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황혼 무렵 2 (Waktu Maghrib 2)> 관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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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무렵 2 (Waktu Maghrib 2)> 관람 후기
배동선
왼쪽은 2025년 5월 28일(수) 개봉한 <황혼 무렵 2(Waktu Maghrib 2)>의 포스터. 2023년 9월 개봉한 <황혼
무렵 (Waktu Maghrib)>(오른쪽 포스터)의
속편이다.
러닝타임 내내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호러 영화가 인도네시아에 아주 없진 않지만 그리 많은 게 아닌데 2023년의 1편이 그런 영화였다.
팽팽한 긴장감과 그걸 가능케 하는 아이들의 실감나는 연기가 압권인 1편이 240만 관객을 불러들였으니 속편이 나오리란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 달 전쯤 속편 트레일러가 공개될 때부터 꽤 기대되었다.
영화 외적 요소
인도네시아는 5월 29일(목) 예수승천일, 5월 30일(금)은 징검다리
휴일이지만 6월 1일 빤짜실라의 날이 일요일만 아니었다면
휴일이었을 것이어서 그 대체휴일이라 볼 수 있어 그렇게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총 4일의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다. 따라서 그 하루 전인 5월 28일을 개봉 시점으로 잡은 선택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인도네시아도 개봉 후 첫날 또는 첫 3일간의 관객 수가 중요하다. 멀티플렉스 상영관 체인들 중 Cinema XXI 260여개, CGV 70여개, Cinepolis 56개 등 각각 많은 상영관들을
가지고 있지만 인기를 끌지 어떨지 모를 영화를 전국 상영관에 한꺼번에 까는 것은, 혹시 그렇지 않을
경우 더 재미있는 영화를 걸었을 때에 비해 손해가 나는, 적잖은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일이니 일단은 유동인구가
많은 몇몇 상영관에 걸어 관객상황을 좀 본 후 몇 개의 상영관을 할당할지, 아니면 그냥 거기서 바로
접고 다른 영화에 스크린을 넘길지 결정하게 된다. 그러니 개봉과 동시에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은 상영관보다
제작사나 배급사 쪽에서 더 절실한 일이다. 첫 사흘 간의 성적이 전체 성적을 좌우하는 셈이다.
그래서 <황혼 무렵 2>는 5월 28일-30일의 사흘
동안 Buy 1 Get 1의 프로모션이 달렸다.
난 29일 저녁 6시반 타임을 보러 갔는데 혼자 간 관계로 서비스 티켓을 포기해야 했다. 그냥
한 장만 달라고 했다. 120석 규모의 스튜디오가 반쯤 찼다. 얼마
전 역시 개봉 직후 평일 저녁에 본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커닝>도 대략 그 정도였으니 나쁜 성적은 절대 아니다. 물론
영화를 다 보고 나올 때의 만족감은 큰 차이가 났지만. (물론 바이원 겟원이니 실제 유료관객은 그날
관객 수의 절반)
또 하나는 영화를 틀어주는 방식이 조금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난번 <설탕공장(Pabrik Gula)>을 볼 때 날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영화 본편 직전 나왔던 트레일러 영상이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엔 영화가 시작되기
전 제일 처음 영화 예고편 트레일러 두 개를 연달아 틀어주고, 그런 다음 각종 광고, 자체 상영관 홍보, 영상연령등급 영상, 음향시스템 홍보영상 순으로 나온 후 곧바로 본편이 시작되었는데 이젠 본편 직전에 트레일러가 하나 더 붙는 식으로
포맷이 바뀐 모양이다.
그건 트레일러도 일종의 광고인 만큼 아무래도 좀 더 집중하고 보게 되는 본편 영화 직전 트레일러에 특별한 조건이나 별도의 가격표가
붙어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일종의 정책(예를 들면 문화부가
지정하는 촉망되는 영화는 좀 더 부각시켜야 한다거나 해당 상영관 모기업이 투자에 참여한 영화여서 좀 더 홍보해야 한다는 의지가 가미되었거나 등)이라든가.
시놉시스
지난 1편은 2000년대 초의 어느 해인데 30년 전에 있었던 아이들 실종사건을 앞에 보여준 후 시작한다. 1편의
주인공은 아디(Adi), 사만(Saman)이라는 두 명의
남학생, 그리고 여학생 아유(Ayu) 이렇게 세 명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대략 중학교 1학년쯤 되어 보였다.
2편에서는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지난 2020년대
초반의 어느 해가 시대적 배경이다. 즉 현재 시점인 셈이다. 그
시점에 20년 전에 자티자자르 마을사람들을 공포에 불어넣었던 아이들 실종사건과 비상식적인 살인사건이
다시 벌어지는 것이다.
