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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개혁의 신, '아빌라의 그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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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813회 작성일 2017-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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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부부의 인상파식 여행] 아! 이베리아 반도 ⑮
 
▲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곽 도시 아빌라
ⓒ 길동무         
 
'스페인에서 가장 훌륭한 중세 도시'답다는 아빌라(Avila), 정취 넘치고 웅장한 성곽을 두른 아름다운 도시다. 12세기에 축성했다는 성곽 둘레가 무려 2,526m다. 높이가 12m, 평균 너비 3m이며 그 가운데 타원형 탑이 88개소, 성문이 8개가 있다고 한다. 해발 약 1,150m. 그야말로 '높은 도시'이며 '오래된 도시'다.
 
"오늘 저녁 숙소는 팔라시오 발데라바노(Palacio de Balderrabano)입니다. 발데라바노 가문의 저택이란 뜻이지요. 대게 팔라시오는 궁전을 의미하는데, 지역의 영주나 귀족층이 살던 저택도 팔라시오라고 합니다."
 
도착을 앞두고 가이드 이 선생이 아빌라를 소개했다. 아울러 숙소에 관해서도 귀띔을 했다. 호텔로 바뀐 성 안의 대저택에서의 하룻밤, 뭔가 색다른 체험일 것 같다. 기대했더니 수고가 먼저 파고든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성문을 통과할 수 없다. 성문도 작았지만 성 안으로 큰 차를 들이지 않는 것이 옳으리라. 가방을 끌고 한참을 걸어야 했다. 이쯤의 수고는 길동무에게 차라리 즐거움이다. 그런데 '드르르륵~' 끌리는 가방의 바퀴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사각형 돌을 누덕누덕 심듯 조성한 고풍의 도로 때문이다.  
 
숙소는 입구부터 고풍 그대로다. 계단을 그대로 두어 가방을 들어올려야 했다. 로비도 좁았다. 대기석 크기나 배치가 조금은 불친절하다. 그런데 천장이 참 시원스럽게 높다. 계단도 과하다 싶게 폭이 넉넉하다. 내부 구조나 배치된 가구들은 나보란 듯 흐린 시간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제법 여유를 부리는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두 층을 올랐다. 배정받은 방을 찾아 문을 여니 와우, 넓다. 하룻밤 묵어가기에는 너무 후하다. 주어진 호사, 누릴 호사가 거기 호젓하다.
 
던지듯 가방을 놓고 로비에 다시 모였다. 저녁 식사 때문이다. 예약된 레스토랑은 숙소 앞 작은 광장을 건넌 곳이었다. 역시 고풍 넘치는 건물이다. 근데 "모양새 안 나게 이게 뭐람?" 간판이 작고 출입문도 아주 작다. 반지하에 계단도 좁다. 그러나 터덕터덕 들어가 보니 실내는 짜임새가 좋고 안정감 넘친다. 숙소도 그렇더니 레스토랑도 반전이다.
 
▲  비주얼과 맛이 짱이었던 아빌라의 츌레똥(Chuleton), 이 왕갈비 구이는 아빌를 대표하는 음식 메뉴로 스페인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 길동무         
 
결정타는 저녁 식사, 그 이름도 강렬한 츌레똥(Chuleton)이다. 영어식은 티 본 스테이크, 한국식으로 말하면 왕갈비 구이다. 아빌라 츌레똥은 스페인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했다. 우선 그 비주얼이 어마무시했다. 푸짐함으로 덩치 작은 동양인을 제압하려 들었다. 여행은 이렇게 더러 예상할 수 없던 상황을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 
 
"스테이크 더 드실 분 말씀하세요. 얼마든지 서비스로 더 드리겠답니다."
 
이 또한 반전이다. 듬직한 사내들이 인상도 좋은데 인심마저 좋다. 가이드 이 선생이 이 레스토랑을 강력하게 추천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좌우지간 먹는 것 인심은 좋고 봐야 한다. 길동무들 기분이 좋아지니 너도나도 한마디씩 얹는다.
 
"오면서 봤죠? 드넓은 고원의 목장과 소 떼들. 오늘 밤 우리는 정말 고품질의 청정한 스테이크, 아니 낭만과 자유를 칼질한 겁니다."
"아까 우연히 봤어요. 저 사람들 고기를 썰고 나서 양이 좀 많아 보이는데도 저울에 달지 않고 바로 굽더라고요. 그러니 이걸 못다 먹지요."
"스페인 인상이 아주 좋아요. 크게 대접도 안 바라지만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지 않으니 좋아요."
 
