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카르타에서 풀뿌리 한류 일으키는 대중음악 프로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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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에서 풀뿌리 한류 일으키는 대중음악 프로 아티스트
배동선
무협지 속 강호에 천외천(天外天) 기인이사(奇人異士)와 은둔고수들이 즐비한 것처럼 자카르타 교민사회에도 깜짝 놀랄만한 힘숨찐(힘을 숨긴 진짜 주인공)들이 살고 있었다.
간디 뮤직(Gandi Music)이 제작한 ‘베스티(Bestie)’란 제목의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 올라온 것은 2025년 12월 19일의 일이다. 인터넷 상 한 교민 밴드에서 어떤 사람이 올려놓은 링크를 우연히 클릭해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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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한국식당
대감집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오른 베스티(Bestie) 뮤직비디오
(출처-Daegamjib Jakarta 유튜브 채널 캡쳐)
처음엔 곡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고 그 뮤직비디오에 등장해 노래하고 연기하는 사람들이 아티스트들이 아니라 모두 자카르타 시내의 코리안 레스토랑 ‘대감집’의 직원들이란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대감집은 한국남방개발(KODECO) 주재원으로 1970년대에 인도네시아 땅을 밟은 표경준씨가 은퇴 후인 2000년, 자카르타 시내 모처에 세운 유서깊은 코리안 레스토랑이다. 자카르타에 최소한 100개는 족히 넘을 한국식당들 중 대표적이라 할 수는 없어도 이사를 네 번쯤 다녀 현재 남부 자카르타 그랜드 위자야 센터(Grand Wijaya Center) 콤플렉스에 자리잡은 지금도 직접 만든 두부와 가정식 메뉴로 교민사회에서 나름대로 독보적인 위상을 지키고 있다. 26년을 버틴 한국식당도 많지 않고 이름이 바뀌지 않은 곳도 거의 없지만 대감집은 그 세월 동안 그 이름 그대로, 그리고 그때의 그 직원들을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식당이 맛과 서비스로 이름을 떨친다면 그건 당연한 일에 속하지만 뜬금없는 뮤직비디오로도 주목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상을 업로드한 지 한달 남짓 된 올해 1월 25일 기준 대감집 자카르타 직원들이 직접 작사에 참여하고 노래도 부른 ‘베스티(BESTIE)’ 뮤직비디오의 조회수는 약 14만회, 하루에 4,000명꼴로 이 영상을 본 셈이다.
인도네시아의 우리 전체 교민수는 약 2만5,000명 전후이지만 교민들 대부분이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구독자 110명의 대감집 자카르타 채널에 오른, 인도네시아어 가사의 이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케이팝 아이돌 최신곡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름 놀라운 속도로 계속 증가한다는 것은 현지인들의 높은 관심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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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랜드 위자야 센터에 위치한 대감집 (출처- 간디뮤직 제공)
절친을 뜻하는 ‘베스티’는 음악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번 들어보면 이게 프로의 작품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 비디오를 찍기 위해 곡을 만들어 가사를 달고 노래할 식당 직원들을 트레이닝 시키고, 촬영 시퀀스의 콘티를 잡아 촬영한 후 편집하고 자막과 효과를 넣는 후작업 등 전체적인 프로듀싱에서 상당한 수준의 사전준비와 전문가의 경륜, 기술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정도 프로 아티스트의 손길이 일개 코리언 레스토랑의 주제곡을 만드는데 투하되었다고?
해당 영상의 더보기 링크에는 이 곡을 지은 것이 닉 표(Nick Pyo)와 김희영, 프로듀싱은 간디뮤직(Gandi Music)으로 되어 있다. 가사는 이들 두 사람을 비롯해 대감집 직원들이 모두 함께 썼다. 어렵게 수소문해 얻은 김희영씨의 연락처로 질문지와 인터뷰 요청을 넣은 끝에 지난 1월 21일(수) 대감집을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대감집을 처음 연 표경준씨 부부가 연로하여 지금은 아들 표건수(Nick Pyo)씨가 그의 음악 동료 김희영씨와 동업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프로 대중음악 아티스트다. 이들의 정체를 알면 ‘베스티’의 퀄리티가 충분히 납득이 간다.
두 사람은 연세대학교 밴드 ‘소나기’의 선후배 사이. ‘소나기’는 586세대라면 누구나 알만한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해야’를 불러 은상을 받은 ‘마그마’의 후신이다. 조하문이 베이스기타를 치며 보컬까지 맡았던 바로 그 밴드.
