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암바라와(Ambarawa)에서 들려오는 절규 / 이영미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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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암바라와(Ambarawa)에서 들려오는 절규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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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8-07-05 16:13 조회 7,1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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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10>

자바문학기행-암바라와(Ambarawa)에서 들려오는 절규
    이영미 / 수필가 ( 한국문협인니지부 회원 )
 
 
지난 4월에 다녀온 자바문학기행, 나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제2회 적도문학상 수상자로서 자바문학기행에 합류하게 되었던 그 순간들이 지금 돌이켜보니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한국문학의 맥을 잇고 발전시켜 나갈 우수한 작가를 발굴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목적으로 한국문협인니지부(회장 서미숙)에서 작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적도문학상 공모는 기회의 땅 인도네시아를 한층 기름지게 만드는 문학사업이다. 올해, 제2회 적도문학상 시상식을 더욱 빛내주신 심사위원장인 장호병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님과 공광규 시인님, 박윤배 시인님, 한국문협인니지부 회원들과 함께 시상식을 마친 다음날, 자바문학 기행을 떠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인도네시아자바섬 중부에 자리한 항구 도시인 스마랑은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 때부터 대표적인 무역 도시로 유리한 지리적 위치와 신이 선사한 풍부한 자연을 자랑한다. 양분 그득한 대지의 젖을 기운차게 빨고 자라는 초록의 벼와 풀들은 섬에 부는 바닷바람을 부채질 삼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한낮의 오수를 즐기는 자연을 감상하는 것은 인간 또한 풍요롭게 만든다. 그런 평화로운 일상 속에 스마랑이 지워 버리고 싶은 암울한 과거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에 일본군은 구 네덜란드령이었던 인도네시아 암바라와를 점렴하고 4만 명의 네덜란인을 포로 수용소에 몰아넣고, 전쟁 포로들을 지키는 일본군을 위한 위안부 수용소를 지척에 운영한다. 75년 전 계속되는 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이성 대신 짐승의 본능과 정욕만이 남은 일본군인들이 히노마루, 세이운소(또는 후타바소), 스마랑클럽, 장교클럽이라 불리던 네 군데의 위안부 수용소를 클럽을 돌아다니듯 순회하며 조선 소녀들을 비롯해 네덜란드  인도네시아의 어린 소녀들을 능욕했을 것을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한 때는 어느 곳보다 평화로웠을 섬의 아름다움은 짓밟히는 어린 생명들의 울부짖음으로 시커멓게 덮여갔으리라. 암바라와의 역사를 모른 채 순수한 시선으로 본다면 포로 수용소와 위안부 수용소 건물은 여느 동남아 유적지와 흡사하다. 눈에 주는 즐거움보다 시설 자체의 기능만 강조하던 시대였기에 회색 벽돌 건물은 당연한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위풍당당한 요새의 전경이었을 건물 곳곳을 희롱하듯이 엉켜 메말라 죽은 풀과 나무가 회색의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들이 전쟁의 잔혹함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전언한다.
 
사춘기 초입의 아이 키만한 커다란 독을 묻을 구멍을 파서 사람이 올라 앉을 길쭉한 나무판자 두 개를 얹고, 거적 하나 출입구에 걸치면 완성되는 시골 화장실을 연상케 하는 24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위안부 수용소. 이 땅을 밟기 전 마음을 굳게 단련했다 생각했는데 보는 순간 호흡이 멈춘다. 십여 년 넘게 동남아 생활을 하며 흩어지고 무덤덤한 현지의 정서가 섞여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를, 조국은 꾸짖는다. 보아라! 세대가 거듭되어도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이다. 마지막 한 명의 증인마저 고단한 이승의 삶을 마무리 하고 정갈히 누워 생을 갈무리하는 호흡을 내뱉을 때까지, 그 뒤로 수십, 수백 번의 강산이 바뀐다 해도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이다.

사회적 부패와 부조리, 모순을 다룬 사회적인 이슈에서 자신들을 멀리 떨어뜨리고 싶은 이들에게 일제강점기 시대에 분노해 탄생한 이무기 작가님의 다음 웹툰<곱게 자란 자식>을 소개하고 싶다. 작품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세대를 거쳐 삶의 터전을 다져나가던 순박한 사람들이 일제강점기 시대가 되자, 자신들이 기르던 ‘가축’과 같은 대우를 받는 시골사람들의 안타까운 삶을 자세히 그려 나간다. 그들을 핍박하고 가축몰이를 하는 일본인들의 권력 앞에 같은 동포를 짓밟고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친일파들 또한 등장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민심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저항파와 꼬리를 흔들고 새 주인을 받아들이는 협조파, 역사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해 이리저리 휩쓸리는 민중들. <곱게 자란 자식>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시골 사람들은 핍박 받는 민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생에서 겪게 되는 실패와 부조리 등을 충분히 겪지 않은 채 성장한 자녀’를 뜻하는 제목인<곱게 자란 자식>이 주는 메시지는 극명하다. 시야 밖으로 멀어지지 않을 만큼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역사의 암울한 소용돌이에 휩쓸려 찢기어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두 눈이 멀고 심장이 멎은, 자식을 먼저 보낸 슬픔을 안고 좀비처럼 추적추적 움직이는 살아도 죽은 부모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은 ‘내가 지은 죄가 많아서’라고 한탄한다.
 
