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제2회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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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사

‘소통疏通의 시대’가 원하는 문학상

‘불통不通의 시대’가 가고 ‘소통疏通의 시대’가 왔습니다. 말하기를 가르치는 스피치 학원이 세탁소의 입간판처럼 익숙해졌습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거리의 간판을 보면 그 시대의 트렌드를 알 수 있듯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압 니다 소리 내어 말하기 전, 눈으로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강산이 몇 번 바뀌도록 살았건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각종 스포츠와 시험에 급수를 매기듯이 마음을 읽는 기술의 정도를 따진다면 우리는 어디쯤 일까 생각해 봐야 할 시간입니다. 지난했던 코로나 팬데믹 시대가 지나고 ‘

거리두기’에서 ‘거리좁히기’의 시대가 도래했 습니다 업무 외 행사가 늘며 축사와 격려사를 써야하는 일도 늘었습니다 인사말과 축 사 못지 않게 흔한 격려사이지만 언어 선택에 조금 더 신중해 집니다. 축하인사를 건네 기는 쉬워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상대방을 다독이는 일은 한층 어렵습니다. 수십 년 동안 체육대회나 세미나, 업무적인 차원에서는 숱하게 해 온 격려사가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타인의 간절함’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 응 원의 말을 고르게 됩니다.

사공경 원장님, 《한인니문화연구원》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에 참여하신 여러분. 12번째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개 최되는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문학상에 격려사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세 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개인 단체가 운영하는 문학상이 10회를 넘긴 곳은 《한인니 문화연구원》 뿐입니다. 가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할 만한 문학상입니다. 팬데믹 이전에 는 각국의 대사관과 유수의 인도네시아 인사들이 시상식에 참석해 축하를 나누는 거국 적인 행사였다면 이제는 인도네시아와 동포사회 저변까지 기쁨을 전하게 되리라 믿습니 다 육지를 가로지르고 섬을 건너 날아온 수백 편의 이야기 중 가장 탐스럽고 향기로운 작품을 쓰신 여러분들의 노고를 격려합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여러분들이 ‘디아스포라 문학’을 이끌어갈 주인공입니다. 2022년 12월 PT. TAEWON INDONESIA 회장 양영연 양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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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발간사·기념사·축사 7

심사평 16

수상작품

일반부

대상 주인도네시아대한민국대사상

(수필) 로젠베르기황금귀신사슴벌레 / 류은우 25

최우수상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상

(소설) 라스미 / 황영은 33

최우수상 한인니문화연구원장상

(수필) 발리의 꿈 / 김현경 44

최우수상 한-인니산림협력센터장상

(수필) 안부 / 김아람 54

우수상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장상

(수필) 누구를 위하여 바람은 부나 / 도지현 62 우수상 한인기업가상 PT. TAEWON INDONESIA

(시) 말랑의 잠자는 공주 / 윤세귀 69 우수상 인니갤러리 F. Widayanto 상

(수필) 6 시 51 분엔 막히는 게 성실한 도로의 일 / 전현진 73

우수상 Historika Indonesia 상 (수필) 인도네시아에서 찾은 마음들 / 김유림 79

특별상 Indonesia Korea Friendship Association상 (수필) 시조새 / 김수은 87 특별상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인도네시아 사무소장상

(수필) 추석 선물 밍크코트 / 김형석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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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

대상 주 ASEAN 대한민국대표부대사상

(수필) 무궁화와 연꽃 / 한동훈 (ACS Jakarta, 9 학년) 101

최우수상 재인도네시아한인상공회의소회장상

(수필) 파푸아 / 송지섭 (JIKS, 10 학년) 109

최우수상 한인니문화연구원장상

(수필) 으뜸 화음 / 조규희 (BSS, 8 학년) 114

최우수상 한-인니산림협력센터장상

(수필)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의 한국인 기수 / 신창민(AIS, 9 학년) 121

한인기업가상 PT. TAEWON INDONESIA

(수필) 나의 망고나무 / 오수아 (SPH LIPPO Cikarang, 12 학년) 128

우수상 인문창작클럽회장상 (수필) 흔한 한국학생인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산다는 것은 / 한어진 (JIKS, 11 학년) 134

특별상 Lembaga Kebudayaan Betawi상 (수필) 느림의 미학 / 이수안(JIKS, 10 학년) 142

특별상 인니예술가 Bambang Gunawan Santoso 상 (시) 비와 웃음꽃 / 이지안(JIKS, 10 학년)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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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부

대상 한-인니산림협력센터장상

(동화) 초파리 생존기 / 강율 (JIKS, 5 학년) 186

최우수상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장상

(수필) 맹그로브 숲의 정화 기능 / 이두아 (JIKS, 5 학년) 193

우수상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상

(동화) 자바 코뿔소를 구해 줄게 / 이은솔 (BSS, 5 학년) 198

우수상 KOICA 소장상

(동시) 고양이, 맹그로브 / 임서호 (SPH Kemang Village, 1 학년) 208

장려상 한인니문화연구원상

(동화) 별 모양의 열매 / 김민솔 (JIKS, 6 학년) 212 장려상 한인니문화연구원상

(동시) 가루다(GARUDA), 비밥 / 박승우 (ACS Jakarta, 3 학년) 221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수상작품집 186~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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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디자인
《한인니문화연구원》 · 《한-인니 산림협력센터》
226
연혁 227·229

발간사 기념사 축사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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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고유한 색(色)을 찾을 시간입니다.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공모전은 인도네시아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한인들의 사람 사는 향기를 담아 왔습니다 이 향기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문화의 가교가 되어 풍성한 소통의 장이 되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한-인니산림협력센터》와 공동주최로 문학상을 추진하였습니다. 더구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신설한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문학상은 올해로 2 회가 되어 그 의미를 더합니다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은 2010 년 시작되었습니다. 문학이 주는 힘은 컸습니다. 금년도 12 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수상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나 인도네시아 문화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상 생활 속 감상에서 나오는 창의성을 글로 나누며 다양한 변주곡으로 울려 퍼질 것입니다. 삶의 어느 언저리에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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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내는 화음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국에서 아름다운 한국어로 인도네시아와 소통하는 일은 분명 사랑입니다. 《재외동포재단》,《주인도네시아대한민국대사관》,《주 ASEAN 대한민국대표부》,《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재인도네시아한인상공회의소》,《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한 국국제협력단(KOICA)인도네시아사무소》,《문화예술총연합회》,《인문창작클럽》등
서 있는 자유롭고 선한 인생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인도네시아인들의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이

많은 기관과 단체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아낌없는 지원과 관심을 주신 인도네시아 문화예술인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한인니문화연구원》 여러분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 4 회 때부터 지원을 아끼지 않는 PT. Taewon Indonesia 양영연 회장님에게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제 1 회에 이어 2 회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를 훌륭하게 이끌어주고 수상작품집을 훌륭히 엮어낸 이영미 작가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저희 《한인니문화연구원》은 25 여년 동안 336 회탐방, 12 회의 <인도네시아 이야기>와 2 회의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문학상, 75 회의 열림 강좌를 개최하면서 힘든 길도 있었고, 다시 걷고 싶은 길도 만났습니다. 좋아서 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책임과 사명감은 이 길에서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첫사랑 같았던 문학상은 힘들다고 더 이상은 아니라고 도망치려고 했던 저를 붙잡아 문화의 꽃망울을 맺히게 주었습니다 특히 이번 12 회 문학상은 더욱 그랬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회와 사람을 사랑할 힘을 다시 불러일으켜 주었습니다.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의 《한인니문화연구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2023 년은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수교한지 50 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문학상을 통해 교민들이 인도네시아인들의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도네시아 자연의 색을 담은 바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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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한인니문화연구원》원장
청ㆍ황ㆍ홍ㆍ백ㆍ흑색에 바탕을 둔 한복의 오방색(五方色)이 다양성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듯이 우리만의 고유한 색(色)을 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년 12월
사공경

기쁩니다 저 희 한-인니 산림협력센터는 ODA 산림분야 협력사업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하고 산림 관리와 기후변화 등 인류의 당면과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힘쓰고 있습니다. 2022년 인도네시아 산림분야의 키워드는 이탄지와 맹그로브 복원, 탄소, 대규모 양묘장, IKN(신수도) 등입니다 생물의 다양성이 풍부한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며 한국에는 없는 다양한 동식물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것도 세월이 지나 큰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어느 동네에나 있는 바나나 나무, 대나무, 시내 중심가에 잘 가꿔진 가로수와 식물들, 까뿍 자 연공원에 있는 맹그로브, 센툴 지역에 많은 소나무와 커피 나무에 관심을 갖고 보며 열대의 푸 르름을 감상해 보는 것도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도네시아에는 계절(musim)이 없다 또는 건기와 우기만 있다고 하지만 인도네 시아 사람들은 banyak musim 이라고 하는데 어떤 계절이냐고 물으면 musim mangga, musim durian, musim rambutan 등이라고

10 기념사 나무를 심는 것뿐 아니라 잘 가꾸고 활용하는 것까지 탄소중립 시대에 필요한 산림 전략 문학을 통해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소통에 기여한 《한인니문화연구원》과 제12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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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말합니다. 이런 풍성한 과일을 수퍼마켓 진열대에서 만 보지 말고 길가의 과실수를 감상해 보는 것도 인도네시아에 사는 풍성함을 느끼는 방법입니 다
인도네시
이야기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공모전을 공동 주최하게 되어 무척
11 저희 센터가 코이카 사업 종료 후 후속조치로 2021년까지 운영 활성화를 위해 사후관리 지 원을 한 룸핀양묘장이 있습니다. 2020년 조코 위도도 대통령도 방문하여 룸핀양묘장을 중심으 로 대규모 양묘장 조성을 지시한 한-인니 산림 ODA 협력의 모범 사례입니다 올해 3월 센터팀 이 이 곳을 방문한 사진을 모티브로 서부자바州에 거주하는 중학생 야스민 학생이 ‘지속가능한 산림과 미래’라는 주제로 개최된 온라인 산림포스터전에 출품한 작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우 리가 들고 있는 이 묘목이 바로 지구의 미래입니다. 마지막으로 수준 높은 작품으로 본 공모전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특히 본 행 사를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은 《한인니문화연구원》 사공경 원장님과 연구원 팀원들, 함께하신 심사위원들과 제2회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문학상 공모전을 총괄한 이영미 작가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2022년 12월 《한-인니 산림협력센터》 센터장 조준규

축 사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이 12회를 맞이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인도네시아 동포사회의 문학적 상상력을 키우고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해주신 《한인니문화연구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 공모전에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품고 인도네시아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은 훌륭한 작품들이 많아서 기뻤습니다. 많은 동포들이 이국에서의 삶을 허투루 흘려보내 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문학으로 재창조 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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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개국 언어로 번역 출판된 『파친코』라는
쓴 유명 디아스포라 작가 이민진 작 가는, 작품 활동을 통해 해외 독자들을 한국인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올해 출간되는 <인도네시아 이야기>와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가 인도네시아 국 민과 우리 국민을 이어주는 정서적 가교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양국 사이의 우정과 유대감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중요한 기록물이 되어 양국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있다는데 찬사를 보냅니다.
소설을

매년 문학상 준비에 노고가 많으신 《한인니문화연구원》 사공경 원장님 이하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내년에도 더욱 다양하고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12월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박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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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사

우리는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삶이 주는 아름다운 순간들 을 마음 놓고 누리지 못했습니다. 2022년도 평온한 일상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낀 시 간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핸드폰만 만지다 더 이상 어떤 콘텐츠도 나를 끌어당기지 않을 때, 그때야 비로소 내가 등한시했던 책을 보게 됩니다. 해방을 꿈꾸는 사람처럼 자신에게 몰두하기도 합니다. 어 쩌면 갇혀있는 답답함이 글을 읽게도 하고 쓰게도 했는지 모릅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시선을 받을 때 힘을 내듯, 글은 누군가 읽어줄 때 살아납니다. 이 공모전 에 도전하신 여러분은 <인도네시아 이야기>와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를 통해 글로 그 것을 분출하신 만큼 좋은 에너지가 내면에 풍성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로 지친 내 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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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이로운 것은 무얼까? 더군다나 타국에 사는 우리가 환 경에 적응하며 사는 일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를 치유하고 활기차게 하는 것은 햇 빛과 공기와 식물을 포함한 자연이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이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시간이 주는 회복력을 믿고 그 힘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 드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일상을 회복하고 싶은 갈망과 어딘가에 쌓인 하고픈 말들을 함께 나누는 발표의 장을 준비하신 《한인니문화연구원》 사공경원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

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수상 작품집에 실린 인도네시아 이야기가 이곳의 한인동포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수상자 여러분! 축하합니다. 2022년 12월

《재인도네시아한인회》 회장 박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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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부 심사평

올해 노벨상 수상자 아니에르노는 수상 소감에서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정직하게 쓰 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글을 쓸 때 진솔하게 써야 되는데 잘 보이려고 꾸미거나 하 면 안 된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저는 이번 심사를 하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여러 번 백일장이나 공모전 심사를 봤지 만 이번만큼 뭉클 한 적이 없었습니다. 백일장은 현장에서 진행되는 것이어서 창의적인 사고가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지만 공모전은 완성도에 집중합니다 예선을 거쳐 올라 온 최종 원고를 보면서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의 모습들을 생생히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질감이 들 수 있는 타국에서 문화가 달라도 배려하고, 인정하고, 수용하 면서 살아가는 모습들이 너무 예뻤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안에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일반부 대상으로 선정된 작품은 「로젠베르기 황금귀신사슴벌레」입니다. 자바서부에 서만 살고 있는 고유종인 황금귀신사슴벌레에 대해 실감 있게 이야기로 풀어 놓은 것이 심사위원들로부터 많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야기에 정보가 많이 들어가면 산문으로서 느낌이 희석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경험을 바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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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는 대상 감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최우수상에 선정된 작품은 총 3편 「라스미」, 「발리의 꿈」, 「안부」입니다 그 중 에 소설 「라스미」는 체험을 서사로 풀어내면서 구성이 탄탄하고 문장 또한 글을 많이 써본 솜씨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일반부 산문에서 결선에 올라 온 작품들은 등수를 매기기가 힘이
그림과 함께 발리에서의 일상을 그려낸 「발리의 꿈」, “나무에게 소리가 있다면 바람 을 닮았을 터였다 ”라는 울림이 있는 문장을 쓴 「안부」라는 작품도 인상
, 심사
로 전문지식을 쉽게 이야기로 전개해 나가는
소설 말미에서 ‘비’라는 이미지로 끝을 맺은
여운
들었습니다.
깊었습니다
: 이위발, 채인숙, 사공경, 이영미

우수상에 선정된 작품은 4편, 「말랑의 잠자는 공주」, 「6시 51분에 막히는 게 성실 한 도로의 일」, 「인도네시아서 찾은 마음들」, 「누구를 위하여 바람은 부나」입니다. “연을 날리는 사람은 줄곧 하늘을 바라본다”고 「누구를 위하여 바람은 부나」에서 표 현한 문장입니다 바람이 없으면 연이 날지 못하듯 사람들 또한 잘 사는 것을 간절한 바람으로 살아갑니다. ‘연’과 ‘간절한 바람’을 연결 지은 것이 좋았습니다. 시는 가장 함 축적인 언어로 내면을 통해 묘사나 비유와 은유로 이루어져야 시가 살아납니다. 「말랑 의 잠자는 공주」는 시적 감흥과 긴장감이 묻어나 있고 묘사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어서 앞으로 정진하면 좋은 시인이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6시 51분엔 막히는 게 성실한 도로의 일」을 쓰신 분은 시를 써도 잘 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 장에 시적 표현이나 감성이 잘 녹아 있는 어휘력에 놀랐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찾은 마음들 」 에서는 발리에서 생활하면서 배려가 주는 존중의 마음과 존중이 주는 공생의 마음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면서 더 나은 미래 사회에 일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마무 리를 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특별상을 수상한 작품은 2편입니다. 「시조새」는 발리 국제학교에서 일 어나는 아이들과의 만남을 미래의 시조새로 연결해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것이 참신 했습니다 그리고 「밍크코트」는 30년을 타국에 살면서 추석날 어머니에게 선물로 사 다 준 밍크코트가 가짜로 판명되었지만 어머니에 대한 사랑만큼은 끝이 없습니다. 지금 은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의 무덤 앞에 줄 선물은 마음밖에 없지만 ‘어머니 사랑’이 꽃 말인 구절초를 보면서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대한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짠 했습니다 수상하신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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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심사를 하면서 즐거운 마음과 함께 뿌듯함이 밀려와 작품을 쓰신 분들과 빨리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글: 이위발(시인,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지회장)

왔습

.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국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도 록 독려하면서 굳건한 문학의 장을 펼쳐 온 《한인니문화연구원》 의 노고에 경외와 찬 사를 보냅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문학상의 심사와 시상식 진행을 맡아 온 것도 <인도네시아 이야기 > 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합니다 해마다 응모작이 늘어나고 글의 수준도 놀랍도록 향상 되어 가는 것을 몸소 느끼면서, 스스로 문학상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습 니다. 특히 올해 학생부 응모작은 예년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특별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 다. 등수를 매기는 일이 곤혹스러울 정도로 글의 내용과 문장, 그리고 전개 방식에 이르 기까지 수준 높은 작품들이 응모 되었습니다

18 학생부
먼저, 《한인니문화연구원》의 제12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올해도 성황리 에
것을 축하드립니다.
우리는
최고상을 차지한 한동훈의 「무궁화와 연꽃」은 한국의
대통령궁을 연달아 방문하면서 느낀 점을 글로 썼습니다. 탐방을 통해 두 나 라의 문화와 역사를 비교하면서 새로운
심사평
문학상이
개최된
몇 년 새
엄청난 코로나 여파와 힘든 세계 경제 사정으로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숫자마저 급격하게 줄었다는 흉흉한 소식들을 접해
니다
청와대와 보고르에 위치한 인 도네시아
관점을 가지려는 노력이 돋보입니다 글의 중간 중간 친구나 부모님과의 대화를 곁들여서 읽는 재미를 더했습니다. 다만 이런 에피소드 들이 자칫 주제를 벗어나거나 글의 군더더기를 만들지는 않는지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 다 한동훈 학생은 아직 나이가 어린데도 글을 맷집 있게 끌고 나가는 힘이 있습니다 심사: 이위발, 채인숙, 사공경, 이영미

송지섭의 「파푸아」는 인도네시아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조차 발을 디디기 힘 든 낯선 머라우께에서 아버지와 함께 보낸 2주 간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이 2번의 경유를 거쳐 9시간이 넘는 밤 비행을 홀로 감행하면서 아버지가 계시는 땅으로 가는 글의 시작부터 감탄을 자아냅니다 시종일관 매력적인 파푸아의 대자연과 아버지와 함께 즐기는 낚시, 광활한 팜농장에서 느낀 특별한 감회를 서술하여, 마치 ‘아 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장면을 보는 듯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수작이었습니다. 독서를 통해 사유의 힘을 길러 나간다면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 다. 조규희와 신창민의 글은, 각각 한인어린이합창단 활동과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에 한 국인 기수로 활약한 경험을 통해 인도네시아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확인 하고, 각자가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연결하는 작은 다리 역할을 해 낸 이야기를 썼습니 다 두 이야기에서 모두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노력의 과정들이 생생하게 돋 보였고, 무엇보다 인도네시아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 이 기특하고 대견하였습니다. 그 외의 수상작들도 인도네시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경험하는 특별한 이야기들 과 10대들이 가지는 예민한 감성들이 다양한 주제들로 실려 있었습니다. 모두 순위를 정하기 힘들 만큼 탄탄한 작품들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이 문학을 통해 단단한 내면의 힘을 기르고 세상을 보는 깊고 넓은 시각을 가지게 되시길 바랍니다 <인도네시 아 이야기> 문학상이 그런 계기가 되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고 기쁨이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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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채인숙(시인)

초등부 심사평

인도네시아 재외학생들의 가슴에 꿈과 자연을 심은 제 2 회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문학상 한해가 이우는 길목에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지나온 날을 돌아봅니다. 신년에 어울리는 다짐을 새기며 시작했던 날은 어느덧 익숙해짐과 느긋함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나를 쉼 없이 주저앉혔던 사건에도 날은 쉼 없이 바뀌며 삶이 지속됩니다. 천체물리학자 나오즈 교수의 이론처럼 “우주 바위들이 지구와 흡수되는 과정에서 지구와 충돌하며 생긴 힘”으로 하루를 살게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글을 쓰는 일은 삶을 한층 의미 있게 만듭니다. 사유를 모으고 나누고 재배열해 앉히는 사람은 완성된 작품을 즐거이 감상할 자격이 있습니다.