인터뷰하던 날 자카르타를 비우고 있었던 표건수씨는 1992년 ‘포커페이스’라는 록밴드로 데뷔했고 이후 ‘할리퀸’ 밴드에서 활동한 아티스트다. 이후 프로 작곡가로 전향해 400곡 이상의 곡을 쓴,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정회원이고 김경호, 마야, 서문탁, 엠씨더맥스 등 당대의 유명 가수들이 그가 만든 곡을 불렀다. 그는 한국-인도네시아 대사급 수교 3년 후인 1976년 처음 인도네시아에 와 초등학교를 다녔으니 교민들 중에서도 도착 기준으로는 왕고참에 속한다.
한편 김희영씨는 앞서 언급한 연세대 ‘소나기’ 밴드의 보컬로 2001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청춘가’를 불러 대상을 받았다. 청춘가는 표건수 작곡, 김희영 작사다. 2000년대 후반에는 정식 데뷔해 가수생활을 했다. 그후 아이돌 음악을 중심으로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했는데 그렇게 만든 곡이 40곡가량 된다. 그녀가 대감집과 연을 맺은 것은 2020년, 실제 자카르타 입성은 2023년이지만 인도네시아어로 작사를 할 정도로 출중한 외국어 실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 활동을 오래 했으므로 중국어가 능통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인터뷰하던 날, 내게 ‘간디뮤직(甘地音乐) 프로듀서’ 명함을 건넸다.
중국 비디오 게임 ‘QQ Speed’용으로 작곡, 편곡, 프로듀싱한 동명의 곡이 2023년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Hollywood Music in Media Awards - HMMA)에서 모바일 비디오 곡(SONG/SCORE - MOBILE VIDE) 부분에 노미네이트된 것은 이들 두 아티스트의 역량을 새삼 입증하는 대목이다.
▲인터뷰에 응한 김희영 프로듀서(왼쪽)과 표건수 프로듀서의 무대활동 시절
(출처 – 간디뮤직 제공)
이들은 20년 넘게 ‘음악 동지’로 지내왔는데 2012년 중국판 ‘나는 가수다’에 편곡자로 진출하면서 이들의 음악 활동은 중국을 그 중심에 두게 된다. 당시 ‘나는 가수다’ 중국판 제작을 위해 중국 방송사 PD가 한국 리허설을 참관하러 왔다가 서문탁 가수가 부른 동요 ‘등대지기’의 가스펠 편곡에 감명을 받아 해당 곡을 편곡한 표건수 프로듀서를 스카우트했다고 한다. 김희영 프로듀서는 표건수 프로듀서의 제안을 받고 합류해 ‘나는 가수다’ 중국판 방송 첫 시즌부터 큰 성공을 거뒀다.
처음엔 ‘I Am a Singer (我是歌手)’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중국판 ‘나는 가수다’는 2017년 이후 ‘Singer (歌手)’라고 제목을 바꿔 아직도 후난위성TV(Hunan Television) 및 온라인 스트리밍 망고 TV(Mango TV)를 통해 성황리에 방송되고 있다.
이렇게 중국에서 지금도 잘나가고 있는 현역 작곡-편곡자이자 프로듀서씩이나 되는 프로들이 자카르타에 들어와 식당을 운영하게 된 것은, 김희영씨의 말을 빌면 ‘대감집은 그냥 식당이 아니라, 그 집안의 역사이고, 선배의 어린 시절이고, 저희 인생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그럼, 잘나가는 프로들이 왜 자카르타에서 식당과 일상에 대한 곡을 쓰고 절대 돈 될 리 없는 뮤직비디오를 만들며 귀중한 재능을 낭비하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대감집도) 우리 곡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 창작곡 하나쯤은, 이런 생각이었어요. 늘 얘기하던 거였죠.”
대감집 자카르타 직원들과 함께 곡을 만들고 뮤직비디오를 찍기 시작한 것은 창업자 표경준씨 헌정곡으로 그가 가장 좋아하던 노사연의 ‘만남’을 인도네시아어로 개사해 직원들이 노래하면서부터다. 이 곡은 2022년 12월 31일 업로드되었다.
