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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와아! 산이 멋지다/이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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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2-11-20 18:18 조회 16,24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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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산이 멋지다.
 
이태복(사산자바문화연구원장, 시인)
 
 
할아버지가 갑자기 몸져 누웠던 밤, 먹구름 속에 천둥치던 우기의 어젯밤이 너무 어두워서 아침을 걱정했었는데 머르바부 산이 멋진 풍경을 선물했다.
 
연구원에는 시계 같은 할아버지가 한 분 계신다. 아침 4시면 사원의 아잔 소리에 일어나 기도를 하고 와서 연구원의 모든 창문을 열고 밤새 떨어진 마당의 낙엽을 쓸고 하루를 시작하는 ‘랄’이라는 할아버지다.
 
값싼 동정심이었나? 오갈 때 없는 불쌍한 할아버지 한 분이 있어서 별 부담 없이 동거를 허락했는데 어제는 할아버지가 아파 공연히 죄를 짓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연구원에 혼자 살며 나도 내 끼니를 내가 알아서 챙기기는 터라 해 놓은 반찬에 숟가락 하나 얹으면 되지 하며 쉽게 생각하고 동거를 허락했는데 문화가 다른 이 할아버지는 나와 함께 밥 먹기를 한사코 꺼려 해 마음 편하라고 그냥 두었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주변에 먹거리를 파는 곳이 많아 그나마 나보다는 끼니 해결이 쉽고 일과는 연구원에 몰래 들어와 제집처럼 사는 야생 고양이 다섯 마리 사료 챙겨주고 당신이 낙으로 키우고 싶다 해서 사서 준 닭 4마리 간수하고 정원의 풀 뽑는 일이다. 오후 4시가 되면 연구원에 지천인 장작으로 나의 목욕물을 꼬박꼬박 데워 전기온수기 요금 절약도 한 몫 한다. 저녁에는 노년의 적적함을 달래려 마을 갔다가 정각 9시가 되면 정확히 잠이 드는 일과다.
 
지루함도 없이 무한반복의 생활을 하는 조용하고 착한 할아버지가 연구원에 온 지도 어느덧 반년이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3년 동안 나 또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소설 암바라와 집필을 위해 오직 운전수와만 찔라짭, 찌마히, 반둥, 가룻, 쁘르워다디, 마글랑 그리고 암바라와 등 인도네시아 전역의 독립열사들의 근무지만 탐방하며 보냈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연구원에 쳐 박혀 3년 동안 글만 썼었다.
 
팬데믹 전 나의 생활은 자바의 문화를 연구를 하며 자바의 아무 산골 동네의 민가를 들어가 민박을 하며 연구는 빛 좋은 명분이고 속된말로 삶은 한량이었다. 나름 그래야만 이들의 문화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바 사람들을 제대로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문화행사가 있는 곳이나 우리와 삶의 패턴이 다른 곳은 어디든 찾아 다녔다.
 
이런 새로움을 탐구하는 나의 영혼은 고이지 않고 콸콸 흐르는 물처럼 탁해질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이 기이한 이방인을 만나는 자바 시골 사람들도 그들이 알지 못했던 세계를 조금이라도 눈 뜨게 하여 나름 그들의 영혼 물레방아를 돌린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리고 펜데믹 전에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이 지역의 전통문화 공연을 연구원에서 열며 지역인과의 소통도 돕고 교류를 넓혀가며 행사 중에 한국문화를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 온 펜데믹은 집콕을 하게 해 홀로된 살라띠가의 밤은 참으로 길었다.
 
시 인구가 24만 명이나 되고 먹거리 걱정 없는 문화의 고장 학문의 고장 살라띠가는 일 년 내내 문화행사가 있어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시골이었지만, 팬데믹에 모든 게 얼어 오후 5시만 넘으면 적막이 감도는 두메산골이 됐다. 우리에게는 한국의 가을 날씨 같은 딱 좋은 날씨인데도 적도의 사람들에게는 겨울보다 추운 체감 온도라 밤이면 인적도 없고 사람들은 집안에 장작불이 타는 부엌에 모여 가족단위로 도란거렸고 이방인의 집은 한겨울 부엉이 우는 밤같이 됐다. 전화위복으로 이런 시절이 내게는 소설을 쓸 기회가 됐고 5년 전에 시작한 소설 암바라와 집필을 마칠 수 있었다.
 
