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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유년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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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7-11-29 17:36 조회 6,27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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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겨울
 
                           김현숙
 
코끝을 때리는 찡한 공기
몇 시나 됐는지
창호지는 벌써 새하얗고
격자무늬 속 단풍잎
눈 속에 핀 꽃송이 같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등을 구부려 온기를 모아본다
‘아……
며칠 남지 않은 개학
마지막 쓴 일기는 언제였는지……’
마음도 시끄러운데
기다리던 할아버지 두런대신다
“남들은 큰길까지 빤하게 치웠는디……”
첫눈은 맘을 설레게도 했다지만
눈치 없는 눈은 밤에도 쉬지 않는다
귀신들린 문고리 손에 쩍 달라붙고
살금살금 토방위로 올라 앉아있는 눈
끝없이 쏟아지던 꿈속의 별들이
마을을 덮친 건지
고립된 사람들이 길 찾기에 바쁜 아침
방패연마냥 나무에 걸린 해는
눈 녹일 생각에
숙제를 미뤄 논 나만큼이나 걱정이다
쪼그라든 빨간 홍시
겁 먹은 참새 한 마리가
나무 끝에 숨어있다
 
 
시작노트:
어릴 적, 고향에서의 눈은 설렘이었다가, 장난감이었다가, 졸린 눈을 비비고 쓸어버려야 하는 골칫거리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적도에서의 눈은, 전설처럼 때론 동화처럼 속삭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 고향의 첫눈 소식을 들었습니다. 추억할 것들이 많아진 나이임에도 묘한 설렘 속에 보낸 하루였습니다.
 
(사진=조현영 /manzizak)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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