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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유도 아닌 산, 참 많이 팔아먹었다

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일2017-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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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여행으로 3천m 고봉을 오르다 4 (마지막 회)]
 
▲  그대산 정상에서
 
그대산 정상이 베푸는 절경파티
 
텐트와 천막을 거뒀다. 중년 남자 6인의 하룻밤이 아주 간단하게 도르르 말렸다. 높고 거대한 산을 깔고 누워 숲을 안고 지낸 밤, 참 길고도 짧은 밤, 짧고도 긴 밤을 지낸 잠자리, 아! 설니홍조(雪泥鴻爪)다. 여섯 남자의 군더더기 없는 순한 인연이 빚은 하룻밤, 돌아보니 도로 산이 되고 도로 숲이 되었다.
 
출발이다. 그야말로 정상을 향해서다. 내딛는 발걸음이 흔들린다. 우비와 물, 비상식량을 넣고 둘러맨 작은 백이 무겁게 느껴진다. 긴 밤이 짧고, 짧은 밤이 길었으므로. 몸은 다소 무겁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경사도에 비하면 오르는 길도 험하지 않아 좋다. 그러나 호흡은 쉽게 가빠진다. 고도가 높으니 자주 쉬라는 신호다.
 
▲  그대산 정상의 숲. 미국 미술의 자존심으로 평가받는 잭슨 폴록의 활기찬 추상표현주의 작품이 숲에 펼쳐진 듯하다.
 
고지대인데 숲이 촘촘하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강우량이 손꼽히는 지역, 비가 많고 습도가 많은 환경 때문이리라. 고지대에서 모질게 자란 자잘한 나무, 줄기와 가지가 단단해 보인다. 그 틈에서 자란 풀들도 야무져 보인다. 크고 작은 화산석이 깔린 거친 산길에 드러난 뿌리들이 강한 생명력을 뽐낸다. 밟히고 또 밟혀서 윤기가 난다. 비일까? 이슬일까? 잘려나간 등걸에서 삐져나온 새순에 방울방울 맺혔다. 참 영롱하다. 찰칵 카메라에 담았다. 미안해. 찬찬히 느낄 시간이 없어.
 
▲  녹색 잎들이 더 짙게 생기가 돋고, 붉은빛 잎들이 더 붉게 도드라진다. 그래서 흰색이 더 희어 보이고
 
 
시선을 더 강하게 끄는 것이 있다. 꽃인가 했더니 꽃이 아니다. 뿌리인가 싶은데 땅속으로 발을 뻗지 못했다. 줄기다. 된서리가 때 이르게 숲을 덮쳤나 싶게 희다. 미국 미술의 자존심으로 평가받는 잭슨 폴록의 활기찬 추상표현주의 작품이 숲에 펼쳐진 듯하다. 녹색 잎들이 더 짙게 생기가 돋고, 붉은빛 잎들이 더 붉게 도드라진다. 그래서 흰색이 더 희어 보이고.
 
▲  에델바이스 나무에 뭉텅이로 달린 송라
 
송라(松蘿, Usnea longissima)다. 이름만 분석하면 소나무 둥치나 가지에 기생하는 넌출로서 희귀한 한약재를 말한다. 송라는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 약효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대와 온대 지방에서 자란다고 한다. 소나무에서 자란 송라는 아니지만, 모양과 생존방식이 같으니 그냥 송라라고 하자. 그대산은 높고 안개가 많은 데다가 추위 때문에 송라가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인가 보다. 아래 평원에서는 에델바이스 나무에도 숲의 키 큰 고목에도 뭉텅이로 달려 있었지.  
 
▲  그대산 정상 표지석
 
▲  그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그대산의 다른 봉우리 빵으랑오
 
드디어 정상. 표고 2958m 그대산(Gunung Gede) 정상. 사방이 탁 트였다. 그대산의 또 다른 봉우리 빵으랑오(Pangrango, 3019m)가 손에 잡힐 듯 와락 눈에 든다. 담백하게 우뚝 솟아 듬직하게 버티고 섰다. 본 떼 넘친다. 궁금했던 풍경들이다. 탄성이 절로 인다. 절로 고개가 들린다. 구름 속에 머리만 내놓은 먼 산들 줄지어 아득하다. 그대산에 오른 이들을 위해 그대산이 차려놓은 풍광, 참으로 장엄하고 수려하다.
 
