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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11)|한 알 씨앗이 존재하기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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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의 경영 탐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886회 작성일 2018-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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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의 경영 탐문 11
 
# 한 알 씨앗에 담긴 우주
# 씨앗 창작자가 지닌 놀라운 공리성
# ‘藝’란 심고 가꾸는 것
# 초심으로 돌아가라
# 농사는 천하의 근본
 
 
- 씨앗 예술가 박병엽, 토지 80ha 경영 세계
 
“씨앗요? 이게 이래봬도 드높은 하늘과 햇빛의 위력을 듬뿍 머금은 겁니다. 새 울음, 바람 소리, 우렁찬 천둥소리 온몸으로 받았지요. 비 즐기고 바람과 놀았습니다. 숨죽인 어둠과 잠 깨우던 이슬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한 알 씨앗이 되기까지 제가 쏟은 정성 생생하게 기록했을 겁니다.^~^”
 
시(詩)다. 모름지기 시란 자연과 사람이 이쯤 맞닿은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사물을 연구해 앎에 다다름이(格物致知) 이쯤 되어야 철학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고 가벼운 씨앗 하나 들고 풀어내는 이야기 참 간단하고 참 흥미롭다. 시간 압축한 단단함과 풍요 품은 작은 실체 하나 들고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 찌릿 마음을 훑는다.
 
그래 모든 근원은 미미하다. 그리고 때를 만나면 놀랍게 확산한다. 하여 씨앗 하나 땅과 하늘, 비와 바람을 만나 풀어내는 대자연의 순리는 늘 놀랍다. ‘시작은 미미하나 미래는 창대할 수 있다’는 불변의 도리를 침묵과 실천으로 증명하니 씨앗은 늘 경이의 대상이다.
 
▲ 계통 분리 중인 씨앗
 
▲ ▼ 작은 비닐 용기에 하나 하나 씨앗을 심는 손길들. 그리고 그 한편에서 자라는 건강한 모종들
 
 
씨앗 예술가 박병엽 사장
 
씨앗 예술가 박병엽(61). 그를 만나기 위해 새벽 5시 길을 나섰다. 길이 한산하다. 일요일 이른 새벽을 선택하길 잘했다. 평소에는 시간을 예측할 수 없이 막히는 길이다. 공항까지 1 시간 10분여, 그야말로 날은 듯 다다랐다. 절차를 거쳐 비행기에 올랐다. 플라잉 타임 1 시간 20분 소모, 인도네시아 유서 깊은 고도 족자카르타 아디스킵토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자동차로 90분여를 달려 도착한 곳 마글랑, 바로 거기 박병엽 사장의 원예 창작 터전 PT. ORIENTAL SEED INDONESIA가 있다.
 
▲ 자와섬 중남부 영산 숨빙(Sumbing 3,371m)를 벗 삼아 자리잡은 저택
 
자와섬 중남부 영산 셋 숨빙(Sumbing 3,371m), 머라삐(Merapi 2,993m), 머르바부(Merbabu 3,142m)가 멀고 가깝게 어깨를 겨누는 곳, 그 장대한 산들 외로울세라 높고 낮은 산무리 수백의 능선을 세우고, 수천의 계곡을 빚으며 수만 넓이의 들을 펼친 곳, 바로 거기 기름진 땅 무려 80ha를 종횡무진 주물럭거리는 의지의 한국인 박병엽 사장이 있다.
 
▲ 약 2,5ha 대지에 펼쳐진 재배지. 마글랑, 빠꼼, 빠끼스지역 농장 세 곳에 대단위 농장을 운영.
약 40여 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비닐하우스 단지에서 연 중 무휴로 시험 재배 또는 종자 채취 작물들
 
▲ ▼ 종자를 채취하기 위한 재배지에 주렁주렁 달린 탐스러운 메론과 오이
 
 
“고추육종 전문회사를 이 지역에 설립한 것이 2천년 9월입니다. 인도네시아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93년이고요. 농우종묘(현 농우바이오) 주재원으로 왔어요. 본격적인 원예연구는 농촌진흥청 근무를 시작한 1982년부텁니다. 2년 후 농우종묘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고추 육종 책임 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1997년 IMF 위기가 닥쳤어요. 회사가 어려워졌습니다. 저에게도 위기였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게 도전의 기회가 열렸던 셈입니다.”
 
