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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44. `9.30 사태`의 전말(顚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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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환의 주간포커스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76회 작성일 201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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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발아(發芽)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이며, 논쟁거리인 9.30사건이 끼어있는 9월만 돌아오면,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잠긴다. 최소 4십만 명에서 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희생자가 발생하였으며, 그들의 후손들까지도 공산당으로 낙인이 찍혀 사회적인 금치산자 취급을 받으며 지난 50여 년의 세월을 인고하여 왔기 때문이다.
 
수하르또 정권 때까지만 해도 이날은 일상생활이 자제되고 언론매체는 이날을 애도하는 스산한 프로그램과 기사로 매워야 했다. 정부에서 제작한 ‘9.30사태’에 관한 홍보영화가 수십 년 동안 녹음기처럼 재탕되어 일반국민들에게 세뇌교육 시키듯, 획일적인 행사가 매년 반복되었다. 그렇다면 정확히 48년 전 9월, 이 땅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1913년 네덜란드의 저명한 사회주의 정치가인 헹크 스네이플리트(Henk Sneevliet)가 피식민지국인 인도네시아에 입국하여 다음해 동부자바 수라바야에서 인도네시아 사회민주협회(Indische Sociaal Democratische Vereeniging/ISDV)를 창설하였으니, 이 작은 좌익단체는 소련 이외의 지역에서 결성된 최초의 공산주의 집단이었다.
 
이 단체가 결성될 당시 회원 수는 100명이었으며, 이중 토착민은 3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네덜란드인이었다. 1917년 발발한 러시아의 10월 혁명(볼셰비키)에 영향을 받은 단체내의 과격파들이 네덜란드 해군수병 및 육군병사들을 선동하여 1919년 말 수라바야에서 ‘반제국주의’ 피켓을 들고 소요사태를 일으켰다.
 
이 폭동을 진압한 네덜란드 총독부는 1918년 스네이플리트를 포함한 네델란드인 간부들을 본국으로 추방하였고, 일부 요원들은 ‘이슬람연합(Serikat Islam)’이라는 단체로 침투하여, 스마랑 출신의 철도종사원인 스마운(Semaun)과 상류층 출신의 다르소노(Darsono)를 포섭하였다. 1920년 5월 23일 스마랑에서 개최된 총회에서 이 단체는 동인도공산주의자연합(Perserikatan Komunis di Hindia/PKH)으로 개칭됨과 동시에 스마운을 총재, 다르소노를 부총재로 선출하였으며, 1924년 열린 제5차 국제공산당대회(Comintern) 직후, 인도네시아공산당(Partai Komunis Indonesia/PKI)으로 다시 개명되었다.
 
한편 1913년부터 1919년까지 네덜란드에 유학하여 사범학교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후, 북부 수마뜨라 메단(Medan) 지역 담배농장에서 스위스, 독일인 자제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재직하던 딴 말라까(Tan Malaka)가 1921년 ISDV에 가입하며 활발한 기고 활동을 벌이게 된다.
 
서부 수마뜨라 부낏띵기(Bukittinggi) 출신인 그는 이미 네덜란드 유학기에 스네이플리트를 만난 인연이 있었다. 1920년대에 딴 말라까와 더불어 ISDV에서 핵심요원으로 활동하던 동부 자바 끄디리(Kediri) 출신의 무쏘(Musso)는 소련의 지령을 받기 위해 동료인 알리민(Alimin)과 함께 1926년 모스크바에 들어가 스탈린을 만나게 된다. 그 해 말 바따비아로 돌아와 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무쏘와 알리민은 네덜란드 당국에 체포되어 복역한 후 1936년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이후 잠잠하였던 좌익활동은 일본이 제2차 대전에서 패한 직후의 통치공백기를 틈타 다시 불씨를 지피기 시작한다. 좌, 우 대립의 혼돈상황 속에서 재통치에 대한 야욕을 보이며 진주한 네덜란드군에 대항하는 ‘독립전쟁’에서는 양측은 한시적으로 한 배를 타며 협조체재를 구축하게 된다.
 
이때 두각을 보인 좌익단체로는 사회주의청년단(Pemuda Sosialis Indonesia/PESINDO), 인도네시아 사회당(Partai Sosialis Indonesia/PSI)과 족자카르타에서 창설된 ‘빠뚝 토론그룹(Kelompok Diskusi Patuk)’이 있었는데 이 토론그룹에는 아이딧(Aidit), 샴(Sjam) 등 민간인 외에 수하르또(Soeharto), 수빠르조(Soepardjo), 압둘 라띱(Abdul Latief), 운뚱 삼수리(Untung Samsuri) 등 현역 군인들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20년 후인 1965년 발발한 ‘9.30사태’ 당시 혁명동지로, 또는 적군으로 서로 얽히게 되어, 극단적인 운명의 교차점에 도달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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