시선을 당기자 차츰 드러나는 그대산, 절제미 넘치는 능선과 뻗어 나간 작은 봉우리들이 톤 굵은 조각품처럼 꿈틀거린다. 고개를 숙이니 까마득히 깊은 곳에 화산 분화구. 거기 노출을 자제한 호수, 아찔한 유혹이다. 하늘 한 조각 담은 호수 무엇을 잉태했을까? 미묘한 색상의 양수에 여기저기에서 솟아오른 연기가 제 모습을 비춰보고 간다. 때론 기관차의 증기처럼 때론 춤추듯 솟아오르는 화산 연기, 산록에 빚어진 자연 조각품들과 능선을 순식간에 지운다. 그리고 다시 지운 연기를 지운다. 자연의 일필휘지 놀이, 그 자유자재한 리듬 부러워라.
 
▲  그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 사진 하단 왼쪽에 분화구 호수가 보인다.
 
▲  화산 폭발로 인해 형성된 절벽과 분화구 호수
 
내가 숨 쉬고 있는 곳이 최고의 정상
 
찰칵찰칵….
 
산 정상이 부산하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연방 변하는 풍경이 순간으로 굳어 여기저기 카메라에 담긴다. 까르르~ 사진 찍기 품앗이에 웃음이 터지고 셀프 카메라를 향한 갖은 미소들이 모습 그대로 카메라에 적힌다.
 
나 왔노라! 나 정복했노라! 경구를 적은 팻말을 만들어 왔다. 젊은이들이 돌려가며 들고 사진을 찍는다. 무엇을 생각할꼬. 상념에 젖은 이들이 있다. 철퍼덕 능선을 깔고 앉아 펼쳐진 산과 들을 더듬고, 빌딩과 사람 냄새로 넘치는 도시 쪽을 째려본다. 정상을 만끽하는 모습이 각기 다르다.
 
하나의 정상인데 보여주는 것 많고 느낄 것 참 여럿이다. 허벅지 근육이 부르르 떨린다. 느닷없이 인도네시아가 고마워진다. 나는 어쩌다 이 넓고 풍요로운 땅에 살게 되었지? 그리고 오늘 이렇게 그대산 정상이 베푸는 절경 파티에 초대를 받았지? 
 
▲  그대산 정상의 단면
 
▲  그대산 정상의 단면 2
 
▲  궁금했던 풍경들이다. 탄성이 절로 인다. 절로 고개가 들린다. 구름 속에 머리만 내놓은 먼 산들 줄지어 아득하다. 그대산에 오른 이들을 위해 그대산이 차려놓은 풍광, 참으로 장엄하고 수려하다
 
돌아보니 밀집한 작은 나무숲 곳곳에 텐트들이 있다. 젊음이 좋긴 좋다. 용감하게 비와 바람과 맞짱을 떴구나. 그러나 함부로 자연에 맞서지 마라. 아래 숲에서도 경고를 받았느니. 커피와 라면을 파는 장사꾼도 있다. 어제 에델바이스 군락지에 천막을 치고 커피를 팔던 그 사람이다. 한국인 기업에서도 일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던.
 
"어 산보다 내가 더 높아…."
 
턱도 없는 아동 틱 표현 이게 뭐야? 탄력 없는 아재 개그에 그마저 쉰 냄새 났나? 물끄러미 쳐다보다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 돌아서서 피식 바람을 뺐을 거다. 한 젊은이가 건너편 봉우리 빵으랑오 정상을 손바닥으로 누르듯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내가 산보다 높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던 것인데, 멀쩡한 사람 칠뜨기 되는 것 딱 말 한마디다.
 
"참 내 나도 다 알아요 알아. 내가 잠시 산보다 더 높았거니 설마 내가 그걸 진짜로 여기겠어요? 내가 산보다 잘났다고 뻐기기야 하겠느냐고요. 정상에 오르면 내려가야 한다는 것쯤은 나도 압니다. 아무리 정상이 좋아도 머물러 살 수 없다는 것 나도 안다니까요. 난 안 내려갈 궁리 안 합니다. 버티지도 않을 거고요. 산보다 높다고 농담 한 번 했기로 뭘 그렇게 쳐다봐요?"
 