그는 주요 생산 품목이 고추라고 밝혔다. 보고 느끼면 다 만들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한국의 건고추를 비롯 풋고추, 꽈리고추, 피망, 인도네시아의 cabe kerting, cabe rawit 등 시장에서 원하는 스타일대로 만들 수 있는 기술과 기반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고추 품종 씨앗만큼은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인도네시아 유통시장에서 선두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고추 외에도 토마토, 가지, 오이, 수박, 멜론 등 80여 품종의 씨앗을 생산하고 판매합니다. 우수한 품종의 종자 하나를 만들기 위해 대게 약 5∼10년이 걸립니다. 그 시간과 노력에도 반드시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수시로 창작 실험을 합니다. 육종 연구 40여 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의욕과 아이디어가 그치지 않으니 천직이 틀림 없죠?^~^”
 
씨앗 창작자가 지닌 놀라운 공리성
 
그의 씨앗 창작론은 들을 때마다 흥미롭다. 오직 창작이 직업인 나를 다가앉게 한다. 그의 이야기는 꾸밈없고 구수하다. 더도 덜도 아닌 농사꾼 심성과 표정에 때론 이해가 잘 안 되는 전문용어가 뒤섞이며 터벅터벅 풀려나는 이야기, 씨앗이 신비의 싹을 틔우듯, 새싹이 힘차게 줄기를 뻗듯, 무성하게 잎을 펼치듯, 소담하게 열매를 맺듯 펼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면으로부터 어얼∼쑤 추임새가 절로 난다.
 
“작가들은 모두 항상 명작 탄생을 기대하지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오직 우수한 품종 개발이 제 열망이죠. 저는 작물과 더불어 대화를 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멋진 조합이 성공할 때마다 그 즐거움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흥미로운 것은 저보다 더 품질 좋은 종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농민들이죠. 우수한 종자는 농민들에게 면적당 소득을 높입니다. 제 작은 성과가 곧 농민들의 큰 성과로 이어지죠.”
 
▲ 씨앗 추출을 위해 숙성처리를 하고 있는 고추
 
그의 공리성(公利性)이 놀랍다. 그야말로 기죽는다. 평소 내 신조가 작가로서 눈에 보이는 일 따위로 기죽지 말자다. 11년간 미술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예비 예술가로서 기죽지 말라”였다. “기죽지 않기 위해 지금 노력하자”였다. 예술작품의 생명, 즉 무형의 공리성을 믿고 나는 늘 그렇게 외쳤다. 그런데 지금 씨앗 창작자의 지극히 현실적인 공리성 앞에서 내 야코가 그만 힘을 잃는다.
 
“혼자 일구는 게 아닙니다. 제 아내의 몫이 큽니다. 더불어 30명의 상근 스태프가 있습니다. 1천여 명의 일용직 농부들도 함께입니다. 이래저래 인도네시아는 제게 천혜의 땅입니다. 자다가도 깨어 실험과 배양을 할 수 있으니 원예의 최적지지요. 게다가 노동력도 풍부하잖아요. 자신의 일처럼 최선을 다해주는 성실한 현지인 직원들에게서 느끼는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인정 느껴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를 두고 그의 이웃은 말한다.
 
“박 회장은 씨앗 생산만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덕 생산이 그에 못지않습니다. 사람 사는 곳 텃세 없는 곳 없잖아요? 특히 농업에 관한 한 더합니다. 이곳 토박이 농부들도 농산물만큼은 외지인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정서가 강합니다. 그런데 그는 계속해서 경작지를 넓혀가고 있거든요. 가깝게는 집 주변으로부터 멀리는 마글랑 외곽, 빠꼼과 빠끼스 고지대까지 실험 재배 장소로 써요. 거기에 필요한 인력 모두를 말썽 없이 잘 다스립니다. 곁에서 보면 참 놀랍습니다. 그가 인덕을 생산하지 않고는 불가한 일이지요.”
 
하긴 그의 나눔은 이미 원근에 정평이 나 있다. 농산물을 현지인이나 가까운 한국인들과 나누는 일은 그야말로 일상이다. 그를 방문했을 때 요모조모 챙겨주는 것은 농사꾼 인심으로 그렇다 치자. 복잡한 절차와 거리를 생각지 않고 내게 농산물 박스와 자루를 보낸 것이 벌써 몇 번이다.
 