산스크리트어로 ‘바퀴는 둥그렇게 돈다’는 뜻의 ‘윤회(輪廻)’ 사상은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인간 세상에서의 삶을 표현했다. 언젠가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면 육신과 정신의 고통에서 자유로운 다른 생을 살게 되는 것일까. 문학기행의 둘째 날 일정이었던 자와 섬 중심에 위치한 불교 사원인 보로부두르(Borobudur) 방문에서 인간사의 모든 희로애락이 담긴 위대한 유적을 통해 천명(天命)이 맺어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였다. 암바라와 수용소 안 마당은 풀이 점령한 지 오래이나 꾸준히 찾는 사람이 있는지 밟히고 다져져 있다. 자잘한 벽돌을 쌓아 만든 원통 모양 기둥이 줄줄이 늘어선 곳에 커다란 코끼리 무리가 지나간다. 어쩌면 그보다 큰 맘모스 무리일지도 모른다. 기둥 그림자를 육중한 다리 삼아 몇 마리의 검은 짐승이 서서히 움직인다. 해가 지는 방향 반대 방향으로 조금씩, 조금씩……
 
그 느린 검은 짐승의 움직임을 보며, 몇 분 남지 않은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사망을 바라며 역사를 지우며 왜곡해 나가고 있는 일본이 망령으로 가득 찬 역사의 심판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한 후의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동안 ‘강제성’이냐 ‘자발성’이냐를 두고 위안부를 둘러싼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었다. 애국심과 소속감으로 세뇌되어 위용을 자랑하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중반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의 ‘힘의 정치’를 고수하던 일본 좌익들이 정치세력에서 우파에 밀려, 내부적으로도 분열되었던 전범국가와 관련된 역사 문제 해결 작업에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일본의 현정권은 공식적으로 전범국가의 오명을 씻는 노력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 중의 하나인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관련 피해국가에 공식적인 사과문을 보내는 동시에 왜곡된 교과서 개정작업이 한창이다. 위안부 수용소가 있던 동아시아 지역을 순회하며 추모제를 지내는 정성을 보이기까지 했다.
 
얼마 전 암바라와 수용소에서 열린 암울한 역사 속에서 못 다 핀 꽃들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제.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한다. 징용 잡혀 간 가족을 풀어준다는 거짓에 속아, 응하지 않으면 가족을 괴롭히겠다는 협박에 못이겨, 간호사로 일한다는 희망을 안고 발 디딘 섬.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는 다시 띄워지지 않았다. 짓밟힌 몸뚱이 가족에게 보일까 내 어미가 있는 곳을 향해 돌아눕지도 못한 처절한삶. 이 곳에서 겪은 일들은 내 무지몽매 때문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지 못한 힘없는 조국과 폭력이 힘을 증명하는 시대와 그 시대를 즐긴 수만의 일본 군인들 때문이라고. 지박령처럼 떠나지 못했던 검은 땅에서 형체 없는 몸을 일으켜 허공으로 향한다. 납덩이 단 무거운 추가 되어 찍어 누르던 한에서 해방된 육신이 가벼워진다. 음지에 숨어 있던 스러진 영혼들이 봄바람에 이끌려 돋아나는 새싹처럼 양지를 향한다. 날개가 없건만, 하늘로 날아 오른다.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한없이 밝다. 그 빛에 더는 눈이 아프지 않다.
 

*자바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사산 이태복 원장이 개원하여 운영하는 사산 자바문화원을 방문하기를 권한다. 중부자바의 살라띠가에 2017년 9월 개원한 사산 자바문화연구원은 중부자바 문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한국 문화를 현지사회 깊숙이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문예가 깊은 이태복 원장님의 자작 시와 그림 및 현지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저녁 6시 이후에는 인디언 복장을 한 열정적인 무희들의 또뺑이렝 댄스(Topengireng dance)와 한국의 전통 놀이문화인 마당놀이극에 해당하는 꾼뚤(Kuntul) 댄스를 눈 앞에서 즐길 수 있다. 최근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달래기 위한 ‘암바라와의 꽃’이란 뜻의 살풀이 춤인 수까르(Sukar) 암바라와 창작춤이 추가되어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이영미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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