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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다시 짙어지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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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618회 작성일 2017-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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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가 쓰는 사람의 향기 ④] 참 배울 것 많은 민주주의 시대
 
얼마 전 대선 유세가 막바지였을 때였다. 지인 몇이 조촐하게 모였다. 자카르타 남부에 자리한 한국 음식점에서다. 몇 순배 소주잔이 돌았다. 시도 때도 없이 막히는 자카르타 도로 사정 때문에 교통지옥 운운하던 대화 내용이 이리저리 기웃거리더니 드디어 정치 이야기로 돌입했다. 고국이 대선 때인만큼 정치 이야기로 발을 들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누구나 일가견이 있고 누구나 주장이 확실한 정치 이야기, 여느 이야기들보다 열기가 빨리 고조되는 정치 이야기.
 
"거 말이요, 정치에 대해선 우리 서로 이야기하지 맙시다."
 
좌중의 말을 야멸치게 막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 말을 하던 이는 기분 언짢을 수 있는데, 그냥 입을 다문다. 좌중도 고개를 주억거린다. 화제가 자연스럽게 다른 이슈로 넘어간다.
 
"재외 교포끼리도 그래요?"
 
그렇다. 한국인들이 있는 곳 어디나 있을 법한 풍경 아닌가. 인도네시아 한인 교포들끼리도 고국의 정치에 관한 이야기 전말은 별반 다름이 없다. 어쨌든 교포들끼리 해외에서 국내 정치 이야기를 피하는 것, 이거 어쩌면 지혜다. 이구동성 정치 성향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들 말하는 데 정말 그거 맞다.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든 정치 이야기를 해서 이득 될 것이 없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순식간에 다툼을 야기하는 것이 정치 이야기이고, 절친 사이를 어색하게 하는 것도 정치 이야기라지 않는가.
 
정치 이야기의 문제점은 대부분 과도한 자기주장으로부터 비롯된다. 대부분 자기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므로 매우 객관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주관적인 견해를 소리 높여 밝힌다. 누구를 지지한다고 해서 그로 인해 이익을 챙기려는 것이 아니므로 떳떳하다고 한다. 그 이유로 더 강하게 주장을 펼친다.
 
혹자들은 말한다. 정치 이야기는 밥 먹는 횟수만큼 많아야 하고 또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현대인 누구 정치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으니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다만 내 생각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고. 자기는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판단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 상호존중이라고. 판단은 오직 표로 실천해야 한다고.
 
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바로 그게 쉽지 않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공존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늘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가 인간의 통치체제 중 가장 덜 나쁜 제도"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는 평등한 제도라고 알고 있다. 그 결과가 때로 좋지 않은 쪽, 바라지 않은 쪽으로 드러난다는 것도 때로 경험한다. 선거 결과 다른 거 아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명확한 증거를 확인하는 거다.
 
아이러니한 것은 합당하지 않은 인물에게 권력을 맡기고 나중에야 후회하는 것이 우리가 추앙하는 민주주의란 사실이다. 누가 알았으랴. 히틀러도 민주주의 제도인 선거로 뽑혔다. 그러나 국민이 맡긴 권력의 횡포가 도를 넘으면 국민이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것도 민주주의다. 촛불로 드러난 민심이 대통령을 탄핵하는 결과를 낳지 않았는가. 
 
어쨌든 우리는 정치 이야기를 자유롭게 입에 담을 수 있는 민주주의를 누리며 산다. 깨어있는 시민이 많아야 참다운 민주주의가 펼쳐진다고 서로를 독려하며 산다. 서로가 적폐 세력이라고 세차게 싸우는 모습, 또 한편으로는 웃으며 공존을 모색하는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받으며 산다. 이래저래 참 배울 것 많은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서예가 노무현>.
 
내가 썼던 글의 제목이다. 지난 2003년 서예 전문 월간지 <까마>(현 묵가) 2월호 '까마의 말'로 실었던 글, 그러니까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때다. 물론 그는 서예가와는 거리가 멀다. 변호사 출신 정치가다. 어쩌면 그도 초등학교 시절 습자시간에 붓을 잡아봤을까? 그렇더라도 그를 서예가라 할 수는 없다.
 
▲ 2003년 월간 <까마> 2월호에 실린 글. 원칙을 중시하는 신념을 가진 정치인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보며 원칙과 신념을 가진 서예인이 한국서단에 많아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썼던 글이다.
 
▲  <서예가 노무현>이 실렸던 2003년 월간 <까마> 2월호 표지
 
나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했다는 것에 크게 환호하지 않았었다. 다만 그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내뿜은 사람의 향기에 흠뻑 취했었다. 그는 분명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그 누구보다도 향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 향기는 그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도 잘 드러났다. 연이은 추모 물결은 쉬 사그라질 향기가 아님을 증명했다. 그의 향기는 최근 서거 8주기를 맞아 다시 두텁게 물결치고 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그는 누구나 아는 낙선 경험이 즐비한 실패의 아이콘이었다.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정도를 고집하는 동안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은, 정치인으로서는 좀 보기 드문 캐릭터였다. 많은 정치인이 이합집산에 능한 것과 좀 달랐다. 그는 그 창조성으로 결정적인 상황에서, 그것도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상황에서 극적인 성공을 끌어냈다.
 
그가 당선한 뒤 세상의 관심은 대세에 편승하기를 거부한 그의 용기에 꽂혔다. 자기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지 않겠다는 판단과 실천을 존경했다. 그러니까 그의 당선으로 대한민국 정치 행태가 바뀔 것이라든가 좀 더 민주화가 되겠다든가 하는 것보다 내 관심은 그가 지닌 개인적인 매력에 쏠렸다.
 
그의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이루겠다는 신념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결과를 보면서 느낀 것은 내가 속한 한국서단과 서단의 주인인 서예가들의 신념이었다. 그의 당선은 세력에 야합하지 않고 역사의식에 충실한 그에 대한 국민의 동의 아닌가. 그의 행보가 어찌 한국서단과 다수의 서예가에게 자기의 길을 묵묵히 가라는 추상같은 교훈이 아니었으랴.
 
그것이 서예가로서 그의 정치 여정과 성공을 짧게나마 글로 들먹였던 이유다. 서예는 흑과 백이 조화하는 예술이다. 대척점의 색이 어우러져 단순하면서도 깊은 서정미, 세찬 야성미를 함께 자아내는 예술이다. 담금질한 시간이 쌓인 선의 향기와 기운이 남겨둔 여백과 조화를 이루는 품격의 예술이다. 더러 정치를 예술이라 한다. 오직 사람이 중심이 돼 창출하는 사람을 위한 조화 때문이리라. 서예와 정치, 둘은 극과 극의 조화와 사람의 향기가 필요한 예술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그의 정치를 실패라고 규정했다. 과연 그럴까? 사람들은 그의 정치를 실패로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판단은 역사의 몫임을 안다. 그의 향기만을 선명하게 기억할 뿐이다. 그의 기록영화 때문일까? 그가 친구라고 만천하에 공표한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과 그 후 행보 때문일까? 그의 향기는 오늘 또 짙다.
 
그의 향기가 외친다. 사람 사는 사회는 사람의 향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정치인도 창작인도 저마다 자기 신념으로 간절하게 피우는 향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  지난 2009년 6월 21일 저녁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 공연이 열렸던 서울 구로구 항동 성공회대학교 대운동장에 고인의 대형 그림이 걸려 있는 모습.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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