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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37) 콘크리트에서 핀 장미: 자카르타 슬럼에서 만난 아이들, 나 그리고 우리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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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9,262회 작성일 2020-04-2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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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에서 핀 장미: 자카르타 슬럼에서 만난 아이들, 나 그리고 우리들의 꿈.
 
조인정
 
콘크리트에서 핀 장미
– 미국의 시인이자 래퍼인 투팍 샤커(Tupac Shakur) –
 
그대는 들었는가
콘크리트 틈새를 비집고 피어난 장미에 대해
두 발 없이도 걷는 법을 스스로 깨달아
자연의 법칙 따위는 엉터리라는 걸 증명하였고
누구도 믿으려 들지 않겠지만
장미는 꿈을 포기하지 않기에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다네
시선 주는 사람 아무도 없어도
콘크리트를 뚫고 자란 장미는 오래오래 피어있으리!
 
 
친구 벨라가 태워주는 오토바이 뒤에서 혹시나 떨어질세라 두려운 마음에 그녀의 옷깃을 두 손으로 꼬옥 붙잡고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 역으로 향한다. 그 역에서부터 느릿느릿 모든 정거장을 서는 크레타(kereta, 전철)를 타고 삼십 분을 걸려 도착한 역에서 하차한다. 빵빵거리며 눈 앞에 멈춰서는 앙콧(angkot, 미니버스) 안으로 들어가 몇 뼘 남짓한 공간에 비집고 앉아 차의 덜컹거림을 온몸으로 느끼며 십분 정도 달려간다. 길가에 앉아있는 오젝(ojek, 영업용 오토바이) 아저씨들에게 가격을 흥정하고 탄 오토바이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달린다. 인스턴트 커피와 크루푹(kerupuk, 튀긴 과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조그마한 한 와룽(warung, 노점상) 앞에서 내린다. 부패되어가는 쓰레기더미, 모래와 시멘트가 날리는 폐허, 악취가 진동하는 구정물이 흐르는 좁다란 골목을 걸어간다. 조금 걷다 보면 저 먼발치에서 내 모습을 본 아이들이 “kak 인정”을 외치며 달려와 내 품에 안긴다. 아이들은 자그마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우리는 마음씨 좋은 학교 선생님 댁 앞에 다다른다. 그 집 문 앞 작은 공간, 전등이 없어 어둑어둑하지만 비는 피할 수 있는 그 곳. 내가 약 두 시간 발걸음을 해 찾은 이유다. 겨우 걸음걸이를 뗀 듯한 어린 아이들부터 늠름해 보이던 초등학생 고학년 아이들까지 모두 모여 옹기종기 앉아있던 그 곳.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가득 메워진 그 곳. 그곳은 바로 내가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는 소중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와세다 대학교 국제교양학부 재학 중, 알 수 없는 미래와 목표를 향한 선택의 길목에서 고민하던 나는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UI, Universitas Indonesia)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 벨라를 어느 수업시간에 우연히 만났다. 둘 다 여태까지 사회 빈민층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해 왔다는 것에 공감하며 우정을 쌓았고, 벨라는 내게 인도네시아 도시 슬럼가에서의 교육봉사 활동을 권했다. 2016년 여름방학, 처음 마주한 인도네시아에서 나는 열악한 환경에도 환한 웃음과 명랑함을 잃지 않던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수업에 집중했고, 손을 번쩍번쩍 들고 수업 중 내가 던지는 질문들에 열정적으로 답했다. 아이들의 이러한 모습은 내 마음 속 따뜻이 스며들어 내가 교육학의 길을 선택하게 했고, 금후 인도네시아 빈민층 아이들의 교육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었다. 그 후로 매 방학마다 나는 그 아이들이 보고 싶어 인도네시아를 찾아 꾸준히 교육봉사를 했고 아이들에게 조금 더 나은 교육환경과 정책을 구현하고자 하는 간절한 꿈을 가슴에 안았으며 ‘도시 슬럼교육’에 대해 연구해보자고 결심했다.
 
< 2016년 여름, 슬럼가 아이들에게 영어 수업을 하며(사진=조인정) >
 
도시 슬럼에 대한 자료와 통계 수치를 찾으면 찾을수록 나는 인도네시아의 도시 슬럼이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도네시아의 도시화율은 이미 53.7%에 다다라 약 1억 3,740만을 이루고 있었으며, 자카르타는 동남아지역 안 가장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이었던 것이다. 또한 급격한 도시화로 도시 개발이 교외지역으로 무분별하게 팽창하는 도시스프롤 현상을 겪으며 무질서한 교외화가 벌어지고 있었고, 그 확산속도는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증가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었다. 더욱이 이러한 도시화로 땅값과 임대료가 급등하여 문제는 적은 임금으로 주거비를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운하와 철도 근처의 무허가 주택이나 다리 밑에서 생계를 이어갔다. 이른바 ‘슬럼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2019년 세계은행과 인도네시아 농지공간기획부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자카르타의 267개의 끌루라한(kelurahan) 중 44%에 슬럼이 있고, 그 곳의 거주민 중 전체의 절반이 강 주변에 주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슬럼교육(Slum Education)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겠습니다!”
 
