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과거로 회귀?...신질서시대 대통령 간접선거 방식 부활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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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스나얀 국회의사당(사진=자카르타경제신문/Aditya)
인도네시아 국민협의회(MPR)가 지금은 이미 폐지된 ‘국가정책개요(GBHN)’를 부활시키려는 계획을 재검토하면서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를 더욱 훼손해 과거 수하르또 시대로 퇴행시킬 판도라의 상자가 조만간 열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조코 위도도 당시 대통령의 3선 임기 연장에 악용될 수 있다는 여론의 우려에 떠밀려 이른바 국가정책지침(PPHN) 도입 계획을 철회했던 국민협의회가 최근 향후 50년에서 100년 간의 장기 국가발전의 방향타로서 이 계획을 다시 꺼내들었다.
권위주의로 점철됐던 수하르또의 신질서 시대에 도입되었다가 그의 몰락 이후 폐기된 국가정책개요(GBHN)의 판박이인 국가정책지침(PPHN) 도입은 헌법 개정을 전제로 한다. 그렇게 되면 개혁시대에 들어서 국가의 민주화 전환기였던 1999년부터 2002년 사이 네 차례 개헌이 이루어진 후 20여 년 만의 첫 개헌이 된다.
비평가들은 그렇게 되면 이는 모든 것을 과거로 되돌리는 동력이 되어 과거 국가 최고의결기관이었던 MPR의 위상을 회복하고 궁극적으로는 당시 가지고 있던 대통령 임명권까지 회복하는 보다 광범위한 퇴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권 정당인 국민수권당(PAN) 소속 정치인이자 MPR 부의장 에디 수빠르노는 지난 12일 자카르타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의제를 다시 꺼낸 것이 경제 성장과 인적자원 개선 측면에서의 ‘국가 발전의 연속성 확보’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에서는 해당 지침을 헌법 개정을 통해 도입할 것인지, 또는 국민투표나 별도의 법률 제정을 통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즉 재도입하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어떤 식으로 재도입을 법제화할 것인지 방법의 결정만 남았다는 것이다.
절차가 엄격한 헌법 개정 대신 우회로를 찾는 것이 쉬운 방법이지만 국회의석 절대 다수를 여권이 차지하고 있고 유일 야당인 투쟁민주당도 딱히 반대하고 있지 않으므로 개헌을 통해 정당성을 보다 공고히 하려 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지난달 MPR 연구위원 안드레아스 빠레이라는 이외에도 MPR령으로 정책지침을 부활시키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MPR이 해당 지침을 일방적으로 승인할 권한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역시 헌법개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인도네시아사법정책연구센터(PSHK)의 파즈리 누르샴시는 앞서 언급한 네 차례의 개헌을 통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간의 권력 분립을 강화한 후 신질서 시대의 국가정책개요(GBHN)는 그 타당성을 이미 상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1998년 개혁시대가 시작된 후 국가정책개요(GBHN)는 입법을 통해 제정된 장기 및 중기개발계획(RPJPN 및 RPJMN)으로 대체되었고, MPR은 최고 의결기관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MPR이라는 단일 기관이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을 적법 절차도 없이 해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파즈리는 정책개요를 재도입하는 것이 정치적 기동과 권력 불균형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국가정책개요(GBHN)는 신질서 정권이 수까르노와 압두라흐만 와히드의 해임 등 대통령들의 해임을 정당화하고, 반대로 수하르또와 같은 철권 독재자 대통령들이 스스로 해임당하지 않도록 하는 방어기제로 이용해 왔다는 것이다.
헌법 전문가 얀쯔 아리조나는 국가정책지침(PPHN) 초안 작성 과정의 투명성 부족을 비판하며, 누가 어떻게 해당 초안을 만들고 어떤 내용이 담기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당 지침을 도입할 시급성이 없을뿐더러 이의 재도입이 이루어지면 MPR을 최고 의결기관으로 두었던 신질서 시대의 정치 구조로 회귀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현재의 대통령 직선제를 없애고 MPR가 간접선거를 통해 자기들 입맛에 맞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돌아갈 길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의 쁘라보워 대통령이 원내 정당들 대부분을 연정에 끌어들인 것처럼 특정 대통령이 MPR만 장악하면 영구집권이 가능한 체제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분석가 니끼 파리잘은 신질서 시대의 정책지침을 되살리는 것이 MPR을 국가 최고 의결기관으로 복원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간접 선거를 부활시키는 길의 첫걸음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쁘라보워 대통령이 선호하는 ‘통제된 민주주의’ 방식에도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과정이 법제화되더라도 당장 대통령을 MPR이 뽑는 것으로 직행하지 않고 우선은 지방선거를 간접선거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라 보았다. 즉, 지금은 각 지역 주민들이 선출하는 지자체장들을 MPR이 중앙에서 간접선거로 뽑거나 지명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게 된다는 것이다. 쁘라보워 연정을 이루는 정당들은 대부분 이 계획을 지지하고 있다.
니끼는 만약 정말 지자체장 선거가 간접선거 또는 지명방식으로 돌아간다면 대통령 선거 역시 그런 식의 간접선거로 돌아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았다.
개헌을 통해 그런 시스템을 부활시키는 것 자체는 합법적인 절차지만 그 결과 MPR의 예전 기능이 부활하면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직접 선거권을 포함한 현재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 관행을 훼손하고 크게 제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MPR이 수하르또 시대의 기능과 권한을 회복하면 국민들에게 남는 것은 국회의원 선거권만 남게 되며 지자체 운영을 포함한 전체적인 국정 운영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과 정치 엘리트들에게 맡겨지게 될 것이다.
니끼는 친정부 정당연합 정치인들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고, 현재 유일 야당 포지션인 투쟁민주당(PDI-P)마저 쁘라보워 정부와 손을 잡으면 이 계획은 쁘라보워 행정부 아래에서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투쟁민주당이 전 정권 시절 국가정책과 장기적인 개발목표 간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가정책지침(PPHN) 재도입을 주장한 바 있다는 것이다. 즉, 투쟁민주당도 현재의 퇴행 기조에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MPR 부의장 에디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정책지침(PPHN) 논의에는 선거제도 변경이나 MPR이 대통령을 지명하는 것 등은 제외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MPR이 곧바로 대통령 간접선거 개헌을 제안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지, 장기적으로 앞으로 최대 9년 넘게 남은 것으로 보이는 쁘라보워의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수하르또 시대의 부활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 사이 쁘라보워의 철권 통치가 이루어지는 두 번째 신질서 시대가 어느새 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것이다.[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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