올해 2회를 맞게 된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문학상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46편의 응모작 가운데 생활문이 줄고 동화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생활문 쓰기에 창의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를 앉혀 동화로 승화시킨 작품도 있습니다. 소재가 다양해지고 완성도가 높아졌습니다 ‘깨달음’과 ‘감동'’ , ‘이해’와 ‘치유’가 가미되었습니다. 아동문학의 보편적 울림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보입니다. 작품을 읽으며 공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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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기다림, 타이탄 아룸’을 보고 쓴 동화 「초파리 생존기」는 또박또박 손으로 쓴 원본과 어린 동생이 그린 삽화를 함께 보내왔습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쓴 글로 인기 있는 SF 장르까지 녹여낸 정성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수필 「맹그로브 숲의 정화 기능」은 맹그로브 숲의 대나무 다리를 걸으며 본 정취를 실감 나게 묘사했습니다. 화자가 그날 느낀 바람과 숲의 생생함이 글에서 전달된다. 심사: 이영미, 사공경, 조준규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EBS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큰 단일 꽃 라플레시아’와

무분별한 자연 개발로 파괴되는 맹그로브 숲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다음 번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오고 싶다는 마무리가 따뜻합니다. 동화 「자바 코뿔소를 구해 줄게」는 코뿔소 뿔을 불법 거래하는 사회적 이슈를 동화에 잘 버무렸습니다. 동화적인 요소를 잘 살려 마무리까지 깔끔합니다 비슷한 전개의 동화가 많아 아쉽지만, 소품을 인도네시아 상황에 맞게 잘 인용하는 영리함을 보였습니다. 접수된 작품 중 문장력이 가장 뛰어납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쓴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동시 「고양이」는 한국과 달리 낯선 사람을 보아도 도망가지 않는 골목의 고양이가 친구처럼 친근하게 생각되어 학교 가는 길마다 인사를 나누는 어린아이의 동심을 잘 살렸습니다.

동화 「별 모양의 열매」는 전생을 기억하는 열매를 원하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요정의 부탁으로 별 모양의 열매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인도네시아산 족제비’ 야루와 청설모 쿠쿠의 모험 이야기입니다. 동화적인 재미가 풍부하나, 마무리가 조금 아쉽습니다 올바른 문장부호 사용법을 익힌다면 좀 더 흡입력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 「가루다(Garuda)」에서 화자는 신을 태우고 다니던 인도네시아 전설 속 새 가루다가 현재는 인도네시아 항공사가 되어 사람들을 실어 나르며, 본인은 가족들의 행복을 지키는 ‘수호천사’라 자신 있게 말합니다. 올여름 거행한 ‘제91주기 소파 방정환 선생님 추모식’에 《한국아동인문학인협회》 회원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의 마음과 같다’는 ‘동심여선(童心如仙)’이 새겨진 소파 방정환 묘 앞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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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임업 및 산림경영 분야의 협력 증진에 앞장서는 《한-인니 산림협력센터》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낌없는 후원과 지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어린이들이 의미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모님들에게도 존경심을 표합니다 글: 이영미(아동문학가)
건 어른들의 몫임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문화를 통해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소통을 이끄는 《한인니문화연구원》과

심사위원 프로필

이위발 | 시인,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한국작가회의 대

구경북지회장

1959년 경북 영양 출생 고려대학교 인문정보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2001), 『바람이 머물지

않는 집』 (2016), 『지난밤 내가 읽은 문장은 사람이었다』 (2021)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 평전 『이육사』 출간

현재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지회장

채인숙 | 시인, 한인니문화수석연구원

<실천문학> 오장환신인문학상으로 등단 (2015)

KBS 서울 프라이즈 다큐멘터리 대상수상 (2012)

KBS 서울 프라이즈 다큐멘터리 우수상수상 (2011)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수석 편집위원 (2020, 순정아이북스)

현 한국디카시연구소 계간 <디카시> 해외기획위원

『라라 종그랑』 (한국-인도네시아 시인 공동시집) (2021, 역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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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경 | 시인, 한인니문화연구원 원장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1999년)

한국-인도네시아 문화예술활동가, 칼럼니스트, 바틱 연구가,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 사회과 교사 (1997~2010)

KBS서울프라이즈다큐멘터리 자카르타한국 K-TV방영(2015.11, 2016.1), <오랑 꼬레아, 참 소통의 길에 서다 ‘구루 사공의 길’> 출연

『자카르타 박물관 노트』(2005) 『서부자바의 오래된 정원』 (2009)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수석 집필위원) (2020, 순 정아이북스) 외 공저 10권, 『막스 하벨라르』, 『인도네

시아 위안부 이야기』, 『쁠라우 라뚜 해안의 고양이』, 『내가 품은 계절의 진언』,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Pemahaman Budaya Korea dan Indonesia』외 7권, 출판기념회 주최 협력, 출판권 약정 번역협력, 섭외 총괄

이영미 | 아동문학가, 한인니문화책임연구원

충북문화재단 창작지원금 (2022)

제43회 샘터동화상 수상 (2021)

제3회 제주기독신춘문예 당선(동화) (2021)

제4회 생태동화공모전 대상 수상 (2019)

서울시 아동인권동화 동상 수상 (2019)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 집필위원 (2020)

현 《한인뉴스》 편집위원, 재외동포재단 통신원, 부산영어방 송 BeFM 통신원,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 글쓰기 강사,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정회원 『맹꽁이의 집을 찾아주세요』(2020, 국립생태원),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공저 (2020, 순정아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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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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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일반부 대상 주인도네시아대한민국대사상
수필
로젠베르기황금귀신사슴벌레 Kumbang Rusa Hantu Emas, Allotopus rosenbergi 류은우 (PT. Yuanta Sekuritas Indonesia, 자카르타)

‘로젠베르기황금귀신사슴벌레’는 인도네시아 자바서부에만

서식하는 고유종이며 최대크기는 83mm 정도로 알려져 있다.

1800 년대 네덜란드 법학자이자 곤충학자였던 Snellen van Vollenhoven 에 의해 학계에 처음 알려졌고, 종명

'Rogenbergi'는 이 종을 최초로 채집한 독일인 로젠베르크(H.

Von Rosenberg)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나무위키]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관장님, 내년에 인도네시아 곤충캠프 오실 때, 아들과 함께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 ” 초등학생은 캠프에 받지 않는다고 거절하셨지만, 보호자로 함께 가겠다고 거듭 약속한 후에야 겨우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코로나로 입국이 금지되기 직전이었다. 관장님은 은퇴하시고 평생 수집해 온 곤충표본 수천 점을 가지고, 자택 근처에 ‘곤충박물관’을 열었고, 어린이들을 위한 ‘곤충체험관’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위탁 받아 운영하신다고 한다 한국에 겨울이 오면, 매년 인도네시아에 오신단다 일곱 번째라고 하셨다 아들은 유치원 때부터, 사슴벌레, 장수풍뎅이를 좋아했다. 주말에는 따만미니의 Dunia Serangga 에서 한 두 시간을 보내고, 곤충관 앞 기념품 가게에서 가끔 살아있는 나뭇잎벌레, 장수풍뎅이를 사와서 키웠다. 유튜브 ‘곤충 콘텐츠’를 열심히 보더니, 우리는 인도네시아에 있는데 왜 곤충을 채집하러 못 가냐며 졸랐다 유튜브에 나오는 커다란 곤충들은 대부분 인도네시아 고유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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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달을 기다렸다. 수카르노하타에서 만나 일곱 시간을 달려 구눙살락
도착했다. 오늘 밤 등화를 밝히면 ‘로젠베르기황금귀신사슴벌레’를 만날 수 있다. 곤충캠프 참가자는 관장님과 곤충을 사랑하는 형.제. 이렇게 세 명이었다. 관장님은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도매상을 통해 나비 및 곤충표본을 수입하신다고 한다 한국의 과학관 및 여러 체험관에 어린이를 위한 실습재료로 매년 몇 십만 본의 나비표본 등을 공급하신단다. 함께 있는 동안 브라질과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좋은 표본이 있으니 사가라는 메시지를 계속 받으신다.
-할리문에

할리문에도 표본을 거래하는 도매상이 있어 매년 오신다고 한다 함께 온 ‘형제는’ 곤충 마니아들이다 형은 다음달에 대학생이 되고, 동생은 곤충을 너무 좋아해서 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한다고 한다. 입학 선물로 곤충 캠프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홉 살 아들과 나, 이렇게 다섯 명이 할리문에 오른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은 캠브리지에서도 신학공부보다는 딱정벌레 표본 수집에 더 열심이었다고 한다 딱정벌레에서 출발한 그의 관심은 신학보다는 생물학으로 지리학으로, 마침내는 진화론으로 발전하여, 수 천년 인류가 믿었던 천지창조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종의 기원이 교회의 방해 없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1 장 제목이, ‘사육과 재배 하에서 발생하는 변이’인데, 훌륭한 품종의 과일을 먹게 된 과정, 개, 말, 고양이, 딸기 등이 좋은 품종으로 우연히 선택되고 개량된 과정이 설명되어 있어서, 당시 상류층 귀족과 성직자들은 그들이 몰두하던 취미인 애완견 교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우량견-종’의 기원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열광했다고 한다 ‘종의 기원’, 아직 안 읽어봤다

새벽에 숙소에 도착한 탓에, 오후가 되어 할리문에 오른다. 동행하는 동네 청년들을 ‘헌터’라고 부른다 헌터들이 오토바이 뒤에 한 명씩, 농로가 난 산중턱까지 태워다 준다. 가이드를 따라 산골에 있는 어느 집에 방문하니, 마당에서는 나뭇잎벌레들을 키우고, 수천 마리의 사슴벌레, 풍뎅이, 딱정벌레들이 표본으로 포장되고 있었다. 일본, 중국사람들도 채집 여행을 오는데, 일본사람은 사슴벌레, 중국 사람은 나비만 채집한다고 한다. 중국인에게 나비는 부귀와 행운의 상징이란다. 산에 오르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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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벌레, 대벌레, 난초사마귀를 헌터들이 잡아온다 이름처럼, 나뭇잎, 대나무, 난초를 닮아 내 눈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죽은 나무 등걸을 들추더니 메가볼(공벌레들)을 채집한다. 고추밭 토담에 난 구멍을 파고 들어가니 갓 태어난 새끼 전갈 수십 마리와 큰 집게와 독 꼬리를 가진 어미 스콜피온이 나온다. 개천을 따라 하얀 거미줄이 쳐진 구멍을 파니 까만 털이 덥수룩한 타란툴라 거미가 나오는데, 이번에 고등학생이 되는 친구는 그걸 손 위에서 강아지 쓰다듬듯 한다. 예쁜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없단다 벼멸구, 메뚜기 등 농업생산성 향상을 위한 해충 연구, 또는 꿀벌, 양잠 등 산업에 관련된 연구만 진행이 된단다. 곤충은 농업생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박멸대상일 뿐이다. 곤충과 인류의 공생을 위한 연구를 지원하는 곳은 없다고 한다. 풍뎅이 같은 딱정벌레를 바하사로 Kumbang 이라고 한다. 한국 인터넷쇼핑에서는 장수풍뎅이 사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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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서
토코페디아로 검색을 해 보았다 살충제들만 검색 된다 팜 나무를 키우시는 분들에게 장수풍뎅이는 나무를 갉아먹는 해충일 뿐이겠지. 한국의 곤충산업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애기뿔소똥구리에서 코프리신 이라는 물질을 분리해 피부친화성 화장품이 개발됐다고 한다. 꽃뱅이나 고소애라는 곤충의 애벌레는 고단백식품이자 동의보감에 약재로도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학교 앞에서 쪼그려 앉아 먹던, 소라와 번데기가 생각났다.
세트를 쉽게 주문할 수
,

어둑해지기 전에, 영화 스크린 같은 하얀 천을 나무기둥에 묶어 세우고, 날벌레들을 유혹하는 환한 전등을 설치했다 동네 청년들은 발전기에 기름을 채우고, 정글칼로 나무줄기들을 베고 엮어 벤치와 서까래를 만들더니 비닐을 씌운 오두막을 만들어 준다 멀리 건너편 산등성이가 보이는 곳이다. 골짜기로 스스륵 안개가 차오른다. 모닥불을 피우더니 깡통에 믹스커피도 데워준다. 관장님이 능숙하게 청년들에게 5 만 루피아씩을 쥐어 주신다. 산에 오르다 보니, 계단식 논도 있고, 고추밭도 있도, 토마토도 키운다. 인도네시아인데 마을에 개가 많았다. 오두막 아래 앉아있으니, 사냥개를 앞세우고, 공기총을 맨 사냥꾼들이 내려온다 큰 다람쥐와 산비둘기를 잡았나 보다 동네청년들이 산비둘기를 사서 모닥불에 구워준다 아들은 꼬치에 구운 비둘기고기를 맛 보더니, 맛있게 탄 치킨 맛이란다. 어두워 지면서 작은 나방들이 날라와 스크린에 앉는다. 관장님은 매크로렌즈 카메라로 손톱만한 나방들을 연신 촬영하신다. 젊었을 땐 멋진 뿔을 가진 장수풍뎅이가 좋았는데, 나이 들면서는 아주 작은 나방들 날개를 감상하는 것이 더 좋아졌다고 하신다 꽃무지 등껍질 무늬가 서로 같은 것이 없고, 하나 하나가 다 보석같이 아름답다고 하신다 독일에서는 관상용으로 바퀴벌레를 분양한단다 할리문산 고목에 사는 바퀴벌레들도 등껍마다 아라베스크가 새겨있다. 날개 달린 개미들이 전등 주변에 몰려든다. 이런 게 결혼비행이라는 건가? 해질녘부터 두어 시간 온통 개미들만 어지러이 날아 다니더니, 뚝 사라지고, 등화 아래 하얀 날개들만 국화 꽃잎처럼 쌓였다 툭,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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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리코사’, ‘부케티’, ‘헥사페리’, 곤충매니아들은 그들만의 잔뜩 흥분된 언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내 눈엔 벌레들인데, 이렇게 다양한 이름들이 있다
, 투두둑 덩치 큰 딱정벌레들이 날아와 스크린에 부딪히는 소리다. ‘부케팔루스’다! ‘기라파’네! ‘코카서스’까지

헤라클레스, 타이탄이라는 이름의 장수풍뎅이도 있다는데, 그건 아메리카 대륙에 있단다. 왜 전부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이름들인지. 등화를 켜고 두어 시간이 지나자, 그 무겁고 딱딱해 보이는 날개를 가진 것들이 하얀 천 위로 날라와 부딪힌다 건너 편 산속에서부터 불빛을 보고, 몇 시간, 수 킬로미터를 날아오는 수고로운 것들 이란다 여전히 서부자바 할리문에만 산다는 로젠베르기.황금.귀신.사슴벌레를 기다렸다. 형제는 살아 움직이는 로젠베르기를 보려고, 한국에서 날아와 여기 할리문산에서 밤을 세우는 것이다. 내 아들도 그랬다. 오래 기다렸다. 세 번째 코카서스 장수풍뎅이부터는, ‘와 많네’ 하더니 연이어 날아오는 헥사페리 사슴벌레도 세 마리째부터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산에 오른 지 대여섯 시간 됐을까, 드디어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로젠베르기 암컷 한 마리 날아왔을 때, 모두 감격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75mm 정도되는 동종 빅사이즈의 수컷도 날아왔다. 4 박 5 일 동안 모두 6 마리의 로젠베르기를 채집할 수 있었다 고추잠자리(Crocothemis Servilia)는 한국 토종인데 반해, 꼬리가 노란 된장잠자리(Pantala Flavescens)는 필리핀에서 날아 온단다. 열대에 사는 잠자리라 한국에서는 겨울을 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릴 때, 여름만 되면 된장잠자리를 뒷산에서 잠자리채로 많이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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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짝짓기는 해도, 애벌레로 겨울을 나지 못하기 때문에 된장잠자리는 토종이 아니란다 그 많았던 노랑꼬리 잠자리는 오즈의 마법사처럼, 매년 태풍을 타고 한반도에 오는 거란다. 현존하는 나방 중에서 가장 큰 아틀라스나방이 있는데, 새벽 2 시나 되야 온다면서 하산을 늦췄다. 포식자인 새들에게 안 먹히려고, 뱀머리를 날개에 새겼단다.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진짜로 새벽 2 시에 날아왔다 날개 끝이 입맛을 다시고 있는 뱀머리 모양이다 ‘자연선택’,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기형아일 뿐이다 그런데 수억 분의 일의 확률로 환경이 변화했을 때, 우연히 어떤 변이가 살아남아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는 것일 수도 있단다. 이 뱀머리가 수억 번의 우연과 우연의 결과란다. 아이들 머리보다 큰 사이즈에도 놀랐지만, 관장님 예언대로 딱 두 시에 나타난 것이 더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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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을 해충으로부터 보호하고 생태계의 교란을 막기 위해 살아있는 곤충의 한국 반입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일본은 애완용곤충의 수입이 허가되어 있다고 한다. 관장님 일행은 아주 크거나, 특이하거나, 나는 이름도 모르는 괴상한 곤충들을, 그리고 로젠베르기황금귀신사슴벌레만 표본을 만들어 떠났다. 밀폐된 통에 가스를 넣어 질식시키고는, 수술하는 의사처럼 비장하게 채집통에 넣는다. 딱정벌레들은 부화해서 애벌레로 1 령, 2 령, 3 령, 탈피를 하고,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될 때까지 수년 동안을 죽은 나무 속을 파먹으면서 산다고 한다 짧은 몇 달의 성충기간 동안 짝짓기를 마치면, 그의 역할을 다 하는 거라면서 너무 죄책감은 가지지 말란다.

그때는 60 만이었는데, 글을 쓰는 지금 보니 구독자가

만명이다. 한국 어린이의 절반은 구독하나 보다. ‘생물인 정브르’, 싸인을 그렇게 한다. 정브르 실물을 접한 아이들은 감격해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BTS 가 온 줄 알았다. 분당에서 ‘곤충하모니’라는 희귀 반려동물샵을 운영한단다 한국에 가면 들리겠다고 했더니, 정색을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살아 숨쉬는 곤충들과 함께 사시는 분이 왜 상자에 갇힌 곤충을 보러 오시냐고. 자기는 인도네시아에 사는 우리가 부럽단다. 멋지고 다양한, 그리고 살아있는 것들이 자연에서 움직이는 곳에 계시니 얼마나 좋겠냐고 한다. 연로하신 관장님은 구독자 1,000 명이 목표라고 하셨다. 그러면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방송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보니 2,650 명이다

10 년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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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 관장님은
1 박 2 일을 함께 했다
또 턱이 멋진 사슴벌레나, 뿔이 웅장한 장수풍뎅이는 모두 수컷이란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풍뎅이는 죽어서 표본을 남긴다는 말로 황금빛 로젠베르기의 죽음을 본 어린아이를 달랬다 살아남은 곤충들은 모두 자카르타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살아서는 한국에 갈 수 없었다.
어느 유튜버와 함께 곤충 콘텐츠 촬영을 위해 다시 오셨고, 주말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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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는 못하지만, 존재하는 것들을 잘 조합해서, 새로워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 경험의 재료가 다양할수록 더 창조적이 될 수 있다. 자연보호보다는 ‘생물 다양성 보전’이라는 말에 더 공감한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Bhinneka
Tunggal Ika (Unity in Diversity)
인도네시아에 온 지
. ‘다양성을 인정해야 함께 살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창조’는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 ‘창조적’이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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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부 최우수상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상 라스미
Rasmi 황영은 (주부, 자카르타) 소설

검붉은 피가 허벅지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사막을 가르는 빗줄기처럼

정강이를 경유해 복숭아뼈를 지나 슬리퍼의 낮은 턱을 돌파하는 중이었다.

선혈은 끓임 없이 주룩주룩 다리를 타고 내려와 슬리퍼 밑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검붉은 피의 선명함에 놀라 슬리퍼로 작은 피웅덩이를 다급하게 주변으로 흩었다. 그 선명함을 조금이라도 흐릿하게 만들 요량이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데 안도하는 것도 잠시 또다시 핏줄기들이 속옷의 경계를 뚫고 비집고 나오려는 참이었다. 할 수 없이 선별한 잘 익은 때깔 좋은 과일들을 카트 안에 그대로 둔 채 도망치듯 출입구로 향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생리혈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일주일 동안 렌트해 놓은 블루버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차가 울퉁불퉁한 지면 위에서 덜컹일 때마다 아랫도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어느새 검붉은 피는 갈색 원피스의 엉덩이를 벌겋게 물들이고 섬유의 흡수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뒷자리 연회색 시트를 잠식하는 중이었다 인조가죽시트는 걸쭉한 혈액을 흡수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묵직하게 지탱하고 있을 뿐이었다 피들은 커다란 단추를 꿰어 맵시 있게 굴곡이 형성된 쪽으로 흘러들어 착실하게 고였다 숙소에 당도했을 즈음, 뒷자리는 말 그대로 선혈이 낭자했다 피는 오목한 단추우물을 범람한 지 오래였다 지갑에서 5만 루피아 짜리 지폐를 꺼내 기사에게 내밀었다 뒷자리를 혼자 수습해야하는 미안함의 표시였다 영문을 모른 채 지폐를 받아든 기사는 피로 물든 뒷자리를 보고는 사색이 되었다 그의 표정을 읽을 여유를 잃은 채 다급히 숙소 입구를 향해 뛰었다. 수영장을 가운데 두고 숙소들이 장방형으로 둘러싼 구조인 민박집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수영장 타일을 따라 걸을 때마다 신발 속에 묵직하게 고인 피들이 쩍쩍 소리를 냈다 신발 속에서 범람한 피들이 선명한 발자국을 남겼다. 방문을 여는 그 잠깐 사이에도 발 밑에 피웅덩이가 고였다. 패드를 손에 쥐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마치 배설하듯이 피가 콸콸 쏟아졌다. 물과 섞여 묽어진 피들이 지렁이 같은 무늬를 만들며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피를 토해내는 미지의 생물체처럼. 잠시 후 대미를 장식하듯 태반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핏덩어리가 선홍빛 물결 한복판에 툭 하고 떨어졌다. 하나의 생명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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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덩어리가 수챗구멍으로 스멀스멀 앞다투어 빠져나가는 형상이 징그러웠다. 어마어마한 양의 피를 토해낸 나의 정신은 혼미했다. 거대한 양의 피가 미련 없이 빠져나간 것이 온몸으로 낱낱이 느껴질 정도였다. 혼미한 정신으로 하얀 시트를 빨갛게 물들이며 침대에 힘없이 쓰러진 것과 라스미를 떠올린 건 거의 동시였다.

