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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적도문학상 우수상 (단편소설) 수상작 / 우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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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8-05-07 12:30 조회 6,45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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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적도문학상 우수상 (글로벌 기업문학상 )수상작  / 단편소설 
 
 
우리집에서 있었던 일
 
우병기
 

그 일이 있었던 날.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회의를 하는 도중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이상하게 핸드폰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자기야. 바빠? 집으로 빨리 좀 와 줘야겠어.”
 
아내의 목소리 힘이 하나도 없었다. 직감적으로 무슨 큰일이 우리집에 생긴 것이 틀림 없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들녀석 준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혹시, 한국에 있는 부모님이나 동생들….아님 처가집? 심장이 요동쳤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현관문을 부수듯 열고 들어섰다.

“아빠!”
아들녀석이 싱글싱글 웃으며 내 품으로 달려 들었다. 일단, 아들녀석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아빠. 우리 아기 생겼다. 엄청 귀여워!”
“무슨 소리야? 엄마는?”
“엄마는 이상해. 갑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안 나와.”

방문을 열자. 아내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외출복을 입은 상태 그대로였다. 눈동자는 힘이 풀려 있었다.
 
“왔어?”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아내가 말했다.
 
“왜? 어디 아파? 무슨 일이야?
“내가 아픈게 아니라…. Santi가…….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Nonya, bisa keluar? (부인, 나와 보실 수 있으세요)?”
 
아내와 나는 거실로 나왔다. 준이 현지인 영어선생이 가위를 들고 있었다.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아내를 쳐다 봤다.

“Santi 가 아기를 혼자 낳았대.”
아내가 힘없이 대답했다.
 
“뭐?”
 
그 일이 있기 4개월 전,
 
“오늘 저녁 약속 없지? 집에 와서 저녁 드셔요. 오늘 저녁은 당신이 좋아하는 달래된장국 입니다.”

아내의 문자였다. 달래가 인도네시아에도 있나? 거짓말 아냐? 속으로 난 생각했다. 하긴, 봄나물이니 인도네시아 고산 지대에 심으면 나겠지. 집에 도착하니, 달래된장국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했다.

“냄새 좋네.”
“왔어? 빨리 손 씻고 와.”
 
아내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식탁에는 달래 된장국뿐만 아니라, 삼겹살에 총각김치, 파김치, 심지어 해물파전까지 차려지고 있었다.
 
“와~ 오늘 무슨 날이야?”
“한국 슈퍼 갔다 온 날이지~
“근데, 못 보던 사람이….. 왜? 도우미가 둘이야?
“어~ Susan 사촌 동생인데, 자카르타 놀러 왔는데, 잘 데가 없다 해서 오늘 여기서 자고 가래 했어.”
“그럼, 손님인데 일을 시키면 되나?”
“하지 말라고 해도 그냥 막 하시네. Susan 가족들은 전부 부지런한가 봐? 벌써 Susan이랑 빨래며 청소며 다 해 놓았어.”

자카르타에 사는 한국인 부인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에 의하면, 자카르타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은 도우미 복과 운전수 복이라는 말이 있다. 도우미와 운전수만 자기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야말로 자카르타의 삶은 천국이라는 이야기다. 반대로 잘못 만나면 매일매일 문제가 생기고, 골치가 아프다.

아내는 도우미 복은 타고난 사람이라는 소리를 주위에서 자주 듣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우리집 도우미Susan은 우리가 자카르타로 이사 온 이후 2년 동안 꾸준하게 집안 일을 도와 주고 있다. 원채 깔끔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 아파트 부인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덥고 습한 지역 특성상 매일 매일 쓸고, 닦고 해야 하는 환경에서 도우미의 도움이 없다면 집안의 청결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두 달이 흘렀다.
Susan 집안에 일이 생겨서, 몇 달간 일을 못할 것 같다며, 두 달 전에 잠깐 우리집에 들렸던 사촌 동생 Santi가 당분간 우리집 일을 돕는다고 했다. 급료도 필요 없고, 당분간 먹을 것만 제공해 주면 된다고 했다. 대안이 없었던 아내는 Santi를 채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Susan의 공백은 커 보였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고 Susan만한 사람이 없어.”
 
하지만, Santi는 며칠 만에 보기 좋게 아내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그녀는 정말 부지런히 일을 했다. 아들 준이를 업고서 놀아 주기도 하고, 창고며, 창틀, 심지어 장롱 위까지 구석구석 그녀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었다. 주방 기구는 언제나 청결을 유지하며 반짝 반짝 빛났으며, 새로 세탁한 옷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역시, 아내는 도우미 복은 타고 난 사람이었다.
그 일이 있었던 날 당일.
준이 영어선생이 나를 Santi 방으로 안내를 했다. 침대에는 Santi와 그녀의 아기가 나란히 누워 있었고, 아들 준이 녀석은 아기를 쳐다보며 연신 웃으며, 아기의 이마를 쓰다듬고 있었다. 방 뒤쪽으로 화장실 문이 열려 있어서, 고무 대야에 흥건히 고여 있는 핏물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 왔다. 침대 밑으로 알 수 없는 액체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Santi의 눈동자는 차츰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흔하지는 않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 입니다.”
준이의 영어선생이 담담하게 말을 했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요?”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난 16살 아이가 임신을 했을 거라곤 전혀 생각을 못했어.”
아내가 울먹이면서 말을 했다.
 