가이드 이 선생이 정리했다.
 
"스페인에서 대접받는 방법은 쉽습니다. 우선 이들이 바라는 상식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돼요. 물론 언어가 잘 통하면 적은 돈으로 질 좋은 친절을 살 수도 있습니다."
 
옳거니 자본주의의 틈새다. 사람 사는 사회 어디라서 자본주의 풍조가 없겠는가. 문화를 포괄한 언어 능력을 겸비했다면 금상첨화겠지.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가이드 이 선생과 레스토랑의 덩치 큰 사내들과는 오랜 친구란다. 
 
▲  테레사 성녀의 생가터에 새운 수도원 성당과 테레사 성녀의 동상
ⓒ 길동무         
 
"스페인 사람 상당 부류가 변화를 싫어합니다. '내 멋대로 살게 냅 둬유!' 스타일도 제법 많습니다. 먹고 마시고 현재를 즐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강해요. 아무래도 그런 정서는 지리적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불러왔습니다. 다행히 젊은이 중에 깨인 친구들이 많아요. 그들이 스페인을 멋지게 개혁해 나가는 중입니다."
 
개혁! 아빌라는 개혁의 도시다. 훌륭한 개혁 정신과 실천 능력을 지닌 인물을 배출하고 그가 활발하게 활동함으로써 그런 이미지가 강하게 드러난 도시다. 그 인물이 바로 성녀 테레사(Teresa de Cepeda y Ahumada, 1515~1582)다.
 
▲  강생 수녀원 마당에 조형된 영혼의 성을 형상화한 7궁방
ⓒ 길동무         
 
▲  엔카르나시온 강생 수녀원의 내부. 테레사 성녀의 사진이 놓여있다.
ⓒ 길동무         
 
그는 수녀로서 수도원 개혁을 이룬 대표적인 인물이다. 어린 나이로부터 19세에 아빌라의 강생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는 과정까지 그 행적이 참 일관되다. 수녀로서 활동 또한 아름답다. 개혁에 앞장서게 된 동기도 명쾌하고 무리가 없다. 그는 수도자의 참된 자세가 어때야 하는지 한 전형을 잘 보여주었다. 그의 개혁 정신은 참 진솔하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어려서부터 믿음이 한결같았던 그는 신비한 환시를 많이 체험했다고 한다. 환시로 인해 그의 믿음은 더욱 단단해졌고 그것은 강렬한 실천으로 드러났다. 성녀 테레사는 수도자는 수도자다워야 하고, 수도원은 수도원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도자는 항상 초심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1560년 그의 나이 45세에 그가 속한 카르멜 수녀회의 개혁을 단행하기로 작정했다.
 
▲  강생 수녀원 내부. 각종 악기들이 놓여있어 수도생활 중 다양한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길동무         
 
▲  강생 수녀원 내부 주방
ⓒ 길동무         
 
그는 맨발의 카르멜 수녀원 설립 계획을 세우고 1562년 로마 교황청에 청원했다. 그해에 수녀원 설립을 실행해내고, 5년 후에는 십자가의 요한과 함께 두루엘로에 남자 가르멜 수도원도 창립했다. 그녀는 총 15개의 남자 수도원과 17개의 수녀원을 창립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고군분투했고 시련도 많았다. 그러나 차츰 그녀에게 동조하는 세력이 늘었다. 그녀의 계획에 반대했던 카르멜회 총장은 엄격한 규율을 주창하고 실행하는 그를 과격파라 비난했으나 후에는 동조했다. 마침내 그녀의 맨발의 카르멜회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음으로써 성녀 테레사의 수도원 개혁은 각처의 다른 수도원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녀는 한 지도자로서 세간에까지 널리 칭송을 받았다.
 
▲  테레사 성녀의 정갈한 친필
ⓒ 길동무         
 
개혁이란 무엇인가? 개혁의 본질은 한자를 풀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개(改)는 자기 자신의 의미하는 기(己)와 가볍게 톡톡 두드린다는 복(攵)의 합체 자다. 그러니까 개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조금씩 고쳐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혁(革)은 가죽, 곧 겉으로서 옷이나, 자리 등 현재의 상태나 위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개혁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고치는 것과 그로 인해 신분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현대 정치인들이다. 사회가 어지러운 틈을 타 할거를 하는 사람들이다.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민중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권력을 취하고 나면 민중을 위한 개혁은커녕 지극히 편파적이고 소아적이 된다.
 
아빌라의 테레사 성녀는 개혁이 무엇인지 실천으로 증명했다. 개혁이란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근본을 알고 그 원칙을 지키는 것임을 아주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다.
 
