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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3) 비둘기에 대한 단상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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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437회 작성일 2018-07-25 16:49

본문

<수필산책 13 >
 
비둘기에 대한 단상
 
이은주 /수필가 :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일요일 아침 늦잠 자고 있는 내게 조카는 다소 들뜬 목소리로 비둘기가 왔다고 고함친다.
비둘기 한 쌍이 베란다 문틈에 앉아 있었다. 나는 우리집에 찾아온 비둘기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베란다 난간위에 한발로 지탱하고 서있는 비둘기는 두려움을 가지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 얼굴, 뺨 턱밑은 짙은 회색이고 허리는 백색인 비둘기다. 날개에는 회색의 두 줄 무늬가 있었다. 두려움도 지쳤는지 사람을 봐도 떠나지 않고 그냥 우두커니 앉아 있다. 우리 집으로 비둘기가 날아온 것은 정말 오랜만에 있는 일이다. 조카는 가족들을 모두 깨우느라 수선스럽다. 어머니는 얼른 옥수수와 쌀을 가져다주었다. 비둘기는 정신없이 모이를 먹더니 마당 한 귀퉁이로 날아갔다. 우리는 조그만 통을 가져와 구석에 놓아주었다. 배가 불러서인지 처음과는 달리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푸는 것 같았다. 저 비둘기도 우리 집에 어떤 행운과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건 아닐까? 모두들 기대에 찬 얼굴로 비둘기를 대했다.이처럼 우리 가족이 비둘기의 방문을 좋아하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비둘기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이십여 년 전이다.아버지 사업 실패로 달동네로 이사와 살던 무렵 우리 집의 희망인 큰오빠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오빠는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였고 우리 가족은 오빠의 시험이 합격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그해 오빠는 시험에 실패했다. 원인은 어이없게도 영양실조였다. 다음해 다시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어느 여름 날 마당에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왔다. 전서구였다. 방향감각과 귀소본능이 뛰어나 장거리 비행이나 통신에 이용하는 군용 비둘기였다. 왼쪽 다리에 접수번호가 찍힌 각대를 끼고 있었다.아마도 어떤 지령을 받고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거 같았다. 그 군용비둘기는 우리의 식구가 되었다. 가끔 날려 보내기도 했으나 비둘기는 돌아 갈 곳을 잃어버리고 우리 집으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한 달이 지난 후 오빠는 아주 좋은 성적으로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발표가 난 뒤 비둘기는 보이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난 우리 집에 좋은 소식만 두고 가버린 비둘기가 보고 싶어 옥상에 올라가 비둘기를 기다리곤 했다. 어느새 많은 정이 들어 비둘기를 잊기가 힘들었다.그 뒤 비둘기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각대를 한 비둘기가 있나 비둘기 다리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시간이 흘러 비둘기를 다시 만난 것은 막내오빠 시험 때였다.
 
이번에는 방으로 비둘기가 들어왔다. 야생 비둘기인 멋 비둘기였다. 해안의 바위절벽이나 내륙의 바위산 교각 등에 사는 사냥새라 더럽고 사나웠다. 장롱위에 똥을 싸고 먹을 물을 튕기며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엄마는 또 막내오빠에게 행운을 줄 수도 있다는 기대에 비둘기에게 온 정성을 다했다. 막내오빠 시험합격 발표가 있자 거짓말 같이 비둘기는 날아가 버렸다. 난 또 한동안 비둘기를 기다렸다. 그 비둘기 역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집과 비둘기와는 이상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몇 년 뒤 집안 형편이 나아져 우리 집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달동네의 기억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비둘기와의 시간들은 늘 마음에 남아있었다. 비둘기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우리 집에 비둘기가 다시 날아왔다. 엄마의 대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이번에는 집비둘기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수술로 불안한 마음을 달리 둘 곳이 없어 비둘기를 정성스럽게 맞이했다. 다행히 엄마의 수술은 잘 되었고 완쾌되었다. 어머니는 비둘기가 보고 싶어 퇴원하자마자 비둘기를 찾았지만 이미 날아가 버린 후였다.
  
그 비둘기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로는 집에 고민이나 시험이 있을 때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우리가족은 그때의 비둘기들이 그리울 때면 용두산 공원에 가서 먹이를 주곤 한다.
하지만 용두산 공원에서는 매일 인부를 동원해 공원 광장의 비둘기 배설물을 치우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리움도 잠시 마음이 편치 않다. 늘어나는 비둘기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년 12회 알을 낳던 비둘기들이 도시 생활에 길들여짐에 따라 생체시계에 변화가 생겨 최근 몇 년 새 비둘기는 무려 30배나 폭증했다. 도시 생활에 길들여진 비둘기들은 너무 많이 먹은 결과 근육과 날개가 퇴화해 비행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이 준 먹이를 통해 전체 비둘기의 30%가 장애비둘기이다. 또한 비둘기의 급증으로 강산성인 비둘기의 배설물은 각종 문화재를 부식시키고 배설물 못의 병원균은 사람에게 뇌막염을 유발시킨다고 한다. 평화의 상징이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될 줄이야
 
 
“사랑과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비둘기는 쫓기는 새 ”
- 김광섭 <성북동비둘기 >
 
잠시 지난 세월을 펼치니 빨리 소원을 비둘기에게 말하라며 다그치신다.
치, 비둘기가 어떻게 내 소원을 들어줘. 모녀의 모습에 비둘기는 ‘구구구’ 소리를 내며, 베란다 한 바퀴 돌더니 날아가 버린다. 깃털 하나가 바람에 훅하니 떨어진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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