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손’의 팀 버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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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마법사’ 첫 방한
어릴 적 습작·회화 등 860여 점 전시
동심 간직해야 기발한 상상력 나와
뉴욕 현대미술관선 80만 관객 몰려
집에서는 아버지와 틀어졌고, 학교에서는 왕따였다. 소년은 그리고 또 그렸다.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 1950년대 공포영화 또한 그의 도피처였다. 또래들이 괴롭힐 때면, 공동묘지에서 공상 속 친구들과 오싹한 놀이를 즐겼다. 영화 ‘배트맨’ ‘가위손’ ‘크리스마스 악몽’ ‘빅 피쉬’의 감독 팀 버튼(54) 얘기다.
팀 버튼이 미술전을 연다. 12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다. 어린 시절에 그린 습작부터 회화·데생·사진, 영화를 위해 만든 캐릭터 모형까지 총 860여 점으로 ‘팀 버튼의 세계’를 구현했다. 2009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호주 멜버른, 캐나다 토론토, 프랑스 파리 등 5개 도시를 거쳐 서울에서 그 여정을 마친다. 아시아에서는 첫 공개다.
그의 명성만큼이나 전시는 성황을 이뤘다. 예컨대 MoMA 전시는 1년 5개월간 열렸고 80만 관객이 몰렸다. 피카소전(1980), 마티스전(1992)에 이어 이 미술관 사상 세 번째 관객몰이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를 10일 만났다.
-이번엔 영화가 아닌 그림이다.
“영화 연출이든 그림 그리기든 결국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데서 기쁨을 찾는다. 수년 전 모마의 큐레이터 두 사람이 찾아와 전시를 제안했을 때 대단히 놀랐다. 전시가 아니라 영화에 필요해 만든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전시가 성공적이어서 또 한 번 놀랐다.”
-유년기 그림부터 소개된다.
“많은 아이들이 ‘나는 남들과 달라’ ‘외로워’ 하고 느낄 거다. 나 역시 말수가 적었고 남들과 얘기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고향인 캘리포니아 버뱅크는 미술관 관람 같은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기와 영화보기가 탈출구였다. 특히 괴물영화를 좋아했다. 의사소통에 서툴렀던 나처럼 괴물들도 뭔가 오해를 받고있다 여겼다. 내 상상은 주로 거기서 출발했다.”
-왜 그렸나, 평생을.
“그림이야말로 의사소통, 감정표현의 과정이었다. 남들과 얘기하며 나를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전시된 드로잉은 그의 영화만큼이나 기괴하다. 다리가 쭉~ 길어진 세 개의 의자가 탁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림, 발끝에 주사기들을 꽂은 채 박쥐 날개를 달고 있는 거미형상의 괴물 등등. 점토·철사·스티로폼 등으로 만든 괴물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그는 “관객들은 나를 예술가, 혹은 영화감독으로 구분 짓기보다 내가 뭔가를 만들어간 과정을 보게 될 것”이라면서도 “창작 당시의 감정을 다시 마주하는 게 힘들다. 내가 너무 노출되는 건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
-쉰이 넘도록 기발한 상상을 계속할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
“나이 먹어 얼굴과 몸이 늙더라도 마음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아이였을 땐 세상에서 접하는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새롭게 느껴진다. 그런 감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서울 역시 처음 온 곳이다 보니 모든 게 새롭다.”
-작품에 동심원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바짓단을 들춰 검정과 보라 줄무늬 양말을 보여주며)여기도 있다. 어느 날 처음으로 줄무늬 양말을 신어봤더니 훨씬 더 기분이 나아졌다. 내가 땅에 발붙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동심원 무늬는 신비롭고도 정신적(spiritual)인 느낌이 든다.”
-좋은 예술이란.
“예술이란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다. 재미난건 모든 사람이 똑같은 걸 봐도 달리 생각하고 달리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예술성 자체에 무게를 두는 반면 다른 이들은 별로 그렇지 않다. 예술의 위대함이란 똑 같은 것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평소 생활을 물었더니 “정말 정말 바쁘다”면서도 이렇게 대답했다. “워낙 기술이 발달한 세상이라……가능하면 조금이라도 짬을 내려 노력합니다. 그림도 그려보고, 나무에 나는 잎새도 보고, 마음의 평온을 얻으려 해요.”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팀 버튼전=12일부터 내년 4월 1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입장료 19세 이상 1만2000원, 청소년 1만원, 어린이(7∼12세) 8000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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