잠을 못 잔 탓인가? 뒤끝 작열이다. 그래 내려가리라. 내가 살던 곳 바닥으로 내려가리라. 가서 내가 내려다볼 바닥, 내 밑이라곤 아예 없는 곳에서 만족하며 살리라. 세상 모든 것을 우러르면서 살리라. 희망으로만 살리라. 정상에 올라 봤었다는 자부심 하나로 살리라. 언제나 내가 숨 쉬는 곳이 최고의 정상임을 자부하며.
 
내 소유도 아닌 산 참 많이 팔아먹었다
 
이 산행기 첫 편에서 나는 그대산이 남성적이라고 평가했었다. 그런데 올라보니 그게 아니다. 정상에 올라 보니 그대산은 여성적이다. 다만 살락산이 풋풋하고 탄력적인 여성미를 풍긴다면 그대산은 좀 포용력 좋은 여유로운 중년 여성이다. 건장하고 꿋꿋한 남성 같은 봉우리 빵으랑오를 보디가드처럼 떡 하니 앞세운 부러울 것 없는 넉넉한 모습의 여성.
 
근데 왜 그대산에서는 생수를 생산할 수 없을까? 살락산의 여성스러움과 생수 보유 능력을 들어 신기하다고까지 했는데, 그대산은 뭐지? 산이 이리 큰데. 숲이 무성하고 계곡이 깊은 거대한 산인데.
 
그러니까 살락산에 펌프 시설과 물탱크, 물을 활용한 식음료를 만들기 위한 시설, 생수 생산과 포장 시설 등이 3천 개를 헤아린다고 했었다. 그러니 그대산에 그와 같은 시설이 하나도 없음이 의아한 게 사실이다. 그 이유란 것도 참 싱겁다. 그대산 물이 사람이 마시기에 적합지 않단다. 살락산의 물과 비교하면 미네랄 성분이 턱없이 부족하단다. 그래서 물을 활용하는 관련 공장이 허가가 나지 않는다니 뭐 그걸로 딱 끝이다.  
 
▲  리디아산, 오른쪽 사각형 안이 등산길을 내달라고 산지기에게 독촉하고 있는 산. 가운데 녹색 원 안이 산빠람 팀이 매주 오르는 리디아산. 왼쪽 주황색 삼각형 안 희미한 산이 빤짜르 산
 
"저거 맞죠? 구눙 리디아."
"정말? 어디 어디? 와아 맞다. 정말 맞네에~"
 
나이도 좀 잡순 어른들이건만 아주 신났다. 누가 알면 참 별거 아닌데, 눈치도 코치도 없이 마구 감탄사를 쏟아낸다. 리디아산, 산빠람 팀이 매주 오르는 산, 정상(1250m)에 평상 하나 만들어 놓고 주마다 거기에 올라 않아 뒤를 받친 그대산을 올려다보던 그 리디아산. 하 오늘은 거꾸로 그대산에서 리디아 산을 아스라이 내려다보고 있다. 뭐 그리 대단할까만 보고 또 봐도 대차 신기하다. 어라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오른쪽으로 조금 높은 산, 이름도 모르는 산, 어떻게든 등산길을 내달라고 산지기에게 독촉하고 있는 바로 그 산도 보인다.
 
"리디아 산 왼쪽으로 그 뒤를 봐요. 희미한 삼각형 산, 빤짜르산이 맞지요?"
"그러네 빤짜르도 보이네."
"보이네? 느낌이 겨우 그 정도예요? 그 왼쪽 근처가 바로 우리 집 아닙니까 우리 집~"
 
그게 뭐 어때서. 빤짜르 산 근처에 집이 한둘이야? 집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다만 근처의 산, 그도 아주 아스라이 보일 뚱 말 뚱. 높은 곳에 오르니 뵈는 게 많아 뵈는 게 없나 별 게 다 신기하다. 우리 집이 거기 있는 것 아무도 관심 없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산 아래 우리 집이 있다는 것이 암만해도 신나지? 계속해서 그쪽을 보고 또 보고, 사진도 찍고 또 히죽이고.
 