눈을 뜨자 아마도 알코올과 소독약일 듯한 긴급하고 신속한 치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거치대에 투명한 약과 혈액을 담은 지퍼백이 나란히 걸려있고 얇은 호스를 따라 피와 약이 동시에 공급되는 중이었다. 보호자용 의자에는 누군가의 희미한 윤곽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희미한 윤곽이 점점 선명해졌다. 너무 작아서 표정을 읽기 어려운 단춧구멍만한 눈, 뭉툭한 코, 야무진 입술,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짧은 단말발머리를 고수한 하숙집 사장님이었다.

“아이고, 죽다 살아났어 이렇게 피가 나올 때까지 병원 안가고 뭐 했대?” 대답을 바라는 말이 아닌 듯하여 잠자코 있자 책망하는 듯한 푸념이 이어졌다 “아니… 수영장과 객실, 침대시트 다 피바다야. 피바다. 난 누가 죽은 줄 알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니까 바깥양반이 다 치운다고 했는데 잘 하려나 모르겠네 가뜩이나 허리도 안 좋은데 ”

“죄송해요 입원비는 ”

“내일 수술인가 시술인가 한다니까 다 끝나고 퇴원할 때 결제하면 된대 여행자 보험 뭐, 이런 거 들어뒀지?” “네 근데, 무슨 병이래요?”

“참나, 병은 무슨 병이라고 할 것도 없더만 질 입구에 커다란 낭종이 있다는데 제거하기만 하면 된대 아니, 산부인과 이런데 안 가 봤어? 무슨 조짐이 있었을 거 아냐?” “몇 달 전부터 생리 양이 많아지긴 했어요. 그런데 혹 같은 게 있을 줄은...... ” “혹 하나가 성이 났는지 어떻게 그런 많은 피를 만들어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일단 쉬어. 난 가 볼게. 할 일이 산더미야. ” 사장님은 경황이 없어 신발을

다른 몸을 이탈한 피와 섞이고 있다. 누구의 어떤 피일까.. 생계를 위한 방편으로서 자원한 어느 실직한 가장의 피일까. 종교적 신념으로 한껏 고양된 열혈 이슬람교도의 허락된 피일까. 아니면 순결하고 순수한 선의에 의해 기꺼이 자원한 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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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신고 오지 못했는지 슬리퍼를 찍찍 끌며 병실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나갔다. 알 수 없는 투명한 약과 혈액을 보니 다 공급되려면 아직 한참 남은 듯 했다. 천천히 천장을 응시했다. 알 수 없는 사람의 차가운 피가 내 몸속에서 온기를 찾고 내 피와 하나가 되고 있다. 누군가의 피가 내 심장을 뛰게 하고 온몸의 세포를 깨우고 있다. 근 30 년 동안 내 몸에 온전히 속해온 붉은 피가 기꺼이

농도가 짙어지자 검은 빛을 띤 혈액이 일정한 속도로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혈액은 몸속에 투여되는 속도에 맞추어 점적통을 경유해 연결관으로 흡수되는 듯 했다. 마치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실전에 투입되기 전 대기실에 집결한 전사들 같았다. 점적통에 고여 있는 혈액과 연결관을 붉게 물들인 혈류를 가만히 응시했다. 붉다. 검붉다. 라스미....... 그녀의 피도 그랬다. 처음엔 그저 붉은 줄 알았는데 피가 웅덩이를 이루며 촘촘해지자 짙은 농도를 띠며 검붉은 빛을 띠었다.

3년 전 겨울, 센터에서 새로운 결혼이민자를 연결해줬다 지난달 태국인 풍이가 아이들 양육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한국어 수업 중단을 선언한 터였다 센터에서 그려준 약도를 따라 신촌의 번화가 일대를 서성였다. 지하철 입구에 도달하기 전 왼쪽으로 미로처럼 얽히고 얽힌 후미진 골목길의 초입이 나타났다. 4차선 대로에 인접한 완만한 경사로를 오르자 정면에 비교적 깔끔한 원룸텔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에 지어진 듯한 원룸텔은 세월의 흔적이 완연히 느껴지는 주변의 허름한 다세대주택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라스미의 집은 원룸텔 1층이었다 원룸 치고는 이례적으로 넓은 통창과 발코니까지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조금은 설레는 기분으로 벨을 누르자 라스미가 호기심과 두려움을 품은 몸짓으로 살며시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예요 우리 어제 만났죠?”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라스미가 알아듣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하면 좀 더 노련하고 능숙해 보일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의례적인 인사였다. 전날 늦은 오후 라스미의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내의 공부를 위해 부탁할 일도 있고 식사대접을 꼭 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며 신촌의 한 일식집 에서의 만남을 요청했다. 경박스럽고 들뜬 목소리에서 예상치 못한 무게감과 권위가 느껴져서 였을까.. 실낱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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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셔츠와
해왔다. 그 중 한명은 구십도 각도로
?” 하며
신뢰감을 느낀 나는 흔쾌히 약속장소로 나갔다. 빳빳하게
잡힌
허리선이 맵시 있게 들어간 양복을 차려입은 남성 두 명이 인사를
허리를 숙인 채였다. 남편인 듯한 남성이 “뭐야, 젊은 분이네
품평하듯이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말없이 자신의 곁에 서있는 여성을 소개했다. “ 이름은 라스미고요. 인도네시아 사람입니다. ” 그리고는 약속 장소로 안내했다. 그는 앉자마자 자신이 클럽 하나를 맡아서 운영하게 된 경위와 화려한 이력들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내 옆에 존재감 없이 앉아있는 라스미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일식집의 다소 밝은 조명은 자연스러운 다갈색

머리의 웨이브를 더 극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이게 했다. 커다랗고 깊은 눈은 겁을 먹은 듯 했지만 젊은 사람 특유의 호기심과 기대감 같은 것이 오묘하게 스며있었다. 아마도 안락한 삶과 여유로운 일상을 꿈에 그리며 이 곳에 발을 들인 것이겠지. 실망감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기묘한 표정은 이 곳에서 어느 정도의 환멸을 느꼈을 거라는 짐작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괜찮아질 거라는 마지막 기대감이 이곳에서의 삶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이리라. 상념에 젖어있는 동안 그의 말들은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던 그의 말들이 귀를 자극한 건 돈과 관련된 대목이었다 “내가 얘를 천만원 천만원에 데려왔어요 내가 저거 데려오느라고 비행기 값에 호텔비에...... 아휴...... 암튼 그러니까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 주십사 이렇게 만나 뵙자고 한 겁니다 ” 너무 당황스러워서였을까 단어를 고를 새도 없이 거의 반사적으로 직업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네네, 적응 잘 해야죠 걱정 마세요 ” 용건이 끝나자 그는 벌떡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허둥지둥 따라 나간 나를 향해 그의 부하인지 직원이 꾸벅 인사를 했다

“임마, 똑바로 안해?” 그가 권위적인 말투로 쏘아붙이자 부하는 구십도 각도로 재차 인사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잘 부탁 드립니다” 그들을 뒤로 하고 마침 신호가 바뀐 건널목을 총총 빠른 걸음으로 횡단하는데 발자국 하나하나에 어색함이 묻어났다 내가 뭔가 중요한 존재가 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뒷모습이 좀 더 야무지고 특별해 보이길 바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짓으로 꾸미고 연출하고 있는 나의 존재가 분명히 의식되자 기대감은 곧 수치심과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남자는 여자를 돈으로 환산하며 실익을 따지고 있는데 나는 저들이 시선을 둘 뒷모습만 의식하고 있었다.. 한국어교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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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한 것도 최대한 손실을 막기 위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일 터였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나는 그 모든 것을 떨쳐내려는 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것이 수치심을 숨기기 위해서인지 진짜 추위 때문인지 모른 채로.. 라스미는 내가 들어가기 좋게 한쪽으로 비켜서며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빌트인 냉장고와 세탁기를 제외하면 딱히 세간 살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커다란 금속 옷걸이와 오로지 기능적인 면만을 고려해 설계한 듯한 투박한 PVC 앉은뱅이 책상이 전부였다. 라스미는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더니 오이 하나를 동그랗게 썰어 일정한 간격으로 세팅한 커다란 접시를 책상에 위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흔히 접대용으로 내놓지 않는 오이를 내온 것이나 어쩐지 영유아들의 소꿉장난이 연상될 정도로 미숙하고 서툰 모양새가 식욕을 떨어뜨렸다. 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으나 호의를 무시할 수는 없어 포크를 계속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호기롭고 결연한 목소리로 “해봅시다.”라며 수업의 시작을 알렸다. 먹으려는 의지는 있으나 본업에 충실하느라 먹을 새가 없다는 듯이 일단 워밍업으로 인도네시아의 날씨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라스미를 위해 간단한 단어로 물었다.

“한국, 더워요, 인도네시아?”

나는 손부채로 땀을 식히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녀는 처음엔 알아듣지 못한 듯 뭔가를 묻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빛이 맑아지며 또랑또랑하게 대답했다

“인도네시아, 빠나스(panas), 후잔(hujan).”

그녀는 손부채를 부치며 숨 넘어갈 듯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아~~더워요 후잔은 뭐예요?”

라스미는 쉬쉬 후후 하며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허공을 세로로 죽죽 그었다 ‘비’를 뜻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한국, 김치 비빔밥,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소또 아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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듯 과장되게 손뼉을 쳤다. 45분의 수업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다음시간에 배울 내용을 언급하고 저린
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라스미는 다급하고 절박한 눈으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휴대폰을 꺼내
라스미는 양팔을 날개처럼 푸드득거리며 뭔가를 후루룩 마시는 시늉을 했다. “아, 닭고기 스프?” 나는 재미있다는
다리를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두려움과 안도가 교차하는 눈빛을 유지한 채 나에게 휴대폰을 쥐여 줬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남편 나빠요. 집이 크다고 했지만 작아요. 잘 살게 해준다고 했지만 믿을 수 없어요. 밤마다 나를 힘들게 하고 친구들 앞에서 나를 희롱해요. 밖에 못나가게 해요. 답답해요. ’

아마도 화려한 삶을 꿈꾸며 지금의 남편을 따라왔을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상은 미끼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겠지. 남편은 조폭 나부랭이였고 집에서든 밖에서든 건달에 난봉꾼처럼 굴었겠지. 아마도 자신이 운영하는 룸살롱에서 그의 조무래기들 앞에 그녀를 앉혀놓고 몸을 만지거나 음담패설을 남발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녀를 둘러싼 암울한 상황, 치욕과 모욕이 안쓰러운 동시에 오로지 화려한 생활을 꿈꾸느라 앞뒤 가리지 않고 한국행을 감행한 것이 너무 경솔하게 느껴져서, 피해자 같은 모습 이면에 감춰진 허영과 풍요를 향한 세속적인 갈망이 감지돼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벌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부드럽지만 그녀를 탓하는 듯한 엄한 표정을 유지한 채 사무적으로 말했다. “전담 부서에 보고 할게요 ” 그녀가 못 알아들을 걸 알면서도 부러 어떠한 배려도 고려하지 않은 채 내뱉듯 말했다 나는 그저 차가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결정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풍요에 대한 조급함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자각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온도가 차가워야 한다고 이튿날 나는 전담 부서에 라스미의 전반적인 상황을 상세히 보고했다 반드시 조직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례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제 그렇게 라스미를 비난했으면서 맡은 바를 수행했다는 이유로 직업적 만족감이 차오르는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날은 원룸텔 현관문 틈새로 은은한 닭고기 냄새가 비어져 나와 복도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있었다. 문을 열며 엷은 미소를 띠는 라스미의 얼굴에 피곤과

얼굴로 뜬금없이 “소또 아얌, 소또 아얌” 하면서 부엌을 가리켰다. 가냘픈 몸으로 분주히 움직이더니 손수 만든 소또 아얌을 앉은뱅이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러더니 창백한 얼굴로 변명하듯이 말했다. “없어. 샬롯, 터메릭, 코리엔더 없어” 아마도 소또 아얌에 감초처럼 들어가는 향신료 같은 것들을 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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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얼굴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그녀는 지친기색이 완연한

그렇게 예상치도 못하게 소또 아얌이라 칭하기에 무리가 있는 그냥 닭고기 국물을 시식하게 됐다. 넣을 재료가 없어 소금을 잔뜩 쳤는지 입 안에 짠 맛이 오래도록 감돌았다.

“미안해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맛있어요. 고마워요. ”

다 먹은 그릇을 치우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라스미가 지나는 자리에 좁쌀 만한 빨갛고 걸쭉한 액체가 동그란 점을 만들며 일정한 간격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동화에서 헨젤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떨어뜨린 검은 콩알처럼 어떠한 목적도 없이 그저 비극을 외치고 있는 자취들 물방울 만한 빨간 점들은 라스미가 서있는 곳 아래로 눅진한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이 피라는 것을 의식하자 숨이 멎는 듯한 타격감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라스미, 거기 밑에 뭐예요? 그거 피죠? 피예요, 피!” 라스미는 자신의 발을 고요하게 감싸고 있는 검붉은 피를 바라보다 다급하게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수습이 끝난 뒤 나는 라스미를 앉혀놓고 찬찬히 물어보기로 했다 이전보다 후회와 두려움이 더 깊어진 눈, 창백한 피부 라스미의 눈동자는 오묘한 각도로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노 베이비, 베이비 노!” 라스미는 손을 칼날처럼 세운 뒤 배에다 대고 뭔가를 긋는 시늉을 했다. 앙상한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손짓 하나로 모든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중절수술을 받은 것이리라. 남편의 강요가 개입됐으리라. 나는 근처 마트에서 3분 미역국을 여러 개 사서 찬장에 비치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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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라스미는
“라스미
갈 거예요. 갈 수 있어요. 내가 말했어요. 조금만 참아요. 당신 남편 좋지 않은 사람이에요. 다음부턴 이런 남자 따라오지 마세요. “ 다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감정이 드러난 나의 표정으로 뉘앙스는 어느 정도
되었으리라 믿고 라스미와 헤어졌다.
.
물, 빠나스 물. 오케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인도네시아
전달

후로 라스미를 만날 수 없었다. 센터로부터 라스미가 쉼터에서 보호받다가 본국으로 송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안도했고 그게 다였다. 라스미의 일은 한때 나의 일상 구석구석을 파고들었으나 고단한 하루하루를 안전하고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었기에 그때의 일은 금방 아득한 것이 되고 말았다. 문득 내가 안전한 하루를 영위하는 것에 안도하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자각될 때면 헛헛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지만 라스미의 일이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라스미의 일은 일상의 아주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았다고 희미하게 느낄 뿐이었다

이듬해, 결혼이민자를 위한 한국어교육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 한 NGO단체의 한국어교사 파견 프로그램에 자원했다 주로 개발도상국들에 편중된 파견 국가들 중 희망근무지로서 다름 아닌 인도네시아를 선택한 건 기피하는 나라에서의 경험이 경력에 유리하게 작용할 지도 모른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러한 세속적인 욕구는 내 딴에는 강력한 것이어서 그곳이 라스미의 나라라는 희미한 자각은 의식의 표면에 떠오를 새도 없이 소멸되는 듯 했다 그러나 고단한 일상에서 잠시라도 탈피하고자 일을 잠시 쉬는 중이어서 그랬을까? 모처럼 마음속에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를 받아들일 공간과 여유가 생겼고 잊고있었던 일의 세부들이 느슨해진 마음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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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미에 대해 잠시나마 품었던 험한 마음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소또 아얌을 끓여주던 넉넉한 마음에 대한 고마움 발 밑에 고여있는 피를
서리던 그 절망과 회한...... 나의 바람은
.
보며 잠시 눈동자에
‘열망’으로, 그녀의 것은 ‘욕망’으로 구별 짓던 나의 마음까지도

자신의 자취를 남기듯 먼 타국에서 피를 흘린 라스미와 나를 떠올리자 마치 그녀와 내가 하나로 이어져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손짓 발짓으로 이국의 언어를 입에 담으며 느끼는 그 낭패감은 한때 그녀의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바닥에 흘린 부스러기들을 그러 모으듯 그녀의 것이었던 것들을 내 것으로 차례로 받아들였다. 병원비를 정산하고 정문을 나서자 대기에 퍼진 열기가 온몸의 벌어진 틈새로 스멀스멀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뜨겁게 달궈진 공기가 온몸을 감싸는 것이 낱낱이 느껴질 정도의 대단한 열기였다. 어떤 물리적 형태를 띠고 있어서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뜨거운 입자들에 무방비로 노출된 살갗은 불에 달궈진 육질처럼 벌겋게 익어가고 있었다

병원 맞은편에 솝 분뚯(sop buntut)이라는 팻말이 시야에 들어왔다. 장염과 식중독에 유의하라는 지인의 말이 문득 상기될 정도로 낡고 허름한 가게였다 이 열기를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에어컨 같은 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은 열악한 곳이라 바깥과 온도차가 확연히 나진 않았지만 세라믹 타일로 마감한 바닥이 지면으로부터의 열기를 어느 정도 차단해주는 듯 했다 시커먼 먼지가 두텁게 가라앉은 선풍기 날개가 무겁게 내려앉은 의무감을 어깨에 짊어진 궁핍한 노동자처럼 마지못한 움직임으로 힘겹게 돌아가고 있었다 열 평 남짓한 가게는 크고 작은 균열들이 만들어낸 불규칙한 패턴들이 초현실적이고 기하학적인 문양을 빚어내고 있는 회백색 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세월의 흔적들이 얼룩처럼 새겨져 있는 한쪽 벽에는 낙서하듯이 조악하게 휘갈겨 쓴 메뉴들이 붙어있었다. 그 중 하나의 메뉴에 시선이 머물렀다 소또 아얌 허름한 가게와 함께 나이를 먹은 듯 깊게 패인 주름마다 땀이 맺힌 백발 노인이 투박한 그릇에 담긴 소또 아얌을 내왔다. 노인이 작은 접시에 라임 두 개를 내오며 손으로 짜는 시늉을 했다. 나는 이해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라임 하나를 국물에 짜 넣었다. 잠시 라스미가 만들어줬던 밋밋한 맛의 닭고기 국물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면을 후루룩 먹은 뒤 마치 의식을 치르듯 조심스럽게 국물을 떠 넣었다. 그날 라스미가 완성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던 맛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는 묘한 흥분이 온몸을 감쌌다. 여러 향신료가 조합되었지만 그렇다고 서로 지나치게 의존하지는 않는 주체적인 맛과 라임의 새콤한 맛이 입안을 알싸하게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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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면의 감촉과 숙주의 아삭함, 명료한 맛들의 오묘한 결합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고요한 식당을 가득 메우고 있던 정적은 한 이방인이 면과 국물을 먹는 소리와 그에서 비롯된 기묘한 활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식당을 나왔을 때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비밀스런 기대를 품은 습기가 대기를 가득 채운 열기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촘촘히 구획된 공간을 공유해야하는 열기의 버거움이 느껴졌다. 대로변에 외로이 우뚝 서있는 야자나무 꼭대기에는 어둠이 내려앉는 중이었다 길가를 오가던 사람들은 노련함이 깃든 몸짓으로 각자의 피난처를 찾아 구석구석 숨어들었다 머나먼 상공, 무수한 물방울들의 집결...... 거대한 천둥소리가 지체 없이 낙하의 시작을 알렸다 곧이어 굵은 물방울들이 지면을 강타하는 소리가 대기를 가득 메웠다 어떠한 여유와 지연도 용납하지 않는, 한번에 억수로 쏟아지는 매서운 비였다 “후잔 ” 나는 라스미가 가르쳐준 ‘비’라는 뜻을 품고 있는 그 말을 비가 점령한 대기 속으로 내뱉었다 분명한 발화로 그 거대함을 담기에는 한없이 작아 보이는 왜소한 단어는 낯선 공기 속에서 갈 길을 잃고 맹렬하게 쏟아지는 비 속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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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mpi Bali 김현경 (화가, 발리) 100 호 창살 화판에 화선지를 곱게 배접하고 색색의 분채를 손가락으로 꼼꼼히 녹인다. 새벽 5 시면 눈이 떠지는 나는 그림 앞으로 가서 붓을 드는 이 순간이 참 좋다.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에는 발리에서 한국으로 떠나는 마지막 날의 내 모습이 담겨있다. 2012 년 4 월 나는 두 아들을 데리고 남편이 일하고 있는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그동안 7 번의 이사 끝에 지금은 발리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이 자카르타 이주를 결심하기 전 한국에서 내가 운영하던 미술 학원은 나름 성공적으로 성장해 가고 있던 터라 나는 남편의 일방적인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남편과 떨어져 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바로 미술 학원을 친구에게 인계한 후 자카르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카르타의 처음을 되돌아보면 고층 아파트에서 멍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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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부 최우수상 한인니문화연구원장상 발리의
. 가슴이 답답하고 힘든 기억이다
언어와
외로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난 거짓말처럼 인도네시아와 깊은 사랑에 빠져버렸다 반전이었다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귀여운 바짜이, 대롱대롱 매달아놓고 파는 바나나와 새빨간 람부딴, 싱싱한 열대과일들, 박소와 부부르 아얌을 파는 까끼리마를 보면서 인도네시아가 내 모국인가 싶을 정도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이 빠져들었다. 수필
밖을 내려다보던 내가 떠오른다
. 낯선
환경이 너무 막막하고

언어와 바틱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한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마음을 새로운 그림으로 그려나갔다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는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이 엄청난 축복이었음을 이제서야 새삼 깨닫는다. 그동안 반둥, 족자카르타, 마나도, 깔리만딴, 코모도 섬 등을 여행했고 인도네시아는 가는 곳마다 나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었다

3 년의 자카르타 생활 후 남편 회사의 이동으로 발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카르타 생활에 만족해하고 있던 나는 발리로의 이사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여행을 목적으로 발리를 방문했을 때는 정말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집을 구하러 다니며 현실을 마주친 순간, 또 다른 시작에 대한 압박이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얼마 못 가 발리에서의 생활은 바로 적응되었다 자카르타의 고층 아파트와는 정반대인 발리 스타일의 단층 주택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침에 남편은 항상 출근 전 집 앞 단골 카페에 들렸고 나도 아이들을 등교 시킨 후 가까운 곳에 위치한 브라와 비치에 커피 한 잔을 들고 달려가곤 했다. 자유로운 모습의 관광객들과 전통 복장의 발리 사람들, 시원한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간질간질한 미소가 절로 피어 오르곤 했다 이런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나는 다시 붓을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내 주변에는 그림 관계자들이 많다. 어느 날부터 한 사람씩 내 그림의 변화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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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스타일이 확 변했다’. ‘이야기거리가 풍성해졌다', ‘그림이 시적이고 사람을 동화시킨다' 등등 기분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나의 그림을 변화시켰을까?

