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암, 스스로 치료하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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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손인식의 경영 탐문 16
# 즐기려면 제대로 빠져라
# 가슴 허전한 사람 남 흠잡기 즐겨
# 암 치료, 의식을 바꿔라
# 피해의식, 스스로 이겨야
# 사람이 하늘이다
경영 탐문 16회, 다시 시작 선상에 서다
“재밌었어. 단숨에 읽었어. 서예 필력 좋은 줄은 알았지만 글쓰기 필력도 놀랍네~”
한 지인이 필자의 글에 찬사를 얹는다. <경영 탐문> 독후감이다. 힘내라는 격려인 줄 왜 모르랴. 엎디어 감사한다. 일독도 고마운데 칭찬까지 보태다니.
낯간지럽게 지인의 찬사를 들추는 까닭이 있다. 남 칭찬하는 것 분명 용기라는 생각에서다. 자기 확신 없으면 남 칭찬 못 한다. 다름을 존중한다는 의미 아닌가. 가슴 허전한 사람은 칭찬은커녕 흠잡기를 더 즐긴다. 칭찬, 양질의 창조 에너지다.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다 기분 좋은. 고래를 춤추게 하는 그 창조 에너지.
세상 모든 글쟁이도 그럴까? 필자는 독자의 찬사를 들으면 용기백배다. 칭찬이 곧 다음 글 구상이다. 지체 없이 펜을 잡거나 자판을 두들기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인다. 각설, 글쓰기처럼 소모적인 일 있을까? 물론 인기 작가들 제외다. 글쓰기가 직업인 이들도 예외다. 제외하고 예외로 쳐도 오늘도 수많은 사람 각처에서 쓰기에 열중일 거다. 시간과 열정을 쏟아 글쓰기와 일전을 벌일 거다.
▲ ▼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각처에서 시간과 열정을 쏟아 글쓰기와 일전을 벌인 증거 책 책 책
사진 위는 포루투칼 오비도스 성 안의 헌 책방. 아래는 필자의 서재
질문이 생긴다. 왜 쓸까? 답 간단하다. 쓰고 싶으니 쓴다. 쓰는 것이 즐거우니까 쓴다. 즐거운데 더 뭘 바라랴. 그럼 안 쓰는 사람은 뭐지? 그 답 또한 아주 쉽다. 재미없으니까 안 쓴다. 소질이 없다느니 쓸 게 없다느니 핑계를 대지만 순전히 방패 아닐까? 글쓰기 실력을 지닌 이들까지 쓰지 않는 이 많다. 여러 말 할 것이 없이 쓰는 일이 흥미 없는 거다.
필자는 글쓰기가 즐겁다. 그렇다고 해서 잘 쓴다거나 글쓰기가 쉽다는 게 아니다. 단언컨대 쉽게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길건 짧건 끙끙대다가 겨우 마무리한다. 그도 모자라 시간만 있으면 고친다. 글을 올린 다음에도 수정할 때가 많다. 그런데도 쓰는 게 즐겁다. 글쓰기 장점이야 늘어놓으려면 한 둘이랴. 딱 한 마디로 줄이면 필자에게 글쓰기는 가장 좋은 수행 도구다.
제대로 즐기려면 홀딱 빠져야
돈벌이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힘든 농사일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한편 하는 일이 즐겁지 않은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는 일이 맘에 안 든다고 늘 푸념이다. 할 게 이밖에 없으니 할 수 없어서 한다는 식이다. 과연 그럴까? 말을 바꿔야 한다. 지금 가장 할 만 한 일을 하고 있다는 말로. 만약 그렇지 않다면 더 좋아하고 더 잘 할 일을 찾아 나서지 않은 자기를 탓해야 한다.
