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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커피 냄새 솔솔 풍기는 이 산,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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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2건 조회 9,168회 작성일 2017-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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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한인 등산 모임 산빠람이 찾는 '리디아 산'
 
 
▲  인도네시아 한인 등산모임 ‘산빠람’ 회원들의 2017년 시산제. 1월 8일 자카르타 위성 도시 보고르 시에 속한 ‘리디아 산(Gunung Ridia, 해발 약 1,300m)’ 정상에서. 
ⓒ 산빠람
 
"우리는 무궁한 산의 세계를 배운다. 우리는 시작과 끝까지 열정을 다하고 항상 협동한다. 우리는 고난이 닥치면 함께 극복하고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연에 순응하고 동화한다." 
 
인도네시아 한인 등산모임 '산빠람' 회원들은 입을 모아 우렁차게 선서했다. 2017년 1월 8일 오전 자카르타 위성 도시 보고르 시에 속한 '리디아 산(Gunung Ridia, 해발 약 1,300m)' 정상에서다. 순서에 의해 순국선열 및 조난 산악인을 위한 묵념도 했다. 전날 부고가 날아든 한 회원의 부친 별세에 즈음한 조의 묵념도 겸했다. 
 
산을 사랑하는 모임 <산빠람>의 시산제.
▲  산을 사랑하는 모임 <산빠람>의 시산제. 
ⓒ 산빠람

축문이 없을 수 없다. 지금까지 그렇듯 앞으로도 변함없이 매주 일요일이면 산을 찾아 산의 포용과 겸손, 건강함을 배울 것을 고했다. 모든 산에 들 때마다 발걸음이 지치지 않도록 몸을 가꿀 것이며, 험한 산길에도 길을 잃지 않도록 항상 주의할 것임을 함께 다짐했다. 

무사한 또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모든 일에 힘과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굳게 믿고 있음을 조아렸다. 회원 가족들 또한 건강한 가운데 행복이 넘치기를 염원했다. 준비한 술과 음식은 그야말로 조촐했다. 그러나 정성은 결코 작은 것들이 아니었다. 마음으로 잔을 따르고 기쁘게 나누었다.  
 
리디아 산을 오르는 길목에서 자카르타 방향을 향해 한 컷
▲  리디아 산을 오르는 길목에서 자카르타 방향을 향해 한 컷 
ⓒ 산빠람
 
리디아 산을 오르는 도중 바라본 살락산의 위용. 산 아래로 펼쳐진 도시가 보고르시다.
▲  리디아 산을 오르는 도중 바라본 살락산의 위용. 산 아래로 펼쳐진 도시가 보고르시다. 
ⓒ 산빠람
 
리디아 산을 오르는 도중 해발 약 800m 지점에서 바라본 구눙 그대
▲  리디아 산을 오르는 도중 해발 약 800m 지점에서 바라본 구눙 그대 
ⓒ 산빠람

산빠람, 적을 때는 단 두 명이 산을 오를 때도 있다. 많을 때도 열다섯을 넘기지 않는다. 일요일 정해진 시간이면 약속한 장소에 모인다. 대부분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다. 멀리는 두 시간여 고속도로를 달려 참석하는 회원도 있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이라는 큰 의미의 공통점이 있지만 특별한 연결고리 없이 아주 평범하다. 삼삼오오 친불친과 산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모인다. 회장도 없고 그 흔한 회원 명단도 만들어진 것이 없다. 공동을 위한 카카오톡 방이 하나 설정되어 있을 뿐이다. 

모두가 자발적이다. 시산제를 위한 술도 음식도 모두 각자 알아서 준비했다. 늘 일정한 장소에 모여 함께 산에 오르고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한 자리에서 함께 나눈다. 그리고 함께 하산한다. 야생 커피 군락지에 커피 꽃 향이 만발할 때면 함께 감탄하고, 때론 산속 농부가 가꾼 농산물을 공동으로 구매해 짊어지고 하산을 한다. 더러 만나던 산속 오막살이 농부가 운명했을 때는 애도의 마음을 함께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산자락에 깃든 외떨어진 농가. 커피 나무와 바나나 나무에 둘러쌓여 있다. 오직 부부가 함께 사는 이 집에는 몇 마리의 개와 닭, 염소 등 가축들이 함께 살고 있다.
▲  산자락에 깃든 외떨어진 농가. 커피 나무와 바나나 나무에 둘러쌓여 있다. 오직 부부가 함께 사는 이 집에는 몇 마리의 개와 닭, 염소 등 가축들이 함께 살고 있다. 
ⓒ 산빠람

효율성 좋은 산빠람 베이스 캠프도 있다. 인근 산을 관리하는 산지기의 집이다. 그 집에는 올해 여덟 살짜리 귀여운 여자아이가 있다. 이름이 '리디아'다. 산빠람 회원은 모두 리디아의 팬이다. 리디아는 엄마 아빠와 떨어져 할머니 집에서 학교를 다닌다. 주말이면 가끔 엄마 아빠를 찾는 리디아를 만나는 날이면 산빠람 회원들은 앞 다퉈 환호를 한다. 
 
