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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란 영화계 팬데믹을 몰아낸 공포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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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182회 작성일 2022-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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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팬데믹을 몰아낸 공포영화
 
배동선 
 
 
위의 표는 2022년 5월 26일 현재 인도네시아 로컬영화 흥행순위를 보여주는데 2022년 4월 30일 개봉한 <KKN di Desa Penari>가 불과 한 달도 채 안되는 기간 동안 관객을 770만 명 넘게 동원했음을 보여준다. <KKN di Desa Penari>는 ‘무용수 마을의 대학봉사활동’이란 뜻이다.

공포영화로는 2017년 최고 흥행작인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라피필름, 조코 안와르 감독)의 관객 420만 명을 일찌감치 뛰어넘었고 인도네시아 로컬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2016년에 685만8,616명의 관객을 동원한 <와르꼽 DKI 귀환: 귀뚜라미 대장님 (Warkop DKI Reborn: jangkrik Boss Part 1)>까지 넘어서며 영화산업의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먼저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아직도 꾸준히 관객들이 들고 있어 숫자가 더 늘어날 터인데 이미 일주일 넘게 7,777,777명에 멈춰 있는 것으로 보아 영화제작사인 MD 픽쳐스 측에서 앞으로의 홍보를 위해 저 숫자를 계속 지키려 하는 것이지 싶다.

2021년 12월 말에 개봉해 올해 초까지 흥행하며 170만 명 넘는 관객이 든 <막뭄 2(Makmum 2)>까지 감안하면 2022년 5월이 다 지나기 전 관객 100만 명이 넘은 영화가 네 편 나온 셈인데 이는 매우 고무적이다. 2019년에는 흥행상위 로컬 영화 15편이 모두 100만 관객이 넘었는데 3년 만에 다시 그런 성적을 기대해 볼 만하게 되었다. 당시 로컬영화 관객은 연간 5천만 명이 넘었다.

위의 표에서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3위를 차지한 <꾼띨아낙 3(Kuntilanak 3)>까지 포함해 100만 이상 관객영화 네 편 중 세 편이 공포영화라는 점이다. 이 외에도 5. <황혼 무렵 (Menjelang Magrib)>, 7. <저주술 떨루(Teluh)>, 8. <태 속의 악마(Iblis Dalam Kandungan)>, 15. <악마 엄마(Oma the Demonic)>까지, 상위 15편 중 절반인 일곱 편이 공포영화여서 올해 공포영화가 크게 약진할 조짐을 보인다.

인도네시아 공포영화의 발전
명색이 나름 현지 인도네시아 영화 전문가 입장에서 관객 기록을 깬 영화를 보러 가지 않을 수 없어 5월 26일(목) 예수승천일 휴일을 맞아 아르타가딩몰(Mall Artha Gading)의 Cinema XXI 영화관을 찾았다. 개봉 한 달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휴일 오후 영화관 스튜디오는 3분의 1 정도가 찼다. 관객 증가속도가 크게 둔화된 게 분명해 보이지만 예전 팬데믹 시절에 비해서는 성황. 아직 1~2주는 더 극장에 걸려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남녀 세 명씩 여섯 명의 대학생들이 깊은 숲 속, 어딘가 신비하고도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마을에 머물며 신덴(Sinden)이라 불리는 수원지 보수공사를 하게 되는데 그들 중 무용수의 모습을 한 진(dzinn)에게 홀려 금기를 깨고 선을 넘으면서 대학생들 모두 치명적인 위기를 맞게 되며 그 과정에서 마을이 품고 있던 비밀과 자신들이 치러야 할 대가를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심지어 실제 사건을 토대로 했다는 설명도 붙어 있다.

영화를 보면서 인도네시아 호러영화가 이젠 나름 탄탄한 각본을 기반해 만들어지고 귀신을 찰나의 순간만 보여주거나 뭔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점프스케어(jumpscare) 방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충분히 납득할 만한 특수분장과 CG로 무장해 헐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영상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실감했다. 귀신과 마물들의 출연분량이 충분히 확보된 것이다. 21세기 갓 들어서던 시절의 조잡한 공포영화가 더 이상 아니었다.