발리는 나에게 특별한 에너지 원천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내가 느끼는 발리는 상쾌하고 평화롭다. 발리가 주는 자유로움, 평화로움...... 아마도 이런 것들이 나의 그림을 계속 성장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소중한 가족과 함께 했던 발리의 모든 것이 내 그림을 변하게 했나 보다. 내가 발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우붓이다. 우붓으로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신이 난다. 아침의 빛과 녹색 풍경 속에는 역동감이 가득하다. 크로키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있고,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전시하고 있는 그림과 예술 작품들을 볼 때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어느 날 우연히 우붓에서 가져온 도록을 보다가 책자 안에 있는 도자기 공방 소개를 보게 됐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도자기를 굽던 나는 얼마나 반갑던지 주소를 들고 무작정 찾아갔다. 마을 입구부터 각종 기와들과 테라코타 작품들이 마당 전체를 덮고 있었고, 가마가 있는 작업장의 묘한 지붕은 단번에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공방의 작업장을 넋 놓고 둘러보다가 공방 사장님과 인연이 되어 나는 쁘자딴 마을에서 도자기를 만들게 되었다. 점심시간에는 공방 사람들과 나란히 누워 낮잠을 자거나 마을에서 시간을 보냈다. 스타프루트(starfruit, 카람볼라) 나무가 있던 공방 친구 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엄마 닭을 쫓는 병아리를 구경하고 있다가 시끌벅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래 내려다보이는 동네 개울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상반신을 드러낸 채 목욕을 하고 있었다. 발리의 전통 그림 속 장면 그대로였다. 발리의 카마산 스타일, 바투안 스타일의 화풍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문득 나도 현지인이 다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진짜 그렇기도 했던 게 공방 사람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다 보면 아무도 내가 외국인인 걸 눈치 못 채고 입장료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내 까만 피부가 한몫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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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장소는 공방 작업반장 언니가 오토바이를 태워서 데려가 준 따나롯 사원이었다. 탁 트인 논길을 지나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집들을 지나 따나롯에 도착했을 때 내 눈앞에는 복숭아 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말 그대로 ‘꽃바다’였다. 발리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따나롯 사원의 ‘꽃바다'를 보고 온 후 나는 그 여운을 잊지 않으려고 바다와 하늘이 담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 작업 스타일의 특성상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게으르기도 했고 완성이 될 듯 될 듯했지만 도무지 풀리지 않던 하늘 부분이 큰 숙제였다 그러던 차에 녀피(Nyepi) 때 방문한 문둑에서의 변화무쌍한 날씨가 해답을 주었다 구름이 무대 위의 커다란 커튼처럼 한쪽으로 덮이는데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 순간 내 '꽃바다' 그림이 떠올랐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이 ‘따나롯' 이다. 우리 가족 중 가장 먼저 인도네시아를 떠난 건 첫째 아들이었다 음악에 뜻이 있던 아들은 고 1 까지 발리에서 학교를 다니다 한국으로 유학을 갔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면 이런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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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가슴 한편이 한없이 아리던 시절이었다. 아이가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을까? 보고 싶은 마음과 걱정은 온 세상을 음식으로 보이게 만들어 버렸다 연꽃 밭을 보면 연잎밥으로, 하늘의 해는 계란 프라이로 보였다. ‘널 위한 점심’ 은 그렇게 그려졌다. 내 모든 정성을 모아 너에게 따뜻한 점심 한 끼 손수 해주고 싶은 간절함이 담긴 그림이다

진짜 가족 같은, 아니 어쩌면 가족보다 더 큰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가 어릴 때도 집에서 강아지를 키웠지만 이렇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 반려견은 '시아'가 처음이다. 우리 가족이 인도네시아에서 7 번의 이사를 겪으면서 우리 '시아'도 고생이 참 많았다 발리에서 자카르타로 강아지를 이동할 때는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를 지나야만 했다 동물 병원의 도움으로 일단 바다를 건너고, 다시 '시아'를 만나 자카르타까지 20 시간 운전을 했다. 그렇게 고생 끝에 자카르타에 도착한 밤 아파트 정원을 배경으로 침대에 누운 강아지를 보며 ‘굿나잇 시아’를 그리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시아' 공주님 보석 같은 눈빛 사랑해 영원히

49 우리 가족은 발리에서의 첫 월급날, 3 개월 된 강아지를 입양했다. 강이지 이름은 '시아'다. 난 늘 딸을 갖는 게 꿈이었기에 '시우', '시민' 두 아들에게 '
'
만들어줬다 항상 나를 보고 있고 내 곁을 맴도는 한결같은
...... 시아는 나에게
시아
라는 여동생을
시아를 만나 얼마나 다행인지

오렌지색 지붕의 발리 집에는 고 3 인 둘째 아들과 발리에서 입양한 7 살 퍼그 공주 '시아', 그리고 까까 '메리'가 함께 살고 있다 남편과 큰 아들이 몇 년 전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우리 가족은 계획에 없던 기러기 가족이 되어버렸다. 가족이 전부인 나에게 가족과 떨어져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일이기에 기러기 생활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남편의 그늘 아래서 아이들만 돌보며 그림만 그리던 나는 둘째 아들의 보호자로서, 살림 전반의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겁이 많고 심하게 의존적이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변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했기에 작은 아들과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갔다. 남편은 남편대로 한국에서 큰아이를 돌보며 힘든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나 또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버텨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가족의 빈자리엔 악어같이 생긴 지붕 위의 비아왁과 대문 앞 파파야를 먹는 검은 머리 직박구리가 새 가족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지붕 위 비아왁은 내 그림에도 등장하는 모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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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 살게 되면서 내 그림 안에는 노란 사람이 등장한다 그 사람은 내 상상 속 친구다. 내 마음이 어떤지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늘 곁에 있는 친구...... 그간 깊이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한국으로, 제 3 국으로 떠나 보내면서 이별에 대한 가슴앓이를 심하게 했다. 반복된 이별과 만남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 소심한 나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닫게 된 듯하다. 그렇게 맘 고생하며 인생 공부를 한끝에 이별보단 새로운 만남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만남이 힘들어진 나는 그림 속 상상 친구와 사롱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인도네시아에서 지내왔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의 행복, 상처, 기쁨, 희망, 바램 등을...... 그림 속에서 나는 상상 친구와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곳을 떠날 준비하고 있다. 바다 저 멀리에 발리에 두고 떠나는 추억의 보물들을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나는 양탄자 밑에는 단두종 강아지라 비행기를 타기 위해 꼭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시아’도 있다 나도 꼭 데리고 가라고 말하는 퍼그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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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멜론 밭, 수박 밭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오리 떼와 흰머리 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다니고 우아한 백로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이 있다 검은 돼지 바비굴링 집은 언제나 장작을 부지런히 패 놓는다 일부러 연출이라도 한 듯 온 마을에 흩뿌려진 꽃들과 골목마다 주렁주렁 열린 망고나무, 바나나 나무가 늘 나를 반긴다 이러한 발리만이 주는 여유로움에 나도 모르게 젖어 들었고 다른 곳에서는 느끼지 못할 해방감과 자유로움에 빠져들었다. 마치 엄마의 자궁 속과 같은 발리만의 평화로움과 따스함이 나의 붓을 움직이게 한다.

한국에서는 야자수도 바나나 나무도 쉽게 볼 수 없을 텐데

하늘의 해를 봐도 구아바가 떠오르겠지.

발리가 주는 이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그리워하겠지.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시점이 있다 탄탄하게 쌓여왔던 색과 붓질들이 공방 속 가마 안의 불길처럼 화아아악 타올라오는 시간. 과연 내가 이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까 막막했던 시작을 잊게 하는 그 순간. 그런 그림의 완성처럼 난 나를 찾아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다가오는 11 월 전시를 준비 중이다. 인도네시아를 떠나면서 준비하는 나만의 그림일기. 인도네시아를 그리워할 나의 마음을 담아내는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아침을 알리는 경쾌한 새소리와 간혹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가 나의 아침을 반겨준다 8 개월 후를 준비하며 나는 오늘도 색색의 분채를 손가락으로 꼼꼼히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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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일반부 최우수상 한-인니산림협력센터장상 안부 Salam 김아람 (사무직, 자카르타) 수필

불안함이 밀려오고 있었다. 소리가 소리를 물며 이어지던 수런거림이 사라지고 찾아 온 갑작스러운 적막이 뱃속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물속에서 유 영하는 물고기의 소리 없는 일렁임을 닮아 무성 흑백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 길 잃었나 봐”. 조그마한 중얼거림이 일행의 뒤에서부터 앞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2000년대 초, 손끝으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온 세상을 보여주는 스마트폰과 우주에 서 떠다니는 위성과 연결되어 지구의 길을 속속들이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같은 문명의 기술들이 여물지 않은 아날로그의 시절, 우리는 낯선 도시의 울창한 숲 한가운데 멈춰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두 번째 학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자석의 양극처 럼 밀어내는 서먹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앞서 걸어가던 현지 가이드가 길을 찾아보겠다며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인솔 선생님 들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춰보려 했지만 입매에 걸린 미소들이 어색했다 숙소에서 챙 겨 온 간식을 꺼내 나눠 먹기 시작했다. 비 냄새가 섞인 산바람이 계속 불어오고 있었 고, 아침부터 이어진 산행으로 리듬을 잃어버린 호흡은 불규칙했다. 자카르타에서 벗어 날 기회가 드문 주니어 고등학생들에게 낯선 도시로의 수학여행은 해방이었고, 우리는 모두 평소보다 조금씩 흥분해 있었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은 세계에서 열한 번째로 큰 섬이다 마나도는 그곳에서 두 번 째로 큰 도시로 깊은 대양과 높은 산을 모두 갖고 있었다. 첫째 날 바다에서 자유롭게 뛰어오르는 돌고래 떼를 만난 우리에게 등산은 따분하고 짜증 나는 일정이었다. 주변을 둘러볼 생각은 애초부터 없어 멍하니 앞 사람의 등만 보고 걸었다. 오르다 보면 정상에 도착할 테고 다시 내려오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언덕배기 하나 넘는 수준이겠거니 웃으 며 들어선 산이 갈수록 심상치 않았다. 무너뜨릴 수 없을 거대하고 검푸른 덩어리 자체 였다 길을 잃고 예정보다 더 오래 쉬는 동안 불안함은 야릇한 환상으로 변해갔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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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은 오래전 사라졌고 어느 것 하나 특별할 필요가 없는
태였다. 높낮이가 제 각각인 억양과 서로 다른
도 아이도 아닌 어중간함을 통과하던 시절, 도시의 생활은 지나치게 규칙적이었다. 타국 의 삶이 주는 묘한
정지 상
모국어 그리고 다양한 피부색으로 이루 어진 집합의 생경함은 이미 익숙함의 수준을 넘어 당연함이었다. 사원의 기도 소리는 시계로 전락했고, 감히 저질러보는 변수는 용납될 수 없는 발칙함에 불과했다 극단을 널뛰는 감정의 틈새에 갇혀 자극에 목말라 있던 우리에게 경로 이탈은 뜻밖의 행운이었 다. 문명의 흔적은 손목시계와 손전등이 전부였다.

거대한 수조에 뿌려진 몇 방울의 잉크가 투명한 물을 순식간에 제 색깔로 물들이듯 현실에서 차단되었다는 흥분이 빠르게 덮쳐오고 있었다. 예리하게 담금질 된 칼날처럼 매서운 경사 길만 오른 지 한참이었다. 잃어버린 길을 찾은 것이 아니라 없던 길을 만들며 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제멋대로 드러누워 튀어 나온 굵은 뿌리와 가지들을 장애물 넘기 경주를 하듯 지나며 비탈진 산길을 올랐다 “오늘 내려가긴 하겠지?” 거친 숨소리에 밀린 투덜거림도 사라진 틈새로 그림자들이 굵게 드리워졌다. 제법 고지를 지났는지 올라가던 걸음이 내려가는 걸음으로 바뀌며 편 안해졌다. 뻐근해진 목덜미를 잡고 양쪽으로 살살 움직였다. 본격적으로 어두운 밤이 시 작되고 있었다. 투두둑 모자를 눌러쓴 정수리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기어이 굵은 소나기로 바뀌었다 열대 도시의 비는 거칠고 따가웠지만, 열대 우림의 것은 엉겨있는 나무 꼭대기가 걸러 주어 보드라웠다. 속이 여문 도토리가 우두둑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제법 운치였다. 빗 물이 스며든 흙길은 질퍽거렸고, 앞서가던 친구들 몇몇은 비명을 지르며 미끄러지기를 반복했다. “원숭이다!” 갑작스런 외침에 놀라 모두가 같은 곳을 올려다봤다 정말이었다 머리 위로 길게 뻗 어있는 가지에 앙증맞은 원숭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다 자란 참외와 비슷한 크기로 조그마해도 성체라고 했다. 인간이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작은 종이라는 설명이 이어 졌다. 늙은 호박처럼 노랗고 커다란 눈을 굴리며 원숭이는 제 발아래 몰려있는 인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와아! 장난 아닌데?” 목이 꺾이도록 들어 올린 고개를 이번에는 동시에 내려 앞을 바라봤다 원숭이에 정 신이 팔려 미처 보지 못한 그곳에 그가 있었다. 태고부터 살아왔을 것 같은 거수(巨樹) 였다. 단풍나무의 화려한 빛깔과 노각나무의 고운 무늬도 없이 나무는 존재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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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세
기둥을 안으려 두 팔을 뻗자 간신히 손끝들이
손전등 몇 개와 나무 꼭대기에서 희끄무레한 달빛이 전부였지만 나무는 빛이
기둥 아래쪽으로 커다랗게 나 있는 구멍 너머 반대편에서 길게
이기
개를
다.
강렬 했다. 남자
명이
닿았다. 불빛 이라고는
났다
뻗어 내려와 엉 켜있는 줄기들이 보였다 문명의
수천
끌고 와도 덤벼볼 수 없는 웅장함이었

찰칵. 서둘러 나무와 원숭이를 찍자 필름이 넘어가는 기계음이 이어지다 멈췄다. 자카 르타로 돌아가 현상한 뒤에야 확인할 수 있지만, 건질 만 한 것은 없을 게 분명했다. 어 떤 기술로도 담을 수 없는 반짝거림이었다. 웃음이 툭 터져 나왔다. 시간이 그어둔 경계 선을 넘지 못하는 인간이 무한에 가까운 생을 사는 나무를 가져보려 하고 있었다. 거대 한 생명 앞에서 우리는 보잘것없었다 마나도의 나무는 갑작스레 나타난 소란스러움 앞 에서 무엇에도 잠식되지 않을 바다처럼 서 있었다 파도는 바다를 갖지 못한다 요란을 떨어봐도 밀려오는 다음 파도에 눌려 하얀 거품이 되고 부서진다. 밀려오고 끌려가며 내는 소리는 결국 사라져 남겨지는 파도는 없다. 나무 한 그루의 질량이 수적으로 월등 한 우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 밤, 억지스러운 것은 없었다. 욕심부려 가지려 하지도 성가시다며 밀어내려 하지도 않았다 숲이 허락해준 잠깐의 시간 동안만 빗물과 달빛에 닿아 반짝이는 생을 만났다 밟고 선 대지는 폭신했고 주변에 가득 찬 검은 푸름은 눈 이 부셨다. 원숭이는 도망가지도 않고 한참을 앉아 눈을 굴려댔다. 구경하는 쪽은 아무 래도 원숭이였다. 어쩌면 마나도의 나무가 오래도록 함께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안 마시고 뭐 하냐?” 주머니 속에 넣어 둔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종이컵에 반쯤 넘게 담긴 액체를 몽땅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아침에 이어 점심까지 거른 빈속에 밀어 넣는 막걸리 맛이 텁텁했다. 북한산 중턱에 앉아 비운 것만 벌써 세 통째였다. 친목을 이유로 회사 사람들과 나선 휴일 산행은 한 번 더 늘어난 술자리에 불과했다.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돌아오는 종이컵을 받았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화려한 등산복을 좋아해?” 인니인 친구들이 물었을 때 웃어넘겼는데 틀린 소리가 아니었다. 초가을의 북한산 주 말은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이 가득했고, 취기에 젖어 벌게진 얼굴도 여럿이었다 무지 개들이 잘못된 장소에서 엉켜있는 듯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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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이이잉. 더는 안 되겠다 싶어 휴대 전화를 꺼내 액정을 툭 건드렸다. <부장 화 많이 났냐? 도저히 못 일어나겠어. 혹시 찾으면 잘 커버해. 너만 믿는다.> 직속 사수인 그는 전날 과음을 했다며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정상에 다 와 갈 때까지 줄기차게 문자를 보내오고 있어 성가셨다 휴일에 숙취에 시달리며 상사 눈 치까지 보는 처지가 어지간히 곤욕일 듯싶어 찧는 소리를 보내려다 말았다 평소 등산 실력을 자랑하던 부장의 배낭에서 막걸리에 이어 바나나까지 비우고 나서야 일어났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도시의 혼란을 날려버려야 한다더니 먹어 없어질 것만 짊어온 등 산이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보온병에 담아온 코코아를 가장 친한 선배에게만 슬쩍 내 밀자 피식 던지는 핀잔에 어깨를 들썩여 보였다. 술 냄새 자욱한 흐트러진 말투와 기준 없이 뒤섞인 여러 장르의 음악. 조용히 서 있는 나무들 앞에서 인간은 소란스러웠다. 지 이이잉 착신 진동이 울린다 세상과의 단절을 일 초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기세로 문명 의 이기들이 산 정상까지 따라왔다. IT 강국에 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더는 무리였다.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지점에 서 있는 거대한 바위 두 개를 마주하자 숨이 턱 막혔다. 앞서가던 등산객들이 암벽등반을 하듯 두 바위 사이에 다리를 한 쪽씩 딛으며 올라가고 있었다. 줄줄이 오르는 모양새가 거미떼 같았다. 비 냄새가 섞인 바람 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 일행에선 막내인 내가 먼저 오르기로 했다 왼쪽 발을 들어 바 위 옆구리를 딛자 말라있는 것이 미끄러질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고 저 아가씨 뭐야! 원숭이처럼 올라가네!” 위아래 어디에서 봐도 꼴사나워 보일 기이한 자세였지만 멈추지 않았다. 다시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 먼저 올라가 있던 아주머니들 몇몇이 감격스럽다는 표정으로 엎 드려 손을 내밀어주고 있었다 멋쩍어 괜찮다고 외치며 꼭대기까지 혼자 올라갔다 “기념사진 찍게 기다려!” 다 오른 모습을 보고서야 남은 일행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잘한 모래 알갱이들이 박힌 손바닥이 따끔거렸다. 탁탁 털고 일어나려는데 순간 몸이 휘청였다. 이른 가을치고 정상에서 분다며 바람이 아래보다 매서웠다. 높이 묶어 올린 머리카락이 얼굴을 쳐 눈 을 질끈 감았다. “헛!” 눈꺼풀을 다시 들어 올리는 순간 숨을 뱉듯 웃음이 터졌다 뜻밖의 조우 도시의 소음 에 밀려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들이, 그럼에도 결코 잃어버린 적은 없던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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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달빛 아래 빛나던 마나도의 나무와
아우성치는 다혈질의 기운이 날아간 도시는 고요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도시는 가까이 갈수록 혼잡했다. 북 한산의 과묵한 푸름에 기대어 호흡을 달랬다 <안 끝났냐? 답 좀 해라 인마!> 적당히 답을 보내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풍경을 찍어 보낼까하다 그만두었다.
기 다리고
노란 눈알을 굴리던 원숭이였다.

