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확대되고 있는 한ㆍ동남아 방산분야 협력 > 경제∙비즈니스

지난해 11월 6일부터 9일까지 나흘간 대우조선해양 주가는 1만7,000원에서 연일 상승, 2만1,000원까지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방문에 거는 기대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11월 9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만나 “방산분야 협력은 상호 신뢰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표상이며, 방산 협력을 지속 증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날도 이 회사 주가는 2.4% 올랐는데, 12억달러 규모의 인도네시아 차기 잠수함 사업 입찰에서 청신호가 켜졌다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국가 간 경제교류에서 방산 분야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방산 물자는 특성상 외교ㆍ안보적 측면에서 의미도 있지만, 경제적으로도 수천억원 때로는 조 단위의 파급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 방산수출의 핵심인 T-50 항공기는 1대 수출에 따른 효과가 중형자동차 1,000여대와 맞먹는다.

인도네시아의 국가별 방산협력 규모. 한국이 러시아, 미국과 함께 상위 무기수입국에 오를 정도로 한ㆍ인도네시아 사이의 방산협력이 활발하다.

 

정권이 교체되면서도 한국과 동남아 지역의 방산분야 협력은 호혜적 관계를 바탕으로 급속하게 발전해왔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의 주요 방산 수출국으로, 그동안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T-50 훈련기나 대우조선해양의 잠수함 등 모두 27억달러의 수출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11월 자카르타에서 문 대통령이 차질 없는 추진을 약속한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사업(KFX/IFX)에도 인도네시아는 20% 지분을 투자해 참여하고 있다.

 

필리핀도 한국산 무기의 주요 수입국이다. 2016년에는 미국에 이어 한국이 이 나라에 두 번째로 무기를 많이 판 국가로 기록될 정도다. 한국은 주요 군용 차량과 K3 경기관총 등 육군 장비는 물론이고 FA-50 같은 항공기와 수 대의 코르벳함(소형 잠수함 방어함)을 필리핀에 공급했다. 추가 수출 전망도 밝다. 카를로스 도밍게스 재무장관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산 무기의 성능이 뛰어나다”며 “FA-50과 함께 다른 한국산 방산장비의 구매를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과 필리핀은 20㎜ 탄약과 중거리 대공레이더(FPS-303K), 휴대용 단거리 대공레이더(TPS-830K) 분야에서 추가 협력이 예상된다.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동남아 지역의 주요 방산 협력국이다. 태국의 경우 한국과는 T-50 골든 이글 훈련기 수출을 계기로 협력이 본격화됐다. 지난해 7월에는 T-50TH 8대의 추가 수출계약이 체결됐는데, 계약 규모는 2억6,000만달러에 달했다. 향후 F-5 파이터와 같은 전투기 성능 개선사업에서도 협력이 가능하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전투용 장갑전차를 통해 한국산 무기가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호평을 받은 FA-50 전투기도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공군이 경제성 높으면서도 성능 좋은 신형 항공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매ㆍ천궁 같은 한국 방공시스템도 유망 추가협력 대상으로 거론된다.

 

한국산 무기가 일찌감치 동남아에서 입지를 굳힌 것은 ▦가격 대비 높은 성능 ▦신흥국의 형편을 헤아리고 접근한 마케팅 전략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조선기술국인 한국은 동일 성능의 잠수함을 독일 등 경쟁국 대비 20%가량 싸게 건조할 수 있다. 한 관계자는 “동남아 현지 공군 운영 결과, T-50은 한국 기술진이 개발한 레이더 알고리즘 성능이 뛰어난 덕분에 스마트 폭탄보다 저렴한 일반 폭탄으로 폭격할 경우 미 F-16보다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과거 유럽ㆍ미국과의 방산협력 과정에서 경험한 ‘서러움’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도 한국 방산업계가 동남아에 접근하기 쉬운 요인이다. 동남아 무기시장을 석권했던 유럽 업체가 단기 수익에 치중하는 고압적 행태로 신뢰를 잃고 있는 반면, 한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상대방 애로사항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으로 믿음을 쌓아가고 있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방산 협력을 위해 노력 중인 전진구(왼쪽ㆍ대우조선해양), 이웅권(한국항공우주산업) 자카르타 지점장. 두 전문가는 동남아와 한국의 방산 협력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동남아와 방산 협력이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바로 중국의 물량 공세다. 대부분의 중국 공산품처럼 중국산 무기는 아직 그 성능에서는 한국산과 경쟁할 수 없는 수준이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이 지난해 봄 한 동남아 국가에서 수출용 대공화기 성능을 시연하던 중 기기 오작동에 따른 폭발로 현지 군인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교ㆍ안보 측면에서 동남아를 영향권에 두려는 중국 최고지도부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저가ㆍ물량작전을 펼치고 있어 최종 선정에서 한국산 무기가 탈락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태국 정부의 잠수함 사업이다. 이 사업은 애초 대우조선해양의 최종 사업자 선정이 유력했으나, 막판 중국에 넘어갔다. 한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킬로’(Kilo)급 잠수함을 금리 0%, 35년 장기분할 상환 조건에 내놓았다”며 “잠수함을 사실상 공짜로 준다는 이 조건을 마다할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전진구 대우조선해양 자카르타 지사장은 “방산협력은 경제성 이외에도 인간관계 등 감성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핵심은 국가적 지원”이라고 말했다. 전 지사장은 “인도네시아 방문에서 보여준 문 대통령의 방산협력 약속 준수 의지가 향후 협의 과정에서 큰 도움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