이번에도 중 1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 유고와 데워, 그리고
유고의 여자 사촌이자 동급생 울란, 이렇게 세 명이 스토리의 중심이 되지만 규모는 훨씬 커진다. 첫 영화가 성공하면 두 번째 영화는 <에일리언 2>, <28주 후>처럼 규모를 키워서 더 큰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모든 영화감독들의 일반적인 반응인 것 같다. 어떤 것은 전편의 여세를 몰아 크게 성공하고
어떤 것은 폭발력이 줄어들거나 졸작에 그치기도 한다.
이번엔 학교 축구팀 전체가 등장하고 마을 전체의 모든 아이들이 악한 존재에게 홀려 위기에 빠진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나온 전설적 영화, 또는 나름 큰 성공을 거둔 영화들의 속편들은 전편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게 대부분이다.
다른 학교와의 축구경기에서 진 유고의 팀은 자중지란으로 서로 싸운 후 후보 무리들만 먼저 픽업트럭 짐칸에 타고 마을로 돌아가다가 숲속
길에서 마그립, 즉 땅거미를 맞으며 사고에 휘말린다. 갑자기
차 앞에 뛰어든 한 학생이 트럭이 치어 죽는데 차에 타고 있던 울란이 먼저 숲속으로 사라지고 유고를 포함한 나머지 학생들이 울란을 찾아 숲속으로
들어가지만 거기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학생은 유고와, 어딘가 이상해진 울란 두 사람뿐이다.
▲주인공
3인방. 왼쪽은 울란 역의 안나티야 끼라나, 오른쪽은
유고 역의 술탄 하모낭안. 가운데가 주전 팀에서 울란을 좋아하는 데워 역의 가지 알합시.
실종된 아이들은 축구팀의 다른 친구들에게 나타나 함께 놀자며 하나 둘 마물의 저주 속으로 이끌고 울란에게 깃든 숲속 마물은 어른들에겐
천연덕스럽게 울란을 연기하면서 아이들에겐 눈을 뒤집어 까고서 잔혹한 공포를 선사한다.
그 와중에 20년 전 전편에서 친구 사만을 잃어 복수심에 불타는 아디가 성인이 되어 나타나
이 사태에 개입하지만 복수심 외에는 아무 능력도 없는 그가 이 사태에 어떤 도움이 될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마물은 20년 전에 맡았던 아디의 특별한 영혼의 냄새에 매료되어 그에게 집착한다.
민화와 괴담, 그리고
이슬람
<황혼 무렵> 시리즈는 오마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전의 여러 영화들, 관련 인니 민속과 괴담들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30년 또는 20년 주기로 돌아와 산속
마을의 아이들을 노리는 악한 존재라는 설정은 비슷한 주기로 돌아오는 헐리우드의 <지퍼스 크리스퍼스>나 <프레데터> 같다. 만만치 않은 놈이 돌아오는데 절대로 퇴치할 수 없는 존재란 측면에서.
물론 이 영화의 기반 문화는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밤 늦게까지 밖에서 노는 아이들을 잡아가는 미지의 존재, 산데깔라, 웨웨곰벨, 웨웨깔롱
등으로 대변되는 귀신과 마물들의 괴담과 연결된다. 그러다가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이 유입되면서 ‘해가 지는 시간 마그립 기도시간을 지키지 않는 불경한 아이를 잡아가는 밤귀신이 있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여기엔 그런 귀신들에게 잡혀간 아이들이 ‘시구루룽’이라는 또 다른 마물/귀신이
되어 마을의 친구에게 돌아와 같이 놀자며 숲으로 불러들이는 모습도 묘사된다. 민화 속 시구루룽은 호랑이에
붙어 다니며 다음 희생자를 불러 들이는 우리 민화의 창귀와 비슷한 존재다.
한편 이 영화 속에 머스짓(Masjid), 모스크가 등장하고 히잡과 아잔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영화 속에서 인간과 마물이 충돌하며 부딪히는 것 말고도 감독의 머리 속에서는 이슬람이란 유일신 종교와 숲속의 마물이란 이교도의 귀신이 양립할 때
필연적으로 파생하는 ‘신성모독’에 대한 공포와 고민이 시작되고
말았다.
영화 속 모스크의 한 우스탓은 ‘마그립 황혼녘은 귀신들이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시간이니
마그립 기도를 하기 위해 모스크에 오려면 해가 지기 전에 조금 일찍 모스크에 도착하라 말하는데 유일신 종교의 신도들이 숲의 잡귀들 존재를 인정하고
또 두려워한다는 것은 사뭇 이율배반적이다. 이 영화의 운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영화검열위원회를 무사히 통과해 스크린에 걸렸다는 것은 그 모든 신성모독적 요소들을 극복하고도 남을 만한
조치를 취했다는 의미다. 싯다르타 타타 감독은 이 영화의 장르를 온전히 ‘이슬람 호러’로 잡았다. 이슬람
세계관을 기반으로 자바의 귀신들을 등장시키는 ‘이슬람 호러’ 영화들은
그 전개가 어떻든 영화의 결말은 알라의 승리로 끝난다.
