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비즈니스 금융위기 후 핫머니 규제 목소리에 “완전한 자본 자유화 항상 바람직한 것 아니다” 공식 보고서 금융∙증시 편집부 2012-12-0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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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이 마침내 ‘자유주의의 빗장’을 풀었다. 각 나라가 형편에 따라 “외환 규제를 해도 된다”고 밝힌 것이다. 15년 전 외환위기 때 한국에 급격하고 자유로운 외환 거래를 강력하게 주문했던 IMF로선 상상키 어려운 변화다.
IMF는 4일 ‘자본자유화와 자본이동관리에 대한 제도적 시각’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이사회 승인을 거쳤다. IMF의 공식 입장이란 얘기다. 보고서는 “완전한 자본자유화가 모든 국가에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또 “적절한 금융 규제와 감독이 수반되지 않으면 자본 자유화는 경제내 변동성 및 취약성을 증폭시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적시했다. 얼핏 들으면 IMF가 아니라 중국·브라질 등 신흥국의 주장 같다. 그간 중국 등은 IMF에 “핫머니를 규제하자”며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
그뿐이 아니다. IMF는 자국 경제를 살리겠다며 돈을 마구 푼 미국·유럽의 책임론도 거론했다. “자본이동을 초래한 국가(Source Countries)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자국의 통화·거시 정책이 다른 나라에 미칠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고 주문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미국 등이 나라 경제를 살리겠다며 푼 돈이 다른 나라의 통화와 경제를 어렵게 했다는 지적이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의 파수꾼이었던 IMF의 입장 변화는 2008년 금융위기의 산물이다. 김한수 자본시장연구원 국제금융실장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주요 20개국(G20)회의에서 자본 유출입 규제에 대한 오케이 사인이 났다”며 “이번 보고서는 이를 IMF 차원에서 공식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수습하면서 이런 변화는 더 뚜렷해졌다. ‘외환자유화’ 파수꾼 IMF의 입지도 갈수록 좁아졌다. 미국은 자국 경제를 살리느라 2008~2011년 2조3000억 달러의 돈을 풀었다. 이른바 ‘양적완화’ 정책이다. 유럽도 금리를 낮춰 경기 하강에 맞섰다. 이 돈은 대부분 신흥국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2009년 7000억 달러에서 지난해 1조1240억 달러로 불어났다. 한국에 들어 온 외국인 투자(직접투자 제외) 잔액도 2010년 7029억 달러에서 9월 말 7833억 달러로 늘었다. 브라질 등에선 “싼 이자로 조달한 달러가 신흥국 시장을 헤집고 다닌다”며 볼멘 소리를 했다. ‘핫머니 규제’ 전도사로 불리는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단기 외환 자금에 세금을 물렸다. 일종의 토빈세를 도입한 것이다. 대만 ·인도네시아 등도 각종 규제에 나섰다.
과거 IMF의 정책 실패도 입장변화의 배경이 됐다. 2001년 당시 IMF 총재였던 호르스트 쾰러는 “말레이시아는 국제 자금의 유입을 통제하고도 긍정적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아시아 외환위기 때 IMF 권고를 가장 안 따랐던 국가다.
경제위기의 근원지가 아시아와 중남미에서 서구 선진국으로 바뀐것도 큰 이유다. 게다가 IMF의 주머니 사정은 예전만 못하다. 분담금을 더 내는 조건으로 한국 등의 쿼터(의결권)를 높이는 방안이 진행 중이다. 정재식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흥국의 발언권이 커지고 유럽 대륙에서도 자본 통제주장이 나오면서 미국·영국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한계는 있다. 이번 보고서가 IMF의 완전한 변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보고서는 “자본 유입에 따른 경제·금융 불안 해소를 위해선 적절한 거시경제정책 조합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외환규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 수단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IMF는 내·외국인의 차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도 명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사설을 통해 “자본 규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며 “궁극적 조치는 금융시장 체질을 강화하는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놓고 브라질 등 11개국을 대표하는 파울로 노게이라 바티스타 IMF 이사는 “IMF가 일부 진전을 보였지만 (투기)자본이 어떤 피해를 일으키는지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규제의 수준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인 셈이다. 정재식 교수는 “그렇다고 IMF가 자본 통제를 옹호한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앞으로는 자본 자유화를 예전처럼 무조건 밀어붙이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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