고화질을 자랑하는 스마트폰이지만 북한산의 점잖은 고요함을 온전히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곳에 왔었더라도 무엇 하나 제대로 보았을 리 없었다. 나무를 스치 는 바람 한 토막까지 모든 것이 안온했다. 도시의 머리 꼭대기에 숨어 은밀하게 빛나고 있는 북한산의 앙큼함이 사랑스러웠다. 그 밤, 자정이 되고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가을비에 젖어 미끄러웠다 딛는 발에 힘을 주는데 문득 오래전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 음을 깨달았다 이십 년이 지나도록 마나도의 숲은 여전히 함께였다 보고 싶었다 어둠 에서 빛나던 나무, 겁도 없이 내려다보던 원숭이의 노란 눈 그리고 아직은 순수의 시간 을 살던 그 시절의 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번뜩이는 탐욕을 만나 문명의 논 리에 잡아먹혀 버린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지쳐있었다 나무, 바위 그리고 바람 안온했던 순간들은 잔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 고, ‘그러했던가’ 자조 섞인 혼잣말이 튀어나올 때 잠시 머릿속을 스쳐 갈 뿐이었다 오 늘 하루의 무게를 덜어내고 나면 다음 하루의 무게가 기다리고 있었다. 타국의 도시는 변화의 속도전에서 살아남기에 친절한 곳이 아니었다. 사춘기 소녀가 만난 자카르타의 촌스러움은 편안함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더딤은 걸림돌이었다. 매년 성탄절 연 휴 서울을 방문할 때면 지난겨울보다 몇 발자국 앞서 있는 변화를 마주했고, 두 도시의 좁혀지지 않는 틈을 확인하며 조급해졌다 서울은 국제사회의 유행을 주도하지만, 자카 르타는 그것을 쫓았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아 혼자만 도태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 들었다. 떨치려 안간힘을 쓸수록 더욱 깊게 매몰되었다. 적도의 열기로 시간에 무감각해 지는 동안 봄과 가을은 연이어 찾아왔고 그때마다 결혼과 출산 등 새로운 시작과 관련 된 소식들이 날아왔다. 남들과 다른 삶의 속도에 관하여 색이 모호한 질문도 함께 따라 왔다. 오래전 정해진 세상의 순리를 따르지 않는 것은 몸속 어딘가에 들러붙어 장기를 갉아 먹는 세균을 안고 사는 것과 같았다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커질수 록 이유 없는 부채 의식에 시달렸다. 병명조차 낯선 어지럼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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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괜찮지
냐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대 폭우의 시작을 알리는 갑작스러운 천둥의
.
면 줄곧 말을 걸어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에 빠져 자세히 들으 려 하지 않은 쪽은 나였다 “어머, 키가 더 커진 것 아냐?” “그러게 이만큼 자랐네!” 코로나 시국으로 멈췄던 세상이 다시 제 속도를
시작하면서
진단받았고, 불면의 밤
웅크려 시들어가고 있던 어느 하루, 이대로도
않겠
섬광같이
어쩌
내기
그동안 가지 못한

자카르타 외곽 지역을 2년여 만에 지나가고 있었다. 내 앉은키보다 작던 나무 덤불은 어느새 자라 자동차 높이를 훌쩍 넘어 거대한 울타리가 되어있었다. 햇볕에 닿아 색색 으로 물든 가지들이 쐐기풀처럼 엉켜 서로를 붙들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근처에 함께 서 있는 나무들도 눈에 띄게 높아져 있었다. 전기에 감전된 듯 강렬한 전율이 손 끝으로 저릿했다 도시의 소리가 사라진 동안에도 모두 묵묵히 자라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나무는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우기와 건기를 오가는 변덕스러움을 견디면 서도 날이 좋지 않으니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겠다며 게으름을 부려본 적도 없었다. 다가오는 것이 무엇이든 받아들이며 자리를 지켰다. 혹여 그랬더라도 들릴 만큼의 소란은 아니었다. 나무에게 소리가 있다면 바람을 닮았을 터였다. 밀려오고 끌려 가기를 반복하는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 존재하고 있는 울림이었다 그리 올 곧음만 아는 생이기에 제 앞을 지나는 인간의 분심과 절망을 달래주는 온유한 위로였다 대지 아래로 뻗어있는 뿌리는 고요히 흙을 움켜쥐어 옹골차게 서 있었다. 폭우와 강풍 에 휘어져도 꺾이지 않는 결기에 부끄러움을 깨달을수록 얼굴 가득 열기가 퍼졌다. 유 한의 시간을 머물다 가는 주제에 더 오랜 시간 인내하고 살아가는 나무 앞에서 어떻게 든 탓할 거리를 찾으며 물색없이 굴고 있었다 나무는 소란스럽지 않은 소리로 말을 걸 어오며 스스로 깨달을 속죄의 기회를 주고 있었다 마나도의 나무가 기억 속 유난한 조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이보다 더 오래전 만났던 소나무가 떠올랐다. 스스로의 삶을 의심하며 절망하는 고통을 아직 알지 못해 파랑새의 날갯짓처럼 포롱거리던 시절 만난 소나무였다. 야만이 번뜩이는 칼날을 휘두 르던 1950년대 초엽, 어느 젊은 목사가 당시로는 드물게 여학생만을 위한 사립학교를 세웠다. 전란 통에 막사로 된 교실이 전부였던 교정에서 소녀들은 황폐한 흙을 파 나무 를 심었다 반세기가 지나 나의 교정이 된 그곳은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서 있는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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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심어진 의지였다. “너 참 멋 지다!” 달리기 솜씨가 썩 괜찮았던 내게 머리가 하얗게 센 교장 선생님은 매번 엄지손 가락을 치켜세워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 주었고, 갑자기 내리는 여름 소나기를 맞으며 단짝
때까지 나무는 나의 모든 자람을 지켜봐 주었다 다시 찾은 학교는 여전히 날렵한 나무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곳에 그 시절의 내가 하얀 블라우스와 남색 치마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소
로 가득했다. 당신들의 뒤를 이어 앞으로 나아갈 삶을
친구와 깔깔대고 정신없이 뛰어다닌 날도 있었다. 첫 교복을 입고 교정에 들어선 날부터 적도의 이국으로 떠나올

녀로 서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나무가 부려준 우아한 마법이었다. ‘이모 사랑해! 빨리 와. 보고 싶어!’ 관악산 정상에서 찍은 동영상 속 아이는 앞니 두 개가 빠진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보드라운 두 볼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손가락 보고만 있어도 입안 가득 풋자두의 새콤함이 번지는 사랑스러움. 잠긴 국경에 갇혀 두 번의 겨울을 보내고서야 만나 지난봄 함께 올랐던 곳이었다. 폴짝거리며 용맹하게 내달리는 발돋움과 붉어진 볼 에 포도알을 넣고 오물거리던 입매가 여태 눈앞에 생생했다. 지쳐 널브러진 제 부모와 달리 아이는 유난히 세차게 불던 봄바람을 맞서며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허리춤에 두 손을 가져다 대고 ‘야호!’ 소리를 지르자 도시 위로 날아갔다 되돌아오는 것이 솜사탕처 럼 달큼했다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동영상 속 조카는 어린 수사자의 갈기처럼 머리카 락이 휘날리고 있었다. 옹골찬 모습이 나무와 닮아있었다. 세상이 불확실성에 주저하는 동안 아이와 나무는 자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겁내지도 게으름을 부리지도 않는 두 생이 눈이 부시도록 반짝였다. 전란 속 생을 시작한 묘목, 짙은 어둠 속 빛나는 나무, 세상의 혼돈 속 안온한 덤불 그리고 그들을 어루만지며 수런거리는 바람 모두가 같은 말을 해 오고 있었다 괜찮다 고. 더디게 가는 것도 삶의 방식이라고. 속도를 정하는 것은 나의 마음이지 타인의 시선 과 판단이 아니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다시 말결을 얹는다. 가다 보면 언젠가 닿아 있을 테니 지금의 생에 너무 애태우지 말라고. 스치는 것이 무엇이든 휘둘리더라도 뽑혀 나 가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니. 조카의 달보드레한 목소리 위로 갑작스러운 폭우가 덮쳐왔 다 극성맞은 비바람이었다 커튼이 비에 젖기 전 테라스 문을 닫으러 일어나자 멀리 야 자수 나무들이 보였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길쭉한 이파리 아래로 뻗어있는 얇은 기둥들 은 저를 갉아낼 것이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는 듯 미동 없이 호젓했다. 제 앞을 지나 갈 어느 인간보다 더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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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을 지키고 있을 터였다. ‘이모는 잔소리가 많아. 그래도 사랑해’ 거르지 않고 내지르는 아이의 말은
또 그
꾸밈이 없 었다. 언젠가 저만의 나무를 만나 그 앞에 서 있을 사내가 된 조카의 미래가 기다려졌 다 조카와 다음
다음을 살아나갈 아이들이 언젠가 제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절망을 알았을 때 길잡이가 되어줄 푸른 빛을 만날 기회를 지켜주어야 했다 이것이 세상의 많은 나무와 그 푸름이 이어져야 하는 그리고 내가 만난 모든 나무가 바스러지지 않을 기억으로 새겨진 이유였다. 지키는 방법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있 었다. 당연해서 너무 쉽게 잊게 되는 것, 사랑이었다.
62 일반부 우수상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장상 누구를 위하여 바람은 부나 Untuk Siapa Angin Bertiup 도지현 (발리한국학교 봉사자, 경희대학교) 수필

발리 섬에 온 뒤로는 유독 하늘을 보는 일이 잦아졌다 이유인즉슨, 일상생활을 하다 가도 자꾸만 내 시선 한자락에 걸리는 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곳에선 비만 오 지 않으면 매일 색도 모양도 다른 연이 하늘에 떠 있는데, 새 모양이니 나비 모양이니 그 종류가 굉장히 다양해서 가끔 신기한 만듦새를 가진 연을 발견하면 절로 감탄하게 된다. 물론 방패연이나 가오리연같이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날려 보았을 투박한 모양의 연들도 섭섭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런 연들은 단지 날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의 유년 과 한국에 대한 향수를 돋을새김하곤 한다 그러니 화려한 연이든 기본에 충실한 연이 든 내 시선을 사로잡지 못할 이유가 없고, 나는 발리에 온 이래로 정말이지 종종 하늘 을 바라보며 연과 함께 생각에 잠기곤 한다. 연날리기가 발리 섬 특유의 문화라는 것은 발리에 오고 나서도 두세 달이 지난 시점 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같이 일하는 현지인 선생님께 “여기 사람들은 왜 매일 연을 날 리고 있는 건가요?”라고 여쭤본 적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글쎄요, 아마 재미로 날리나 봐요. ” 같은 대답 외에는 다른 정보를 마땅히 얻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나는 발리 사람 들이 왜 매일같이 연을 즐겨 날리는지 그 문화적 배경에 대해서는 내내 아리송하게 여 겨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을 만하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연을 다시 마주 치는 바람에, 연 날리는 사람들에 대한 근본적인 궁금증은 여전히 내 안에 자리하고 있 었다. 하루는 고젝을 불러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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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그 오토바이 뒷좌석에는 연을 든 남자가
비닐로 만든 호랑나비 연이 었다 그 연은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살아서 날아갈 것처럼 퍼덕거리 고 있었는데, 남자가 나비 날개를 두 손으로 꼭 쥐면서도 세찬 바람에 행여나 연이 상 하지 않도록
지나갈 때에
잠깐이나마 그의
볼 수 있었다 그는 그늘 한 점 없는 얼굴로 웃고
그의
움과 기대는 잠깐 본
어딘지
있는 중이었다 멀리서 오토바이가 달려오
타고 있었다.
바람의 결을 따라 연을 바람에 은근하게 띄우듯 잡고있는 모습이 인상적이 었다 차창 옆으로 오토바이가 스쳐
나는
얼굴을 자세히
있었다
미소에 담뿍 담긴 즐거
나조차도
들뜨게 만드는 것이어서, 나는 내심 그가 연과

함께 근사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어느 날은 일과 관련된 용무로 집집마다 작은 비타민 음료를 두어 개씩 나눠주고 있을 때였다. 어떤 집의 대문을 두드렸는데, 문을 열고 나온 자그마한 아이 뒤로 연을 만들고 계신 아이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는 마땅한 무늬도 모양도 없이 그저 반투명한 흰 비닐에 살을 붙이고 테이프와 실로 마무리한 방패연이었다. 하지만 보란 듯이 연을 척척 만들어내는 아버지의 손놀림과 그런 아버지를 감탄 어린 눈길로 바라보 며 벌써부터 신이 나서 동동 구르는 아이의 발은 꼭 내가 어릴 적 자동차 트렁크에 걸 터앉아 연을 만들어주던 아빠와 아빠를 재촉하는 나의 모습과 닮아 있어 어딘지 마음을 울리는 면이 있었다. 저 연도 몇 시간 뒤면 하늘을 날고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나는 그날 유독 그 집이 있었던 방향의 하늘을 자주 쳐다봤던 것 같다

그즈음 나는 “왜 발리 사람들은 연을 많이 날릴까요?”라고 여러 현지인에게 버릇처럼 묻곤 했다 한 현지인 선생님은 “그냥 놀이예요 ”라고 대답했고 어떤 현지인 선생님은 “섬은 바람이 많이 부니까요. 연 날리기에 좋아요. ” 라고 대답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섬이라서 바람이 많이 분다손 치더라도, 한국의 섬들에 방문했을 때는 이 렇게 연을 많이 날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 걸요 ” 하고 의아해할 뿐이었다 오히려 내게 답이 되었던 것은 사무실의 어떤 선생님께서 말해 주신 이 한마디였다. “아마 연 날리기 행사를 준비하는 걸 거예요. ” 연 날리는 대회도 있냐고 반문했더니, 선생님은 바 로 근처에 있는 사누르 해변에서 연 축제도 열린다며 그때는 더 큰 연들도 많이 볼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길로 인터넷에 발리의 연 날리기 행사에 대해서 검색해 보았 더니 한국어로도 발리의 연 날리기 문화에 대해 다양한 칼럼과 뉴스 기사들이 많이 나 와 있었다 한국에서 정월에 연을 날리며 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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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께
연을 날리는 세시 풍속이 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잔잔하게 녹아든 힌두의
비는 세시풍속이 있는 것처럼, 발리에도 농사를 담당하는
드리는 일종의 제사와 같이 액운을 쫓고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
이것이 발리인들의 삶 속에 뿌 리깊고
문화임을 알 수 있었다 연날리기 자체가 이들에게 있 어서는 놀이이자 축제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힌두교에서 연은 사람처럼 몸과 뼈, 그리고 영혼을 가진 존재로 여겨진다고 한다 이 것을 알게 된 뒤로 연을 보면 이 문장을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사람’이란 무엇 인가? 세상에는 어떤 사람도 똑같은 이가 없는데, 도대체 어떤 사람이 진짜 사람다운 사람이란 말인가 이렇게 추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연이라는 하나의 사물로 비유하는 것. 사람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복잡다단함을 과감하게 쳐내고 단지 몸과 뼈, 그리 고 영혼으로만 설명해내는 연의 존재는 내게 있어 그 자체로 탁월한 비유처럼 느껴지기 까지 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연에 몸과 뼈는 있지만 영혼이 있 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연의 영혼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의 영혼이란 도대체 무엇으로 정의 내려야 하며 연의 어떤 점이 인간의 영혼과 닮았을까? 어쩌면 당 연한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연도 사람도 ‘바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점이 인간의 영혼과 닮지 않았느냐고. 어쩌면 영혼이라는 것은 우리의 바람으로 이루어 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바람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하나는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 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이고, 또 하나는 바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 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다 연은 바람이 없으면 날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어떻게 ‘잘’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없으면 끈 떨어진 연처럼 본인의 의 지 없이 정처 없는 길을 맴돌 뿐 더 높은 곳을 향해서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러니 어쩌 면 ‘바람에 바람을 담아 나를 날려보내는 일’은 그 자체로 주체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 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는, 나도 한국에서 발리까지 연을 날 린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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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지 않을까. 나 또한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바람을 타고 봉사자로서 이곳 발리한국학교에 와 있으니 말이다 내가 막 발리에 도착했을 때, 공항으로 마중 나와 주신 교장 선생님께 가장 처음으로 여쭈어 본 질문은 이것이었다 “선생님, 제가 한국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교장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교에 나오는 학생들은 발리에 있는 재외한인 자녀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한국학
, 저는
한국인의

얼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주중에는 사무실의 선 생님들이 어학당을 열어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하므로, 그리고 한 인 자녀들은 각자 인도네시아 학교에 출석해야 하므로 일주일에 딱 한 번 토요일에만 잠시 열리는 한국학교 차를 타고 공항에서 사무실로 오면서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한 국인의 얼을 심어줄 수 있을지 고민했기에, 학교에 도착한 나는 망설임 없이 문학과 독 서 교과서를 집어 들고 이 교재로 수업을 하겠노라 말할 수 있었다. 다른 것보다 문학 과 독서 교과서야말로 한국인의 정서를 글로써 가장 자연스럽게 담아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만만했던 생각과는 달리 한국학교에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봉사는 학 생 수도 적은데다 각각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라 이것저것 고려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산 더미였다. 한 번 수업을 하려면, 한글을 읽고 쓸 줄만 알지 그 의미는 전혀 모르는 학생 을 위해서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로 단어를 일일이 번역한 쓰기 학습지를 만들어야 했고, 한국어는 유창하지만 아직 읽기와 쓰기가 잘 안 되는 학생을 위해 다양한 어휘 설명과 쉬운 학습활동을 준비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문장 구사력이 높고 이해의 수준이 월등 한 학생을 위해서는 지루함을 달래 줄 추가 질문과 심화 자료를 준비하고 나면, 단 두 시간의 수업을 준비하는데도 거짓말같이 일주일이 사라져 있었다. 게다가 주중에 하는 어학당 수업까지 진행하게 되자 나는 그 길로 숙소에서도 잔업을 처리하는 야근 기계가 되어 버렸다 봉사자로 왔다 몇 개월 뒤면 곧 떠날 것이므로 너무 막중한 책임감을 가 지고 자신을 갈아 넣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으나, 나는 매주 새로운 수업을 준비하 는 일을 멈출 수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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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자 띄운 연을 계속해서 하늘에 떠 있 을 수 있게 해 주는 바람. 그 바람을 학생들이 매주 내 마음속에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 문이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제 수업에서 어떤 걸
?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앞으로 어떤 수업을 준비하면 좋을까요?”
, 최근에는 아예 스스로 그것을 기꺼워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사람이
배워가고 싶나요
학생들은 하나같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 록 고등학생인데도 아직 한글로 된 문장을 더듬거리며 읽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익 숙한 학생들이 마음에 걸렸다. 나중에, 한국과는 달리 인도네시아의 학생들은 학교를 졸 업하고 나면 비자를 통해 자신의 향후 거취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는 더 마음이 쓰였다. 그때 하늘에 떠 있는 연을 보며 생각을 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간 절한 소망이, 이들이 날리려고 하는 작은 연이 단지 바람이 부족해 고꾸라지지 않도록 내가 더 센 바람을 불러일으켜 줘야겠다고 발리 섬에서 불어온 바람이 나라는 연을 인 도네시아까지 끌어온 것처럼, 나 또한 한국으로 이들을 날려 보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이다. 연을 날리는 사람은 줄곧 하늘을 바라본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 꼭 신에게 자기 자 신을 의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을 우러러 스스로에게 굳게 다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연 을 날리면 연은 하늘로 가 닿는데, 땅에서부터 줄로 이어진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 면 신이든 결심이든 그게 그리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에는 하늘을 날기 위해서 커다란 연을 만들기도 했다던데, 비행기라는 편리한 비행 수 단이 있는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하늘을 날 수 있으니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람에 몸 을 싣기도 참 쉬워진 시대가 되었다 이역만리 타지로 나와 한국을 잊지 않는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들 그들이 띄우는 연이 한국으로 가 닿을 수 있도록, 바람을 타고 온 나는 스스로 바람이 되기를 자처한다. 여전히 서로가 서로의 연을 띄워주는 바람이 될 수 있다면, 사람들이 마치 학생과 선 생님처럼 서로에게 배울 수 있다면 세상은 더 행복해지겠지. 그러니 바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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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 하여 부는지, 연은 누구를 위하여 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그 저 연이 난다 더 나은 내일, 더 나은 내가 되기를 소망하는 인류 전체를 위하여 오늘도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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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tri Tidur dari Malang

69 일반부 우수상 한인기업가상 PT. TAEWON INDONESIA
말랑의 잠자는 공주
윤세귀 (세종학당 현지 교원, 수라바야) 시

적당한 이유도 없이 서성이다 멈춘 능선 며칠 전부터 부지런히 부엌을 오가던 *땜빼 몇 조각과 두부조림에 쉰 김치를 얹은 도시락 위에 아내의 반쯤 접힌 한숨을 받아 들고 햇살에 출렁이며 뒤를 쫓는 아이의 이름을 품속에 넣어 방금 떠난 아침의 벗을 찾아 나 선다 말랑의 잠자는 공주, Gunung Putri Tidur. 흔히 있을법한 닳아빠진 편린의 이야기조차 만들지 못해 흔들리는 잎사귀에 출처도 없 이 새겨진 불쾌한 소문만이 깔깔한 황사처럼 일어나 산 밑을 제멋대로 떠돌아다녔다 별이 뜨면 고단한 밤구석에 화석 같은 머리를 풀고 이제는 슬프(ㄹ)지도. 기쁘(ㄹ)지도. 않은 허기진 이름들을 찾아내어 민망한 헛기침으로 말을 보태다 첫사랑이 아니어서 서 둘러 세월이 갔다 누구를 떠올릴 시간도 사소한 흔적도 없이 고개를 저으며 바다로 떠 나 버린, 채 마르지 않은 미련한 그리움만이 망설임도 없이 날마다 낯선 제자리다. 다만, 돌아갈 땐 돌아가지 말라는 더 어려운 당부와 반쯤 접힌 한숨 끝에 한 줌 꽃 같은 아이의 이름을 외워 적는다.

