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나들이] 조부의 유산과 내 필묵 사이 / 하정 김영욱
페이지 정보
자유로운글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5-09-27 10:32 조회 63 댓글 0본문

하정 김영욱(河丁 金永郁) / 1949년 생.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69학번으로 입학했다. 한국에 본사를 두고 인도네시아에 PT.GAYA INDAH KHARISMA를 설립한 것이 벌써 30여년이다. 선대에서 가먼트업을 창업하신 관계로 선택의 여지없이 업을 물려받았고, 이제 다시 다음세대가 이어 받아 주도하고 있다. 2014년 지인의 고희기념 서예 전시를 보고 뜻하는 바가 있어 서예에 입문했다. 성실을 무기로 자필묵연 정기전에 빠짐이 없었으며, 한글서예초대전,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등 특별전에 참가했다.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수차 입상했으며, 서울서예대전에 꾸준히 참여하여 2025년 (사) 한국서협 서울지회로부터 초대작가 증서를 받았다.
조부의 유산과 내 필묵 사이
하정 김영욱
조부께서는 한국 근현대기 서화인들과 교분이 많으셨다. 그 중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들이 계시다. 그런 연유로 지금도 우리집엔 그 분들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특히 한국 근현대기의 6대가로 이름을 떨친 의재 허백련 화백이나 근원 김용준 선생의 작품은 가내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작품 소장 여부와는 관계없이 조부께서는 서예가 검여 유희강 선생의 소박하면서도 강건한 필치를 좋아해서 여러 작품을 소장하셨다.

▲ 광개토대왕비 임서
나는 예전부터 소장품들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구체적으로 소중히 여기게 된 것은 필묵을 가까이 하고 난 이후다. 유명한 분들이라거나, 또는 집안에 의례히 갖춰진 서화 작품들이려니 하는 정도이던 것이 내가 직접 먹을 갈고 작품을 실험해 보면서 집안의 모든 유묵들이 현실적 가치를 떠나 매우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진 것이다.
내가 필묵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저변도 역시 그 소장품들과 조부님 유묵들의 영향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조부께서 심어놓으신 문화적 향훈이 내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정서를 도왔던 것이다. 지금 멀리 미국에 사시는 누님께도 영향이 컸던가 보다. 누님은 내가 서예에 입문한 것을 아시고는 매우 기뻐하셨다. 그리고 내게 미국의 집안에 걸어놓을 필적을 부탁하기도 하셨다.
인재 선생께서는 내 고희 때 내 작품 몇 점을 더해 조부의 영향이 지대한 유묵들 정리를 겸한 전시를 제시하였다. 보존과 기록으로는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 학습 기간이 짧거니와 내 작품들 또한 그리 드러내기에는 오히려 소장품에 대한 결례일 듯하여 용기를 내지 못했다.
또 다시 펼치는 고국전이다. 적도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한인 동포들이 피워 낸 먹향이 고국을 향한다. 이런 이벤트는 단순한 작품 발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내 경우 이제 70 중반의 연령이고 30여년을 타국에서 기업운영으로 보냈으니 그 시간들을 결이 다르게 새길 기회 아니겠는가. 특히 참여하는 마음이 뿌듯한 것은 이번 <적도의 묵향 고국나들이 Ⅲ>를 통해 이렇게 집안 유묵들의 가치와 조부님의 존재를 다시 기억하고, 몇 줄이나마 소회를 적을 수 있음이다.

▲ 다산선생 시 /2024년 서울서예대전 특선작
얼마 전 나는 (사)한국서협 서울지회로부터 초대작가 증서를 받았다. 공모전의 초대작가는 수많은 서학도들이 일정기간 활동을 통해 작가가 되는 한 과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대학졸업 후 평생을 기업현장에서 생산하고 운영해온 중소기업인으로서는 새삼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하늘나라의 조부께서 이를 아신다면 나름 뿌듯해하시지 싶다.
끝으로 내 취미활동을 응원해주는 가족들과 그동안 이끌어주신 인재 선생님의 수고를 새긴다. 아울러 함께하는 자필묵연 선후배들과 함께 멋진 시간을 창작해낼 것으로 믿으며 이에 참가 소감에 가름 한다.
-2025년 가을이 한창일 때 하정 김영욱
[아호 이야기/ 인재 손인식]
아호 하정(河丁)의 연원과 의미
하정(河丁)은 76세 현역 기업인이자 골프와 서예를 즐기는 김영욱(金永郁) 노 청년의 아호이다. 물론 작금의 그의 진짜 역할은 새로운 힘과 능력을 발휘하는 아들의 진취적인 경영 활동을 조용히 지원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굳건히 가꾸고 지켜 후대에게 물려주는 과정으로 이젠 건강을 위한 운동과 정신을 일깨우는 취미생활로 안분자족하고 계시는 것이다.
▲ 河丁 金永郁
그의 아호 河丁, 두 글자의 조화는 그의 갈망과 삶의 태도 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하(河)”는 크고 작은 물줄기를 두루 아우르는 글자다. 한강과 같은 큰 강을 상징함과 동시에 냇물, 운하 등 도도히 흐르는 생명의 물길을 의미한다. 이는 그가 인생에서 걸어온 발자취와 기업 경영에서 적용한 유연하면서도 힘찬 흐름을 상징한다.
“정(丁)”은 흔히 고무래정, 못정과 더불어 건장한 장정(壯丁)이란 뜻으로 무성함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河丁은 그의 물처럼 부드럽고 지혜로운 성품과 아직 당당한 그의 외모를 아우르는 아호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론 유연하면서도 굳건한 기업 운영의 의지를 담은 조합이며, 또한 창작의 순간에 요구되는 다소 거칠고 투박한 선율, 즉 서예의 본질적 힘을 드러내고자 하는 소지이호(所志以號)다.

▲ 自耕
그는 어려서부터 조부의 영향으로 서화 작품을 접하며 성장했다고 한다. 집안에는 근현대기의 서화 작가들과 교유한 조부의 향기가 은근했다고 한다. 그의 심미안과 예술적 감각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업인으로서 전념하는 동안 그런 내면의 정체성을 잊고 있었다. 이를 일깨운 것은 지인의 고희 기념 부부 서화전이었다. 늦은 나이에 필묵을 벗삼을 수 있을까? 라는 망설임에 ‘하면 된다.’라는 지인의 권유로 바로 먹을 갈고 붓을 잡았다.
그로부터 어언 10여년 ‘하정’이라는 아호는 이제 그의 인품과 외모, 그리고 예술적 창작 세계를 아우르는 표징이 되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을 드러내는 동시에, 때로는 거칠고 힘 있는 필획을 원하는 자신의 내면을 대변하는 아호가 된 것이다.
끝으로 필자는 그가 늘 강건한 모습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유연하면서도 끊임없이 전진하는 삶의 태도를 지향하시리라 믿는다. 아호 河丁의 참뜻을 필묵으로 창출해내시는 노 청년으로 변함없으실 것을 빌면서 이만 작호의 이면을 새긴다.
-산나루 주인 인재 손인식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