2018년 와세다대학 대학원 아시아태평양 연구과, 일본 내 교육학으로 정평이 나 있는 쿠로다 카즈오 교수님의 세미나 시간, 나는 이십 여명 남짓한 학생들 앞에서 내가 정한 연구주제와 연구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아이들과의 따스했던 기억들을 토대로 한 이 연구주제로 내 열정을 200% 어김없이 쏟아낼 수 있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욱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 후 며칠 뒤 연구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교수님의 오피스에서 쿠로다 교수님과 일대일 면담을 가졌다. 교수님은 내 연구 계획서를 다시 읽어보시며 말씀하셨다.
“교육학에서 ‘슬럼교육’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단다. ‘도시빈민을 위한 교육 (education for the urban poor)’으로 바꾸는 게 어떻겠니? 그렇지 않다면 다른 연구를 생각하는 것이 좋을 거 같구나.”
 
교수님의 조언은 현재까지의 교육정책학 동향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각 정부는 도시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교육정책으로, 그들을 거리의 아이들(street children), 근로 어린이(working children), 고아(orphans) 등 여러 그룹으로 분류하여 특정 그룹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상별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슬럼교육’이라는 용어는 교육정책에서는 사용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정책 담론의 부재는 내가 더욱 ‘슬럼교육’을 고집한 이유였다. 즉, 정부가 시행하는 분산적 성격을 띄는 교육 프로그램과 정책은 그들이 정한 카테고리에서 배제되는 슬럼 거주 아이들을 지원해줄 수 없었고 이들을 자동적으로 정책영역 안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슬럼에 거주하는 취학 아동 및 장애학생 등). 따라서 슬럼 아동을 위한 포괄적 프로그램의 생성이 절실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펼치고 있는 슬럼 관련 정책 안 교육 분야의 부재 또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유엔은 2016년부터 2030년까지 국제사회가 달성해야 할 17개의 목표를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로 명시했는데, 목표(Goal) 11번 중 1번째 세부목표는 슬럼에 관한 목표로 “2030년까지 안전하고 저렴한 충분한 주거공간과, 기초 서비스에 대한 전면적인 제공 및 빈민촌의 재개발 추진 (ensure access for all to adequate, safe and affordable housing and basic services and upgrade slums)”을 일컫는다. 거주민의 안전과 위생을 우선시한 건축 구성요소에 대한 법정 최소 표준 충족을 강조하는 이 목표 아래, 인도네시아 정부는 국유 저소득 임대주택인 루수나와(Rusunawa, Rumah Susun Sederhana Sewa)를 축조하여 슬럼 거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현실화시켜 왔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현 루수나와 정책은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의 교육 지원책을 포함하지 않고 있으며, 그들의 사회・문화 참여도의 확대를 이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정책상의 부재에 더불어, 슬럼거주 아이들은 학교 안팎에서 가정까지 그들이 접하는 모든 환경적 요인의 영향으로 심각한 수준의 학업 및 사회정서 학습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내가 그동안 슬럼가 교육봉사와 논문을 위한 인터뷰를 하는 중에 많은 슬럼 거주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만나 그들이 전하는 잊지 못할 스토리를 접하며 알게 되었다.
 
아빠를 일찍 여의고 엄마를 도와 12시부터 오후 6-7시까지 나시우둑을 요리하고 파는 것이 하루의 주요 일과인 10살 여자아이도 있었고, 언제나 빵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학교 안에서도 방과후에도 빵을 파는 10살 남자아이도 있었다. 아들이 갓난아기였을 때 발작이 났어도 금전적 형편이 되지 않아 병원에 갈 수 없었던 것을 영원히 후회하고 있는 엄마도 있었고, 어릴 적 발작이 빚은 학습지체로 같은 학년을 두 번이나 반복하며 학우들에게 놀림 대상이 된 12살 남자 아이도 있었다. 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은 조산사의 도움으로 세상에 태어나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어 공립학교에 입학할 수 없는 13살 남자아이도 있었고, 가정불화의 영향으로 인해 발병한 ADHD로 수업 시간 교실 여기저기를 산만하게 움직여 다니는 7살 여자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도 슬럼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가장 크게 저해시키는 요소는 어쩌면 ‘슬럼을 향한 인도네시아인들의 사회적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내게 너무나 충격적이고 가슴 쓰린 현실이었다. 2019년 8월 말부터 나는 인도네시아 교육문화부에서 주관하는 다르마시스와 장학생으로 아트마자야 가톨릭 대학교에서 BIPA를 공부했는데, 나는 현지인 친구들과 함께 때때로 인도네시아 사회 문제해 대해 논하고는 했다. 내가 동정 어린 마음으로 슬럼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놀랍게도 나의 가장 친한 인도네시아 친구들조차 내 의견에 공감하지 않았다.
 
