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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속의 풍요

강명주의 발리이야기 작성일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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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우붓의 예술과 자연 속에 사는 '발리키키'의 이야기
 
발리 생활이 1년 반쯤 되었을 때,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갔다.
 
집 주인이 청소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집안 사람을 써 주었으면 좋겠단 말에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
 
전 집에서 주인한테 너무 많이 당한 터라 첫 제안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거절하기가 그래서 일단 만나보는 척 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할 생각을 했었는데, 이야기기를 나누다 보니 특별히 나쁜 것도 없고, 다른 곳에서 사람을 뽑는 것도 귀찮을 것 같아서 아주머니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아줌마랑 일년이 넘는 시간을 하다 보니 갈수록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면 집에서 라임을 가지고 와서 차를 끓여주고, 말하지 않아도 우리 일이 많은 날은 박스 나르는 일도 도왔다. 거기다 고양이들에게 먹일 빵도 직접 집에서 가져 와 먹이고 여러모로 참 마음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는 발리 외에 다른 섬을 가 본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우붓에 살고 있지만 고향은 동쪽 바닷가 마을이라 종종 친정에 아이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고향에 다녀오는 게 휴가 아닌 휴가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그날이 되면 들뜨는 목소리로 오늘 좀 빨리 마치겠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때 얼굴이 너무 즐거워 보였다.
 
가끔 우리 집에 손님이 오면 한국에서 입고, 신었던 것들을 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봐도 꽤 탐이 나는 새것들이 종종 보였다. 대부분의 것들은 버리는 편인데 그 중에서 꽤 괜찮은 건 아줌마가 미안해 하면서 가져도 되는지 물어보곤 했는데, 된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의 표정이 어린 아이처럼 해맑다.
 
우리 일이 바빠 한국에 보낼 물건들이 많을 땐, 집에서 포장 작업을 할 때가 있는데 그땐 마치 명절에 가족들이 오손도손 모여 전을 부치며 얘기를 하듯 아줌마랑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봉지를 붙이며 짧은 인도네시아 어로 소소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부~ 이부는 만약에 돈이 많다면 뭘 하고 싶어요?”
“글쎄, 하고 싶은 거 없는데”
“아니 그래도 사고 싶은 거나 다른 나라로 여행가고 싶다거나 그런 거 없어요?”
“어차피 돈이 있을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을 왜 해? 돈이 생기면 그 때 생각하면 되는 거고. 지금은 지금 상황에 맞게 살아야지”
 
현답이다!!
왜 나는 있지도 않은 돈 생각을 하면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사야 하고를 걱정하며 보이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이 고생을 하는 건가?
 
아줌마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즐겁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내 기준에서 아줌마가 더 행복하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아줌마가 우리에게 잘해 줄수록 부지런하고 착한 아줌마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면서 여기서 좀 더 좋은 직장을 갖게 하고 돈 모으는 방법을 알려주면 더 좋은 환경에서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가 아줌마에게는 좋은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발리도 많은 외국인들이 호화롭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현지인들도 외국인들에게 땅을 팔아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다. 땅을 판 부자들은 집에 양문형 냉장고도 들이고, 새 차도 사고 동네에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발리도 점점 자살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예전에 나랑 비슷했던 이웃이 새 차를 사고 돈을 버는 모습에 스스로가 좌절해 버려 집에서 목을 메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말에 놀랐었다.
 
옆에서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삶에 만족하던 발리 인을 보다가 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발리에 크고 화려한 호텔과 레스토랑들이 들어서고 외국인들은 우아한 걸음으로 원피스를 펄럭이며 걷는다. 관광지로 유명해 지면서 수입은 늘고 있지만 빈곤 속에서도 행복했던 발리 사람들의 행복은 없어지는 게 아닐까?
 
예전의 발리 모습이 계속 유지 되기를 바라는 건 내 욕심이겠지만, 지금처럼 행복하게 웃고 있는 아줌마의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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