*땜빼 : 콩을 발효시켜 만든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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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Putra

윤하늘이다,

배 아파 낳은, 아내가 낳은 이름이다 새우처럼 몸을 말아 알맹이도 없는 꿈을 베고 종

잇장 같은 바닥을 덮고 누었다 일어나는 남편을 보고 지었단다. 이름을. 제발 아빠는 닮

지 말라는 엄마의 기막힌 부탁이라지만 그래도 애비의 시시한 흔적은 남았다.

아이가 운다.

하늘이 울면 아빠가 된다며 아내는 하늘 끝 별을 짚는다.

하늘. 아빠.

엄마

몇 번을 되뇌이다

아이가

웃는다

윤하늘이다.

새우처럼 몸을 말아 알맹이도 없는 꿈을 베고 종잇장 같은 바닥을 덮고 누워도 하늘 품

에 사는 남편을 보고 지었단다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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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따가울 즈음, 식탁 위에 놓여있는 해어진 도시락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슬쩍 들어 봅니다. 아내는 오늘도 아이의 간식 도시락을 준비하다 내 도시락을 싼 듯한데 오늘은 딱히 갈 곳도 만나야 할 누구도 없습니다 그냥 여느 때처럼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너무 뙤똥하게 매달린 넥타이를 이리저리 매만지다 잠이 깬 아이의 눈마중을 뒤로하고 집을 나섭니다 햇살에 시린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다 눈에 들어 온 산. Gunung

Putri Tidur. 아내의 집 근처에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세 개의 마을을 등 뒤로 제법 길게 능선을 이루고 있는 산이 있습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단정히 두 손을 배에 모으고 하늘과 바람 사이에서 그 누구를 기다리는 산입니다. 나는 한쪽 뒷굽의 고무가 떨어져 걸을 때마다 딱딱거리는 까만 구두를 신고 하얀 마스크 뒤로 헐떡이는 숨소리를 들으며 하늘빛에 물든 산을 오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오후 간신히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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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치에 걸터앉아 아내가 싸 준 도시락으로 늦은 끼니를 때우고 챙겨간 두꺼운 책을 꺼내 읽어 보지만 그 어디에도 나는 잘 읽혀지지 않습니다 다만 다시 뙤똥해진 넥타이에 땀으로 똑똑 뜨거운 물이 떨어질 때 바람에 펄럭이는 와이셔츠 소매 끝을 보다 서러워 나를 읽지도, 쓰지도 못한 채 아이의 이름만 부르다 한쪽 뒷굽의 고무가 떨어져 걸을 때마다 딱딱거리는 까만 구두를 신고 하얀 마스크 뒤로 헐떡이는 숨소리를 들으며 별빛에 물든 산을 인사도 없이 내려옵니다. 나의 시작(詩作) 노트 나의 시작(詩作) 노트
73 일반부 우수상 인니갤러리 F. Widayanto 상 6 시 51 분엔 막히는 게 성실한 도로의 일 Pemblokiran pada Pukul 6.51 adalah Pekerjaan Jalan yang Sungguh-sungguh 전현진 (주부, 자카르타) 수필

한참을 서 있어도 차가 나아가질 않는다 신호등 없는 삼거리는 진척 없이 멈춰있다 누구를 탓해도 소용없다. 아침 6시 51분, 이 시간, 이 길은 언제나 성실하게 막힌다. 늦 어도 5분 전에는 입구를 나섰어야 했다. 조급한 마음과 달리 도로는 묵묵히 꽉 들어찬 자동차들을 떠받치고 있을 뿐이다 결코 도로 한편을 내주는 일이 없다 자카르타는 언 제 어디서 막혀도 이상할 게 없는 곳이다. 팬데믹과 함께 시작한 나의 인도네시아 삶이 그랬다. 막힌 도로처럼 도시에 봉쇄와 차단이 들어섰다 하늘은 천장이 높은 감옥 같았다 몸은 땅에 붙어있었지만, 마음은 매 일 아침 보고되는 확진자 수만큼이나 오르락내리락했다. 확진자가 늘어나면 걱정이 산 처럼 솟았다가, 주춤하는 날엔 잠시 쉬었다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사망자 소식에 깊은 우물을 파기도 했다 통계와 도표의 숫자 속에 갇혀버린 시간이었다 “틱. ” 좁은 길을 비집고 들어서는 오토바이가 차 옆을 부딪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앞서 갔다 가늘어진 눈초리로 비스듬히 앞선 헬멧 뒤통수를 쫓았다 헬멧은 멀어지고 오토바 이 꽁무니만 가재눈으로 흘겨봤다. 햇빛이 넘실거려 흘겨보던 눈이 감겼다. 눈꺼풀 위로 나무 그늘이 빛과 함께 어른거렸다. 초록과 노랑과 빛과 어둠이 모였다가 흩어졌다. 망 막에 혼란이 들어와 저만치 선 굵은 나무 기둥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깜박여도 여전히 나무가 움직였다. 얼룩덜룩한 모양이 멈추질 않았다. 동공이 제 자리를 찾길 기다려 또 나무를 봤다. 가느다랗지만 진한 줄을 제 키만큼 품은 나무였다. 밑동에서부터 위로 길게 그어진 선이었다 한참을 보다가 그것이 수백 수천의 개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검은 개미 길이 나무의 갈색 얼룩을 자꾸만 춤추게 했다 막히는 도로와는 다르게 차 안은 평화로웠다. 열광했던 가수의 노래가 흐르고 에어컨 은 쾌적한 바람을 뿜었다 회색 매연 냄새와 빨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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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열기는 단단한 유리에 가로막 혀 차 밖에서만 일렁였다. 시간은 창문 밖과 안으로 엇갈려 다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창밖에 내어준 시간만큼 차 안은 더디게 나아갔다. 개미를 탐구할 시간은 충분했다. 차와 나무 사이의 거리로 개미 모양까지는 자세히 볼 수 없었다 한두 마리였으면 눈 치채지도 못했을 것이다 움직이는 무리가 보였다 나무 꼭대기까지 오르는 개미군단은 처음이었다. 진한 줄은 아무렇게나 그어진 게 아니고, 오르고 내리는 길로 나뉘어있었다.

개미들이 길의 속도에 따라 나아가는 중이었다 어느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중간중간 나뭇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기도 했지만, 여섯 다리를 쉬지 않는 것은 분 명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개미의 속내가 비극일지 어떨지

알 길이 없지만, 나무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 킬 정도로 개미 떼가 뿜어내는 생명력은 왕성했다. 수많

은 잭이 콩 나무를 타는 모험 길에 서 있었다 그 끝에 황금 주머니가 있을지, 우락부락한 거인이 서 있을지 아

무도 몰랐다.

도로에 차들이 좌우로 나뉘어 줄지어 선 것이 개미와 같았다. 어디를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먹이를 찾든 집에

가든 이사를 하든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해 움직이는 개미

처럼 자동차 보닛을 앞세우고 줄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생김새로는 차 옆으로 가득 찬 오토바이가 개미와 더 가 까웠다. 다들 어디를 가는 것일까? “인도네시아가 어디야?” 신혼여행지였던 발리와 인도네시아라는 두 점을 잇지 못하고 헤매던 2년하고도 몇 개 월 전, 우리는 인도네시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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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것은 확성기에서 뻗어나는 기도 소리였다.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소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음을 상기시켰다 생방송으로 흐를 때도 있었고, 녹음된 것을 틀 때도 있었다. 한 단어쯤 들릴 법도 한데 단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알아들 을 수 없는 기도 소리는 이방인을 내쫓는 주문으로 들렸다. 축복하고 행복을 기원하며 하루의 길잡이로 울리는 것이라 여길 수 없었다 내 귀에 닿기 전 이상함, 두려움, 낯섦, 무서움의 교통체증에 걸렸기 때문이다
왔다 거리 가득 찬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신호등 없는 길을 달려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멍한 하루를 깨우쳐

기도 소리가 이방인을 을러대는 위협이 아니라 자명종 소리처럼 일상이라는 것을 바 루다땅(baru datang, 새로 온 사람)은 알 수가 없었다. 글을 쓸 때 켜두는 오래된 곡들 처럼, 운전할 때 듣는 라디오처럼 일상의 하나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상 함과 두려움이 한 대씩, 한 대씩 지나갈 시간을 충분히 기다려야 했다

Allaahu Akbar Allaahu Akbar

Allah Maha Besar, Allah Maha Besar

Asyhadu an laa illaaha illallaah

Aku menyaksikan bahwa tiada Tuhan selain Allah (아잔 중에서)

알라의 위대함과 알라 이외의 신이 없음을 말하며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azan)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마 몇 년이 더 지나도 변함없을 것이다. 그러나 낯설긴 해도 싫 지는 않았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쩐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울림이 여러 기다 림의 길을 타고 들어와 귀에 닿으면서 마음을 움직였다. 추억을 건드리기도 하고 생각 을 깨우기도 했으며 사랑을 채우기도 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천수경 중에서) 문득 매일 아침 어머니께서 읽으시는 천수경 소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네 시아에 온 지 한참만이었다. 어려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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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서나 천수경이 하는 말은 몰랐지만, 안에 담긴 마음은 늘 알았다. 어머니의 기도 시간은 고요하고 경건했다. 인도네시아인의 기도도 마 찬가지였다 듣는 귀에 더 적합한 방법을 찾아서 어머니는 조용히, 모스크는 모두를 위 해 마음을 전하는 중이었다

닫아두었던 것이 조금씩 열리면서 인도네시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막히는 도 로에서 아침마다 아이를 안은 여인이 기타를 쳤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를 지날 때 깃 발 든 노인이 길을 막아줬다. 자무를 머리에 이고 길을 따라 걷는 여자들이 있었고, 고 젝이나 그랩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그늘에 앉은 남자들이 보였다 온 도시에는 나무가 가득해서 사람들에게 그늘과 바람을 전해주고 쉴 곳을 마련해줬다. 저들은 어디서 왔을까? 어디로 갈까? 곳곳의 나무는 어디에서 왔을까? 어쩜 이렇게 많을까? 왜 여기서 자라는 걸까? 차를 타면 쉬지 않고 나무를 계속 볼 수 있었다 잎이 넓어 우산으로 쓸 만한 것, 뾰족하게 펼쳐진 것, 동백잎처럼 작은데 종이처럼 얇 은 것, 키가 건물 몇 층만큼 높은 것, 키보다는 옆으로 활짝 벌어진 것, 모양은 수없이 다양했다 이름 모를 식물들이 나무라는 이름으로 묶여 도시를 살렸다 이국의 대명사인 야자수 나무가 소나무, 잣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라는 이름 아는 나무들처럼 조금씩 익숙해졌다. 아름드리 기둥에 가지가 있고 잎을 매단 나무들이었다. 처음부터 커다란 나무는 아니었을 테니 분명 씨앗부터 시작했겠지? 나무를 심은 사람 은 나무로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얼마만큼 크기를 바랬을까? 왜 여기에 심었을까? 나 는 나를 여기에 심은 것일까? 생각이 꾸역꾸역 이어졌다. 나무는 몇 살일까? 특별히 좋 아하는 공기와 뿌리에 닿는 흙과 맛있어하는 물이 있을까? 나무 밑에 앉아 한참 올려다 보기도 하고, 길가의 꽃들에 코를 대어보기도 했다. 이름은 모르는 사이지만, 서로 안면 을 익혔달까? 나무가 말을 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사는 법에 대한 답 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내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뜨겁던 청춘 이 안녕을 고하고 있었다. 젊어 봤기에 아는 것처럼 나이가 들기 전에는 모르는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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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도 없지 않은가.
진 것은
많을 것이다 내일을 살아본 적이 없으므로 모두가 공평하게 이방인이다 요절한 자에겐 백발도 없고
어제를 많이 쌓은 이는 내일을 가늠해보겠지만 정해
아무것도 없었다. 사는 법은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알고자 한다. 가끔 누가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 물어오면 답을 못했다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싫은 음식이 있지 않지만, 일생을 두고 늘 있어야 할 음식도 없었다.

식도락을 원하지만 행복을 좌우할 만큼의 ‘거리’가 없었다 나시고랭과 미고랭의 선택

지에서 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될 뿐이었다. 나무에 관한 책을 읽으며, 책장에 인도네시아의 햇빛을 한 장씩 담았다. 여느 책과 다 름없이 인쇄소에서 똑같이 출판되었지만, 전혀 다른 책이 되었다 이제 이 책을 펼칠 때 마다 인도네시아 햇빛과 공기 내음이 퍼질 터였다. 그래서 누가 무슨 책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인도네시아 냄새가 나는 이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것이다. 엉키고 밀려 도 안에서는 즐겁게 지내고 싶다 하늘로 이어진 나무를 타고 높이 높이 올라 구경하고 싶고, 왕성한 생명력으로 더듬이를 세워 앞으로 꾸준히 가보고 싶다. 나로 인해 삶의 실 크로드가 춤을 추면 좋겠다. 오토바이 한 대가 간신히 들어설 수 있는 작은 골목길도 가보고, 산호 가득한 바다에도 가고, 온천이 부글대는 화산에도 가고 싶다 여행길에서 설레고 싶다. 출근과 등교, 혹은 여행이나 이사, 누군가와의 만남을 위한 길 위에서 보내는 아침 6시 51분 의 자카르타 차도는 항상 마쯧(macet, 길이 막 히다)이다 덕분에 속도를 낼 수 없지만, 무언

가를 자세히 볼 수 있고 사유할 수 있는 시간 을 얻을 수 있다. 가야 할 길에 수많은 동행자 가 있다는 것이 반갑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어디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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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왜 막히는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은 인생에 빠지지 않는 고민거리이자 삶의 원동력이다. 6시 46분에 출발했다면 덜 막혔겠지만, 6시 51분도 괜찮다 이 시간엔 막히는 게 성실한 도 로의 일이니까. 나는 미고랭보다 나시고랭을 좋아하고, 커피보다 히비스커스차를 즐겨 마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과는 친해질 시간이 더 필요하고, 개미에 관한 책을 몇 권 더 읽고 싶다 모스크의 기도 소리와 어머니의 천수경을 따라 읊지는 못하지만, 전하려 는 마음은 조금 안다 그리고 책장에 적도의 햇빛을 담은 책이 몇 권 더 늘어나면 좋겠 다.
가고 있으니 어딘가에 도착할
, 뭐가 막히는지도 모를 때에도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Hati

yang

Indonesia 김유림 (발리한국학교, 경희대학교)

Ditemukan di

, 느림의 미학을 경험하다: 배려의 마음 발리에 오기 전 나는 졸업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불안함으로 가득 찬 일상 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학과 내 발리 파견 모집 공고를 발견했고 이는 왠지 운명 처럼 느껴졌다. 설렘과 벅찬 긴장감이 서린 심장은 연신 쿵쿵거리며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재촉하는 듯했다. ‘그래, 뭘 할지 몰라 전전긍긍 쫓기는 하루를 보내는 것보 단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미래를 그리는 게 나아 ’ 도피성 휴학 대신 명분 있는 휴학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봉사에 자원했다. 그렇게 나의 발리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난 7월 말, 내가 발리에 도착했을 때는 한국에서 이제 막 여름이 꽃 피는 시기였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한국보다 적도에 가까운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이 걱정되었으나 그보

79 일반부 우수상 Historika Indonesia 상
인도네시아에서 찾은 마음들
앞섰다 평소 이국 생활에
환상도 있었고
여행을 병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6개월간의
앞 으로의 삶에 많은 귀감이 되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 다 내가 발리에서 맡고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한국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외국에서 지내며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생활, 한국 문화 등을 가르쳐주고 있다. 아이들이 단순히 한국어를 배우 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도 기를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수필
- 제1장 한국인
단 새로운 곳에서 만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들에 대한 기대감이
대한
일과
발리 생활은

또한 한국어에 관심 있는 발리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강좌를 개설해 한국어학당 수 업을 운영하고 있다 발리에 도착해 첫 일주일은 적응기였다. 사무실과 숙소가 한 건물에 있는 곳에서 업무 를 보게 되었는데 일터로는 최적화된 장소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나는 인도네시아 현 지인들과 함께 일을 한다. 첫 일주일간은 그들의 업무 환경과 패턴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이곳의 업무 처리 시스템은 한국에서의 업무 처리 시스템과 다소 차이 가 있으며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지극히 한국인의 정서-무엇이든 ‘빨리빨리’가 최고의 효율이라고 여기는-를 가 진 사람이었다 한국은 일을 할 때나 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빠르고 정확한 일 처리를 우선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이곳 사람들은 조금 느리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 편이었고 한국에 비해 유동적인 업무 방식을 선호하는 듯 보였다. 일을 할 때 뿐 아니라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거나 개인 업무를 처리하러 기관에 방문할 때도 이런 점들이 느껴졌다.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한국 사회에 몸담고 있던 나로선 이곳 사람들 의 모든 것이 느리고 답답하게만 여겨졌고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휴일 날, 외출을 마치고 야야산(직장 및 숙소를 편의상 ‘야야산’으로 지칭) 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야야산은 여러 골목들 사이사이를 지나 여러 갈래의 길을 돌 고 돈 후에야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부근의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길을 찾는 것 이 수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충분히 헷갈릴 수 있는 경로이다. 외출을 할 때 면 주로 택시 애플리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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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설정해둔 위치가 잘못되었던 건지 기사님은 야야산으로 가는 길을 한참
군다나 인도네시아어를 하지 못 하는 나와 영어로만 소통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결국 같은 곳에서 20분 이상을 돌다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겨우 도착했다 무사히 야야산에 도착한 나는 새삼 기사님의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한국에서 같은
때 목적지가 아닌 곳에
서비스를 이용하곤 하는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처
헤맸다 더
상황이 었을
내동댕이를 당하거나 기사님의 짜증 섞인 중얼거림을 도착 내내 견뎌야 했던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랐던 기사 님께서도 자꾸 헛도는 위치에 분명 신경질이 났을 법도 했을 것이다
81 그러나 기사님께서는 단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시거나 볼멘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어 쩌면 당연한 도리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키지 못하는 것을 봐왔기에 기사님의 태도에 큰 인상을 받았다 이와 비슷한 일은 한 번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복잡한 도로일 지라도 택시 기사님들은 항상 손님이 안전한 인도에 내릴 수 있도록 번거로움을 감수하 고 유턴을 해주신다 나는 이러한 일상 속 사소한 배려에서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여유에서 비롯된 발리인들의
교통 시스템에서 특히 이런 점들이 눈에 띄었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수 많은 오토바이들이 차들과 같은 도로에 섞여 달릴 수 있고 사람들이 신호등 없는 도로 를 건너갈 수 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발리인들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직접 경험해 보니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줄 아는 일상 속 배려 하나하나가 사회를 굴러 가게 하는 규칙과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 음을 깨달았다. 덕분에 나도 이곳 사람들의 여유에 발맞춰 어떤 일이든지 편안하고 너 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대할 수 있는 자세를 지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불편한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시선을 달리하고 바라보니 배울 점이 있었다
따뜻한 마음씨를 느낄 수 있었다. 발리에서 느낀 느림의 미학은 너무도 일 상적이고 자연스러웠다 여기서 느림의 미학이라 함은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이타심과 어떤 일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결합되어 탄생한 ‘여유’라고 정의하 고 싶다. 발리의
82 원래 내가 해오던 것이 더 합리적이고 옳은 일이라 당연하게 여기던 나의 오만함이 부끄러웠던 순간이다 낯선 환경에 처음 들어가면 그곳의 특징이 불편하고 비합리적이게 느껴지는 때가 있 다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사람들은 원래 자신이 속해 있던 환경을 떠올리며 새로 운 환경의
하나하나를
.
미 많은
사람들이
살아왔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 사실을 유념 하여 그들의 시선으로 새로운 환경을 바라보기 시작한다면 나 역시 새로운 공동체의 일 원으로서 화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제2장. 발리 생태계, 상호 간의 치유 속에서 살아가다: 존중과 공생의 마음 “길가에 널린 꽃상자들은 뭐예요?” 발리에 와서 가장 눈에 띈 풍경은 바로 가는 길마 다 놓여 있던 짜낭사리(Canang Sari)였다. 짜낭(Canang)은 ‘제물’을 뜻하고 사리(Sari) 는 ‘본질’을 뜻하는 인니어이다 짜낭사리는 가정의 안녕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하며 힌 두신들에게 매일 올리는 일종의 공물인데, 한국에서는 본 적 없던 생소한 종교의식이 신기했고 한 편으론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모습
비난하기 바쁘다
하지만 내가 비난하는 그 환경 속에는 이
다른
오래전부터

