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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마음의 이사 / 한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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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0-11-26 22:19 조회 11,20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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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134 >
 
마음의 이사
 
한화경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올해 6월, 현재 살고 있는 집 계약기간이 다가오면서 이 나라에 온지 2년이라는 세월을 실감하게 되었다. 세월의 흐름은 정말 빠르다. 지금의 집은 처음 살아본 2층집인데다 방마다 화장실이 있고 풀퍼니처로 모든 가구가 구비되어 있었기에 우리에게는 과분한 집이었다. 그렇게 인도네시아에서 첫 생활을 시작했다.
 
다섯 식구가 적도나라에 적응하는 과정을 지켜준 고맙고 추억이 많은 정든 집이다. 남편이 발령을 받아서 준비단계로 남편 홀로 이 나라에 대한 면역력 하나 없이 다녀간 출장 중에 급히 회사 도움으로 계약한 집이었다. 큰 아들이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식구도 줄었고 시대적 경제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지금, 같은 집을 연장계약 하는 건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코로나 확산과 언어의 벽 때문에 이국에서 해보는 이사는 새로운 도전과 같았지만 안전하게 적당한 새 집을 찾아서 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사 일을 마친 저녁시간에 1시간가량 매일 같은 단지 내 이웃 엄마들과 걷기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과 동시에 입도 열심히 움직이는 우리만의 몸과 마음의 소중한 운동시간이다. 이사를 해야 한다고 말을 해봤더니 경험 많은 엄마들의 지금까지 이사했던 수많은 사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부동산만 믿지 말고 발품 팔아 찾다보면 좋은 집을 만날 거예요.” 같이 봐줄 테니 걱정 말아요.”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얼마나 마음이 든든해졌는지 모른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보다 먼저 이사해야 하는 집도 있어서 만나기만 하면 우리는 대부분 집이나 이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처음 이 나라에서 집을 찾을 때 이렇게 대화를 나눠볼 사람도 정보를 얻을 수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의지할 때 있는 지금이 너무나 감사했다. 지금까지 눈에 안 들어왔던 임대간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전화번호를 챙겼다가 주변엄마들 도움으로 1년에 랜트비가 얼마인지 물어보고 여러 집에 들어가서 내부를 살펴봤다.
 
인도네시아 주택은 집집마다 구조가 다양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가구까지 구입하기는 부담스러워서 가구 있는 집을 원했지만 그런 집은 하나같이 비쌌다. 함께 집을 봐준 언니가 차라리 가구 없는 집에 들어가서 중고가구로 채우는 것이 싸게 친다고 경험담을 이야기해줬다. 저렴한 집으로 가는 게 목표였기에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집을 보고 다니던 중 아무것도 없는 빈 집 1층에서 내가 “얘들아! 밥 먹으로 내려와” 하면 아이들이 2층에서 우르르 내려오는 그림이 그려지는 마음이 가는 집을 만났다. 물론 가격도 괜찮았다. 남편과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이번에 만큼은 여자의 직감으로 밀고 나갔다. 인니어 능숙한 언니가 집주인과 중요한 집세 협상을 해줬고 발 넓은 언니는 여기저기 중고가구 나올만한 집에 연결해주어서 없는 가구를 구입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고맙게도 집주인이 집세를 처음 말했던 것 보다 가격을 더 내려주었고 이웃과 회사의 도움으로 집 계약이 진행되면서 이사날짜를 잡고 입주 전 집수리가 시작되었다.
 
 
사람마다 여러 형태의 이사가 있겠지만 어떤 이사든 집을 옮긴다는 것은 신경과 힘과 비용이 쓰이는 일이다. 그만큼 거주지 문제는 신중해야 하고 중요한 일이다. 이번 이사는 거주 지역을 바꾸는 대작 이사는 아니었지만 네 집이나 돌면서 가구를 얻어 새집으로 들어가는 미션이 따랐고 침대와 옷장 같은 큰 짐들이 단지와 단지를 넘어갈 때 통과서류가 필요했다.
 
