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나들이] 필묵으로 꾸미는 내 인생의 후반을 응원하며/풍곡 조용래 > 자필묵연 自筆墨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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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나들이] 필묵으로 꾸미는 내 인생의 후반을 응원하며/풍곡 조용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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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글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5-09-25 15:24 조회 7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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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곡 조용래 (豊谷 趙榕來) /1995년 PT. KBC Int’l 를 설립하여 비철금속 무역업을 시작했다. 이어 2008년 서울에 무역회사 ㈜제일무역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고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에 다시 PT • Dat mobility System을 설립하여 지원하고 있다. 2023년 10월에 자필묵연에 입문했으니 수련 기간이 짧다. 그러나 불철주야 노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그 결과 서울 서화공모대전에서 입선 1회 특선 1회를 했다. 2025년 세계서예전주비엔날레 해외동포전에 출품과 동시에 <적도의 묵향 고국나들이 - Ⅲ>에도 기꺼이 동참했다. 


필묵으로 꾸미는 내 인생의 후반을 응원하며

풍곡 조용래


2018년 초등학교 동창들과 대만 여행을 할 때다. 지필묵이 가지런히 담긴 문방사우 세트가 내 시선을 강력히 이끌었다. 한 세트를 샀다. 언젠가는 서예를 벗해야겠다는 희망이 내마음속에 늘 자리 잡고 있었다는 의미다. 잊은 듯 보관하기를 6년여, 2023년 세시기를 앞두고 기회가 찾아왔다. 인재 손인식 선생께서 주재하는 자필묵연 찌서당 일원으로 입문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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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선생 시/ 2025년 서울서화대전 특선작


고희를 바라보는 늦은 나이의 입문이지만, 나와 서예의 인연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크게는 내 고향 안동의 향훈을 들 수 있다. 가까이는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신 작은 아버님이 계시다. 작은 아버님은 도남 조윤제 박사의 친필인 學神農(학신농) 편액을 늘 애지중지하셨는데, 어느 날 내게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주심으로써 서예와의 거리를 좁혀주셨다. 아울러 한의사였던 할아버지가 남기신 한시들이 한권의 책으로 정리되어 곁에 둘 수 있었던 것이나, 처삼촌이 쓴 8폭 병풍을 자주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영향이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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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憂樂性場(무우락성장),寡欲清心源(과욕청심원)/ 근심 없이 본성의 바탕을 즐기며 

욕심을 줄여서 마음의 근원을 맑게 하리라. 


늦은 나이, 그것도 해외에서의 서예 입문으로 인해 매우 들떴던 때문일까? 나는 붓을 잡은 첫 시간부터 자식들에게 가훈을 써주겠다는 목적을 밝혔다. 이런 돈키호테적 발상을 선배들은 기꺼이 좋다고 응원해주었고, 인재 손인식 선생께서는 작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야말로 학습의 지름길이라고 용기를 주셨다. 한편으로 기초 선긋기를 배우면서 다른 한편으론 딸의 가훈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무모함은 곧 스스로에게 던지는 무한 노력을 향한 채찍이었다. 그 결과 미처 일 년도 되지 않았을 때 딸네 가훈은 물론 아들집의 가훈까지 완성해서 걸어주었다. 작품으로서야 모자람 범벅일 것이로되 마음만은 뿌듯했다. 


“회원전도 공모전 출품도 모두 최선의 서예공부”란 인재 선생의 말을 그대로 믿고 순응한 것이 지름길이었다. 먹과 화선지를 많이 소모하며, 붓이 닳고 빠져 하나 둘 퇴필이 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 서예대전에서는 낙선을 하기도 했지만, 서울 서화대전에서는 2024년 입선과 2025년 특선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물론 한두 번 공모전 성과가 내 실력이 온전하다는 증거가 아님을 안다. 아직도 늘 기본기 부족을 지적 받는다. 하물며 방대한 각체의 고전 섭렵이나 결체와 장법의 다양성, 그리고 예술성을 체득함에 있어서는 아직 한 발짝도 체 떼지 못한 상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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鹿友知情頻下伏 鶴仙何事故啼來 秋霜晩節香生菊 春雨晴宵月上梅(녹우지정번하복 학선하사고재래 추상만절향생국 춘우청소월상매)/ 내 벗 사슴은 내 뜻을 알고 자주 찾아와서 엎드리고, 신선 같은 학은 무슨 일로 울면서 찾아오는가. 서리 내린 늦가을에도 국화는 향기롭게 피어나고맑게 갠 봄밤엔 달이 매화가지에 걸리네.


흥미로운 것은 해외에서 서예수련을 하다 보니 특례도 누린다는 점이다. 세계서예전주비엔날레 참여 기회가 그것인데 국내에서라면 참가가 언감생심이라는 것을 작품을 준비하면서야 알았다. 그러니까 비엔날레 해외동포서예전 부분 참가인데 이국땅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갈고 닦는다는 보상치고는 너무도 큰 영광의 자리다. 