한편 현지 문화와 무속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영화의 스토리 전개를 따라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

우선 KKN은 Kuliah Kerja Nyata의 축약어로 직역하자면 ‘대학생현장학습’ 정도의 의미다. 예전 우리 운동권 학생들이 농촌봉사활동을 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지방이나 격오지 봉사활동이 학점에 반영되는 방식이다. 그것이 영화 속 학점에 목을 걸어야 하는 대학생들이 오지 마을에서 계속 이상한 일을 겪으면서도 쉽게 활동을 중단하거나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속 마을은 깊은 숲 속에 있다. 도시가 사람들의 땅인 것처럼 숲은 전통적으로 영과 마물들의 보금자리다. 따라서 숲 속에 자리잡은 마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정도 영과 마물들을 인정하고 살아간다. 단지 인간과 마물들이 섞이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들이 많으니 선을 긋고 한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선이 있다는 것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두꾼(dukun) 같은 사람도 있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는 진(dzinn)같은 존재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꾼과 진은 서로 싸우고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인정하고 경계하고 막고 속이며 두 세계의 경계선을 지켜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 초반에 나타나는 커다란 덩치와 삐져나온 긴 송곳니를 가진 털복숭이 마물은 한국인들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지만 인도네시아인들에게는 부토(Buto) 또는 건드루어(Genderuwo)라고 일컫는 숲속 미지의 존재다. 우리 민속의 어둑시니와 유사한데 주로 여성들을 괴롭힌다는 특징이 이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구현된다.
 
 
춤의 여왕 다우(Dawuh)
일가를 이룬 무용수에게 주어지는 다우(Dawuh) 호칭을 가진 바다라우히(Badarawuhi)는 뱀의 진이라는 암시가 강하다.
 
진이란, 사실 이슬람에 입각한 악마의 개념으로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이 전파되면서 토착 귀신들이 모두 진의 카테고리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의 귀신과 마물들을 한 가지 이름으로 통합하다 보니 그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면서도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것’ 정도로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악마, 정령, 요괴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그들의 의지는 스스로의 속성상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의지와는 호환되지 않아 대체로 치명적이다.

영화 중반쯤 산속에서 하자탄(Hajatan), 즉 축제파티를 벌이는 마을이 등장하는데 평소에는 인간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마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공동체들 이야기가 세계 곳곳은 물론 인도네시아 전역에도 비슷한 전설들이 널리 퍼져 있다.

머라삐 화산 분화구 가까이에 빠사르 부브라(Pasar Bubrah)라는 곳이 있는데 인적 드문 산정상 가까운 곳 지명에 시장이란 뜻의 ‘빠사르’가 붙은 이유는 등반객들이 텐트 안에서 잠을 청할 즈음 텐트 밖에서 마침 시장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은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소음과 가믈란 연주 소리도 들리기 때문이다. 자칫 텐트 밖으로 나가면 정체모를 인파에 휩쓸려 이상한 거래를 하도록 내몰리거나 어디론가 행방불명되어 버릴 수도 있다고 한다.

숲 속에 사는 게 분명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발리에는 강이나 호수, 또는 절벽에 사는 토냐(Tonya)라는 존재가 있다. 인간처럼 함께 모여 마을을 이루고 집단생활을 하는데 일반 사람과 다른 점은 코 밑 인중에 홈이 없다는 것, 그리고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낭까바우의 오랑부니안(Orang Bunian)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소리만 들리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예전엔 인간이었지만 저주를 받아 귀신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고 실제로 사람들을 홀리기도 하고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을 도와주거나 인간을 도와 전쟁에 참전하기도 한다. 인간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런 문화배경을 알면 숲속 마을의 하자탄 축제 장면을 인도네시아인들이 어떤 시각과 마음으로 보며 조마조마해 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금기
또 하나는 금기에 대한 것이다. 사실 금기를 깨서 재앙이 닥친다는 개념은 거의 세계 공통적인 것이지만 인도네시아는 그게 좀 더 원초적이다.
 
실례로 2022년 4월 발리 바뚜르 화산에서 나체로 춤을 춘 장면을 SNS에 올린 캐나다인이 추방당했다. 신성한 곳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5월 초에는 역시 발리의 바바칸 사원에 있는 700년 된 반얀나무에서 아내의 누드 사진을 찍은 러시아인 부부도 신성한 나무를 더렵혔다는 이유로 추방당한 사건도 있었다. 그 러시아 부부는 세계를 돌며 그런 활동을 ‘예술’의 이름으로 해왔지만 그로 인해 추방당한 것은 인도네시아 처음이라고 한다. 추방 결정의 저변에는 금기를 깬 대가로서의 재앙을 피하겠다는 생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무용수 마을의 대학봉사활동> 영화 속에서도 금기를 깬 사람들은 재앙을 피하지 못한다. 재앙이란, 선을 넘어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숲속 마을들은 마을의 입구에 가뿌라(Gapura)를 세우고 마을 주변에 경계석을 세워 인간이 사는 곳과 마물이 사는 곳을 구분하고 마을 이장은 사람들이 그 선을 넘지 못하게 하고 오랑 삔따르(orang pintar – 두꾼의 호의적 호칭)는 본의 아니게 선을 넘어간 사람들을 돌아오게 만들려 애를 쓰지만 그 노력은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한다.
 