“정부는 국가세금으로 빈곤층, 슬럼 거주민들을 위한 많은 혜택을 주고 있어. 최근에는 사회복지 카드도 제공하고 있고, 그 카드를 쓰면 건강보험도 무상교육도 받을 수 있어.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정부의 혜택을 원하고 있잖아. 내 생각에는 그들의 나태함과 의존성이 근본적인 문제야. 정부의 정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문제라는 말이야.”
 
친구들의 말에서는 슬럼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이 느껴졌다. 우리와는 다른 그들을 일컬으며 말이다. 실제로, 슬럼은 단순히 공간적・물질적 개념으로써 수도, 위생시설, 생활공간, 주택내구성, 거주권 등의 유무에 입각하여 이해될 수도 있지만 (유엔해비타트(UN Habitat)의 정의), 비판적 사회공간론적 관점에서 또한 중요시 해석된다. 후자는 즉, 상대주의에 입각하여, 슬럼을 도시 중심부에 거주하는 상류층에 대비되는 경제적・인종적・문화적으로 나약한 사회 소외계층’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슬럼이 인도네시아인들 사이에서 ‘편견’을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던 것일까? 이는 19세기 네덜란드 식민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덜란드 도시 중산층은 관습법(adat)에 따라 고유마을 깜풍(kampung)에서 살아가는 인도네시아인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천박하고 격식이 없으며 문화가 뒤떨어진다고 느꼈다. 이러한 식민지 차별의식이 스며든 공간인 ‘깜풍’이 오늘날 슬럼의 원천이었고, 현재까지도 사회 불평등의 상징으로 ‘슬럼’ 혹은 ‘깜풍’으로 불려오게 된 것이다. 그 후 역사의 연장선에서, 깜풍의 규모는 더욱 확장되었는데, 특히 1945년 독립 이후에는 자카르타에 대규모 도시 이주가 있었고, 많은 이들이 정부의 눈을 피해 깜풍에 불법주택을 지었다. 그리고 현재는 근대화와 자본주의가 상류계층이 우위자를, 슬럼 거주민들이 하위자를 차지하는 사회적 불평등 권력관계를 더욱 확고하게 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며 문득 이런 의문들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가 만들어낸 도심 안 불평등 구조를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 단념하고 그 존재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슬럼에 살고 있는 ‘그들’이 형성하는 사회와 다르다고 믿으며 우리들의 사회 정체성의 우월한 사회적 지휘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나는 잔잔한 인도네시아 노래를 듣다가 핸드폰 갤러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찾아본다.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 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왁자지껄했던 순간순간이 새록새록 떠올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게 따스한 감성에 젖는다. 하지만 그 감성 뒤에는 항상 여러 고민들이 따른다. 어떤 교육이 슬럼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아이들에게 긍정적 사회정서를 함양시킬 수 있을까? 그 아이들에게 질 좋은 교육이란 무엇일까? 자카르타 시민들이 그 아이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까? 언젠가 자카르타인들이 서로가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서로를 돕는 날이 올까? 수많은 질문을 가슴 한편에 고이 담아 간직하고 오늘도 학업에 임한다. 또 다른 저널 하나를 읽고, 또 다른 리포트 하나를 쓰며. 언젠가 아이들을 다시 볼 날을 기대하면서, 그리고 언젠가 교육정책을 만드는 자리에서 그 아이들의 어려움을 표하고 다른 교육자들과 함께 슬럼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정책수단과 프로그램을 모색하는 순간을 꿈꾸면서.
 
내가 만난 아이들, 그들이 가진 스토리는 매일같이 삶의 목적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밝은 웃음과 각자가 마음 속 가지고 있는 꿈의 이야기를 되짚으며 나는 슬럼이 더 이상 도시의 그늘과 슬픔만이 만연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곳에는 수많은 아이들의 희망에 가득찬 모습이 항상 밝게 빛나고 있었으니까. 마치 도심의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아름다운 향기를 피어내고 있는 장미들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들(사진=조인정)>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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