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 국가 영웅으로 추서된 10인...논란의 독재자 전 대통령 결국 수여 > 정치∙사회

본문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인니 국가 영웅으로 추서된 10인...논란의 독재자 전 대통령 결국 수여

정치 작성일2025-11-12

본문

2024 2807차 목요집회에서 인권운동가들은 1998년 수하르또 정권을 무너뜨린 개혁 사건 당시 활동가들을 납치한 용의자로 지목된 쁘라보워 수비안또에게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4성장군으로 명예대장을 수여한 것을 비판하며 명예대장직 수여 취소를 요구했다.(사진=자카르타경제신문/Aditya)


쁘라보워 수비안또 대통령이 27년 전 권좌에서 내려온 후 세상을 떠난 장인 수하르또(Soeharto)를 국가 영웅으로 선포하며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자 역대급 독재자의 30년간 철권 통치를 미화했다는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지난 10일 쁘라보워 대통령은 국가궁에서 열린 국가 영웅의 날 기념식에서 수하르또를 비롯한 10명에게 국가 영웅 칭호를 추서했다. 수하르또의 경우, 장녀 시띠 하르디얀띠 루끄마나(뚜뚯 수하르또)와 장남 밤방 뜨리하뜨모조가 아버지를 대신해 이 영예를 받았다.

 

수하르또는 다원주의와 온건 이슬람의 옹호자로 알려졌으나 탄핵으로 대통령직에서 쫒겨난 압두라흐만 와히드(구스 두르) 전 대통령, 수하르또의 치세에 납치당해 살해된 노동 운동가 마르시나를 비롯해 국가에 대한 봉사와 헌신을 인정받은 민족주의자 및 활동가들 10명 중 한 명으로서 국가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대통령 재직 말년에 스스로 5성 장군으로 진급한 수하르또는 이번 국가 영웅 칭호 추서행사에서 대장군(Jendral Besar)라는 호칭과 함께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당시의 업적이 특별히 부각됐다. 장내 아나운서는 수하르또가 인도네시아 군(TNI)의 전신인 인민치안단(BKR) 시절부터 군에 투신해 1945년에는 족자카르타의 인민치안단(BKR) 부사령관으로 꼬따바루에서 일본군 무장해제를 지휘했다고 전했다.

 

쁘라보워는 사후 국가영웅 칭호를 받게 된 이들 10명이 모두 국가의 독립과 주권, 명예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고 강조했다.

 

국가 영웅의 날 시상식은 수하르또를 국가 영웅으로 추대하기 위한 수년간의 노력의 정점을 찍었다. 그를 국가 영웅으로 추서하려는 노력은 최소 15년 전인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하르또의 차녀 시띠 헤디아띠(띠띡 수하르또)와 결혼한 쁘라보워는 지난해 국회가 수하르또의 부패 의혹에 대한 조사를 촉구한 1998년 국민자문의회(MPR) 결정문에서 수하르또의 이름을 삭제하여 30여년 간 자녀들이 모두 내로라할 재벌이 될 정도로 부패를 주도하거나 방치한 수하르또의 부패 혐의에 면죄부를 주었다. 이는 역대 전 대통령들이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이었는데 수하르또의 사위가 마침내 해낸 것이다.

 

수하르또가 네덜란드에 대항해 독립 투쟁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수까르노의 친위 쿠데타로 보이는 시도를 좌절시키면서부터다. 하지만 그후 해당 쿠데타가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의 소행으로 지목되면서 공산당 해체와 함께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공산당 학살을 방치한 것은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았다.

 

1965년의 공산당 쿠데타 이후 수하르또가 권력을 공고히 하고 1967년 마침내 초대 대통령 수까르노(Sukarno)를 몰아내고 인도네시아의 두 번째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공산당 당원과 동조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합법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량 체포해 전국적으로 50만 명 넘는 인명을 학살했다. 1965-1966년 사이에 벌어진 이 사건을 인도네시아 대학살이라 부른다. 당시 사실상 군 통수권을 가지고 있던 수하르또에게 이 학살을 방치하거나 조장했다는 혐의가 평생 따라다녔다.

 

수하르또가 수까르노를 완전히 밀어낸 1967년부터 30년간의 신질서(Orde Baru) 통치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는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사회 기반 시설 확충과 농업 생산량 증대가 이루어졌으므로 수하르또는 개발의 아버지라고 칭송받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군의 드위풍시(dwifungsi, 이중 기능) 교리에 따라 현역 군인들이 의회부터 외딴 오지 마을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면에 관여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민생을 좌지우지했고 반대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수하르또의 통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권 유린으로 점철됐다.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자행된 즉결 처형식 살인(당시 ‘미스터리 총격 살인사건’으로 알려짐), 1989년 람뿡에서 발생한 딸랑사리 학살, 1989년부터 1998년까지, 당시 분리독립운동이 거세던 아체의 루모 건물(Rumoh Geudong)에서 자행된 잔혹한 고문 등은 빙산의 일각이다. 


1975년 동티모르를 침공해 이후 20여년 동안 전투나 일방적인 학살로 수십만 명의 동티모르인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인정한 국가 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 목록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그의 집권 말기인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사회 불안이 고조되던 가운데 최소 23명의 반정부 활동가가 납치되거나 강제 실종되었는데 이 사건의 책임으로부터 수하르또는 물론 당시 특전사령관이던 쁘라보워 역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함께 국가 영웅 칭호가 추서된 노동운동가 마르시나는 수하르또가 대통령이던 1993년에 납치, 실종되었다가 사흘 후 시신으로 발견됐다.

