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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듣기의 기술 /전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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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1-05-21 11:48 조회 20,97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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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159>
 
듣기의 기술
 
전현진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말이 넘쳐난다. 눈뜨면 쏟아지는 정보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이곤 한다. 두 손은 하늘을 향해 뻗어 올려 누구보다 높은 곳의 말을 잡으려 한다. 딛고 선 발은 땅에서 한 뼘도 올라서지 못하면서 두 팔만 허공을 휘젓는다. 우리는 무슨 말을 잡아 귀에 담아야 할까? 두 발에 잡힌 몸통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말을 듣는다는 것은 정보를 취한다는 것이다. 정보를 취하고자 함은 이상을 좇아 바라던 바를 이뤄내고자 하는 마음이다. 여기저기 가득한 말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찾아 듣는 것이 잘사는 방법이 아닐까. 그런데 다른 사람이 한 말과 내가 들은 말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정말 어떻게 듣고 있을까? 들은 것을 잘 말하고 있을까? 말이 가진 힘은 어마어마하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지식을 확장하고, 대중을 선동하며, 세계를 정복한다. 사람들은 말을 듣고 싶어 하고, 이익이 되는 말을 따른다. 말의 영향력은 충분히 알지만, 우리가 말을 잘 다루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인간이 사는 데 말이 없을 수 없고, 말이 곧 정보이며 돈이다. 경제적 입지를 다지고, 개인의 삶을 좌지우지하며, 인간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동경하는 인생 추구를 위해 말을 모아 힘을 비축한다.
 
 
말, 특히 모국어의 제일 큰 장점은 듣지 않아도 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낌 없이 듣는다. 힘 있어 보이는 말에 귀를 돌린다. 남의 말에 현혹된다. 그저 들린다고 듣는 것이 잘 듣는 것인가? 새로운 언어는 낯설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들어도 입으로 따라 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나누어야 할 말이, 평가와 점수의 잣대로 가려져 움츠러들고 엉켜 든다. 머릿속을 한 바퀴 두 바퀴 돌고 돌아 주어를 찾고 동사를 맞추고서야 겨우 입 밖에 나온다. 거창한 연설을 하는 것도 아닌데 단어를 골라내느라 쩔쩔맨다. 바벨탑을 만든 자들을 원망할 뿐이다. 왜 그리 욕심을 내어선 말을 못 알아듣게 했단 말인가.
 
그런데 잘 살펴보자. 통하지 않는 다른 말이 외국어라면, 여기 정말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있다. 바로 아기의 말이다. 그런데 엄마는 갓난아기의 옹알이도 알아듣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통역도 없고, 발음마저 분명하지 않다. 마음과 마음이 닿아있어서일까. 거리낄 게 없어서일까. 아기의 마음을 받아들이겠다는 너그러운 태도가 마술을 부린 것일 수 있다. 벽이 없어 가능하다면, 외국어 배우기도 한결 수월해지지 않을까? 체면 차리기와 부끄러움이라는 허울을 부숴낸다면 외국어가 아니라 외계어라도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같은 말을 하고 있어도 싸움은 일어난다. 말은 칼도 되고, 얼어버린 마음을 녹이기도 하고, 닫힌 문을 열기도 한다. 말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의 부재가 문제인 것이다. 말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대로 듣지 않아서 우리는 소통을 포기한다. 소통은 말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눈으로, 손짓으로, 몸짓으로, 분위기로, 말투로, 미소로, 듣는 마음가짐 등 모든 자세로 이루어진다. 엄마와 아기의 교감처럼 모든 것이 소통의 끈이다. 휘몰아치는 정보를 모으고 가려서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는 것이 한 살씩 쌓여 인생이 된다. 들린다고 말이 아니고, 들리지 않는다고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잘 듣기 역시 귀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잘 듣기란 무엇일까? 경청의 자세 중 첫째로 중요한 듣기는 내안의 말 듣기이다. 마음의 병이 들어 시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로 인해 각자의 행동반경이 줄어들고 사람들 사이의 가장 기본적인 말하고 듣기의 시간이 턱없이 줄어들었다. 연이어 나오는 뉴스는 암울하고 침체되어 있다. 마음이 병든다. 마음이 아픈 것조차 모르고 있다. 우리 마음이 아픈 건 내 마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라서는 아닐까. 하고 싶은 것을 뒤로하고, 남의 말만 부단히 따라가며 마음을 지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길 바란다. 술을 마시면 마음이 풀어진다는 사람들, 고단한 마음이 울고 있다.
 
술은 잠시 마음을 마비시킬 뿐이다. 술이 아니라, 내 마음이 하는 말을 잘 들어보자. 외국어를 배울 때처럼 주의 깊게 들으면서 되뇌어보자. 엄마가 아기 말을 듣는 것처럼 눈을 맞춰보자. 이미 알고 있는 말이라고 흘려버리듯 듣지 말자. 어떤 몸짓으로 말하고 있는지 온몸의 귀를 열고 들어보자. 그리고 내 마음이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찬찬히 곱씹어보자. 정말 듣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나면 타인의 말도 다시 들리게 된다. 취합해야 할 정보가 다시 들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선명해진다. 내가 바로 선다.
 
살면서 다른 사람의 말만 쫓느라 정작 내 말을 듣지 못한 적이 많았다면, 높이 쳐든 손을 거두고 땅에 앉아 내 마음을 들여다보길 바란다. 그 안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있을 것이다. 오늘 나는 무슨 말을 했더라. 내 마음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는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구나. 그랬구나. 다독이며 오늘도 나는 하루를 마감한다. 아마 내일의 나는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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