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말 거울도 안 보는 남자일까 > 전문가 칼럼

본문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전문가 칼럼 그는 정말 거울도 안 보는 남자일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520회 작성일 2017-06-12 00:00

본문

[사람의 향기 ⑤] 인도네시아 커피 농사꾼 '또히르'씨
 
'또히르'(62)씨 집을 목적지로 결정한 건 지난주 산행 때다. 늘 다니는 산행 코스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였다. 또히르씨 부부의 안부도 궁금했다. 또히르씨 집은 '산빠람'(인도네시아 한인 등산모임)이 자주 들르던 곳이다. 2년 여를 발길을 멈췄던 이유는 조금 멀기도 했지만, 때때로 멧돼지 무리보다 더 사납게 출몰하는 산악 오토바이 무리 때문에 그만 그 길이 정나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액자 하나를 배낭에 챙겨 넣었다. 오래전 또히르씨 집을 방문했을 때 일행이 찍은 또히르씨 부부 사진을 인화해 표구한 액자다. 그동안 전달할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잘 됐다.
 
또히르씨 부부가 사는 집 위치는 첩첩산중이다. 소설 속 홍길동 무리나 임꺽정 무리의 산중 본거지쯤으로 딱 어울릴 곳이다. 자카르타에서 남동쪽으로 직선거리 약 130km, 표고 약 1250m 정도지만, 전기도 수도도 누리지 못하는 곳이다. 그들은 태양 빛과 달빛 별빛만으로 산다.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고 동이 트면 일어나는 오직 자연에 입각한 삶이다. 물은 300m쯤 떨어진 곳에서 솟는 옹달샘 물을 길어다 사용한다. 
 
▲  또히르 씨 집 가는 산길
 
▲  토히르 씨집 대낮 풍경
 
고향집을 찾듯 또히르씨 집에 이르렀다. 커피 나무 사이에 묻혀 풀을 베던 또히르씨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는다. 오랜만에 왔다고 호들갑이다. 그의 부인은 더 부산하다. 절구질을 하다 말고 히잡이 달린 옷으로 갈아입고 잰걸음으로 달려와 인사를 한다. 이 깊은 산중에 찾아와주는 외국인이 얼마나 반가우랴.
 
막내딸의 아들이라는 손자가 할머니를 따라 쪼르르 달려온다. 이름이 '길랑'이다. 태어나고 얼마 후부터 할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다. 그새 많이 자랐다. 일행의 가방 여기서 저기서 나온 초콜릿과 과자 등 등산객 주전부리 몇 가지가 아이에게 전달된다. 삶아온 달걀을 건네는 이도 있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 촬영했던 동영상을 휴대전화에서 찾아 보여주는 이도 있다.
 
▲  또히르 씨와 그의 부인. 가운데는 막내딸이 낳은 손자.
 
"어머나~ 길랑아 이 사진 속 할머니 할아버지 누구야?"
 
예상대로였다. 포장을 벗겨 액자를 보여줬더니 부부가 만면에 웃음이다. 자신과 남편의 모습을 번갈아 들여다보던 또히르씨 부인은 어린 소녀 같은 표정으로 남편의 얼굴을 툭 밀치며 웃음을 터트린다. 
 
"아마 이 집에 거울이 없을 겁니다. 이 양반들 자기 얼굴 이렇게 자세히 보기는 참 오랜만일 거예요. 집에 거울 있어요?"
 
대답이 없다. 일순 정적, 설마, 사람 사는 집에 거울이 없을까? 묻지 말아야 할 말이 아니었을까? 있긴 있었다. 손바닥보다도 더 작은 거울, 화장품 세트의 보조 거울, 그나마 상당 부분 제 기능을 잃어버린 거울이다. 하니 또히르씨 정말 참 오랜만에 자기 얼굴 봤겠다. 또히르씨는 정말 거울도 안 보는 남자일까?
 
또히르씨 집은 판잣집이다. 나무 기둥에 누덕누덕 판자를 덧대 지은 집이다. 도끼나 톱만을 이용해 깎은 나무판자이니 아귀가 맞을 리 없다. 좋은 말로 참 자연미 넘친다. 벌어진 틈으로 숭숭 바람이 오갈 집이다. 구름이 몰려들 때면 방안까지 구름 차지가 될 집이다. 추위에 시달릴 일이 없는 곳이니 통풍을 위해 일부러 그렇게 지었을까?
 
▲  또히르 씨는 산기슭을 드넓게 개간하여 커피를 기르고 그 사이사이에 수없이 많은 바나나 나무를 가꾼다.
 
이 집은 방문이 없다. 걸터앉을 마루와 방 사이에 가려진 천 하나가 방문을 대신한다. 지붕은 비가 오면 소리 요란할 양철이다. 양철 지붕의 처마에는 비스듬히 대나무 통이 달려있다. 빗물을 모으기 위해서다. 집은 마루 높이만큼 지면과 간격을 두고 지었다. 습도와 벌레, 야생 동물들의 침범을 고려한 집짓기 형태다.
 