그러니 아무 힘도 없는 아디가 저 지퍼스 크리퍼스 급 마물을 잡겠다고 나서도 말이 되는 것이고 그들 더욱 허약하고 미천하게 표현할수록
알라의 영광이 이 영화를 통해 증폭되어 마침내 영화검열위원회의 승인도장을 받아내게 만드는 것이다.
이름만 봐서는 불교 신도일 것만 같은 싯타르타 감독은 위험한 외줄타기를 시도하기보다는 안전한 플레이를 선택해 신성모독의 위기를 완전히
벗어났지만 그만큼 좀 더 흥미진진할 수도 있었을 스토리 전개의 다양성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쉬운 점이다.
▲싯다르타 타타 감독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호러 옴니버스 영화로 감독 데뷔한 그는 이후 주구장장 호러영화만 찍고 있다. 2024년 액션 로맨스 <알리 또빤(Ali Topan)> 등 몇 편만 빼고. 하지만 2016년부터 여러 단편영화를 만들며 기초를 닦아 나름 기본기가 충실한 감독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배짱은 좀 없는 거 아닌가?
확장 이전의 저주
잘 나가던 작은 식당이 줄을 선 손님들을 보고 갑자기 몇 배로 식당을 확장 이전하면 손님이 뚝 끊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더
잘 해보겠다는 들뜬 마음에, 결이 맞지 않는 메뉴와 종업원들을 대거 새로 투입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1편의 아디(알리 피크리 분)는 그가 어린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설졍과 연기가 신선했던 거다. 다 큰 어른이 된 30대의
아디(오마르 다니엘 분)는 아쉽게도 어린 시절의 매력을 거의
다 잃고 말았다. 당시 3인방 중 살아남은 아유가 먼 곳에서
전화로만 등장하는 것도 그렇다. 1편의 인물들을 사용하지 않고 2편의
학생들만으로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훨씬 더 신선하지 않았을까? 물론 1편의 동어반복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
또 다른 문제는 대거 늘어난 아이들의 문제다. 1편에서는 마물에 빙의된 사만 혼자서 치던
분탕질은 이번엔 울란 외에도 그날 실종되었다가 시구루룽이 되어 축구팀 친구들을 찾아가는 여섯 명의 아이들을 빙의된 좀비 살인마처럼 묘사한 것은
공포스러우면서도 신비로워야 할 영화의 분위기를 저해했다고 판단된다.
처음 숲속 밤길 교통사고에서 죽은 아이의 시신이 도로에 누운 상태에서 그 아이의 영혼이 울란을 손짓하며 꾀어내는데 그렇다면 영혼이어야
할 여섯 명의 아이들이 물리력을 가지고 몰려 다니며 친구들과 주민들에게 칼과 낫을 휘둘러댄다는 설정이 생뚱맞았다.
숲속 마물이 아이들을 납치해 조폭을 만들다니.
이슬람 코드를 사용하는 방식도 좀 그렇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목사님이 일요일 대예배 설교를 하면서 주일날 교회에 가는 대신 동해안에 여행을 갔던 일가족이 고속도록 교통사고로
몰살한 사건을 들면서 분노한 하나님에게 천벌을 받은 것이라 강변한 것에 어이없어 했던 기억이 있다. 종교와
신앙이 동정심과 관대한 보다 편협한 저주와 공포를 불러 일으키려 하고 그걸 목사라는 인간이 강단 위에서 오히려 조장하며 교인들을 가스라이팅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에서 마그립 숄랏 기도를 하러 들어간 아이들은 사고를 피하지만 기도를 거르고 갈 길을 가려 한 아이들이 사고를 당해 숲속
귀신에게 잡혀가는 것이나, 좀비 조폭이 된 여섯 친구들이 다른 아이들 앞에 나타나 패악질을 저지르는
동안 가족들과 함께 경건하게 숄랏 기도를 올리던 친구에겐 나타나지 않는 것 등에서 그런 얄팍한 종교관이 느껴졌다.
그게 감독으로서는 스스로의 신앙심을 증명하고
동료 무슬림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장치였는지 몰라도 저 위의 일요일 교통사고 일가족 사망 설교를 들었던 사람으로서는 똑같은 설교를 영화를 통해 듣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알라의 위대한 승리로 귀결되어야만 하는 이 영화의
지극히 도식적, 상투적 결말 부분을 참아내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하지만 열연을 아끼지 않은 어린 연기자들에게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의외로 어린이-청소년 연기자들의 연기 퀄리티가 상당하다는 생각을 새삼 갖게 만든 영화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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