 

아시아 금융 위기와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이르자 결국 견디지 못한 수하르또가 1998 5 21일 대통령직을 사임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부패하고 권위주의적인 정권 중 하나가 마침내 종식됐다.

 

이후 그를 뇌물 수수 등 부패혐의로 기소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는 건강상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며 사임 후에도 여전히 누리고 있던 특권과 세력 뒤에 숨었고 결국 자신의 치세에 벌어졌던 수많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은 채 2008 1월에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개혁 시대의 파탄

인권단체들과 학자들은 쁘라보워가 수하르또에게 국가영웅 칭호를 추서한 것을 비난하며, 이를 역사 왜곡, 개혁 이념에 대한 배신, 수하르또 신질서 정권 시절 인권 유린으로 희생된 수백만 명에 대한 모욕이라고 규정했다.

 

국제앰네스티 인도네시아 지부와 인도네시아 역사투명성연합(AKSI)11 10() 공동 성명을 통해 국가는 인권 유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편에 서야 하므로 수하르또에게 수여된 영웅 칭호는 국가가 역사와 미래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 부패 시단(ICW)의 에기 쁘리마요가는 수하르또의 영웅 칭호 수여가 그의 폭정을 종식시키고서 시작된 개혁 시대가 어느새 막을 내리고 신질서 시대의 망령이 다시 부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개혁 시대의 의제는 수하르또와 그의 측근들에게 책임을 묻고 부패, 결탁, 족벌체제를 해체하는 것이었으나 그 시대로부터 기인한 고질적인 부패는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많은 정재계 엘리트들이 여전히 신질서 시대의 가치를 숭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자마다대학교(UGM) 역사학자 오디 드위짜요는 정부가 수하르또의 국가 영웅 칭호를 추서하면서 굳이 그의 군복무를 조명한 것은 논란투성이인 그의 대통령 재임 시대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려 한 시도라고 지적했다. 즉 수하르또의 인생에서 1965년 이전까지만 영웅적인 면모를 보였다는 해석이다.

 

이는 압두라흐만 와히드 전 대통령의 탄핵 전력을 감안해 전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이 아니라 야당 시절의 정치적 투쟁과 이슬람 교육 업적을 기려 국가영웅으로 추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편, 스따라 민주평화연구소의 헨다르디 소장은 수하르또가 그의 통치 기간 중 납치되어 살해된 노동 운동가 마르시나와 함께 국가 영웅 반열에 오른 아이러니를 지적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란히 국가 영웅이 된 것은 마르시나에 대한 모욕이란 시각이다.

 

그는 정치 엘리트들이 역사를 간과할 수는 있다고 쳐도 그 권력을 휘둘러 역사를 조작해서는 안된다며 [수하르토를 국가 영웅으로 인정함으로써] 쁘라보워는 결과적으로 인권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으로 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평가들은 쁘라보워 집권 이후 신질서 시대를 특징지었던 현상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국가 주요 사업, 특히 민간 분야에 군을 점점 더 많이 참여시키고 있으며 그의 연립정부와 국회에서도 논란을 빚은 군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군이 현역인 채로 차지할 수 있는 민간 분야 요직의 규모를 대폭 늘렸다.

 

파들리 존 문화부 장관이 주도하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 출판 프로젝트에서도 수하르또 시대의 인권 유린을 대폭 축소 기재하는 역사 수정주의 움직임을 보여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논란이 장기간 벌어지며 활동가들과 시민사회가 충분히 반대 목소리를 높였음에도 쁘라보워 정부는 이에 아랑곳없이 이례적으로 많은 10명을 국가 영웅으로 선정하며 수하르또 등 논란의 인물들을 주저없이 끼워 넣었다. 

 

올해 국가영웅 칭호 추서자 10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K.H. 압두라흐만 와히드(Abdurrahman Wahid, 정치 및 이슬람 교육 부문)

-H.M. 수하르토 대장군 (Soeharto, 무장 투쟁 및 정치 부문)

-마르시나 (Marsinah, 사회-인권 부문)

-목따르 꾸스마아뜨마자 교수 (Mochtar Kusumaatmadja, -정치 부문)

-하자 라흐마 엘 유누시야 (Hajjah Rahmah El Yunusiyyah, 이슬람 교육 부문)

-사르워 에디 위보워 장군 (Sarwo Edhie Wibowo, 군 부문)

-술딴 무함마드 살라후딘 (Sultan Muhammad Salahuddin, 교육 및 외교 부문)

-샤이코나 무함마드 꼬릴 (Syaikhona Muhammad Kholil, 이슬람 교육 부문)

-뚜안 론다하임 사라기 (Tuan Rondahaim Saragih, 무장 투쟁 부문)

-자이날 아비딘 샤 (Zainal Abidin Syah, 정치 및 외교 부문)

 

이중 6번의 사르워 에디 위보워 장군은 공산당 쿠데타 진압과 이리얀 침공 당시 수하르또의 오른팔이었고 이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대통령의 장인이 되는 인물이다. [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많이 본 뉴스
주요뉴스
공지사항

Copyright © PT. Inko Sinar Media. All rights reserved.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