▲ 경기도 안성 서운초등학교 39회 회갑 기념 초청 방문.
인생은 60부터, 닭띠를 상징하는 암수 닭 두 마리, 팔팔하게 100살까지라고 쓴 프랑카드 내용이 흥미롭다
 
족자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있으면 그는 모두 자기 손님처럼 대한다. 그가 4년여 족자카르타(이하 족자) 한인회장을 맡았을 때뿐만이 아니다. 이전이나 이후나 한결같다. 문학인이 오면 문학의 밤을 열고, 체육인이 오면 함께 뛴다. 지난해 11월에는 고향인 경기도 안성 서운초등학교 동기 21명을 손님으로 맞이했다. 회갑을 맞은 초등학교 동기들을 단체로 초청한 것이다. 마글랑을 찾은 그의 동기들이 그가 이룬 성과에 얼마나 흡족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만으로도 참 흥겨운 미담이 아닐 수 없다.
 
▲ ▼ 고추 모종 두둑을 덮은 비닐에 그만이 아는 번호와 은어 같은 말들이 적혀있고, 고추의 꽃과 열매에는 그만이 아는 번호표가 붙어있다.
 
 
▲ 고추꽃 인공수정에 관해 설명하는 씨앗 예술가 박병엽 사장
 
‘藝’란 심고 가꾸는 것
 
그와 나의 만남은 2005년이다. 내가 족자의 대학 UII에서 전시를 연 것이 계기다. 그 후로도 내겐 일과 여행 등 족자에 갈 일이 자주 생겼다. 그때마다 나는 그와 만나 한잔 술을 나누거나 골프 라운딩을 즐겼다. 그가 마글랑 지역에 저택과 연구소를 완성했을 때는 겸사로 달려갔었다. 내가 산마을에 집을 완성하자 그 또한 바쁜 일상을 밀쳐놓고 먼 길을 달려 왔다. 밤이 이슥토록 피웠던 이야기꽃, 나는 그와 대화를 할 때마다 질문을 많이 한다. 드러내놓고 그의 창작 세계를 염탐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 창고에서 출하를 기다리는 씨앗. 몇 개의 창고가 연이어 있고 창고마다 품종별 씨앗들이 가득했다.
 
“종자 개발은 반드시 고려해야할 몇 가지가 있어요. 지역과 적합한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울러 농민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살펴야 하고요. 그래서 평소 준비를 많이 해 놔야 해요. 새 품종을 개발할 재료를요. 새 품종을 개발하고 나면 시험 재배가 우선입니다. 우수성을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런 다음 종자 확보를 위해 대규모 재배를 합니다. 최종적으로 종자 검사소에 품종 등록을 하고 프로모션을 통해 농민들에게 공급합니다.”
 
약 9년 전이다. 나는 그에게 ‘박씨예(朴氏藝)’란 호칭을 붙였다. 씨앗예술가 박병엽을 줄인 의미다. 원예의 예(藝)는 본디 ‘심고 가꾸다’는 의미의 회의자다. 갑골이나 금문 글자는 작물을 손으로 잡고 심는 모습을 본떴다. 이 뜻을 바탕으로 재능과 법도, 학문과 나눔의 의미로 폭넓게 쓰는 것이 藝자다. 원예(園藝) 두 글자의 뜻이야 주지하듯 ‘채소나 과수, 정원수 등을 재배하는 곳’이나 또는 그 행위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예술가라 호칭하기 전부터 씨앗 예술가였던 셈이다.
 
▲ 부인 조선행 여사와 아들 건하 군과 함께
 
“제 직업이 식물 육종이고, 특히 고추 웅성불임에 몰두하잖아요? 고추씨를 주물럭거리는 것이 제 전문이지요. 그 때문인지 정작 아들 건하를 낳는 일이 늦었어요. 씨앗 개발보다 소홀했던가 봐요^~^”
 
그는 결혼 14년이 지나서야 아들을 얻은 것(2000년)을 빗대  그가 던지는 농담이다. 이 무녀 독남 건하 군이 미국 인디아나 주립대학 Purdue University 식물 과학과 입학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의 원예업을 잇기 위한 전공 선택이라고 했다. 사랑과 정성으로, 똑똑한 사람보다는 사랑 넘치는 정직한 사람으로 키우겠다고 밝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장족의 성장이요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부모 슬하를 떠나 먼 이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하 군의 장도에 무운을 빈다.
 
