없이 움츠러든다. 차향 으늑하다. 가슴으로 파고드는 진리만큼이나 미묘한 찻물 한 모금 꿀꺽 울대를 넘는 순간 스님 말씀이 이어진다.
 
“우리 교포들 가슴이 참 따뜻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맑은 눈동자를 지녔고요. 그러나 허전함도 알아차렸어요. 작은 것에 상처를 잘 받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마음을 닦아 자동 차단을 잘 활용해야 해요. 인니는 어느 나라보다 자기의 몸과 마음 닦기가 좋은 곳입니다. 우선 대중교통 활용이 불편하잖아요? 오가기 어려운 것도 장점으로 활용해야 해요. 다들 가정부와 기사를 두고 있는 것도요. 분명 시간이 많습니다. 그런 시간을 아껴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하고자 노력한다면 여기 시간이야말로 보배를 줍는 시간일 것입니다.
 
종교를 갖는 것은 좋은 수양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나 천주교도 마찬가지지요. 성인의 진리가 진정 무엇인지 새기며 그 경지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한다면 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내가 바라는 행복은 어떤 것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자문해 보는 자세는 참다운 인생을 살게 해주죠.
 
불자들의 목표는 부처님처럼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탐심, 치심에서 벗어나 늘 평온하고 따뜻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 또한 항상 가슴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함께 있어 줌으로써 편안한 그런 스님이 되고 싶습니다.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져주는 그런 스님이고자 합니다.”
 
▲  국제포교사회 법문 후
 
▲ 어린이 영어담마캠프(2018년 캠프는 8월 공주 마곡사)
 
체념과 달관 사이
 
“세상 사람 흔히 ‘체념’을 말합니다. 불가에서는 ‘달관’을 즐겨 말하지요. 체념은 포기나 절망입니다. 거부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현실, 인정하고 받아들여 거기서부터 문제를 다루려는 지혜가 달관입니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산업과 정보화 또는 세계화를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위기가 사라진 적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진정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 걱정이 티끌만큼도 없어진 때가 있었나요?
 
시간과 공간의 변화 때문에 평화와 행복이 절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종교의 진리는 제도나 세상이 바뀌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아요. 오직 사람을 바뀌게 하는 것이지요. 그게 대원칙입니다. 원칙은 수행으로부터 나옵니다. 불도는 108배 3천 배가 그 상징입니다. 날마다 온몸을 던지고 낮춰야 해요.”
 
자카르타 한인사회에 해인원이 있다. 거기 자우 스님이 계시다. 어떤 인연에서건 우리는 관계 속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서로 사랑이며 행복과 구원이 목표다. 삶의 이상향도 곧 현실에 있다. 이 대담의 결론이기도 하다. 우리는 늘 오늘의 문제가 미래에 해결될 것을 바라며 산다. 희망은 아름답다.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오늘의 것이다. 미래에는 미래의 문제가 또 있다.
 
“변화가 많은 세속의 삶은 변함이 없는 진리에 의해 씻어야 합니다.”
 
자우 스님의 강조다. 아울러 스님은 삶의 마지막에 가져갈 것은 “성스럽고 아름다운 업”이라 했다. 스님의 섬세한 가르침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복이리라. 이 가르침들 오직 실천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한다면 이에 더해 무엇이 복이리.
 
▲ 2004년 자우 스님과 필자
 
되돌아오는 길, 마음 새털같이 가벼웠다. 다양한 세상 모습 무수히 차창 밖으로 흘렀다. 길엔 일주문도 청심교도 사천왕문도 없었다. 줄곧 차창에 기댄 체였다. 뭔 상념이 그리 길었는가. 낯익은 집 대문이 다가들었다. 현실에서 내 육신을 받아주는 집이다. 갈 때는 세 번을 물어 찾았었다. 돌아올 때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절로 찾아졌어라. 육신의 집이 오늘 화두가 된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을 포스팅하는 과정에서 무려 십 수 년 만에 스님과 연락이 닿았다.
스님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왕성을 하고 계셨다.  동향이 드러나는 사진을 허락하시어 함께 실을 수 있어 기쁘다.
스님께 감사드린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PT. Inko Sinar Medi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