우주의 모든 생명은 항상 자기 존재가 자랑스럽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거리낌이 없다. 사람의 행위도 자기 생에 관한 칭송이다. 즐겨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이걸 모르는 사람 없음에도 자기 일을 즐기지 못한다면 이유는 딱 하나다. 제대로 빠지지 않았음이다. 이천 오백여 년 전에도 이런 풍조가 있었던 걸까? 안타까워한 공자가 한 말씀 남겼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논어 옹야편)”
知 好 樂(지호락)/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느니라/ 논어 옹야편 구
무술 입하 전 오일 인재 손인식 작
즐기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그야말로 한 끗 차다. 생각 한번 고쳐먹기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는 게 생각처럼 쉽다’라고 말하는 사람 없다. 다들 ‘생각보다 어렵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생각’이란 놈을 생각 좀 해봐야 한다. 우선 생각을 너무 얕잡아보지 말아야 한다. 실체가 없는 것, 잠깐 떠올랐다가는 사라지는 것 따위로 시피 보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까 떠오르는 생각 잘 영접하고 사라지는 생각도 잘 배웅해야 한다.
“생각이 곧 기입니다. 생각 자체가 에너지입니다.”
『암으로부터 얻은 자유』를 출간한 김종업 기학박사의 이론이다. 그는 “암을 만든 것도 자기 생각이며, 암을 이긴 것도 자기 생각”이라고 밝힌다. "자기가 만든 암이니 자기가 치료할 수 있다."며 암에 관해 관점을 달리할 것을 주장한다. 생각하나 바꾸면 암이란 게 별 것 아니라고 강조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는 암을 그는 왜 자신 있게 얕잡아 보는 걸까?
“생각이 기라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면, 생명의 근원이 자기 자신의 생각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부정적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부정적 에너지에 휩싸여 질병을 앓게 되고, 긍정적 생각을 하는 사람은 긍정적 에너지에 휩싸여 건강하게 됩니다. 생각이 바뀌면 몸이 바뀝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가 바뀌는 것이지요. 사람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손발이 차가워집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마음의 변화에 따라, 몸이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부정적인 생각을 지속적으로 오래하면, 그에 따라 세포가 변합니다. 이렇게 변형된 세포를 현대의학에선 암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지금부터 ‘생각’이라는 것에 무거운 추 하나 달아야 겠다. 긍정, 기쁨, 행복 등 바라고 원하는 것들 그득 자루에 담아 생각에 매달아야지 싶다. 부정적인 생각은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매달고, 좋은 생각은 빨리 달아나지 못하도록 추를 매달아야지 싶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나 그 주변에 암으로 곤경에 처한 이가 있다면 김종업 기학박사([email protected])를 찾아보시기 바란다. 그가 이미 다수의 암 환자들을 치유하고 책을 출간한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치료를 이유로 대가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다. 그를 믿고 찾으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기 때문이다. 질병만이 아니다. 진실로 자기 본성을 찾아 생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송구하게도 필자는 그에게 그의 존재 알리기를 허락받지 않았다. 그러나 결례를 무릅쓰고 감히 그의 존함을 밝힌다. 그가 가진 능력을 이웃들과 나누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카르타에는 그의 수행 도반 김윤두 사범도 계시다. 그는 이 <경영 탐문> 12번째 이야기 주인공이었다.
<경영 탐문> 놀랍고 즐거운 일, 남은 즐기기가 더 많아
이 <경영 탐문> 프로젝트는 글쓰기다.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오늘을 밝게 드러내고 환하게 기록하기다. 자카르타 경제신문의 바탕과 지향, 필자의 호기심이 맞물려 시작했다. 2018, 1년 동안 진행한다. 그야말로 세상이 경영천지인지라 그것을 바탕삼은 프로젝트다. 기업경영만이 경영이 아니지 않은가. 마음 경영, 몸, 취미, 이웃 등 다 경영 대상이요 경영의 세계다. 따라서 사람 삶의 이야기를 ‘경영’이란 카테고리로 묶어 펼치는 중이다.
<경영 탐문>은 다른 말로 칭찬 프로젝트다.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가 보유한 능력과 이룬 성과를 존중하고 기리자는 캠페인이다. 물론 다 아우를 수 없다. 그러기엔 인도네시아 한인사회가 보유한 가치가 너무 크고 넓다. 개인과 단체, 기업과 기관에 이르기까지 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영역도 많다. 이미 꿈을 이룬 부분, 현재 진행중인 범위를 다 헤아릴 수 없거니와 향후 차츰 드러날 장르는 또 얼마나 많을지.