그래서 또 살락산을 돌아본다. 테라스에서 시도 때도 없이 건너다보고, 쳐다보고, 둘러보고, 넘겨다보는 살락산, 늘 내 산인 살락산, 그 정상은 어떤 모습에 어떤 느낌일까? 남성미 물씬했던 그대산의 진짜 모습이 여성적이었듯이 여성미 물씬한 살락산은 남성미를 흠씬 감추고 있을까? 
 
▲  보라색 화살표 산이 반둥의 탕구반 프라후산. 초록생 화살표 산이 반둥의 땀뽀마산. 가장 멀리 희미하게 삼각형으로 솟은 산이 바로 찌레본 지역에 있는 쯔라메산(빨간색 화살표 바로 아래 큰 산)
 
"연이은 저 봉우리 중 가장 가까이 있는 산(보라색 화살표)이 반둥의  반둥 탕구반 프라후고요. 가운데 삼각형으로 우뚝 솟은 산이 반둥의 땀뽀마산(초록색 화살표), 가장 멀리 희미하게 삼각형으로 솟은 산이 바로 찌레본 지역에 있는 쯔라메산(빨간색 화살표 바로 아래 큰 산)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길쭉한 자와섬의 뼈대로서 대간을 이루며 솟은 산들이지요."
 
김간뜽 회원이 꼭 집어 준다. 참 산을 사랑하는 사람답다. 비즈니스 때문에 자주 다니는 지역이라 하지만, 멀리서 보고도 단박에 알아내는 것이 어디 쉬운가? 사방을 둘러봐도 산이 떠있다. 갖은 모습으로 떠 있다. <아바타> 영화 한 장면처럼 둥실 떠있다. 내가 늘 붓으로 쓰는 산(山)자, 갑골문이나 금석문자의 그 산들,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같고도 다른 모습, 다르면서도 닮은 모습으로. 
 
▲  그대산 명물 봉우리 빵으랑오 왼쪽으로 아스라히 보이는 주황색 원 안의 살락산
 
▲  그대산 정상에서 서남쪽 방향.
 
사실 난 산을 참 많이 써먹었다. 산을 주제로 작품을 하고 책을 발간하면서 내 소유도 아닌 산 참 많이 팔아먹었다. "내게 산은 여전히 옛날처럼 정겹고 내일처럼 새롭네." 내가 발간한 책 후기 <다시 산마을에서>의 한 줄이다. 다시 음미해보니 참 느끼하다. 기회만 있으면 떠벌이는 말이 있다. '평생에 잘한 일 하나가 산과 더불어 산마을에 사는 것'이고. 산과 어울려 사는 사람들 과연 셀 수나 있을까? 산이 코웃음을 칠 일이다.
 
쉿~
 
근데 내가 딱 비밀로 한 것이 하나 있다. 계속해서 비밀로 간직해야 하는데 그대산 품에 안겨 큰맘 먹고 털어놓는다. 으음 그게 뭐냐면, 산이 내게 따로 세금 내란 소리를 안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쪼아 먹고, 을러 먹고, 발라 먹고, 말도 안 되게 뭉뚱그려 팔아먹는 줄 알면서도 세전이라도 좀 내놓으라고 보채는 법이 없다.
 
고자질하는 것 아니다. 산빠람 회원들도 나와 쌤쌤이다. 주말마다 산에 들어 그 맑은 공기 공짜로 실컷 마시고도 누구 세금 한 푼 안 낸다. 아마도 김우주 회원은 뭔 소리냐고 종주먹을 댈 것이다. 매주 몇 시간씩 달려와서 흘리는 땀이며 헉헉~ 숨차게 공기 들이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은 줄 아느냐고. 
 
벌써 고개를 끄덕일 혹자가 있을 것이다. 누구랄 것이 뭐 있는가. 이 지구 상에 산의 은덕을 입지 않은 인류 누가 있는가. 그러니 산의 은덕 공덕 다 그냥 덮어두자. 그거 꼬투리 잡아 따지면 나중에 창피당한다. 쩨쩨해지고 쪼잔함만 화산 분화구의 연기처럼 뭉텅이로 솟아날 뿐이다. 
 
아쉽고 그리운 순간과 장소
 
"이제 내려갑시다."
 
