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사파이어룸에서 정계, 재계, 학계를 대변하는 50여명의 요인들이 모여 ‘사단법인 한국-인도네시아 동반자협의회’ 창립총회를 가졌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안홍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비롯해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 조경태 민주당 의원, 그리고 발기인 대표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문환의 주간포커스
2014-07-14
1965년 ‘9.30 공산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직후 주도권을 잡은 수하르또 군부는 완전한 정권장악을 위해 수까르노 대통령의 잔존세력을 밀어내는 작전에 돌입한다. 우선 쿠데타 주모자들과 뿌리깊게 침투되어 있던 공산당 추종자들에 대한 말살정책이 시작되었다. 이때 자행된 인권유린 행위를 묘사한 ‘살인행위(The Act of K
제1부 발아(發芽) &
제2부 공산당(PKI)의 팽창 &
1998년 5월 12일 유도요노 장군은 미국 웹스터대학 석사과정 동창생인 누르홀리스 마짓과 힐튼호텔 일식당 니뽄깐에서 부부동반으로 저녁식사 중이었다. 가두시위를 벌이던 뜨리삭띠 대학 학생이 총탄에 맞아 사망한 것 같다는 급보를 받자마자 식사를 멈추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유도요노 장군은 당시 3성 장군으로 인도네시아 국내 정치를 관장하는 국군사령부 정치사회
1965년 공산쿠데타가 일일천하로 막을 내린 직후, 수하르또 정권이 출범하는데 동력역할을 한‘66세대(Angkatan 66)’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1966년 당시 문교부장관이던 샤맆 따옙 장군이 수카르노 추종세력에 대항하고자, 자유경제를 신봉하는 대학생 조직들을 연합세력으로 묶어 출범한 전국단위의 대학생 단체가 바로 전국대학생연
육군참모장인 나수띠온 대령의 ‘국군 감축안’을 재검토하라는 의회의 비토에 반기를 들고 예하 부대장인 께말 이드리스 소령이 포신을 대통령궁으로 조준해 놓고, 나수띠온과 참모들이 수카르노 대통령 집무실에 난입하여, 대통령 하야 청원서를 낭독했던 1952년 10월 17일 사건은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쿠데타’란 용어를
3월 23일 토요일 한밤 중인 12시 30분, 17명으로 구성된 무장집단이 여러 대의 자동차에 분승하여 중부자와 슬레만군(Kabupaten Sleman) 역내에 위치한 쯔봉안(Cebongan) 교도소에 들이 닥친다. 그리고는 교도소 담을 넘자마자 전화선부터 끊고, 당직 직원들의 휴대폰을 수거하며, CCTV 까지 철거해 버렸다. 그리고는 바로 전날인 22일
4월 1일자로 헌법재판관 임기를 마치고 이임하는 마흐훗(Mahfud M D) 헌법재판소장은 퇴임식이 끝난 직후 기자들이 둘러 서며 마이크를 대자, “국민이 뜻이 그러하다면, 대통령 후보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답변하면서 대선출마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이로서 현재까지 대선출마를 공식적으로 밝힌 유력 주자들은, 쁘라보워, 아브리잘 바끄리
일각에서는 인도네시아 특전사(Kopassus)를 영국의 SAS(Special Air Service), 이스라엘의 Mossad에 비견하여 세계 3대 특수부대로 거명하기도 한다. 1950년대 창설된 특전사는 베니 무르다니 소령의 제1 대대장 시절의 성장기를 거쳐, 사르워 에디 위보워 대령 재임 당시인 1965년 10월에는 공산쿠데타를 단 하루 만에 진압하여 국
2017년에 기한이 만료되는 동부 깔리만딴 주 마하깜 광구(Blok Mahakam)를 놓고 두 장관은 서로 상반된 행보를 취하고 있다. 주무장관인 에너지광물자원부 장관과 국경기업체 임원 인사권을 쥐고 있는 국영기업부 장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주관 국영기업체인 뻐르따미나사는 국영기업부 장관의 응원을 등에 업고 자신들에게 광권을 넘기라는 입장인 반면, 주무장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유도요노 대통령은 4월 23일, 1년 이상 끌고 있는 DBS은행(DBS Group Holdings Ltd.)의 다나몬은행(PT. Bank Danamon) 인수허가에 대해 관계당국에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였다. 이 같은 대통령의 발언은 본 건과 관련하여 싱가포르 금융감독청과 모종의 협상을 진행시키고 있으며, 5월 초에는 가부가 결정 날 것
공화국 개국 초기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 혼합형태의 국가였다. 정,부통령 이외에 수상 중심의 내각책임제의 기능도 활성화 되었다. 1955년 최초의 총선이 실시되자 50여 개의 정당이 난립하여 연정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년이 멀다 하고 연정은 붕괴되어 내각은 수시로 해산되어 국정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한편 신생국으로서 걸음마를 걷고 있던
지난 5월 2일 자카르타에서 ‘2013 한, 인도네시아 국방협력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국방연구원 방효복 원장은 개회사에서 평화유지군, 재난구호작전, 사이버범죄 대응 부문에서 양국간의 방산협력이 제고되길 희망하였으며, 인도네시아 국방부 총비서국장(Sekjen)인 부디만(Budiman) 육군 중장은 인도네시아가 단순한 구매당사자에서
전쟁은 영웅을 탄생시킨다. 인류역사이래 가장 많은 인명피해와 가장 큰 파괴를 가져 왔던 제 2차세계대전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시에 혁혁한 전공을 세운 4성 장성들이 원수로 승진되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사막의 여우’라는 명성을 듣던 롬멜 장군이 1942년 원수로 진급한 이후, 그 다음 해에는 일본제국군에서 본토를 사수하는 동부총군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