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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운명의 장난- 복숭아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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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3-12-05 17:33 조회 5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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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 복숭아와 나


한지영(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 보통 복숭아 알레르기라고 하면 복숭아 껍질에 있는 까슬까슬한 잔털에 의해서 피부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 털에 대한 알레르기에, 과육을 입술에 닿게 먹으면 입술이 붓는 특이 증상까지 더해진 경우였다. 문제는 이런 알레르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복숭아를 많이 좋아했다. 이보다도 아이러니한 상황이 또 있을까!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과일, 가장 먹고 싶은 과일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서 “복숭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복숭아를 좋아한다. 


그럼, ‘어려서 나는 어떻게 복숭아를 좋아했고, 어떻게 알레르기가 생겼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하면, 놀랍게도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 엄마도 이에 대해서 정확하게 얘기한 기억이 없다. 


엄마는 어릴 적 사진을 가지고 우리 삼 남매에게 각각의 추억 앨범을 만들어 주셨다. 초등학생 쯤이었을까, 어느 날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앨범 속 추억들을 되새기고 있는데, 사진 한 장이 나를 무척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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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2~3세쯤의 나인데, 그 당시 고모네는 복숭아 과수원을 하고 계셨단다. 고모네 복숭아 과수원이 한참 수확할 때로 추정되고, 복숭아가 산처럼 쌓여있는 창고 같은 곳에서 복숭아 산 한 가운데에 어린 내가 민소매와 짧은 바지 차림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분명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데 말이다. 


나의 선명한 기억 속에 이런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인데, 교회에서 여름수련회를 하는 중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알려주지 않고 복숭아를 만진 손으로 나와 접촉하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알레르기 반응- 두드러기가 올라온 것이다. 


그때 엄마는 나와 같이 계시지 않았고 나를 돌보던 사람들은 모두가 이유를 알지 못해서 몹시 당황해서 이유를 찾고 약을 구하는데 분주해 있었다. 긴급히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 간지러움이 조금 잦아들고 나서야 복숭아가 문제의 발단이었음을 알아차렸고, 그곳에 남아 있는 복숭아는 나로 인해서 모두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이랬던 나인데, 복숭아 산 앞에서 백도의 과육과 같은 하얀 맨살을 내놓고 찍은 사진이라니! 그게 가능했다는 것이 놀라웠고 심지어 충격스럽기까지 했다. 


여름이 되면 나는 시장이나 과일 가게에 가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복숭아에 대한 나의 알레르기 반응을 인지하고 난 후, 로켓이 날아가는 속도만큼 빠르게 반응하며 올라오는 두드러기를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이젠 몸의 반응이 문제가 아니었다. 


심리적 불안감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라는 옛말처럼 말이다. 내 눈앞에 복숭아가 포착되는 순간, 나의 손은 이미 팔을 긁적이고 있었다! 마음의 알레르기 반응은 무척이나 예민하고 강렬했다. 


그런데, 또 너무나 이상한 것은 나는 복숭아를 보지도 못하는 지경이면서도 복숭아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줘야 한다는 연애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기도 하고. 복숭아와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알쏭달쏭 희한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렇게 복숭아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엄마는 여름이면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복숭아를 씻고 바로 주변을 깨끗하게 다 닦아내고, 껍질을 내다 버린 후 복숭아를 마치 두 살배기 어린아이의 한입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작은 크기로 자르고 잘라서 나를 부르곤 하셨다. 복숭아 과육이 입에 닿으면 입술이 풍선 껌처럼 부풀어 오르는 걸 아신 후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나를 위해서 그런 수고를 마다해 주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복숭아를 먹고 난 후 나에게 바로 양치질을 시키셨다. 그렇게 엄마의 사랑과 수고로 맛보던 복숭아는 정말 너무 꿀맛이었다. 그런 엄마의 사랑을 감사하게 여기지 못했던 어린 날의 나를 반성하며 되돌아보게 된다. 


결혼을 하고 나니, 복숭아 먹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여름에 가끔 엄마 댁을 가거나 엄마가 집에 오시면 먹을 수 있기는 했지만, 결혼 후 한동안 엄마와의 왕복이 뜸하기도 했고, 남편은 엄마만큼 세심하게 복숭아 처리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도 남편에게 감히 복숭아 시중(?)을 들어달라 말할 수 없었다. 


남편 역시 결혼 전에는 아무 염려 없이 여름이면 새하얀 과즙이 줄줄 흐르는 복숭아를 원 없이 즐기며 살다가, 나를 만나서 복숭아의 ‘복’자도 편하게 바라볼 수 없는 신세가 되자 복숭아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이런 지경이다 보니 나랑 사는 사람들은 모두 복숭아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여기며 살아 갈 수밖에. 


한 번은 남편과 연애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였던 것 같은데, 복숭아 과즙을 2% 포함한 음료가 출시되어 인기 상품으로 등극했을 때였다. 물론, 나는 절대 그 음료를 마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겨울에 만나 연애를 시작했던 남편은 내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고, 장거리 운전하다가 휴게소에서 무심코 그 2% (실제 음료 이름)를 사서 마신 것이다. 


문제는, 내가 없는 곳에서 사서 마시고 온 후 남편과 가볍게 뽀뽀를 했는데, 그만 내 입술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함을 감지한 내가 남편에게 뭘 마셨는지 묻자, 그 2%를 마셨다고 남편이 답하고 나는 바로 당장 가서 물을 한 병 사 오게 해서 음료를 씻어냈다. 이 웃픈 일화를 가끔 아이들과 이야기하면, 딸 아이들은 “로맨틱하다~”고 하지만, 그 당신 내게는 단 1%도 로맨틱하지 않았던 “사고”였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레르기 체질도 변하는 것인지 요즘은 복숭아를 봐도 어릴 때와 같은 심리적인 알레르기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세월이 흐르면서 굳은살이 배기듯, 그것을 견뎌내는 마음의 굳은살이 생겨서인지, 체질이 바뀌어서 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복숭아를 집에 들여놓지 않는다. 타지에서 혹시 모를 문제상황을 감당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아빠 없이(나는 3대가 복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주말 부부 생활 중이다) 딸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상황을 굳이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복숭아 통조림이다. 접촉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얼마나 현명한 해결책인가! 이제는 이 운명의 장난도 나의 추억의 한 부분이 되었으니 걱정 없이 복숭아 통조림을 즐기며 지난날들의 아쉬움을 달래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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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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