▲대감집 자카르타 유튜브 채널 수록곡들 (출처- 대감집 자카르타 유튜브 채널)
“두 번째 뮤직비디오는 정말 사소한 계기로 시작됐어요. 저희 기사님이 너무 착하고 성실한데, 아침에 절대 못 일어나는 거예요. 11시, 12시가 돼도 못 일어나서 맨날 택시 타고 출근하고…. 화내는 대신 ‘거울치료’를 해보자고 그 주제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만든 것이 2023년 5월 12일 업로드된 ‘Terlati Patah Hati’다. ‘좌절하는 데엔 익숙해’라는 뜻이지만 ‘상처받을수록 더욱 단단해져’라고 의역되었다. 그 문제의 운전기사가 영상의 오프닝 늦잠 장면을 연기했다.
이들 은둔고수들을 먼저 알아본 공무원들이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 공식 기념곡 프로듀싱을 의뢰해, 그렇게 만들어진 ‘플라이 투게더(Fly Together)가 2023년 9월 18일 양국간 공식행사를 맞아 세상에 나왔다. 여기서는 김희영 프로듀서가 직접 노래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어서 간디뮤직에 의뢰를 낸 당시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의 이준승 참사관도 1997년 강변가요제 대상 출신으로 이 곡을 직접 작사, 작곡했다. 고수들은 원래 낭중지추(囊中之錐)다.
특별한 한류
대감집의 차세대 운영자들인 이들은 최소한 이곳 직원들만은 반드시 잘 살게 해주자는 마음으로 동종업계에서는 좀처럼 따라오기 어려운 수준의 높은 급여를 책정하고 다양한 복지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오랫동안 일해 깊이 정든 직원들을 끝내 보살피겠다는 창업 세대 운영자들의 의지를 이어받은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식당 운영이 다시 궤도에 오른 측면도 있지만 어쩌면 요즘도 업무차 자주 중국을 오가고 식당 4층에 마련한 스튜디오에서 꾸준히 작업하며 오늘도 가열차게 돌아가고 있는 음악사업에서 나오는 주수입이 그런 의지를 구현케 하는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이런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노래와 연기를 연습시켰지만 굳이 그들을 가수로 만들거나 인도네시아 시장을 대상으로 음악사업을 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다만, 음악에 맛을 들인 직원들이 스스로 근질근질해 매년 연말이면 사람들을 초청해 식당에서 ‘대감러 나이트’라는 작은 파티 겸 공연을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대감집과 간디뮤직은 인도네시아 저변의 한류 전파에 일조하고 있다. 정부 당국 주도의 일방적 한류 ‘사업’과는 사뭇 다른 성격이다. 자카르타의 한국문화원이나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하는 것은 문화 소개나 보급이라기보다는 한쪽 방향으로만 강하게 흐르는 ‘문화 주입’의 성격이 큰 것이 사실이다. 인도네시아에 한류가 강하게 불면서 일년에는 수십 팀이 찾아오는 케이팝 아이돌과 가수, 배우들의 공연, 팬미팅 역시 ‘우린 보여줄 테니 너희는 즐겨’라는 성격이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건 원래 그렇게 돌아가는 메커니즘이다.
그런 측면에서 ‘베스티’ 뮤직비디오 영상으로 대변되는 간디뮤직의 활동은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갖는다. 현역 중견 작곡가와 음악 프로듀서가 영리목적을 완전히 배제하고 직원들과 함께 일과 음악을 병행하며 즐기는 동안 시나브로 한국 대중음악문화가 인도네시아 서민 정서와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풀뿌리 수준에서 현지 사회에 촉촉히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해당 영상의 14만 조회수가 증명하고 있다. 그 파급력이 지극히 국지적일지 몰라도 이를 접한 인도네시아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의 경험을 남길 것이다.
대중적인 멜로디와 유쾌한 감성을 증명한 대감집/간디뮤직의 음악이 좀 더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음악적 측면에서 지금은 중국에서만 바쁜 저 두 아티스트가 인도네시아에서도 식당 운영 이상의 사고를 처 주길 바라 마지 않는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간디뮤직 제공
- 대감집 자카르타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jakartadegamjib526
- 대감집 자카르타 유튜브 채널 ‘BESTIE’ https://www.youtube.com/watch?v=j3Zak43VWTQ
- 대감집 자카르타 유튜브 채널 ‘만남’ https://www.youtube.com/watch?v=KazQ9hmzMHU
- 대감집 자카르타 유튜브 채널 ‘Fly Together’ https://www.youtube.com/watch?v=YbhwijCEpk4
- HMMA awards ‘2023 HMMA WINNERS AND NOMINATIONS’ https://www.hmmawards.com/2023-hmma-winners-and-nominations/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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