▲ 경영탐문 첫 번째 이야기 그 주인공은 박재한 회장
▲ 경영탐문 네 번째 이야기 그 주인공은 고정윤 전무
▲ 경영탐문 다섯 번째 이야기 그 주인공은 이강현 회장
▲ 경영탐문 여섯 번째 이야기 그 주인공은 김도영 사장
실상이 이러하니 아름답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어찌 넘쳐나지 않으랴. 흔히 ‘여유롭다’는 말로 대변되는 곳이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다. 호감 솟구치는 평가 아닌가. 무엇이 어떻게? 하고 다그치면 대답이 복잡하고 길어진다. 무엇이나 어떤 것에 관한 비교 우위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유롭다는 평가에 조금도 이의가 없다.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찾고 묻고 들으면서 느끼는 바가 세간의 평가와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진한 진정성을 만날 때마다 필자는 감동의 도가니에 빠진다. 지혜롭고 질긴 경영 능력을 엿볼 때마다 그 의미의 크기에 깜짝 놀란다. 타국이라는 이질감을 떨치고 일군 훌륭한 조화를 볼 때마다 감격 넘친다. 알토란같은 성공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면 절로 함께 주인공이 된다. 실패한 이야기인들 왜 없으랴. 이 또한 많은 이에게 참 좋은 가르침이리라.
자랑하자. 존중하자. 칭찬하자. 모든 가치란 존중하면 소중한 에너지로 드러나고 무시하면 흔적도 없이 훠이훠이 사라진다. 모든 가치란 인정하면 서로에게 보물이 되고 부정하면 서로에게 독이 된다. 의식을 바꾸자. 암적인 모든 것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4월 끝자락, 이 글이 벌써 열여섯 번째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 맞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백 리를 가는 자는 구십 리를 반으로 친다(行百里者 半於九十)’는 말도 맞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맞다. 암튼 이 프로젝트는 신의 선물이 틀림없다. 놀랍고 즐거운 시간 연속이다. 감동이 줄줄이 꿰지고 있다. 행복 에너지 팍팍 솟는다. 만약 암이란 것이 필자를 노렸다가는 이 일로 인해 앗 뜨거라~ 줄행랑을 칠 것이다. 즐겁게 주인공이 되고 긍정하며 읽은 사람도 무엇이 다르랴.
피해의식, 스스로 이겨야
호사다마? 아쉬운 것도 있다. 즐기지 않으려하고 드러내지 않으려는 정서다. 바로 그가 그의 이야기가 꼭 필요한데 섭외 과정에서 벽을 만난다. 사양지심의 발로로 이해한다. 그러나 안타깝다. 피해의식 때문임이 사알짝 느껴진다. 사람 사는 사회에 어떤 형태로든 끼어드는 비판부터 하는 풍조 때문이다. 드러나면 시기 질투가 먼저 달려드는 세태가 큰 훼방꾼이다. 필자 입장에선 답답하고 애마르다. 분명한 것은 사회는 누구의 피해의식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직 스스로 이겨내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밝게 드러내는 것이 한 방법이다. 아름답고 뜻 깊은 이야기들 감추지 말아야 한다. 본보기가 될 이야기들 아낌없이 꺼내 놓아도 괜찮다. 남을 의식하는가? 그걸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자기 삶을 즐기지 못할 것은 뭔가? 그게 누구를 위한 건가. 남은 나와 입장과 판단이 다르다. 자기애를 희생할 이유가 없는 거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시기 질투를 미리 헤아려 '자기 경영'을 감추는 것은 찬성할 수 없다.
과거에 묶이는가? 과거는 현재를 이루는 한 과정이었을 뿐이다. 학력이 좀 낮다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 부를 이루지 못했다고 물러서려는가? 어느 것도 이유가 되지 못한다. 거기에 매몰되어 자신을 감춘다면 그게 자기 부정이다. 비교는 불행의 시작임을 누가 모르는가. 다른 사람으로 인해 자기의 오늘을 그르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과거가 부끄럽다면 딛고 일어서야 한다. 꿈을 이야기하자. 내일을 설계하자. 대화하자. 대화하면서 깨닫고 자신을 정리하는 것이 사람의 일 아닌가.
▲ 경영탐문 아홉 번째 이야기 그 주인공은 김영율 회장
▲ 경영탐문 열한 번째 이야기 그 주인공은 박병엽 회장
▲ 경영탐문 열 번째 이야기 그 주인공은 김윤두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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