발리 사람들 대부분은 힌두교를 신봉하지만 그 외에도 이슬람교, 기독교, 카톨릭교, 불교, 유교 등을 따르는 다양한 종교인들이 있다고 한다 발리에는 약 2만여 개의 힌두 사원이 있어 차를 타고 창밖을 바라볼 때면 어렵지 않게 사원을 볼 수 있다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시가 되면

Sandhya

국가 공인 종교가 다섯 개 이상이라는 사실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발리는 소수가 따르는 종교일지 라도 거의 모든 종교의 휴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 의 휴일을 인지하고 있다 더불어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 는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문화도 뜻밖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종교가 있음에도 서로의 신 념과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포용적인 종교관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종교의 자유’가 단순히 국가적 차원의 보장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종교를 섬기는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마음에 서 올바르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러한 존중의 자세는 공생하는 삶을 살아 가게 하는 기반이 된다는 것도 마음속 깊이 새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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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바치는 힌두교의 기도 Tri
가 곳곳에서 흘러 나오고 사람들은 기도를 올린다 저마다의 신을 각자의 방법으로 섬기는 발리인들을 보 며 발리가 왜 ‘신들의 섬’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나는 두 달간 발리에서 지내며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 모두 ‘공생’과 조금 씩은 맞닿아 있음을 발견했다 사람이 다니는 곳은 개들도 다니며 개들이 다니는 곳은 사람도 다닌다 사람들은 동물을 해코지하지 않으며 동물들도 사람을 해하지 않는다 개 나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 가구는 극히 드물고 어떤 집은 닭이나 거위, 소 따위의 동물 을 기르기도 한다 특히 대형견을 기르는 집이 많아 보였는데 보기에 작고 귀여운 생명 체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한 식구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정경이 나 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꾸따(Kuta)나 사누르(Sanur) 지역의 해변을 거닐 때면 주인 없는 떠돌이 개가 어느새 나와 걸음을 맞추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처럼 여러 동물들 중에서도 개는 발리 사람들과 떼 놓을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물론 이곳에도 버림받 거나 학대 받은 기억으로 상처 입은 동물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도 그들은 다시 인간의 손길을 통해 치유 받는다. 떠돌이 개들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아마 그들을 마을에서 내쫓거 나 굶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적극적으로 길에 있는 개들을 모두 거두 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무엇이든 동등하게 보듬어주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들 삶에 동물은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서로에게 친 구이자 가족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런 치유적 관계 가 공생을 가능케 하며 감정의 순환을 일궈낸다. 나도 발리에 와서 지친 몸과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있다. 이곳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 다 보면 내면의 근심걱정이 마치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바람에 흩날리 는 나뭇잎 사이로 새어 나오는 청쾌한 소리와 맑고 또랑한 새들의 지저귐, 한밤중에 쏟 아지는 장대 같은 빗소리들은 나도 그들과 하나 되어 훌훌 날아갈 수 있으리란 착각에 빠지도록 한다 나는 이곳의 흐리지 않고 분명한 순수함이 좋다 선명한 자연의 색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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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싱그럽게 물들이는 것 같다. 푸른 하늘과 초록 결의 사방은 미처 나조차 인 지하지 못했던 내면의 녹색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자연과 결속되어 있는 모든 것이 내 게 평화를 선물하는 셈이다 콘크리트 대신 대나무로 만든 발리의 건물도, 인공포장지 대신 바나나 잎으로 포장을 해주는 샐러드 가게도 지금의 나에겐 모두 소중하기만 하다

- 제3장 인도네시아에서 찾은 마음들 이처럼 사람과 사람, 동물과 사람, 자연과 사람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루 며 살아가는 곳, 그곳이 바로 인도네시아가 아닐까? 그 무엇보다 강인하고 아름다운 가 치는 상생의 덕을 베풀고 상생을 통해 공존하는 생명 공동체에서 발현된다는 사실을 이 곳에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공생의 관점이 현대사회에서는 부분적으로만 해석되 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러한 관점이 ‘남을 이용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은 아닐 까? 21세기 인류사회를 위협하는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실수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서로를 물어뜯고 힐난하기 바쁜 사람들과 신뢰를 잃어가는 관계들, 이것이 내가 생각하 는 치유가 가장 시급한 우리 사회의 병폐이다. 종교를 내세워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과 폭력은 혐오가 만연한 사회를 부추기고 인류애를 파괴시킨다. 종교 이 외에도 성별, 세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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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인 구도에 놓인 갈등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이기주의 행태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원칙 하에서 더욱 악랄하고 잔인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 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작고 약한 동물을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는 잔혹 범죄 행위가 증 가하고, 자연을 인간의 도구로 여겨 무자비한 개발을 일삼는 잔훼의 나날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병든 현실을 고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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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개개인이 된다면 더욱 살기 좋은 지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발리에서 느낀 이 넉넉 한 마음들을 훗날 한국에 안고 돌아가 가족과 친구,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웃들에게 온 전히 베푸는 사람이 되어 더 나은 지구촌 미래 사회를 가꾸는 데 일조하고 싶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내가 경 험한 발리의 마음이 아닐까? 나는 발리에서 ‘여유가 주는 배려의 마음’을 느꼈고 ‘배려 가 주는 존중의 마음’을 배웠으며 마침내 ‘존중이 주는 공생의 마음’을 깨달았다 인도 네시아에서 본 ‘공생’은 내가 다른 것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살아가는 삶과 나 역시 다른 것들에게 내어주면서 살아가는 삶이 융합되어 있었다. 만약 우리 모두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와 같은 마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근본으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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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은
수필
일반부 특별상 Indonesia Korea Friendship Association 상 시조새 Archaeopteryx
(발리세움한글학교 교사, 발리)

까르르. “시조새다! 시조새~ 언니는 우리 학교 시조새네”

우리 가족은 태국 푸껫에서 14 년 전 발리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발리행 비행기에 오르기 2 달 전 미리 이삿짐을 컨테이너에 실어 보냈지만 우리가 발리에 도착한 후에도 짐은 도착 하지 않았다 딱 필요한 가구 이외에는 없었던지라 도착 다음날부터 급하게 필요한 물품들만 구입했다. 자꾸 태국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당황했었던 기억이 난다. 대화가 통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지라 빨리 인도네시아 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발리 국제 학교는 마을 안의 학교 콘셉트로 가족적인 분위기의 국제 학교이다. 학교 첫날 새로운 학부모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 순서가 되기 전까지 한국 이름을 말하면 이 사람들 기억 못 할 텐데,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을 간단히 줄여 ‘수' 라고 소개했더니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부 수'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부 수' 라고 불리는 게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거나 내 소개를 해야 할 때는 ‘Nama Saya ibu Su’ (나의 이름은 이부 수 입니다)라고 말한다 큰아이가 발리 국제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인도네시아어뿐만 아니라 영어 또한 필요하게 되었다.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나는 학교에서 노랑머리 외국 선생님이나 외국인 학부모를 만나는 게 너무나 두려웠다 초등학생은 방과 후 반드시 부모가 교실 앞에서 아이를 데려가야 하는데 이 시간이 너무나도 곤혹스러웠다 누군가 나에게 말이라도 시킬까, 말을 시키면 못 알아들을 텐데 어쩌지..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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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며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 했다. 간혹 학교에서
오는 게 내 레이다에 포착되면 헐레벌떡 화장실로 숨었다. 화장실에서 숨어 있다 보면 내가 뭐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과 영어 때문에 작아지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다. 어느 날 아침 다른 아이들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 복장을 하고 등교를 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만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다른 학부모들과
멀리서 선생님이 걸어

아이의 민망해하는 표정과 나의 당황스러움을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복장을 입고서 신나게 교실 안팎을 뛰어다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아이는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께서 괜찮다며 아이를 다독이며 교실로 데리고 갔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교실 밖에서 창문으로 아이를 계속 지켜보았다. 선생님께서 여분의 복장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는 금세 신이 나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놓였지만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고개를 숙이며 집으로 향했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무책임한 엄마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실수로 아이를 다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후 영어 회화 관련 책을 구입했다. 아이를 학교에 등교시킨 후 매일매일 영어 회화 공부를 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늘지 않는 내 영어실력에 답답한 며칠을 보냈다 영국 유학을 다녀온 친구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최대한 외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다음날 용기를 내 학교에서 가끔 눈인사를 하던 엄마에게 외운 영어를 말해보았다. 신기하게도 나의 영어를 알아듣고 대답을 해주었다.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긴 대화는 하지 못했지만 내가 외운 영어 문장을 알아들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서투른 영어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다. 10 살 터울의 큰아이와 작은 아이. 큰아이는 4 년 전 발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한국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다. 작은 아이는 오빠가 졸업한 학교에서 중학생으로 재학 중이다. 감사하게도 나의 두 아이들은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국에 있는 친한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첫째 아이를 발리에서 유학을 시키고 싶다고 했다 최고의 선택은 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는 거라고 나의 생각을 알려줬지만 아이만 보내야 할 형편이라며 1 년 정도 유학 생활을 하게 하고 싶다며 계속 부탁을 했다. 큰아이와 동갑인 친 구의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봐 온지라 그 아이의 성품을 잘 알기에 남편과 큰아이를 설득시켰다. 마침내 우리 집에서 큰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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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친구와 많이 이야기하고

많이 놀아라 라는 나의 조언 하에 너무나도 학교생활을 잘해주었고 아기

레벨 수준의 영어실력이 1 년 후에는 너무나도 훌륭하게 발전된 모습으로 한국의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한국으로 돌아간 후 아이의 발전된 영어 실력에 주변에서 너무나 놀라워한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정말 고맙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이후, 발리 유학 문의와 상담이 이어졌다 몇 건의 상담 후에 싱가포르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의 조카 2 명이 발리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착하고 순하게 생긴 중학생 누나와 남동생이었다. 이 남매는 우리 집에서 같이 생활하며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한국을 갈 때면 친정에서 지낸다 연말이면 이 남매는 스팸 선물세트를 들고 나를 만나러 가깝지 않은 거리인 친정을 방문한다 어버이날에는 “이모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고 문자를 보낸다.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구나, 하는 뿌듯함을 선사해 주는 소중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 이외에도 몇 명의 아이들이 우리 집에서 유학 생활을 보냈다. 세계 다른 나라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이 아이들은 큰아이와도 계속 연락을 하며 잘 지내고 있다 모두 인도네시아가 만들어준 감사한 인연들이다 나에게는 발리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많다.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미국, 호주, 뉴질랜드, 러시아, 스웨덴 각지에서 온 대부분의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몇 년 전 여름방학, 큰 아이와 같은 반 인도네시아 친구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놀러 갔었다 건강검진을 받아보고 싶다 해 병원을 소개해 주고 검진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상시 건강하던 친구라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자궁의 혹이 커 수술을 해야 할거 같다는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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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예정으로 온지라 수술 후 발리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친구는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싶다고

했고 부모님의 아는 인맥을 다 동원해 큰 병원에 빠른 수술

일정을 잡았다. 나는 친구의 병실을 지켰고, 감사하게도

친정엄마께서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친구는 수술 후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을 했고, 친구의 가족들은 나를 가족이라 부르며 만날 때마다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해마다 우리 가족 생일이면 꽃과 선물을 잊지않고 보내주고 있다

작은 아이에게는 자매처럼 지내는 호주 친구가 있다. 사랑스런 호주 친구와 나는 서로를 ‘코리안 맘', ‘내 호주 딸' 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 호주 친구의 할머니로부터 우리 손녀가 너의 딸을 너무 좋아하는데 함께 놀 기회가 없어 너무나도 속상해 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와 주신 할머니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 후 시간이 될 때마다 딸 아이와 호주 친구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천진난만한 귀여운 아이의 모습에 반해버렸고 나의 아이를 좋아해 준다니 더욱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우리에게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주고 작년 호주로 떠난 나의 호주 딸을 그리워하며 보고 싶을 때마다 온라인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 14 년 전부터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도우미 까까 끄뚯은 작은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변함없는 모습으로 집안일을 도와주고 있다. 외동아들만 있는 그녀는 딸아이를 자기 딸처럼 사랑해 준다. 발리 말이 인도네시아 말보다 어렵다며 딸아이 아기 때부터 발리 말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영향인지 작은 아이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발리 말을 알아듣는다. 작은 아이는 까까 끄뚯의 자랑이다 발리 사람들 앞에서 일부러 작은 아이에게 발리 말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발리 사람들은 “ 외국 사람인데 발리 말을 알아들어?” 하며 칭찬 릴레이가 이어진다. 그러면 까까 끄뚯은 엄마 미소를 지으며 작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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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회날 넓이뛰기를 못한다고 속상해 하던 딸이 보이지 않아 찾고 있었는데 운동장 구석에서 딸아이를 붙잡고 열심히 넓이뛰기를 이렇게 저렇게 하라며 가르치고 있던 모습을 보며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4 년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합격한 큰아이의 졸업식은 너무나도 기쁘고 축복할 만한 날이었다. 최우수 졸업생으로 단상에 올라 연설 마지막 부분에 한국말로 “엄마, 아빠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해요!”라 할 때 울컥한 마음이 들었지만 눈물은 잘 참아냈다 큰아이가 가족사진을 찍을 때 까까 끄뚯을 부르며 얼른 오라며 손짓을 하자 그녀는 펑펑 눈물을 흘리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아이는 미국 보스턴에서 학교를 다니다 현재는 군 생활을 하고 있다. 다음 달이면 발리로 짧은 휴가를 오게 된다. 까까 끄뚯은 큰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내며 아직도 좋아하냐며 벌써부터 들떠있다. 그녀는 나의 발리 가족이다.

2022 년 8 월 하늘길이 열린 후 발리 국제 학교에는

많은 한국 학생들이 입학을 했다. 희한하게도 같은 한국인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딸아이에게 학교에서 한국사람을 보면 무조건 먼저 인사를 하라고 교육을 시켰다 나 또한 먼저 인사를 하려 노력을 한다 새로운 학부모 중 몇몇과는 모닝커피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을 했다. 어느 날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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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질문을 해가며 친목을 다져가던 중
살았다고 하니 까르르 웃어가며 나를 발리 국제 학교의 시조새라 불러주는 저학년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이 학교에 오래 다니긴 했구나 싶었다. 나름 열성 엄마라고 자부하며 아이들을 따라다녔다 학부모회의도 참석하고 꾸준히 영어 공부도 했다. 어느 날 학교 관련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교에서 학교
이사진을 뽑는데
14 년을 발리에서
운영
응시해 보라며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만 참석하면 된다고 했다. 한국 부모들이 교육에 관심이 많으니 서양인 부모들만 운영 이사진에 있으면 형평성에 어긋나니 관심을 보여달라고 했다. 남편과 큰아이와 함께 의논을 해보았다.

남편은 교육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좋은 경험일 것 같다며 한번 해보라 했다 하지만 나의 짧은 영어실력이 가장 걱정이 되었다 나의 고민을 이야기하니 큰아이가 “엄마 영어 잘해.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으면 해봐.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라 말해주었다. 아이의 “우리 엄마 영어 잘해. ”라는 말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서류심사를 통과 후 운이 좋게 이사장과의 인터뷰까지 통과한 나는 발리 국제학교의 학교 운영 이사가 되었다 월례회의만 참석하면 된다는 말과는 달리 잦은 미팅과 해외 워크숍 참석 등으로 바쁜 6 년의 시간을 보냈다 작년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큰 결심을 했다 학교 측에 사표를 제출 후 지금은 딸아이와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발리는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매력에 빠진 미래의 시조새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오늘도 학교에서 ‘헬로우 이부 수! 아빠 까빠르!” 하며 인사를 해주는 학부모들과 아이들의 모습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어본다 Nama Saya Ibu Su.

