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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자카르타 폭동 피해자 어머니들, "정의 구현의 날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

사회∙종교 작성일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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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10일 목요일, 자카르타 궁 앞에서 세계 인권(HAM)의 날을 기념하여 인권 연합(HAM) 회원들이 목요집회(kamisan) 행사에 참여했다 (사진=자카르타경제신문/Aditya)

 

1998년 자카르타에서 비극적인 유혈사태가 벌어진 이후 25년이 흘렀다. 당시 뜨리삭띠 대학(Trisakti University)에서 시위대에게 발포한 총격으로 학생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결과 촉발된 거센 시위와 폭동이 벌어져, 34년간 철권통치로 사람들 숨통을 옥죄던 수하르또의 신질서 정권이 마침내 무너지고 인도네시아는 개혁시대로 접어들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아들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그 무엇도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없었다. 뜨리삭띠 사태와 그 직후 벌어진 19985월 폭동으로 목숨을 잃은 수 천 명의 유가족들은 지금도 과거 정부권력이 자행한 악행에 대해 철저한 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13일 자카르타포스트에 따르면, 1998년 참사 25주년을 맞은 지난 13() 자카르타 소재 대통령궁 앞으로 검은 우산을 든 1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많은 이들이 2007118일부터 지금까지 16년 동안 매주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침묵 시위에 동참해 왔는데 이를 까미산 운동(Kamisan movement), 즉 목요 집회 운동이라 부르고 있다.

 

이 시위에 참석한 마리아 사누(Maria Sanu)는 노구를 지탱할 지팡이와 1998514일 동부 자카르타 끌렌더르(Klender)에서 목숨을 잃은 아들 스테파누스 사누(Stevanus Sanu)의 사진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당시 16살이던 스테파누스는 폭동 상황을 구경하겠다며 끌렌더르의 족자플라자(Yogya Plaza)에 갔다. 친구들이 동행을 거절해 그는 혼자 그곳에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스테파누스는 약탈이 진행 중이던 족자 플라자 안에서 다른 시민 400여 명과 함께 갇혀 결국 빠져나오지 못했다. 원인 모를,그러나 약탈자들의 소행으로 짐작되는 화재로 몰이 전소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이들의 생명이 불꽃 속에서 사그라들고 만 족자 플라자는 이후 재건되어 현재 찌뜨라 플라자 끌렌더르(Citra Plaza Klender)로 이름을 바꾸어 영업하고 있다.

 

1998513일에서 15일 사이 가장 폭동이 극심했던 시기에 수천 명이 화재와 사고로 사망했는데 스테파누스도 당시 희생자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당시 자카르타는 전쟁터처럼 변해 폭력이 난무했고 그 가운데 많은 중국계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당했고 약탈과 방화도 잇따랐다.

 

수하르또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던 시위대에게 치안당국이 폭력으로 대응하자 그에 대한 반발로 터져나온 거센 시위를 틈탄 도시 빈민들의 폭동과 약탈이 자카르타 전역을 며칠 간 무정부 상태로 만들었다. 당시 뜨리삭띠 대학교 시위에서 군경의 발포로 목숨을 잃은 학생은 네 명이었다.

 

773회 목요집회에 참석한 마리아는 당시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정부가 정의로운 조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비사법적 해결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이지만 마리아는 그런 방법으로는 아들의 죽음에 아무런 보상도 될 수 없다고 분개했다.

 

비슷한 노력을 하고 있는 또 다른 희생자 어머니인 꾸스미아띠(Kusmiati)도 침묵시위 내내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당시 14세였던 그의 아들도 끌렌더르 몰 방화사건으로 희생되었다.

 

꾸스미아띠는 정부가 내 아들을 산 채로 태워 죽인 방화범들을 붙잡아 사법 처리할 것을 요구한다. 벌써 25년이 지났지만 정부는 19985월 폭동 피해자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당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너무 많다.”며 울먹였다.

 

2023년 1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1965년에서 2003년까지의 기간 중 발생한 중대 인권침해범죄 12건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국가범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파격이었지만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그런 제스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다.

 

조코위 대통령이 인정한 과거 인권침해 사례 중에는 19985월 폭동과 그에 앞서 벌어진 뜨리삭띠 대학교 시위대 발포사건, 시위대를 저격해 살해한 1, 2차 스망기 사태 등이 포함되었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피해자들을 복권시키고 사법적 해결책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내놓았다.

 

당시 정부에서는 이전에 발표한 방침에 따라 비사법적 해법을 강구하기 위한 별도의 팀을 구성한 상태였으므로 조코위 대통령의 위의 발언은 의외의 것이었다.

 

해당 발언이 나온 후 정부는 마흐푸드MD 정치사법치안조정장관을 팀장으로 하는 또 다른 정책지원팀을 만들어 새로운 방침을 구현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마흐푸드 장관은 해당 청산 프로그램이 6월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최근 밝혔다.

 

하지만 1차 스망기 사태에서 아들 버르나두스 레알리노 노르마 이르마완(Bernardus Realino Norma Irmawan)을 총격으로 잃은 어머니 마리아 카따리나 수마르시(Maria Catarina Sumarsih)는 해당 조치로도 충분치 않다고 강변했다.

 

그녀는 2014년 대선 당시 조코위 대통령이 과거 인권침해사건들에 대한 조사와 화해 작업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공약한 것을 상기시키며 2006년 인권법에 의거해 대통령 공약대로 과거 사건들을 인권법원에 회부하는 방식으로 청산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가 목요 집회를 계속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과거 인권문제들을 법정에서 해결하기 위함이다.이후 대통령이 누가 되든 나는 현행법에 따라 과거 중대 인권침해사건 청산을 위한 개혁적 결단이 이루어지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입장은 강경했다.[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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