마을 입구 가뿌라를 배경으로 한 <KKN di Desa Penari> 여주인공들

호러영화의 장인
이 영화의 감독 아위 수리야디(Awi Suryadi)는 2005년 감독으로 데뷔해 주로 멜로,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는데 물론 2008년 <학교에서 한 뽀쫑의 맹세(Sumpah Pocong Di Sekolah)>, 2015년 <광대(Badoet)>같은 호러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전문분야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당한 소질이 있었는지 2017년 <시체냄새: 난 귀신을 본다(Danur: I Can See Ghosts)>의 성공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공포영화를 만들며 크게 각광을 받았다. <Danur> 시리즈는 2019년 3편까지 나온데 이어 현재 4편이 계획되어 있고 연속적인 흥행성공으로 자체 세계관이 만들어져 여러 아류작들이 탄생했다. 그중 하나인 <아시(Asih)> 시리즈의 첫 영화도 아위 감독이 만들었고 한국 <여고괴담>의 리메이크인 <적막(Sunyi)>(2019)도 그의 작품이다.
 
아위 수리야디 감독의 작품들. 왼쪽부터 <다누르>, <아시>, <적막>

인도 혈통의 마노지 펀자비 PD 소유의 MD 픽쳐스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영화제작사다. 전반적으로 인도네시아 영화제작시장은 인도인들이, 영화상영과 배급시장은 화교들이 차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올해 100만 관객 이상의 영화 네 편 중 <꾼띨아낙 3>을 제외한 나머지 세 편(<KKN>, <막뭄 2>와 <집에 있는 줄 알았지(Kukira Kau Rumah)>)을 MD 픽쳐스에서 제작했다. 기본적으로 다누르 유니버스의 모든 호러영화들이 MD 픽쳐스에서 나왔다.

여담이지만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사로서 MD 픽쳐스 외에 가장 많은 히트작을 양산해온 팔콘 픽쳐스(Falcon Pictures), 2017년 조코 안와르 감독을 기용해 <사탄의 숭배자>를 만든 호러영화의 전통적 강자 라피필름(Rapi Film) 정도를 기억해 두면 현지 영화제작시장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강점과 약점
<무용수 마을의 대학봉사활동>은 정글 장면에서 광활함과 스산함을 대체로 아름답게 보여주는 좋은 영상들이 돋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성 주인공들 연기가 흡입력이 강하고 특히 1993년생 여배우 아딘다 토마스(Adinda Thomas)는 순수하면서도 동시에 고혹적인 연기가 인상적이다. 처음엔 털털하게 나오지만 천상 여배우라는 인상이 강한 1997년생 아그니니 하끄(Aghniny Hague)는 영화 후반부에 새로운 다우(dawuh) 초미녀로 변모하면서 저런 모습이 어디 숨어 있었을까 하는 놀라움을 준다.
 
한면 극중 화자이자 메인 캐릭터인 2002년생 티사 비아니(Tissa Biani)는 적게는 5년, 많게는 10년 나이가 많은 다른 여배우들의 동년배 대학생을 연기하면서 조금도 밀리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실제로 다른 여배우들보다 더 많은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다.
 
여배우들 (왼쪽부터 아그니니 하끄, 티사 비아니, 아딘다 토마스)

하지만 남자 대학생 캐릭터들은 조금 실망스럽다. 아유(Ayu)와 함께 마을의 금기를 깨는 비마(Bima)역의 아크맛 머간타라(Achmad Megantara)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스토리 진행을 위한 감초역할이지만 인물 디자인이 전혀 입체적이지 않아 영화 속 소품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따로 있다. 마을에서 빠 부윳(pak Buyut)으로 등장하는 디딩 보넹(Diding Boneng)은 1949년생으로 70세가 넘었다. 젊은 시절 유명한 뻐드렁니로 인해 웃긴 코미디언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나이가 들어 뻐드렁니가 모두 빠져버린 그는 이 영화에서 정말 인간이긴 한 건지 싶은 흑마술사를 신뢰감 있게 안정적으로 연기했다.
 
디딩 보넹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딘가 2% 아쉬움이 남지만 왜 이 영화가 그간의 로컬영화 흥행기록을 깰 정도로 현지인들의 정서 속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는지 어느 정도 납득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문화와 무속에 대한 사전지식 말고도, 후손의 수호신으로 곁을 지키는 조상신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섬뜩한 모습이나 음산한 여운을 남기는 엔딩도 좋았다.

자바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어 해당 부분에는 인도네시아어 자막이 등장하는데, 제작사 측에서 어차피 자막 만드는 김에 영문 자막을 함께 만들어 놓았으므로 인도네시아어에 자신이 없는 외국인들도 이 영화를 즐기는 데에 큰 무리가 없다. (2022. 5. 27.)
 
*배동선 작가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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