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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자바문학기행-암바라와편 /공광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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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8-05-17 09:22 조회 6,19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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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바문학기행<암바라와편>특별기고 ]

부겐베리아
 
공광규 / 시인 
 
 
부겐베리아, 인도네시아 자바섬 암바라와 위안부 시설 지붕을 타고 오르던 붉은 꽃다발이 생각난다. 자카르타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스마랑까지, 스마랑에서 버스로 도착한 암바라와에는 거대한 인공요새가 있었다. 네덜란드 식민지 통치시절 중부 자바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네덜란드는 이곳에 철도기지와 별장을 지었다고 한다. 1942년 태평양전쟁에서 자바를 점령한 일본은 이 요새를 수용소로 개조해 인도네시아 전역에 남아있던 유럽인들을 집결시키고 수용했다고 한다. 수용인원이 3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대단한 규모다.  

2018년 4월23일 아침은 흐렸고, 수카르노-하타 공항 활주로와 청록의 풀밭은 빗물에 젖어 있었다. 빗방울이 맺혀있는 비행기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활주로 안내등, 안내등을 따라 활주로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질주하다 이륙하는 비행기들. 비행기는 내내 구름 속에 떠 있었다. 스마랑공항 대합실은 사람들로 붐볐다. 공항을 나와 버스에 오르니 오전 8시 50분. 10시쯤, 버스 차창으로 시멘트와 벽돌로 된 흉물덩어리가 보인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1602년부터 1942년까지 무려 340년 동안이나 지배했다. 세계대전 중인 1942년. 석유가 필요했던 일본은 팔렘방 유전 확보를 위해 네덜란드 군과 싸웠고, 손쉽게 자바와 반둥까지 얻었다. 일본은 영국, 미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인 포로를 수용하고 감시할 인력이 필요했으며, 조선에서 모집한 조선인 일본군속 3천명 가운데 이곳 암바라와 수용소에 700여명을 배치하였다고 한다. 
 
이때 따라온 조선인 위안부도 이십여 명, 수많은 사람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갔다는 옛 수용소를 돌아보는데, 보라색 나팔꽃이 주렴처럼 넝쿨을 드리우고 있었다. 수용소 건물 바깥에 나란히 배치한 위안부 거쳐. 이곳에 내가 안 끌려오면 여러 사람이 죽을 것 같아서 왔다는 인도네시아 소녀도, 베트남 태국 중국 그리고 서양에서 포로로 온 여성들이 있었을 것이다. 썩어가는 나무기둥과 삭은 기와지붕, 나무판자를 댄 흙벽, 흙벽돌 위에 바른 시멘트가 떨어져 나가고, 소녀가 누웠을 시멘트 침대 냄새가 쾨쾨하다. 바닥은 습기가 차고 곰팡이와 이끼가 미끄럽다. 위안부 시설 몇 발작 앞에는 2층 위안부 숙소. 관리를 하지 않아서 삭아서 부러지거나 못이 빠져 형편없이 허물어져 가고 있는 기둥과 널빤지들. 열대 잡초와 자귀나무가 자라고, 화사한 부겐베리아 한 무더기가 위락시설 지붕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도 돌아갈 길이 없던 소녀들. 인도네시아 한국기업에 찾아갔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는 여인, 말로를 알 수 없는 소녀들은 현지인에게 몸을 기대 살거나, 누군가는 삶이 고단하여 마호가니 나무에 목을 맸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군 군속으로 멀리까지 와서 고향산천과 부모형제를 그리워하고 있었을 청소년들을 생각하며, 수용소 이곳저곳을 무거운 마음으로 일행들과 돌아보았다. 수용소 사방은 논밭과 야자수와 바나나나무와 열매를 매달고 있는 파파야나무. 손만 대면 부끄러운 듯 잎을 접는 조선 땅에도 있었을 미모사도 있다. 흰 저고리를 닮은 흰줌바꽃도 있고, 건물 한 모서리에는 조선인 초병이 지키고 있었을 나무로 만든 망루가 일그러진 뼈대로 남아 있었다. 
 
수용소를 탈출하여 싸우다 끝내 옥수수 밭에서 자결한 조선의 청년들과 고려독립청년단을 만들어 태극기를 내걸었던 청년들도 생각하였다. 고향은 있어도 나라가 없던 청년들. 그런데 조선인 군속들은 포로를 학대하였고, 이를 이유로 전쟁이 끝난 후 전범으로 사형을 당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나라를 잃었던 조상의 어리석음과 억울함, 생계 앞에 무너져 내리는 인간과 국가와 민족, 그리고 전쟁과 여성, 전쟁과 어린이, 전쟁을 통해 이득을 보는 자본과 정치권력, 그리고 평화의 중요성을 한참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자꾸 생각나는 암바라와의 부겐베리아. 이 꽃을 생각하면 나라가 없던 앳된 조선의 소녀들과 청년들의 슬픔과 원망이 들려오는 듯하다.*
 
 
*공광규 시인 프로필 
 
- 1986년 월간《동서문학》으로등단,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집으로 『대학일기』『마른 잎 다시 살아나』『지독한 불륜』『소주병』『말똥 한 덩이』『담장을 허물다』『파주에게』와 산문집 『맑은 슬픔』이 있다. 
 
- 논문집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시평집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시평집 『여성시 읽기의 행복』 시창작론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을 냈다. 
 
★ 수상 : 신라문학대상, 동국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김만중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디카시작품상, 신석정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13년 ‘작가가 뽑은 가장 좋은 시’에 「담장을 허물다가」 선정되었다. 동시그림책 『구름』『청양장』『흰눈』『담장을 허물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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