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미국•중국 소비심리 다시 꿈틀거리는데
본문
가끔 공포는 엉뚱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재정 절벽(fiscal cliff)’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민주당이 행정부를,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해 합의에 도달하기 힘들 거란 분석 때문이었다. 이런 우려로 미국 주식시장은 일주일 사이에 6% 가까이 하락했다.
재정 절벽은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 타협이 가능한 사안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파국을 맞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설혹, 올해 안에 타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미국의 재정 구조상 내년 1분기까지 견딜 여력이 있다. 실제 영향이 줄어들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주가가 하락한 것은 지난해 부채한도 협상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쉽게 합의가 날 거란 예상과 달리 타협이 지연됐고, 그러는 가운데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증시 역시 15일이 안되는 사이에 20% 가까이 떨어졌다. 이때부터 ‘미국의 정치적 갈등=큰 폭의 주가 하락’이라는 등식이 투자자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3분기가 국내외 경기의 바닥이다. 미국의 소비심리가 5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간 주택가격 상승률은 10%를 넘고 있다. 모두 인상적인 회복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예를 보면, 소비심리의 호전은 대부분 실제 소비 증가로 이어졌다. 고용이 정상화되지 않았지만, 향후 상당한 수준으로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9월부터 중국도 경제지표가 완전히 달라졌다. 월별 수출이 지난해보다 증가하기 시작했고, 투자와 소비도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선 후 경기 부양 대책이 있을 것이란 기대가 사라졌지만, 이런 악재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좋아졌다.
국내 경제는 아직 회복의 증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지난 3분기 성장률 1.6%가 우리 경제 구조상 더 떨어지기 어려운 수준임은 부인할 수 없다. 국내 경기 역시 바닥을 통과하고 있는 걸로 봐야 한다.
문제는 주가다. 경기가 바닥을 벗어나는 때 주가가 가장 빠르고 크게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아직 국내 증시에서는 그런 기미를 찾을 수 없다. 국내 시장은 2000선 밑에 묶여 있고, 중국 시장은 지지선(상하이종합지수 2000포인트)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유동성 효과로 경기가 회복하기 훨씬 전부터 주가가 움직였기 때문인데, 이 부담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앞으로 주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기관투자가가 어떤 종목을 사느냐에 따라 상승하는 종목이 달라지고 있다. 업종 대표주 중 하락이 컸던 종목을 중심으로 빠른 순환매가 계속되고 있다. 종목별 움직임의 핵심은 삼성전자를 대신할 종목을 찾는 것이다. 이런 종목이 있을 경우 시장이 이들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관련주와 삼성전자 외에 다른 정보기술(IT) 주식이 그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영향력 면에서 삼성전자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한계 때문에 당분간 종목별 흐름은 순환매를 벗어나지 않는 형태일 것으로 예상한다.
이종우∙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중앙일보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