적재적소 튀어나오는 김이제 회원의 말. 마음이 산처럼 넓은 회원이다. 예 하나만 들겠다. 그는 만일 누군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걸음이 늦으면 그는 오를 때나 내릴 때나 꼭 그의 뒤에 선다. 내가 그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그의 말이라면 꼼짝없이 듣는 시늉을 하는 것은 딴 이유가 없다. 그가 하산하잖다. 싫더라도 일어서야 한다.
 
하산 길은 오르던 길과 다른 길이다. 좀 더 길고 좀 더 험한 코스다. 하산 길, 산 정상과 분화구를 둘러싼 능선을 벗어나니 숲길이다. 나무 틈 사이 하늘과 숲만 보이는 것이 오르는 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반전, 절벽이 있다. 밧줄을 이용해 절벽을 타고 내려가면 15분, 부담스러워 돌아가면 1시간이다. 절벽을 탔다. 언제 그런 절벽 타보랴. 나도 사진, 너도 사진, 하며 절벽에서 폼을 잡는다. 돌아가면 자랑거리 삼을 일 생겨 좋다.
 
▲  하산길에서 만난 절벽.밧줄을 잡고 절벽으로 내려가면 15분, 부담스러워 돌아가면 1시간이다.
 
 
쉬고 걷고 또 걷고 쉬었다. 인도네시아 국립공원답다. 내버려 둔 곳이 더 많다.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이라. 아름드리나무가 쓰러져 다른 나무와 하나가 됐다. 어떤 나무는 쓰러져서도 살고 어떤 나무는 기꺼이 거름이 되고 있다.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으면 등산객들이 돌아서 길을 냈나 보다. 이건 지극히 인도네시아다운 모습이다. 좋게 보면 자연환경을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국립공원인데 불편한 것이 많다. 쉴 곳과 비를 피할 곳이 아주 드물다. 사용할 화장실이 거의 없어 여성들은 많이 난감하겠다.
 
산속 사거리를 만나고 캠프촌을 스쳤다. 폭포 소리를 들으며 걸었고, 많고도 많은 돌길을 걷고 또 걸었다. 온천수가 솟아나는 지역(Air Panas)에 도달했다. 고도 2천이다. 시간이 11시를 지나고 있다.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한 지 약 3시간 30분, 머무르며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 곳이다. 먼저 도착한 포터들이 약속대로 자리를 잡아놓고 버너를 꺼내 물을 끓이고 있다.
 
▲  고도 2천의 온천수가 솟아나는 지역(Air Panas). 온천물이 삐져나오거나 폭포로 떨어지는 곳은 뜨거워서 손도 담글 수 없다. 온천수가 세찬 계곡 물로 흐르는 곳, 몸을 담갔다. 엄청난 양의 온천수가 몸을 훑고 아래로 흘러간다.
 
점심부터 해결했다. 온천욕도 하기로 했다. 온천물이 삐져나오거나 폭포로 떨어지는 곳은 뜨거워서 손도 담글 수 없다. 온천수가 세찬 계곡 물로 흐르는 곳, 몸을 담갔다. 엄청난 양의 온천수가 몸을 훑고 아래로 흘러간다.
 
"아까워라~"
 
열이면 열 한국 사람은 그렇게 말한다. 귀한 에너지가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안타깝다. 한국적 정서다. 리조트를 떠올리는 데 없다. 물론 레스토랑도 없다. 길거리 커피 장사도 안 보인다. 탈의실이 없으니 나무 뒤로 돌아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문벳남 회원 나신이 그걸 노리던 김이제 회원에게 찍혔다. 조심해야 한다. 사방이 카메라인 세상이다. 지우라고 말할까 보내달라고 요구할까? 암튼 막걸릿값은 들게 생겼다.
 
온천욕, 피로를 구슬렸나? 다시 출발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온천수 폭포 앞을 통과해야 한다. 돌아갈 길이 없다. 훅 뜨거운 안개가 안경을 덮친다. 징검다리 돌들이 미끄럽다. 오른쪽은 뜨거운 폭포, 왼쪽은 징검다리를 지난 온천수가 직하하는 낭떠러지다. 온천수 폭포 소리가 계곡을 흔든다. 뿜어져 나온 뜨거운 김이 골짜기에 자욱하다.
 
