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또 다른 심리 스릴러 <슬립 콜(Sleep Call)>(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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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심리 스릴러 <슬립 콜(Sleep Call)>(2023)
배동선
▲<슬립콜>포스터
2023년 9월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한 영화 <슬립콜(Sleep Call)>은 이제 프라임비디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쉽게도
아직 한국어 자막은 붙어있지 않다.
슬립콜이란 주로 연인 사이에서 잠들기 전 전화통화를 시작해 어느 한쪽이 잠들 때까지 통화하는 것을 뜻한다. 모닝콜과 반대 개념에 가깝지만 어딘가 로맨틱한 애틋함이 묻어나는 것 같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자동적으로 2024년 1월에
본 <살아서도 죽어서도(Sehidup Semati)>가
떠올랐다. 영화 제작 시기로는 <슬립콜>이 먼저인데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 라우라 바수키(Laura Basuki)가
맡은 역할이 <살아서도 죽어서도>에서의 역할과
거의 비슷하다는 것에 놀랐다. 그 반대의 순서로 봤다 해도 똑같은 느낌이었을 것 같다.
라우라 바수키는 FFI 작품상을 받은 <과거, 지금 그리고 그떄(나나)>라는
영화에서 본처와 가깝게 지내는 남편의 정부를 연기한 좋은 배우인데 최근 출연 영화들의 선택은 좀 지나치게 모험적이지 않은가 싶다.
기본적으로 인도네시아는 심리 스릴러 영화를 아직 잘 만들지 못하는 편인데 연이어 찍은 두 편의 영화 속에서 그녀는 ‘살인범을 필사적으로 쫓았는데 잡고 보니 그게 바로 나더라’하는 식상한
결말에 향해 매번 똑같은 모습으로 달려가고 있다.
물론 영화의 배경과 전개는 사뭇 다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에서 라우라는 매맞는 아내를 연기했고 <슬립콜>에서는 최근 수년 간 인도네시아의 큰 사회문제가 되어 온 온라인대출(pinjol)로
인해 해결사들에게 압박을 받다가 오히려 그 대출조직의 전화 영업직원이 된 여인을 연기했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에서 그녀를 건드리거나 괴롭히는 이들은 어떤 존재에게 공격당해 죽거나 치명상을 입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라우라
자신에게서 발생한 다중인격 중 하나.
그런 류의 영화들이 헐리우드에서도 많이 만들어지다가 이젠 거의 멈췄는데 인도네시아에서 같은 배우가
1년도 안되는 터울을 두고 거의 같은 역할로 영화를 두 편 찍었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두 영화 감독들은 라우라가 그 배역에 가장 어울리는 연기자라 생각했던 것이겠지만 <슬립콜>이 33만 명 가량 관객을 불러들여 제작비를 거의 건지지 못한
걸 보고서도 같은 배우, 같은 전개로 <죽어서도 살아서도>를 찍어 겨우 12만 명을 불러들이며 폭망한 건 센스가 없다
해야 할까? 아니면 무책임하다 해야 할까?
<슬립콜>을 찍은 파자르 누그로스(Fajar
Nugros) 감독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요위스 벤(Yowis Ben)> 트리올로지를 찍으며 모두 100만 넘는 관객들이 들어 나름 흥행감독 축에 드는 사람이다.
▲파자르 누그로스 감독과 영화 <이낭(Inang)>
1978년생의 파자르 누그로스 감독은 줄곧 드라마 26세 경에 첫 영화를 찍으며 데뷔해
그간 40편가량 영화를 찍었는데 대부분 드라마, 코미디 장르였고
인도네시아인들의 최애 장르인 호러영화를 찍은 것은 2022년 <이낭(Inang)>이 처음이었다.
이 영화는
<어미>라는 한국 타이틀로 번역되어 2022년
제26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는데 나름 호평을 받았고 인도네시아에서도 82만 명의 관객이 들어 평타를 쳤다. 하지만 <슬립콜>같은 심리 스릴러를 잘 만들 정도의 역량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로 여실히 밝혀졌다.
그는 최근 현지 트랜드에 따라 호러 장르로 선회하려 하는 것 같은데 2022년 <이낭> 이후 <꼬린(Qorin)> 제작에 참여했고 2024년에는 <마녀들의 여왕(Ratu Sihir)>(미개봉)을 찍은 점에서 그런 의도가 읽힌다.
라우라 바수키를 제외한 대부분의 배우들은 그리 낯이 익지 않은데 온라인 대부업체 사장을 연기한 브론트 빨라라에(Bront Palarae) 정도가 눈에 띈다. 그는 조코 안와르 감독의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 1, 2편에서
주인공 가족들의 수상한 아버지 역을 열연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영화에 주로 날카로운 악당 또는
자애로운 아버지 역으로 다작하고 있다.
▲브론트 빨라라에
영화가 다루고 있는 온라인 대출은 무허가 업체들이 너무 쉽게 돈을 빌려줬다가 해결사들을 이용해 과도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추심업무를
강행하면서 사회적 물의를 낳고 이로 인해 삶이 망가지거나 심지어 목숨을 버리는 이들이 쏟아져 나온 현대 인도네시아의 중대한 사회문제 중 하나다. 그런 문제와 실태를 영화가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점은 나름 평가해줄 만한 부분이다.
영화 속 디나(라우라 바수키 분) 역시 빚을
갚지 못해 해결사들에게 쫓기다가 이를 탕감받는 조건으로 그 대부업체에 들어가 전화상담원이 되어 돈을 대출해 주기도, 이를 추심하기 위해 상대방을 압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그녀가 치러야 할 대가의 전부가 아니다. 대부업체의 사장 또미(브론트 빨라라에 분)은 디나를 성노리개로 삼았고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는 매니저 바유(끄리스토
임마누엘 분)는 속도 없이 디나에게 계속 사귀자고 졸라댄다. 하지만
정작 디나는 전화앱을 통해 사귀게 된 라마(Rama)라는 온라인 애인에게 크게 의지하고 살고 있다.
그런 디나가 괴로워할 때마다 라마가 은밀하게 그녀를 돕는데 그녀를 괴롭히는 이들은 끝내 그의 손을 벗어나 살아남지 못한다. 라마는 실체가 있는 인물이지만 디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라마는 디나의 또 다른 인격……, 이게 이 영화의 전체 스토리다.
결말까지 스포하는 이유는 아무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으면 해서다.
별 재미도 감동도 없다. 라우라는 좋아하는 배우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볼 수 있었을까 싶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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