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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63) 플라타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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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8,922회 작성일 2020-11-04 11:26

본문

플라타너스
 
노경래
 
 
못생긴 이웃집 혜숙이 누님을 닮았다.
그래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줄기에는 덕지 버짐, 밑동에는 혹뿔이
너를 보면 발길질부터 하고 싶었다.
 
어느 가을 날
네가 놓아 버린 낙엽들은
너울 춤을 추며 보도에 떨어지더니
바스락거리며 후미진 곳으로 쓸려간다.
 
낙엽이 반쯤 진 너를 올려다보며
이방인 이름으로 이 땅에 와서
번듯한 이름 하나 얻지 못한
지난 세월 너의 서러움을 생각한다
 
<빈센트 반 고흐, 큰 플라타너스 나무 73.4×91.8, 유화/천, 1889 >
 
 
** 시작 노트

코로나 덕분에 오랜만에 서울에서 가을을 보내고 있다. 거리에는 말라 떨어진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이 바람 따라 바스락거리며 여기저기 휩쓸리고 있다.
 
곱게 물든 은행나무나 단풍나무 앞에서 잠시 멈춰 사진을 찍어 보지만, 버짐 꽃을 덕지덕지 피운 플라타너스는 준 것도 없이 그 밑동을 한 번 차고 지나가고 싶어 진다. 그래서 플라타너스는 이 땅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도 우리말로 된 이름 하나 얻지 못했는가 보다.
 
내 처지와 닮은 점이 있어 플라타너스를 보면 애틋함이 느껴진다. 인도네시아에서 12년 넘게 살았지만 나는 여전히 미스떠르~이니까… 플라타너스를 올려다보면서 나는 영원한 주변인, 디아스포라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니 좀 씁쓸해 진다.
 
그러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지 않는가. 너와 내가 달라서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 단풍도 들지 않고 바로 말라 떨어진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있기 때문에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오히려 이 가을의 본색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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