그 공간을 차지한 주인들이 있다. 개와 닭, 오리들이다. 염소나 소가 차지하는 공간도 있다. 한 지붕 아래 사람과 동물이 한데 어울려 산다. 그래서 마루에 앉으면 여러 가축의 배설물 냄새가 스멀스멀 후각을 자극한다. 마당을 벗어나면 커피 꽃 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히르씨 집 뒷산은 매우 위압적이다. 가파르게 솟아올라 오를 엄두도 못 낸다. 둘러친 다른 산들도 병풍이라기에는 너무 높다. 산은 밀림으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더 높고 깊어 보인다. 순간에 뒤덮고 걷히는 구름으로 인해 신비함을 연출한다. 능선들이 지그재그로 겹치며 꼬리를 뻗은 남쪽 자카르타 방향은 시야가 트였다. 하늘이 좀 넓게 보인다.
 
▲  시계가 좋은 날은 몇 가구가 모여 사는 건너편 오지마을 찌사돈이 나무 사이로 아스라이 보인다. 그들도 역시 커피 농사가 주업이다.
 
▲  찾아 온 친척과 함께. 허리에 찬 긴 칼, 뒤에 세워진 끝이 뾰족한 창, 그리고 빗물을 모으기 위한 파란색 플라스틱 물통, 참 별난 조화다.
 
또히르씨 부부는 커피 농사꾼이다. 산기슭을 드넓게 개간하여 커피를 기르고 그 사이사이에 수없이 많은 바나나 나무를 가꾸며 산다. 집 주변으로는 일용할 고구마나 채소 몇 가지도 기른다.
 
장성한 3남 2녀 자녀들은 다 출가를 했고, 개 몇 마리와 닭, 염소 등 가축들을 가족 삼아 산다. 시계가 좋은 날은 몇 가구가 모여 사는 건너편 오지마을 찌사돈이 나무 사이로 아스라이 보인다. 그들도 역시 커피 농사가 주업이다.
 
▲  토히르 씨 손길을 거치며 탐스럽게 열매 맺은 커피
 
▲  또히르 씨 집 주변에 펼쳐진 커피밭
 
또히르씨 집은 커피 농사꾼 집답다. 주변이 온통 커피나무다. 마당엔 커피를 말리는 중이고, 마당 가 흰 포대에는 수확해온 커피가 절반쯤 담겨있다. 그 옆 절구통에는 껍질이 벗겨지고 체리가 반쯤 으깨진 커피 열매가 담겨있다. 커피 농사꾼 집인데 씨를 추출하는 간단한 기계 하나 없나 보다. 하긴 전기가 없으니 기계가 있어도 사용할 수 없겠다. 모든 것이 수작업이다. 오랫동안 해오던 방법 그대로다. 한국인 정서로는 과연 이럴 수가 있나 싶다.
 
이들의 특징은 모든 현실이 그냥 순응이다. 신세한탄은 들어보기 어렵다.
 
"멧돼지가 가장 말썽입니다. 늘 텃밭을 망쳐요. 멧돼지가 좋아하는 옥수수는 심지도 못해요. 멧돼지로 인해 뱀이 없는 것은 좋습니다. 천적이거든요. 커피를 훔쳐 먹는 사향고양이도 자주 출몰합니다."
 
개를 여러 마리 기르는 것은 멧돼지와 사향고양이과 동물 루왁 때문이라고 했다. 또히르 씨는 늘 무사처럼 긴 칼을 허리에 차고 있다. 불필요한 나무와 풀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때로 자신을 보호하는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단다. 마당 가에는 유사시 소리를 크게 울리기 위한 대나무로 만든 기구도 있다. 섬뜩하리만큼 끝이 뾰족한 긴 창도 한 구석에 세워져 있다. 
 
"1955년생입니다."
 
4년여 전이다. 나이를 물었더니 또히르 씨는 태어난 해를 말했다. 태어난 해를 말하는 것은 인도네시아인들의 습관이다. 각종 서류에 생년월일만을 기록할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거기까지만 말했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 나이가 65세라고 덧붙이는 거다. 계산이 많이 틀리는 데도 자기 나이를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는 듯이. 
 
또히르씨 텃밭에서 익은 바나나 송이를 배낭에 꾸겨 넣고 돌아왔다. 호박잎도 봉지에 담아왔다. 그가 챙겨주는 농산물들은 참 맛나다. 자기 나이를 대강 알아도 상관없이 당당하기만한 그런 느낌의 맛이다. 세상에 관한 한 아무 두려울 것도, 거슬릴 것도 없는 가진 것 많은 그의 건강한 웃음이 스민 푸른 맛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PT. Inko Sinar Medi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