늘 초심으로
 
“작년 제 회갑을 맞아 부모님께서 다녀가셨어요. 제가 어렸을 적부터 두 분은 제게 자신감을 심어주셨죠. 종손으로서 조부모님 생전에 과분한 사랑을 받았는데, 저는 지금 집안을 바로 돌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송한 마음 크죠. 제가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니 부모님이 오래 건강하셔서 자주 오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순간 숙연한 표정이 되는 씨앗 예술가, 그를 눈물 흘리게 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 2010년 10월 초순 머라삐 화산 폭발이다. 한순간의 일이었다. 화산 폭발 초기 반대 방향으로 불던 바람이 그의 농장 방향으로 선회한 순간 화산재가 덮쳤다. 약 이십만 제곱미터 넓이의 비닐하우스와 기타 구조물이 큰 피해를 당했다.
   
▲ ▼ 2010년 10월 초순 머라삐 화산 폭발로 인해 피해를 입은 시험 재배장
 
 
“피해액을 따지지도 않았어요? 다 부질없게 느껴지더라고요. 화산재는 끈적거려서 쉬 씻기지도 않아요. 화산재에 덮여 시드는 작물들 보는 것이 정말 마음 아팠어요. 시설물 복구를 위한 자금과 노동력이 필요한데 주변 사정이 다 같으니 안타까운 현실만 곱씹어야 했지요. 물론 한동안 씨앗 생산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회사의 존망까지 고려할 상황이었어요.”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계시 같았다고 했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자고 백번도 더 되뇌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구호금과 물품을 들고 이재민들 합숙소로 달려갔다. 인정 넘치는 그가 더불어 사는 이웃들의 곤경을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긴 그에게 용기를 주는 곳이었다. 이재민들 모두 현재 자신의 처지보다 그를 걱정했다.  그가 평소 어려운 이웃을 얼마나 많이 도왔는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어려운 처지를 당한 그들의 위로를 받으니 감동이었어요. 용기 백배였고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게 마련, 화산 활동이 사그라지자 사람들 모두 다시 삶의 의욕을 불태웠다. 아이러니도 생겨났다. 화산재로 인해 땅이 비옥해졌다고 농민들이 좋아했다. 각종 씨앗의 수요 또한 폭발적으로 늘었다. 보유하고 있던 씨앗 상당량이 큰 힘이 되었다.
  
▲ 비닐 하우스 교체 작업을 하는 인부들과 함께
 
그때도 씨앗 예술가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삐리∼릭 삐리∼릭 그의 전화벨 소리가 내 귓전에서 사라진 조금 뒤 내 전화벨이 울렸다. 늘 그렇듯 그가 내게 전화를 건 것이다. 나는 그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마다 그가 매우 바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그가 나와 함께 있을 때 그에게 걸려온 전화를 똑같이 응대하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사실을 알았다.
 
이유를 물었다. 그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뻔하다. 몇 푼의 전화 요금이라도 본인이 부담하겠다는 뜻이다. 나는 그럴 필요까지 없다고 몇 번이고 항의(?)했다. 그러나 그의 고집은 지금도 여전하다. 심지어 SNS상의 무료 전화까지도 내 전화는 끊고 그가 다시 거는 정도다.
 
농사와 농부는 천하의 근본
 
그는 생활철학이 진인사(盡人事)임을 밝힌다. 스스로 할 바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다. 그것만이 그가 대천명(待天命), 즉 결과에 떳떳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지난 일을 후회하거나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그는 있는 그대로 그의 현재를 넉넉히 즐기는 것이리라.
 
▲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사람이 할 바를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다.
2018년 춘분 인재 손인식 작
 
박씨예집 거실에는 커다란 현판 글씨 한 점이 걸려있다. 저택을 신축한 그가 내게 휘호를 부탁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다. 근본을 향한 그의 신념을 충분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수많은 농민들의 삶을 더불어 생각하는 그의 신념은 참 아름답다. 족자나 마글랑을 방문할 때면 그가 거기 있음으로 발생하는 사람의 향기와 지역의 활력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의 존재에 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허공, 무한이다. 가장자리가 없다. 태양이 솟으면 무한 허공에 빛이 가득 들어찬다. 땅, 유한하다. 그러나 땅속에 얼마나 거대한 에너지와 아름다운 색이 감춰져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씨앗 예술가 박씨예, 그의 예원에서는 오늘도 허공의 빛과 땅의 에너지가 아름다운 생명활동을 한다. 작은 씨앗 하나하나에 거는 박씨예의 희망과 하나가 되어 사람 사는 드넓은 세상으로 한 걸음씩 터벅터벅 나아간다.
 
 
※ 이 프로젝트는 <자카르타 경제신문>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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