서예 이론에 법고창신(法古創新)이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과 같은 의미의 말이다. 살펴보면 개혁과 같은 의미를 지녔다. 그러니까 새로운 것을 알려고 하거나 창작을 하려면 옛 것을 배우고 본받으라 한다. 근본을 알고 그것을 지켜 오늘에 되살리는 것이 새로운 것이요 창작임을 말한다. 개혁이란 새로운 말도 대단한 이슈도 아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날마다 개혁하고 있는 것이다.
 
화선지는 순백의 진수요 먹은 검은색의 진수다. 서예는 이 두 극과 극의 만남이다. 튕겨날 수밖에 없는 두 색은 서로에 의해 비로소 온전히 제색을 드러낸다. 수용함으로써 제색을 드러낸다. 진정한 보수는 진보여야 한다. 진정한 진보는 보수, 즉 잘 지켜야 한다. 흑과 백은 둘이 아니고 서로를 살리는 하나인 것이다. 
 
"아빌라에는 수도원과 성당이 참 많습니다. 산타 테레사 수도원, 산호세수도원, 성 베드로 성당. 엔카르나시온 수도원 등 약 5만의 인구가 사는 도시에 성소가 30여 개소입니다. 성자들의 도시로 불릴 만하지요. 그 중심에 테레사 성녀가 있습니다. 그에 관한 그림과 동상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요, 테레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매우 많다고 합니다."
 
훌륭한 인물은 국가와 민족, 지역의 자랑이다. 국가와 민족, 지역의 품격이다. 그 밤 길동무는 성문을 나섰다. 네 기둥 전망대(Los Cuatro Postes)에 갔다. 아빌라 전체가 한눈에 드는 곳이다. 성곽이 조명으로 인해 은빛으로 빛났다. 마침 아빌라의 밤하늘에 둥근 달이 둥실 떴다. 테레사 성녀의 모습처럼 순결하고 아름답게.
 
▲  네 기둥 전망대(Los Cuatro Postes). 아빌라 전체가 한눈에 드는 곳이다. 성곽이 조명으로 인해 은빛으로 빛났다. 마침 아빌라의 밤하늘에 둥근 달이 둥실 떴다. 테레사 성녀의 모습처럼 순결하고 아름답게.
ⓒ 길동무         
 
"이곳은 테레사 성녀의 정기가 어린 곳입니다. 테레사 성녀께서는 어려서부터 순교자들의 전기를 많이 읽었는데 그들처럼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며 오빠와 함께 가출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가출한 그가 바로 이곳에서 집 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다가 삼촌에게 붙들려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가이드 이 선생의 설명이 이어지는데 내 뇌리에는 의문부호가 튀어나와 사라지지 않는다. 가출을 감행하던 테레사 성녀께서는 왜 이곳에서 멈춰 섰을까? 단순히 두고 떠나온 집이 잘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일까? 그때 타의에 의해 집으로 돌아간 그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수녀원으로 가 공부했다. 그리고 자의로 수녀가 된다. 그에서는 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의문은 항상 답을 찾게 하는 힘이다. 네 기둥 전망대는 '통찰'에 대한 강조일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높은 곳에서 멀리 전체를 보아야 할 필요성에 대한 강조일 것 같다. 지도자에게나 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통찰이다. 그러므로 테레사 성녀의 개혁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출 시도 이후 수녀원에서 공부하고 때에 이르러 진정한 출가를 하지 않았는가. 네 기둥 전망대 이야기의 이면이리라.
 
존재는 다른 존재에 때문에 참답게 드러나기도 하고 허무하게 무너지기도 한다. 신의 존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진정한 믿음을 갖고 실천하는 신자에 의해 그 존재가 참답게 주목받고 신의 진리 또한 밝게 펼쳐진다. 국가나 지역, 부모의 이름 또한 이와 같다. 성녀 테레사와 아빌라는 생생히 그것을 여행객에게 증명한다.
 
▲  네 기둥 전망대와 아빌라 도시를 배경으로 한 컷
ⓒ 길동무         
 
아빌라의 카테드랄(주교좌 성당)은 아빌라 성곽과 잇대 요새처럼 지어져 있다. 당시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 사용가치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덕분에 개성 강한 건축물이 생겨났다. 그것이 오늘날 또 다른 높은 가치로 드러난다. 이슬람의 모스크가 모습을 조금 바꿔 멋진 교회로 드러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니랴.
 
테레사 성녀의 가르침과 덕이 넘치는 아름답고 웅장한 아빌라여 안녕!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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