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자카르타의 추석 단상 -조부님께 띄우는 편지 / 엄재석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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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3) 자카르타의 추석 단상 -조부님께 띄우는 편지 / 엄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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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784회 작성일 2018-10-02 15:23

본문

<수필산책 23 >
 
자카르타의 추석 단상 / 조부님께 띄우는 편지
 
엄재석 /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할아버님! 자카르타에서 또 추석을 보냅니다. 예전 같으면 헤어졌던 가족들이 모여서 차례를 지내고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먹고 윷놀이하며 함께 즐기던 명절입니다.
 
 
 
일년에 두 번 있는 추석과 설날은 민족의 고유의 전통 명절로서 남녀노소 누구나 설렘 속에 고대했지요.하지만 해외에서 추석은 명절이 아니지요. 비행기 삯 때문에 고국 찾기를 엄두도 못 내고 법정 공휴일이아니라 현지직원들과 똑같이 사무실로 출근한답니다. 이국 땅에서 추석의 정취를 맛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지요. 물론 어떤 지인은 한국에서 자식들과 손자들이 자카르타로 휴가 차 와서 같이 즐기기도 합니다. 그냥 저는 아내가 차려주는 송편 한 접시 먹고 출근하는데 안위합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인 저를 안아주시던 그 나이가 저도 되었지만 지금도 할아버님과 같이 보낸 명절이 그립기만 하네요. 몸은 사무실에있지만 할아버님의 묘소를 찾아서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사랑을 다시 느끼고 싶습니다.
 
할아버님께서는 빈한한 시골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나중에는 양조업을 하실 정도로 자수성가(自手成家)하셨습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보릿고개와 같이 곤궁했던 시절에도 저는 배 한번 곯지 않고 자랐습니다. 커서는 강원도 두메산골에서는 드물게 대학교육까지 받을 수 있었지요. 할아버님께서는 청소를 할 때 복이 나간다고 집안 쪽으로 마당을 쓸게 하고 세숫물도 걸레를 빨고 화단에 버릴 정도로 절약정신에 투철하셨지요. 한편 옛 성현의 말씀을 틈나는 대로 들려주셨고 사설 서당을 세워 천자문(千字文)과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익히게 하셨답니다. 애써 가르쳐주신 덕분에 어느 정도의 붓글씨 솜씨와 한자 실력도 갖추게 되었답니다. 바둑도 가르쳐 주셔서 평생 취미로 즐길 뿐만 아니라 지금은 이곳의 문화원에서 아동들을 지도하고 있답니다.

어느 해인가? 병들은 걸인이 고향에서 죽겠다고 찾아왔을 때 할아버지는 그 걸인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장사까지 지내 주었습니다. 호랑이 할아버지라고 동네에 소문났지만 불쌍한 이웃에게 따스한 자비와 인정을 베푸는 다정다감한 면도 있었지요. 又春(우춘)嚴秉彦(엄병언) 영월 엄씨 25대 손이신 할아버님께서 소학교도 제대로 다니시지 않았지만 면장, 교육위원으로 공직에 계셨습니다. 노후에는 영월 엄씨 종친회장과 성균관의 전교(典敎)까지 하셨지요. 어렸을 적에 할아버님을 따라서 조상님의 선영 시제에 참석하였다가 산 정상에서 눈 아래 펼쳐진 넓은 들판을 보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어느 땅이 우리 것이지요?” 라고 8살 어린 손자의 뜻하지 않은 질문에 감격하셨던지 “여기가 우리 밭이고 저기가 우리 논이란다”라고 하나 하나 설명하신 후 “너는 커서 학업을 마친 후에 고향에 와서 가업을 이어라” 하시면서 작은 저의 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그런 할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신 지 어느 덧 20년이 되었습니다.
 
 
강산이 2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할아버님을 주위 사람들이 칭찬할 때마다 손자로서 뿌듯함을 느낍니다. 할아버지가 즐겨 암송하신 한시로서 매년 입춘 때마다 일필휘지로 쓰셔서 사랑방 벽에 붙였던 2줄의 시 귀가 있습니다.

松老長靑千古節(송노장청천고절)
소나무는 천 년을 늙어도 푸른 절개를 잃지 않는다.
園深不絶四時花(원심불절사시화)
화원이 깊으면 사계절 내내 꽃이 지지 않는다.
 
할아버님의 자화상과 같은 시로서 앞 절은 세속과 타협하지 않고 지조와 원칙을 중심의 대쪽 같은 양반으로 살겠다는 의지였지요. 뒤 절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싶은 욕망을 시로 표현한 것입니다. 후손으로서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족적을 이어 가고 꿈 꾸었던 이상들이 계승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우선 그 “늙은 소나무”의 길을 가고 싶었습니다. 하여 토목을 전공으로 하여 학교를 마치고 40년의 직장인 삶으로 건설의 길로만 걸어왔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사우디 아라비아와 방글라데시, 인도에 이어서 이제는 인도네시아에서 건설공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워낙 땅도 넓고 미개발되어 있는 인도네시아이다 보니 만들어야 할 고속도로와 발전소가 많이 있답니다. 지난 주에는 반둥으로 발주처와 회의 차 출장을 다녀 왔습니다. 새로 준비되는 환경 플랜트의 설계를 인도네시아 기준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작업을 진행 중이죠. 일거리의 수주가 자신과 회사의 이익만을 넘나서 사회의 공익에도 기여하게 된다면 건설 인으로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선진 환경개선 기술이 이곳에 보급되도록 저의 기술과 경험을 다하여 이를 준비하겠습니다. 물론 이 사업이 성공되면 열악한 인도네시아의 환경을 개선하는데 일조하게 되겠지요..

‘사계절’ 이라는 글귀가 딱 들어 맞는 이곳 인도네시아입니다. 할아버님 생전에 한번도 와 보시지 못하였고 아마도 일본군에 의해 조선인 학도병과 정신대들이 끌려간 나라 정도로 인식되었겠지요. 한국에서 비행기로 7시간이나 걸리는 이 나라는 적도를 중심으로 태평양 바다에 깔린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동남 아시아의 중심국가로서 정치적인 안정 속에 경제적인 발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교민들이 이곳에 와서 일하며 생활하고 있답니다. 한국처럼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이가 심하지 않고 일정하게 일년 내내 따뜻한 상하의 환경이 나이든 분들이 지내기가 적당하답니다. 이곳에 야자수 나무는 항상 푸르고 온갖 열대 꽃과 과일들이 일년 내내 끊어지지 않지요. 그러다 보니 할아버지의 그 시처럼 사계절이 꽃이 끊어 지지 않는 그런 화원 속에서 지금 인생 2막을 살고 있나 봅니다.
 
 
할아버님께서 한 평생을 사시며 실현했던 이웃 사랑의 정신을 저는 인도네시아에서 이루고 싶습니다.
제 자신 혼자만 이곳에서 편하게 일하며 사는데 만족하지 않고 이곳에 진출하길 원하는 지인들이 나오는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우선은 공사를 더 많이 수주하여 현장을 개설하여 은퇴 시기의 한국 기술자들이 일하는 일자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게다가 사업가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국내에서 쌓은 사업 노하우를 펼치는 모습들을 보고 싶습니다. 또한 은퇴자들이 따스한 자연 속에서 순박한 인도네시아인들과 어울려 살아 가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습니다. 만일 이런 꿈들이 실현된다면 자카르타에서 보내는 이번 추석이 결코 외롭지 않겠지요?
 
오늘 밤에 뜨는 보름달에 멀리서 할아버지 얼굴을 그려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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