시산제를 지낸 산 이름이 '리디아 산'이 된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그러니까 작년 시산제를 지내기 전이다. 그 지역에서 나고 자라 반세기를 살아온 사람도 그 산 이름을 모른다고 했다. 아니 산 이름이 없다고 했다. 한국인들의 정서로는 어찌 그럴 수 있는가 할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예컨대 "몇 살이냐"고 물으면 "내 나이가 몇 살이더라∼"하고 실눈을 뜬다. 나이를 모르는 것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다가 나온 대답이 더 걸작이다. "대강 몇 살"일 것이란다. 이런 정서를 지닌 사람들, 바라다보이는 산쯤이야 그야말로 '산은 산'이리라.  

구슬땀을 흘리며 리디아 산 정상에 올라 평상에 앉으면 순식간에 오르느라 흘린 땀 열 배는 보상을 받는다.
▲  구슬땀을 흘리며 리디아 산 정상에 올라 평상에 앉으면 순식간에 오르느라 흘린 땀 열 배는 보상을 받는다. 
ⓒ 산빠람
 
순간 순간 변하는 산 정상의 날씨. 이 오묘함이란 오르지 않고는 접할 수 없는 세계다.
▲  순간 순간 변하는 산 정상의 날씨. 이 오묘함이란 오르지 않고는 접할 수 없는 세계다. 
ⓒ 산빠람

'리디아 산', 모두 쾌재를 부른 이름이다. 리디아 산을 오르는 길은 산악 오토바이에 훼방 받지 않기 위해 산빠람 회원들이 개척했다. 약초를 캐거나 사냥을 하는 사람들의 갈래 길이야 이미 있었겠지만, 우거진 숲을 뚫고 정상에 평상을 만드는데 산빠람 회원들이 즐겁게 힘을 합쳤다. 안타까운 것은 자주 삭는 평상이다. 습도가 높고 햇빛도 강하기 때문이겠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에는 여지없이 다시 손질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어느 산이나 정상에 오르면 그 쾌감이 산만큼 높을 것이다. 리디아 산도 마찬가지다. 정상에 올라 평상에 앉으면 순식간에 오르느라 흘린 땀 열 배는 보상을 받는다. 
 
리디아 산 정상에서의 한 컷. 희미하게 보이는 삼각형 모양이 빤짜르 산(Gunung pancar)다.
▲  리디아 산 정상에서의 한 컷. 희미하게 보이는 삼각형 모양이 빤짜르 산(Gunung pancar)다. 
ⓒ 산빠람

산 리디아 뒤로는 '큰 산'이란 의미의 구능 그대(Gunung Gede, 해발 2,958)가 듬직하게 받치고 있다. 좌측으로는 살락산(Gunung Salak, 해발 2,211)이 성큼 다가온다. 살락산 자락에 안긴 보고르(Bogor) 시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리디아 산과 아름다움을 겨루며 자카르타를 향해 능선을 뻗친 몇 개의 크고 작은 산들의 자락에 달린 슨툴(sentul) 시가 손안에 잡힐 듯하다. 시계가 좋은 날은 약 100km 거리의 자카르타까지도 눈 안에 든다.

"저기 저 능선 보이죠? 저 능선을 넘으면 길 하나 있습니다. 그 길 끝에 우리의 대한민국이 있고요."

실없는 농담으로 웃음이 터진다. 청정한 기운이 폐부 깊숙이 휘돌아 난다. 리디아 산에 오르는 코스는 진정 천혜의 낙원이 펼쳐진 곳이다. 항상 찬란한 햇빛의 은총이 넘치는 곳이다. 아낌없이 불어주는 쾌적한 바람이 사는 곳이고, 만물의 시원인 물, 강우량이 풍부한 곳이다. 하여 열대 느낌 넘치는 숲이 산다. 들여다보면 과수들이다. 몇 십 킬로 무게를 자랑하는 낭까로부터 두리안, 망기스 등 그 종류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둘러보면 약재들이다. 자생 커피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이 많아 철을 만나면 그야말로 진짜 루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산을 닮은 산빠람 회원들
▲  산을 닮은 산빠람 회원들 
ⓒ 산빠람

푸르고 건강한 곳이다. 풍요가 넘치는 곳이다. 하얀 겨울이 없는 곳 숲은 푸른 평화가 넘친다. 혹한의 시한이 없는 곳 벌레들은 전쟁을 치를 줄 모른다. 나는 것도 번식도 그저 게으르다. 모기마저도 늘 길을 터준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은 다툼을 모르고 비교를 모른다. 여유가 충만하다. 부질없는 것임을 알기에 화내지 않고 비교하지 않는다. 

낯선 이국인을 만나도 스스럼없이 웃는 사람들이 사는 곳, 길손에게 밟혀도 년 중 차례를 지어 피는 꽃들이 숨 쉬는 곳, 산빠람 회원들이 리디아 산을 찾는 이유다. 주말이면 무언으로 모이는 이유고 변함없이 리디아 산을 오르는 이유다. 올해도 또 정성으로 시산제를 지낸 이유다. 참 마음 뿌듯한 조촐한 이벤트는 또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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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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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zon님의 댓글

sozon 작성일

커피꽃 향이 진하게 피는 시기가 기다려 집니다. 리디아 산에서 나오는 루왁커피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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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lee5424@tradewind.님의 댓글

shlee5424@trade… 작성일

부럽습니다. 이런 곳에서도 등산을 할 수 있다니요.
저도 등산을 하고 싶으나 어디서 할 수 있는 지를 몰라 이러고 있습니다.
정보를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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