이사하는 날 1톤 트럭과 남편 회사 직원 4명과 집 기사가 대활약을 해주었고 그들의 땀 덕분에 모든 짐을 옮기고 좁은 계단을 타고 2층까지 물건이 올라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퍼즐 맞추기처럼 없던 가구들이 해결되었고 주인이 바뀐 그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 제대로 역할해주는 것을 보면 신기하고 고맙고 뿌듯했다. 한 때 고국을 떠날 때 이삿짐의 반을 주변에 주고 왔는데 이번 이사에서는 필요한 물건을 많이 얻게 되었다.
 
2년 전 이 나라에 처음 왔을 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따뜻한 이웃 덕분에 정보력 넘친 알뜰한 이사가 무사히 완료되었다. 10일정도 바짝 집 정리를 마치고 치킨을 튀겨서 고마운 이웃들 초대해 감사함을 전하면서 적도나라의 모험 같았던 이사를 마무리했다. 정말 마음이 따뜻하고 배움이 많은 이사였다.
 
살면서 생기는 작은 문제는 하나하나 해결 중이다. 빨래 비누에다 이쑤시개 같은 뾰쪽한 것으로 긁힌 자국이 있다면 아시는 분이면 바로 직감이 가겠지만 모르는 나는 한참 보고 나서야 쥐 이빨 자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배 엄마들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더니 이제 알았냐는 듯 쥐는 특히 집에서 만든 세탁비누를 좋아한다고 알려주었다. 기름이 원료라서 고소할까?
 
한국 같으면 집에서 쥐가 나왔다면 말 못하고 숨길 것도 같은데 여기는 쥐에 관한 사연도 많아서 오히려 화제가 되어 잡은 방법과 쥐에 관한 많은 경험담까지 알려준 강한 엄마들이었다. 잘 생각해보니 빈집주인은 그들이었을 것인데 이젠 우리가 들어왔다고 끈끈이를 펴서 입주 선언식을 했다. 지금은 천장에서 가끔 발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서로 마주치지 않고 공간을 나누어 살고 있다.
 
날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막힌 도로를 뚫고 다니던 운전기사는 아이들 학교 원격수업과 동시에 집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덕에 짐을 옮기는 등, 이사하는데 많은 일을 도와주었다. 방은 작고 아담해진 대신 마당은 넓어진 새집에서 어느 날부터인가 스스로 가위를 들고 와서 “짝짝” 소리 내며 마당을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어디선가 꽃이나 선인장 같은 식물을 가져와 심고 조경까지 담당해주었다. 마당을 정리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일 정도로 식물을 잘 따르는 사람이었다. 재주꾼 기사 덕분에 빈집 풀, 덤불이 꽃들이 방긋방긋 웃고 나비들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마당으로 탈바꿈했다.
 
집은 역시 사람이 살아야 꼼꼼히 관리하게 된다. 우리 가족이 들어오면서 마당도 정리되고 밤에는 따뜻한 불이 켜지고 사람 소리와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 나는 집으로 이제는 제 모습을 찾아 숨을 쉬고 있는 것 같다. 직장에서 피곤한 남편은 쉼터로, 아이들은 학교 교실이자 학습 공간과 모든 생활공간으로, 엄마는 가사현장으로 가족들이 전보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올해 2020년은 ‘코로나19’ 확산공포로 생활방식이 그야말로 급 변화했고 그 생활에 맞춰 조심조심 살다보니 벌써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올해는 지구촌 사람 모두가 2020년 전, 그때의 생활이 구집이라 하면 마음가짐과 생활방식 등이 바뀐 ‘코로나19’ 시대의 새집으로 이사를 와야 했던 한 해 아니었을까 싶다. 이사한 김에 버리고 정리하는 물건도 있고 새집에 맞춰 생기는 물건들이 있듯이 지금은 과거를 정리하고 앞을 내다보고 대비해야 하는 과제를 모두가 안고 있는 것 같다.
 
과거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가득하지만 새로워지면 새로워지는 대로 길이 열리고 방법이 생긴다. 아마 과거의 것을 비우면 비울수록 더 잘 보이는 미래일지도 모른다. 격리한다고 몸은 떨어져 있어도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결코 혼자 살 수는 없다. 네트워크와 마음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모험 같아도 앞으로 밀고 나아가야 하는 시대변화 속에 강제적인 마음의 이사시대에 우리는 서 있는 게 아닐까. 집 이사는 어떻게 지나갔는데 마음의 이사는 잘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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