▲  온천수 폭포 앞을 통과해야 한다. 돌아갈 길이 없다. 훅 뜨거운 안개가 안경을 덮친다. 징검다리 돌들이 미끄럽다. 오른쪽은 뜨거운 폭포, 왼쪽은 징검다리를 지난 온천수가 직하하는 낭떠러지다. 온천수 폭포 소리가 계곡을 흔든다.
 
▲  온천수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김이 골짜기에 자욱하다
 
천천히 하산, 그러나 시곗바늘이 재촉을 한다. 도중에 비가 쏟아졌다. 피할 곳이 없다. 걸었다. 터덕터덕 아래로. 빗속을 걸으며 1박 2일 복기다. 그대산 산행을 시작한 어제가 오래된 일 같다. 참 오랜만에 일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떠날 사람 떠나고 남을 사람 남는 시간은 가까이 다가오고.
 
▲  그대산 정상에서 표지석을 배경으로
 
 
세상에는 말로 다하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풍경도 있다. 다 표현할 수 없는 체험도 있다. 시간이 지난 다음 되돌려 생각하면 아쉽고 그리운 순간과 장소가 있다. 그대산 산행기를 마치는 말로 대신한다.
 
그대산(Gunung Gede) 하산 안내
 
그대산이 2958m인데 그대산에 속한 봉우리 빵으랑오(Pangrango)가 3019m로 주산보다 더 높다. 사람들은 대부분 더 높은 빵으랑오보다 그대산에 오른다. 이 이유는 그대산 정상에 서야만 이해된다. 물론 빵으랑오 정상 등정을 위한 코스가 따로 있다.
 
그대산 정상은 보여주는 것이 참 많다. 오르기가 그리 어렵지 않기에 가볼 것을 권할만한 산이요 정상이다. 이번 산빠람 회원은 정상에서 찌보다스 방향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했다. 찌보다스를 출발지로 삼는다면 정상까지 쉬운 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코스를 택해 오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 코스로 오르고 내리기를 당일에 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그러나 내가 권하고 싶은 방법은 무박 2일 일정이다. 텐트를 이용한 잠자리가 불편하기도 하지만, 잠을 자지 않을 계획이면 짐이 많이 줄기 때문이다. 무박 산행은 일출을 볼 수도 있거니와 시계가 좋은 아침 풍경을 볼 수 있다. 아침에 산행을 시작해 오후에 내려오는 것과는 달리 시간 여유가 있으므로 정상과 에델바이스 군락지 등을 차분히 느낄 수 있다.
 
하산 경로 소개
 
그대산 정상 - 온천수 지역
 
그대산 정상에서 온천수 지역까지는 다소 험로이긴 하지만 하산 길로 택하는 것은 크게 무리가 아니다. 크게 어렵지 않은 절벽타기 체험도 할 수 있고, 대규모 캠프장을 스치면서 펼쳐진 텐트의 군집을 볼 수 있다. 숲 때문에 길을 내기 어렵기 때문인지 코스가 비교적 단조로워 길을 잃을 염려는 크지 않다. 서두르지 않아도 약 3시간 전 후면 누구나 무난히 돌파할 수 있다. 고도 2천의 온천수 지역에 도착하면 몸을 담그거나 족욕을 하며 피로를 풀 수 있어 좋다.
 
온천수 지역 - 찌버르움 폭포
 
온천수 지역(고도 2천m)에서 찌버르움 폭포까지는 다소 지루한 코스에 돌길이 많다는 것을 참작해야 한다. 이 코스 또한 족히 3시간은 소요한다. 찌보다스로 직행하는 갈림길에서 약 20~30분을 소요하면 식은 온천수와 섞인 골 물이 장대하게 낙하하는 찌버르움 폭포에 닿을 수 있다. 우기와 건기에 따라 폭포의 물의 양이 다르다.
 
찌버르움 폭포 - 찌보다스
 
1시간 전 후면 주차장까지 하산할 수 있다. 이 코스는 주로 돌길이다. 맑은 물길이 길과 함께 이어진 곳이 많아 좋다. 중간 늪지대에 다리게 놓여있으며 사진 포인트도 만들어져 있다. 가벼운 트래킹을 즐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주말이면 매우 복잡하다. 찌보다스 공원 정문 근처에는 채소와 꽃, 지역 토산품을 파는 상점들이 많다. 분재를 파는 곳도 많은데 값이 비교적 저렴하다.
 
WWW.mandalawangicobodas.com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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