사실 나는 이번 비엔날레가 열리는 전주시를 여태껏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참가 작품을 준비하면서 관심을 가지다보니 의외의 폭을 넓혔다. 지역의 특성을 두루 알게 된 것도 그렇거니와 특별히 전북 출신으로 유명한 서예가 강암 송성용 선생님과 석전 황욱 선생님 두 분의 작품 세계를 감상한 것이다. 


고 강암 송성용 선생님 80 나이 때 먹을 가는 모습이나 대담을 하시는 모습은 정말 감동이었다. 고 석전 황욱 선생님의 영상도 참 인상적이었는데 두 분 원로 대가가 남기신 금언과 작품들을 아직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야말로 내게는 금과옥조요 앞으로도 서예학습의 좋은 지침이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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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승 선생 시/ 2024년 서울서화대전 입선작


<적도의 묵향 고국전>, 이 전시는 인도네시아 한인 서예동호회 자필묵연이 5년마다 한 번씩 펼치는 이벤트다. 10월, 이 전시가 열릴 때쯤에야 내 필력 겨우 만 2년여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펼친 지 20년여인데 그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필묵으로 가꾼 내 정신의 소산들이 고국나들이를 한다니 필시 꿈인 듯싶다. 이 전시를 기획하고 이끄는 인재 손인식 선생님과 늘 함께 하는 자필묵연, 특히 찌서당 도반들에게 감사를 말씀을 올린다.

 

-2025년 9월,풍곡 조용래 


[아호 이야기/ 인재 손인식]

개미처럼 쌓은 산과 풍성한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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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豊谷 趙氏榕來 


조용래 도반께서 자필묵연 회원으로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다. 필자는 그의 아호로 豊谷(풍곡) 두 자를 취했습니다. 필묵예술과 인연을 맺었고, 작품을 시작했으니 그에 따라 아호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서예의 기초 중 기초인 선을 그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창작에 도전하게 한다는 것은 필자의 지도 방법 중 하나다. “초보자가 작품 창작?” 대부분 어리둥절해 한다. 풍곡께서는 별 이의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더불어 노력했다. 선 하나 점 하나가 곧 창작이란 필자의 지도 방식을 이해한 것이다. 


풍곡께서 최초 세포를 형성하여 세상의 빛을 본 곳은 경북 안동군 풍천면이다. 안동하면 대표적 유림의 고장으로 명현 석학들이 수없이 배출된 곳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시대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답게 서원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퇴계 선생의 도산서원과 서애 유성룡 선생을 기리는 병산서원은 여전히 안동을 안동답게 하고 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풍곡께서는 항상 공부를 멈추지 않습니다. 물론 사업도 열심입니다. 풍곡께서 자호한 아호는 蟻山(의산)이었습니다. 개미산, 즉 ‘개미가 산을 이루듯’이란 의미를 담은 것인데요. 그는 스스로의 삶을 개미가 산을 이루는 것에 비유합니다. 그의 생활철학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지요. 저는 蟻山에 재(齋)를 붙여 그가 거처하는 집이나 서재의 당호 蟻山齋(의산재)로 사용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그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스스로 휘호하여 현판으로 내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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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蟻山齋


풍곡께서는 다복한 5남매의 둘째입니다. 평소 두터운 형제애를 자랑스러워하는데요. 거기엔 그의 역할이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즉 농촌에서 일만하던 동생 셋을 인도하여 대학 • 대학원까지 진학의 길을 열어주고 도와주며 모두 훌륭한 일가를 이루게 했으니까요. 풍곡은 자호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 오직 성실을 기틀로 개미처럼 일하여 나름의 산을 쌓았는데요. 맨몸으로 도전한 인도네시아에서 창업(PT. KBC Int’l)하여 궤도에 올린 후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서울에 ㈜제일무역을 설립한 것이죠. 한국에 있던 기업이 인도네시아로 분화하거나 진출하는 일반적인 사례와는 반대로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확장한 것이죠. 말 그대로 풍성한 골(豊谷)을 일구고 있습니다. 


산이 있는 곳엔 반드시 생명 줄인 골(谷)이 있습니다. 골에는 모든 생명의 원천인 물이 있고 그 물로 인해 새 생명이 끊이지 않습니다. 노자의 곡신불사(谷神不死)죠. 하니 필자가 그를 위한 작호의 실마리를 그의 삶에서 찾은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그가 이룬 풍성한 골짜기엔 오늘도 생명수가 솟고 새로움이 탄생합니다. 고희를 바라보는 즈음 필묵을 벗하기로 한 풍곡, 이는 그야말로 신선한 도전이며 창출의 바탕이자 확신입니다. 그간 삶과 경영 일선에서 체득한 지혜와 깨달음을 필묵과 조화하고자 다시 학생이 되었습니다. 머지않아 품격 높고 아취 넘친 작품들로 그의 인생 후반기를 풀어내리라 믿습니다. 


그에게는 지금 매주 화기만당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찌서당 도반들이 있습니다. 밀고 당기며 아호 풍곡이 더욱 빛날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을사년 5월을 맞은 첫날 산나루 북창가에서 인재 손인식 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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