문득, 일단 사람부터 살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Santi와 아기에게 문제가 생기면, 이건 정말 대형 사건이 되는 것이다.
 
“일단 병원부터 갑시다.” 나는 아내와 영어선생에게 단호하게 말을 했다.
“Santi! kamu Ok?(Santi 괜찮아?)”
“Mr. Mohon Maaf, Maaf.(죄송합니다)”
 
Santi가 겨우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녀의 초점은 점점 더 흐려지고 있었다. 나는 운전수에게 구급차를 요청했다. 그때 Santi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영어선생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창피하대요. 제발 자기는 여기서 죽어도 좋으니, 다른 사람들한테 소문 안나게 해달라고 합니다.”
 
영어선생이 아내와 나를 동시에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뭐? 창피?”
나는 나도 모르게 다시 한번 소리를 버럭 질렀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운전수에게 전화가 왔다. 경비실, 그리고 다른 운전수들에게 물어 보았는데, 구급차를 부를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전화였다. 
 
“구급차를 부를 수 없다니……..”

일단, 운전수를 부르고, 영어선생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집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Santi의 눈동자는 점점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동하는 도중에 영어선생은 몇 차례 Santi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는 정신차리라는 말을 계속 하였다.
 
다행히 산부인과가 우리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근처에 있었다. 정말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다행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자기들 병원에서 출산을 한 산모가 아니라, 병원에서는 받을 수 없다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잘못 알아들은 것처럼 막무가내로 산모와 아기를 응급실로 업고 갔다. 그리곤 정확하지 않은 인도네시아 말로 소리를 지르고, 책임자를 불렀다. 
 
나의 난동이 결국 빛을 발했다. 의사가 나왔고, 나에게 진술서를 써 주면 일단, 응급처치를 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나는 무슨 내용인지 읽어 보지도 않고 멋지게 서명을 해 주었다. 산모와 아기는 수술실로 들어갔고, 한참 시간이 흘렀다. 수술 결과에 대한 확인서를 써 달라고 해서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가 확인을 하고 서명을 하고 나왔다. 

다행히 산모와 아기는 건강했다.
나는 산모와 아기를 입원시키고자 했으나, 입원은 허락되지 않았다. 병원 경비원 중 한명이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후 조리원이 있다고 했다. 

“산후 조리원? 자카르타도 그런 곳이 있나?
 
나는 믿음이 가지는 않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 경비원에게 주소와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무조건 그곳으로 갔다. 자카르타 산후 조리원 시설은 열악했으나, 나름 산모와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도우미 분들이 있었고, 그 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인상도 좋아 보였다. 나름대로 기록을 하고 있었고,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기구들도 있었다. 나는 비용을 지불하고,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 왔다.

집으로 돌아 오니 새벽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아들 준이를 침대에 눕히고, 아내와 둘이서 거실 앉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3시를 알리는 시계종 소리가 울렸다. 아내는 갑자기 일어나서 도우미 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청소를 하기 시작 했다. 비릿한 냄새와 여기 저기 흩어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버릴 것은 버렸다. 우리는 Santi 가 아기를 만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고통의 흔적들을 하나 하나 지워 나갔다. 그리곤 모든 것이 정리됐을 때.
아내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 일이 일어나고 몇 주 후
Susan이 찾아왔다. 20살 Susan과 16살 Santi가 감당하기에 Santi의 임신은 너무 무서운 일이었다고 했다. 고향에 있는 마을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도 그녀는 친척들과 가족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우리집에서 아무도 모르게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었다. Susan의 생각에 나의 아내라면 반드시 Santi와 아기의 목숨을 구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Susan은 거듭 사과를 했고,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몇 년 후
아파트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다. 어떤 Ibu(부인)가 망고와 바나나가 가득 담긴 검은 비닐봉투를 맡기고 갔다고 했다. 찾아 가라는 연락이었다. 나는 경비원에게 물어 봤다.

“Ibu(부인) 혼자 왔었습니까?”
“아니요. 어떤 여자애 한 명과 남자인 듯한 아기를 업고 있었습니다.”
“아빠. 이 망고 엄청 크다!”
아들 준이가 신기한 듯 소리쳤다.

16살 그 어린 산모가 Ibu(부인)가 되어 딸의 손을 잡고, 새로 태어난 아들을 업고 잠시 우리집에 들렸던 것이다. 

“잘 살고 있구먼…..다행이야.”
 
 
*** 수상 소감 /우병기
 
단편소설, “우리집에서 있었던 일” 을 우수상 수상작으로 선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제출했던 원고를 다시 읽어보는 일이었습니다. 오타도 많고,문장도 틀린 곳이 많았습니다.창피했습니다. 하지만,한편으로 실수투성이 원고에 우수상이라는 가치를 부여해 주신 심사위원님들의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년이 넘어서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았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쓰고도 싶어졌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글쓰기에 대하여 좀더 많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배 문인분들의 많은 지도편달을 받고 싶습니다.
부족한 작품에 의미를 부여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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