소설 집필을 마친 지난 4월 달부터였다. 5년 간의 대장정의 피로감에 잠시 절필을 하고 한 달간을 자바의 산골에 홀로 있게 됐다. 쉼에 익숙지 않은 나에게 자바의 긴긴 밤은 미칠 것 같은 고독이 찾아왔다.
 
건평 1.000m2가 넘는 연구원에 혼자 있기가 적적했다. 함께 기거 할 사람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에 이 할아버지가 왔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가진 것도 없는데다 두 자식마저도 챙겨 주지 못한 채 먼 섬으로 시집 장가보내서 평생 못 볼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오갈 때 없는 보호 대상 독거노인인 것이다.
 
이런 할아버지이기에 값싼 동정심으로 평생 연구원에 살게 허락했던 것이다. 줄 것이 없는 노인은 처량할 수 있다. 많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월 110만 루피아를 챙겨 주는 형편이다.
 
팬데믹 3년 동안 나도 아침을 3천 루피아의 죽으로 때웠었다. 다행히 이곳은 먹거리가 싸서 노인들은 아프지만 않으면 먹는 것은 걱정 안 되는 곳이고 이웃 인심도 랄 할아버지를 잘 챙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노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부담이 있었지만 우려와 달리 자고 일어남이 시계처럼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할아버지라 건강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아파 눕고 말았다. 사계절 기온 변화가 없는 이곳에 소위 한절기라 말하는 12월의 우기가 들어서자 갑자기 몇도 내려 간 기온에 고뿔이 든 것이다. 식사도 안하고 몸살 약을 가져다 주어도 안 먹는다.
 
덜컥 겁이 났다.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을 가벼이 결정 할 일이 아닌데 싶어 마음 한 편에 공연히 들였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일의 늙어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아 고심해야 했었다. 야심한 밤에 병원에 데리고 가서 주사를 맞히고 약을 타와 먹이고 아껴 두었던 인삼과 꿀물을 타서 챙기고 밤새 살폈더니 다행히 아침에 일어났다.
 
옆집에도 작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독거 할아버지가 계신다. 그 옆에도 또 두 집 건너서도 있다. 인도네시아어로 과부를 잔다/janda라하고 홀아비를 두다/duda라 한다. 나이 탓일까 문득 홀아비들이 보인다. 나도 지금 홀아비 아닌 홀아비다.
 
홀아비 처지 과부가 안다고 오늘은 특별히 몸이 아픈 할아버지를 위해 '비프까스' 특별 요리를 했다. 돈까스를 만들고 싶었지만 할아버지가 이슬람이라 '비프까스'를 만들었는데 그 맛이 환상이다. 요리 솜씨도 있는데 A급 고기까지 썼으니 오직 할까? 내친김에 음식 솜씨 자랑 겸 작년에 홀 애비 된 이웃집 할아버지도 초청했다. 시골 할아버지들이 '비프까스' 뭐 이런 음식 맛보기나 했겠어? 공연히 즐겁다. 양도 많겠다. 직원까지 불러 파티를 벌였다.
 
오늘 일찍 일어난 건 랄 할아버지 덕이다. 날마다 일찍 일어나는 할아버지가 살라띠가의 아침 향연을 독차지했는데 오늘은 내가 먼저 일어나 살라띠가의 아침을 차지했다. 나에게 마음 예쁘게 쓰라고 오늘 아침 연구원 앞 머르바부 산이 나에게 멋진 구름모자 쓴 풍경을 선사했다. 이 마음을 풍경에 담아 오래 변치 않으려고 카메라에 담았다. 머르바부 산은 오늘도 내게 아름답게 소생되는 마음과 소망의 기쁨을 주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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