*시조새 : 조류 최고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화석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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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상 한국국제협력단(
인도네시아 사무소장상
일반부
KOICA)
Chuseok: Mantel Bulu Cerpelai 김형석 (PT. HANS CARPET 대표, 까라왕) 수필
추석 선물 밍크코트 Hadiah

서울 본사에서 인도네시아로 발령 받아 오기 전 ‘고향집에 계신 어머니께 추석 선물로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서울 마포에서 근무하던 회사로 외근하고 귀사 하는 중에 회사 근처에서 봉고차를 세워두고 여성용 롱코트를 팔고 있는 게 멀리서 보였다 호기심 반 그리고 업자의 호객에 나도 모르게 이미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가고 있었다. 차량 속에 잘 정리되어 걸려 있는 윤기 나는 밍크코트였다. 그들 말인즉 수출하고 일부 남은 옷이지만 옷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는 보세품이라며 조심스럽게 보여 주었고 나 또한 마포대로 건너편에 있는 진도모피 본사 건물 외벽에 걸려 있는 유명 연예인이 입고 찍은 광고를 봐 왔던 터라 가격만 된다면 어머니께 멋진 선물이 될 거라 믿고 흥정 끝에 기쁜 마음으로 1990년 당시 초봉 월급 40여만원에서 상당액을 들여 눈 딱 감고 구입했다. 그러고 나니 이제는 갑자기 추석날이 빨리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마침내 추석 연휴를 맞아 멋진 선물을 가지고 당당하고 우쭐한 맘으로 추석 귀성 열차에 올랐다

당시 나는 열차 안에서 눈을 감고 선물을 받고 기뻐하실 어머니의 모습과 형제들의 부러움...... 상상했다. 생각만 해도 맘이 뿌듯했다. 그리고 학창시절에 있었던 어머니 생신을 떠 올렸었다

나는 초등(국민)학교 5학년을 마치고 부모님 곁을 떠나 전주로 먼저 유학 중인 형 그리고 두 누님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한번은 전주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고향집은 전라북도 정읍시 신태인에서도 걸어서 10리는 족히 걸어가야 하는 시골의 한적한 농촌 마을이었다. 그래서 신태인에서 집과 가까운 나무다리(지명) 양조장까지는 완행버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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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는 더 걸어가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포장도 안 된 신작로 길을 흙먼지 날리며 달리는 완행버스는 그 당시 훌륭한 교통수단이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어머니 생신날 형님과 누님들 모두 신태인에서 이평을 거쳐 정읍 가는 완행버스 차 시간에 늦었다며 내가 고향집에 가는 것을 말렸다.
타고 다시 집까지 1키로 미터

오랜만에 가는 날이기도 하고 어머니 생신이어서 미루고 싶지 않아 나는 그래도 차 끊기면 뭐 걸어서라도 가겠다며 말리는 손을 뿌리치고 용돈을 모아서 산 태극무늬 원피스를 책가방에 담고 무작정 집에 갈 생각으로 자취집에서 나왔다. 일단 전주에서 신태인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탔지만 신태인에서 10리 길을 막상 걸어서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겁도 나고 후회도 조금 되었다. 그리고 배도 고픈 게 한숨이 되어 나왔다. 내가 탄 차의 옆자리에 앉으신 할아버지께서 자초지종을 들으시고 웃으시면서 힘들면 본인 집에서 재워 주시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도 난 꼭 오늘 밤에 집에 가서 어머니께 선물을 드려야 더 맘이 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시외버스는 3월 어느 토요일 어두운 밤길을 달려 신태인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내 눈은 걱정과 두려움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벌써 떠났어야 할 막차 완행버스가 엔진 고장으로 출발을 못하고 이제야 수리를 마치고 막 출발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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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인사를 넙죽 드리고 안도의 숨을 쉬며 버스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버스에서
걸어서 가야한다 숨을 몰아 쉬고 어디 어디에 비석 있는 무덤이 있나 미리 머릿속으로 새기고 걸음아 나 살려라 달음박질을 해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단숨에 집까지 내달려 왔다.
내려서도 1키로 미터는

월에 땀 범벅이 되어 대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내 모습을 어머니는 놀란 눈이 되어 반기셨고 난 어머니 품에 와락 안겼다. 그리고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어머니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그건 꼭 집에 어머니께 생신 선물을 드려야겠다는 간절함에 대한 응답에 감사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인지 힘든 해외 직장생활과 내 사업을 하면서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할 때 당황보다는 침착하게 걸림돌을 디딤돌 삼아서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의 수고보다는 말로나 글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유형, 무형의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이 있다 믿고 살아온 것이 여러 역경 속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다시 추석 전날 밤으로 시간을 되돌려 본다. 늦은 시간이 됐지만 모두 한자리에 모였고 형제들이 어머니께 하나 둘씩 선물 보따리들을 펼쳐 보였다. 이제 둘째 아들인 내 차례, 내가 “어머니, 이게 밍크코트예요 ”라며 자랑스럽게 펼쳐 보였다 그런데 다들 바라보는 눈길에서 걱정스런 기운이 흘렀다. ‘너무 비싼 걸 선물해서 모두 놀랐나!’ 근데 그것도 잠시 누군가의 입에서 “토끼털, 토끼털”하며 연한 웃음과 함께 세어 나왔다 난 서울에 가면 항상 조심하며 직장생활 하라던 어머니 말씀, 눈 뜨고도 코 베어 간다는 말씀. ‘아차! 내가 업자들에게 속은 겨’ 너무 창피하고 속상했다. ‘뭐시당가! 내가 속았단 거여! 이렇게 멋진 옷이?’ 난 믿고 싶지 않고 부정하고 싶었다. 사실 난 밍크털이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윤기가 흐르고 만져보니 부들부들 촉감이 좋아 토끼털인지 밍크털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그쪽으로는 문외한이었다 그때 당시에 밍크털이 여성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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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가 있는 고가 상품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정말 값진 선물이라며 잘 입겠다고 하셨던 그 때가 생각이 난다 그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당시 섬유 관련회사에 입사한 내 자신이 참 민망하다. 사실 글로 옮기는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올해 4월 11일에 어머니께서는 긴 병환을 뒤로하고 아버님 곁으로 먼 길을 떠나셨다 모자의 정이 깊어서 그랬는지 코로나로 인해 거의 3년 만에 병문안 온 이 둘째 아들을
99 꼭 보시고 가시려고 마지막 숨을 붙잡고 계시다가 나를 보시고 다음날 숨을 거두셨다 코로나 때문에 오지 못했지만 어머니께 너무 죄송했다. 외국에 살다 보면 주변에서도 부모님과 친인척 경조사에 함께 하기가 생각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 여러 번 어려운 고비를 넘겨가며
살아온 날이 더 많은
가빴던
몰두해 살아온 나는 명절 한번 제대로 때 맞춰 함께 보내지 못했던 불효자로 살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살아온 30년은 나의 젊은 청춘의 시작이었고 중년을 보내는 인생에 황금기였다. 과거 30년 전은 임신 중인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해외 직장생활이 쉬울 수 없었다 그래도 남편과 함께 하기 위해 고생을 감수하며 나와 머나먼 남쪽 섬나라에 와서 잘 견디고 적응하며 함께해 준 아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인도네시아를 떠나 해외출장이나 한국에 몇 주 이상 머물게 되면 이젠 인도네시아가 그리워진다 나처럼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리라
숨을 붙잡고 계시다가 둘째 아들을 꼭 보고 가시려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3년 전에 뵈었을 때는 그래도 마르시지는 않았었는데 뼈만 앙상하게 남은 마른 나무 잎새처럼 되어버린 어머니...... 힘드신 몸으로 가쁜 숨을 견뎌가며 기다리셨다 생각하니 마음이 저리고 쑤시는 것 같아 어머니를 껴안고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온 날 보다 인도네시아에서
삶, 바쁘게 일에만 치우쳐

그래서 수카르노하타 공항에 도착해서 과거 국제선 터미널 통로를 나오면서 느껴지는 특유의 냄새는 처음 올 때의 거부감보다 친근감이 더해졌다. 이제는 새로운 국제선 터미널을 통해 해외를 오가고 있어 편안함은 더하지만 구청사가 오히려 그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게 다 추억에 대한 집착인 것일까? 유행가 가사에서 다 정들면 고향이라 했던가. 그렀다, 인도네시아는 나에게 또 하나의 고향이 된 것이다. 사실 난 과거 인도네시아에 발령을 받고 신혼 초기라 회사를 그만 두려했고 처음 인도네시아에 출장을 와서는 음식과 기후 그리고 문화적 차이 등으로 다시는 인도네시아에 가지 않으려고 직장 상사와 다투었고 그렇게도 인도네시아가 싫어서인지 어떤 때는 몸무게가 10키로 이상 빠져서 공항에 마중 나온 아내가 못 알아볼 정도였다 하지만 나에게 인도네시아는 필연이었나 보다. 살다 보니 음식, 기후, 문화적 차이가 익숙해져서 이제는 그 차이를 못 느끼고 살고 있다. 내 몸도 인도네시아에 최적화가 된 듯하다.

이번 추석만큼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모신 선산에 꼭

가보고 싶은 맘에 일찍부터 서둘러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몇 주 전에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었다. 그러나 이번 추석 귀성길에는 아버님, 어머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은 없다. 다만 이젠 나이 60을 바라보는 둘째 아들의 마음을 산소에서 소리 내어 감사함을 전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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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내려왔다 나의
오래오래
‘어머니
수상작품
그리고 산소 길가에 피어난 자식에
어머니의 절절한 사연이 담긴 구절초의 사연을 생각하며
사연도 가을 길목에 추억의 꽃말이 되어 내 가슴에
남길 바란다.
사랑합니다 ’
101 학생부 대상 주 ASEAN 대한민국대표부대사상 무궁화와 연꽃 - 청와대와 보고르 대통령궁 방문기 -
한동훈 (ACS
8
) 수필
Mawar dari Saron dan Teratai
Jakarta,
학년

긴긴 코로나 팬데믹이 끝을 보인다. 며칠이 멀다 하고 바뀌는 사회활동 제한 조치(PPKM)에 마음을 졸이며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여름방학을 보냈던 우리 가족은 올해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 우리는 친구네 가족들과 청와대를 방문하기로 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여독 때문에 숙소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도 친구와 한 약속이나 지켜야만 했다. 터덜터덜 약속 장소에 나갔다 친구네 가족들은 이미 청와대 정문에 나와 있었다 청와대는 춘추문, 연풍문, 정문, 시화문을 통해 출입한다 그 중에서도 하얀 철문에 커다란 황금색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본 정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믿기지 않았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인도네시아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를 한국에서 만나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2 년 전, 코로나가 막 시작되고 친구가 사는 부산 해운대로 놀러 갔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청와대를 상징하는 푸른색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한자 여덟 팔 자(八) 모양으로 만든 지붕으로 조선 중기 건물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모르는 건 바로바로 찾아보는 엄마가 인터넷을 보며 설명을 하는 동안 나는 “새 신을 신고 팔짝 뛰어보자?” 이란 말을 중얼거렸다 진지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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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처럼 둘러친 본관은 흰색 벽 위에 청기와를 얹었는데 그 모습이 푸른색 도포 자루를 입은 선비 같았다. 본관 앞 대정원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종묘제례악 공연이 연주된다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는 시간이 맞지 않아 볼 수 없었다. 10 월 ‘한국 문화의 달’을 맞이해 인도네시아 한국 문화원에서 부산국악원을 초청해 연 국악 공연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설명을 듣고 나니 그제야 지붕 위 여덟 팔 자(八)가 보였다. 나는 친구와 숨은 그림 찾기를 했다. 북악산을

본관 옆의 언덕길을 따라 대통령 관저로 이동했다. 양산을 쓴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곳곳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팔짱을 낀 딸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관저는 대통령과 영부인이 진짜 생활하는 본채와 사랑방이다 청와대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라는 뜻의 '청안당'은 외부 손님들을 맞아 티타임을 즐기는 곳이라고 했다. 들어가지 못하게 줄이 쳐져 있었지만 열린 창문으로 안이 들여다 보였다.

“마인크래프트 게임으로 청와대를 똑같이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지?” 난 친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내기할래? 누가 더 멋있게 만드는지?”

게임 친구인 우리는 엄마들 몰래 게임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귀 밝은 우리 엄마가 우리 계획을 엿들었다.

“어머, 나랑 똑같은 생각을 했네! 심즈 게임으로 청와대를 만들면 재미있겠어. ”

난 처음 듣는 게임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심즈가 뭐야?” 난 그랬더니 돌아오는 엄마의 예상치 못한 답

“넌 잘 모르겠구나. 우리 때는 말이야, 심즈가 마인크래프트였어. 아빠랑 연애할 때 피시방에 가서 커플석에 앉아 심즈로 도시를 만들었어. 그때 너네 아빠가 엄마한테 왕궁 같은 집을 지어준다고 약속을 했는데……”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엄마는 어린 소녀 같았다. 유난히 사이가 좋긴 하지만 엄마 아빠의 데이트 장소가 피시방이라니 좀 의외였다 항상 올바른 모습만 보여주는 엄마 아빠가 피시방에서 몇 시간씩 게임을 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기뻤다. 사춘기가 되면서 엄마와 나 사이에 생긴 벽 하나가 허물어진 기분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멋있는 건물들이 나왔다 곳곳에 걸려있는 태극기와 무궁화 조각들, 금박을 입힌 봉황과 부드러운 곡선과 직선들 천장에 화려하게 매달린 샹들리에보다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인도네시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적인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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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접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대통령 회의실이다. 그런데 단체 관람을 온 할머니들 때문에 우리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지나가려고 해도 할머니들은 수다를 떨며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가이드가 나서서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인내심이 바닥난 우리는 귓속말로 투덜거렸다

“할머니들이 길을 막아서 사진 한 장 찍을 수가 없어. ” 그때였다. 우리 앞에 있던 할머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내가 죽기 전에 임금님이 살았던 청와대에 와 보다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네 ”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가 새침한 표정으로 면박을 줬다 “아우 촌스럽게 왜 이래? 시골에서 왔다는 티 내지 마 그런데 나도 참 좋다 보따리 안고 피난길에 올랐던 우리가 함께 청와대를 구경할 줄 누가 알았겠어?” 카랑카랑하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할머니들의 대화를 듣던 나는 할머니들을 흉봤던 일이 부끄러워졌다. 친구도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친구와 나는 약속 하나를 했다

“우리 60 년 뒤에 AI 가 디자인한 박물관에서 같이 만날래?”

“그래, 꼭이다! 만약 약속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우리는 웃으며 약속의 증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손바닥을 마주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컸는지 할머니들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죄송하다고 말하며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곳곳에서 한국의 미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웅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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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현대적인 건축물과 한국 전통의 건축양식들이 섞인 청와대를 구경하고 있으려니 몇
전 갔던 베르사유 궁전이 떠올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르사유 궁전이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으로 유명하다면 청와대는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함으로 유명세를 떨칠 것이다 이제 청와대가 개방이 되었으니 외국 관광객들이 더 많이 방문해 청와대의 아름다움이 알려졌으면 한다.

한국에서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방학이 끝나갈 무렵 인도네시아에 돌아왔다. 남은 방학 동안 느긋하게 게임을 하려고 했는데 가만히 둘 엄마가 아니었다 회사 일로 청와대를 함께 가지 못했던 아빠까지 합류해 우리 네 가족은 아침 일찍 보고르 궁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한 지 한 1 시간 뒤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차 속에서 창 밖만 보고 있으려니 지루했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보고르 궁의 자료를 찾아보았다. 여행을 갈 때마다 숙소와 맛집, 가 볼 만한 곳을 먼저 찾아보는 엄마한테서 배운 습관이다

보고르 궁은 건기에도 스콜이 자주 내려서 ‘비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보고르에 위치했다. 그래서인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보고르 끄분 라야 식물원(Kebun Raya Bogor)’이 있다. 200 년이 넘은 이 식물원 뒤에는 살락 산이 있고, 앞에는 보고르 대통령궁이 있다. 성수기 주말에는 3,000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식물원을 찾고 보고르 궁 역시 한 달에 천 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몰려든다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까지 찾아보고 나서야 차는 다시 속력을 냈다 집을 나선 지 2 시간 만에 보고르 궁 앞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우리 가족은 사람 키의 수십 배가 넘는 거대한 나무 사이를 걸었다. 마치 우리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온 소인이 된 기분이었다. 비가 흠뻑 내리는 날씨 때문인지 길가의 나무들은 하늘로 쭉쭉 뻗어 있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본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수십, 수백 개 세워놓은 것처럼 웅장했다. 동생과 난 파노라마로 사진 찍는 재미에 빠졌다. 중학생이 되자 숙제와 프로젝트, 시험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느라 머리에 갇혀 있었던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는 듯했다. 동생과 나는 비가 그친 초원을 달리는 얼룩말처럼 보고르 궁 매표소로 뛰어갔다. 줄이 어찌나 긴지 줄을 한참을 서서 겨우 입장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KITAS 를 보여주었더니 판매소 직원이 현지인 가격만 내라고 했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할인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매년 인도네시아 거주증 KITAS 를 연장하러 가는 일이 귀찮았는데 이럴 때는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조코 위 대통령이 지금 궁 안에 있어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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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최종 목적은 보고르 궁 탐방인데. 실망한 마음도 잠시. 궁전 앞에 엄청나게 예쁜 연꽃 저수지를 발견했다 뜨거운 적도의 날씨 때문인지 한국에서 보던 연꽃과 달리 짙은 자주색이었다

이런 순간을 놓칠 우리 가족이 아니었다. 꽃이 예쁘게 핀 순간을 놓칠 수 없었던 우리는 각자의 스마트폰을 열어 사진을 찍었다. 평소 인도네시아 소식을 빠짐없이 챙겨 보는 아빠가 창덕궁의 부용지와 보고르 궁의 연꽃 연못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은 여러해살이풀로 땅속줄기는 흙 속에 묻혀 있고, 가을이 끝날 때쯤 땅속줄기 끝이 부풀며 연근이 생긴다 둥근 방패 모양의 잎이 꽃을 보호하는 병사처럼 늘어섰다. 꽃은 7~8 월에 물속을 비집고 나온 긴 꽃자루 끝에 핀다. 연꽃 한 개당 예쁜 분홍색 색깔이 있다. 갑자기 머릿속에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연꽃

빈 초록 속살 가슴에

토도독 떨어지는 이슬 방울

진흙 뻘 속에서 피워낸

아름다운 연꽃 한 송이

해와 달의 틈바구니에 몸을 씻는다

정갈히 모은 두 손을 모아

수면 위에 꽃불 밝힌다

상처 난 줄기를 부둥켜안고 말라가는 꽃잎을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

세상의 잔물결에 흔들리지 않는 연꽃으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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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면서 국어 수업을 듣게 되었다. 국제 학교에 다니며 국어를 배우지 못해 아쉬웠었는데 국어를 배우며 글쓰기가 좋아졌다 그 중에서 시 쓰기가 가장 좋다 긴 산문이 익숙하지 않아 짧은 운문 속에 내 생각과 마음을 담아내는 작업이 즐겁다 이전에는 주말마다 두 살 아래 남동생과 엄마에게 국어를 배웠다. 여름방학 동안 청와대와 보고르 궁을 방문하는 것도 엄마의 계획이었다. 방학 때라도 늘어지게 쉬고 싶어 처음에는 질색을 했다. 하지만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얼이 담긴 두 곳을 갔다 오니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던 일이 미안해졌다 보고르 궁에 오는 사람들이 극찬을 한다는 독특한 디자인의 공연홀, 천 개의 상이 비친다는 마법 같은 거울을 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비록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지만, 보고르 궁의 위엄은 문을 지키는 군인에게도 느낄 수 있었다

“진짜 총을 들었네! 엄마, 군인 아저씨 나오게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

“동훈아, 같이 찍자고 말해봐. ” “에이, 안 된다고 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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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에 고민하던 나는 군인 아저씨에게 인도네시아어로 말을 걸었다. 어렵게 말한 것이 허무하게 군인 아저씨는 사진 촬영도 같이 하고 총까지 만져보라고 허락했다. 그날 찍은 사진을 첨부해 쓴 방학 에세이로 좋은 점수까지 받았다. 1948 년에 지어져 74 년 만에 국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를 방문한 사람들이 느끼는 애국심이 대한민국을 더욱 발전시키리라 믿는다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에 지어진 보고르 궁은 1744 년 8 월에 지어졌다. 네덜란드가 자와 섬을 직접 통치하고, 행정에 간섭하려던 목적으로 설치되어 아쉽긴 하지만 인도네시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건물이다.
“된다고 할지도 모르잖아? 시도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야. ”
108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유구한 역사를 이끌어가는 대통령들이 집무를 보는 장소를 돌아보며 양국의 역사까지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가족은 ‘궁’처럼 커다란 존재이다. 꽃 한 송이를 보고 있더라도 마지막에는 엄마의 얼굴을 떠올린다는 건 비밀이다. 수십 년이 흘러서 나의
중학교 2 학년 시절을 회상한다면 나는 청와대와 보고르 궁을 먼저 떠올릴 것 같다. 야외에서 슬쩍슬쩍 마스크를 벗으며 뛰어다닌 중학생의 내가 추억 속 앨범의 사진마다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난 사진을 볼 때마다 떠올리겠지 방학이라 게으름을 피우려는 우리들의 엉덩이를 두드려 가며, 나와 동생의 짜증을 다 받아주면서 청와대 관람을 예약하고 보고르 궁의 지도를 들여다보던 부모님의 미소를. 궁처럼 듬직한 부모님의 뒷모습을.

수필

파푸아

Papua 송지섭 (JIKS, Jakarta Indonesia Korean School, 10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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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도네시아한인상공회의소회장상
학생부 최우수상

미쳐 지어졌던 파푸아의 마을들. 그곳은 어린시절 ‘넌 이랬단다’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사진 속에 남아 내가 그저 그러 했으리라 했던 것일 뿐 온전한 나의 추억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직장이 그곳이라 매년 방학 때마다 나는 혼자 아버지를 방문했다 중학교 1 학년 때 혼자서 밤 비행기를, 그것도 2 번의 경유 끝에, 9 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아버지께서 나를 애타게 기다려 주시던 머라우케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시 긴 비행의 여독을 뒤로한 채, 차를 달려 5 시간을 더 가야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동안

110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누구에게는 사진 한 장의 환상 속의 그곳이 된다 빨간 흙탕물 강이 맑은 물이라는 것을 모른 채 멋 모르고 더러워하던 그 곳은 내가 자란 곳, 내가 뛰어 놀던 놀이터였던, 파푸아이다. 그곳은 한국을 가기보다 더 어려운 초자연 속의 인간의 손길이 조금이나마
땅과 나무들, 엄청난 자연 경관이 나를 맞이하여 주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저렇게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한데
저 지역들에는 건물을 세우지 않고 농사도 짓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생각을
하다가 도저히
긴 비행의 피로를 풀기 위한 잠을 청하였고, 내가 일어났을 때 주변은 건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온통 넓디 넓은
, 왜
.
잠시
모르겠어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아버지, 왜 저 넓은 곳에는 사람도 살지 않고 땅을 저렇게 놔두는 거에요?” 아버지께 질문을 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말씀해주셨다 “지금은 건기라 저렇게 나무와 땅들이 보이지만, 비가 오면 이곳은 전부 늪지로 바뀌어 버린단다. 근데 또 비가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땅이 드러난단다. ” 굉장히 놀랐고, 사실 상상이 잘 안 됐다. 저렇게 넓은 땅들이 다 늪지로 바뀐다니. 다시 주변을 둘러보던 중 왠 이상한 기둥들이 보였다 저게 무엇일까? 하며 아버지께 다시 한 번 여쭤봤다 그러자 아버지는 개미집이라고 설명해주셨다 나는 의아해하며 개미집은 원래 땅 밑에 지어지는 것 아니냐고 다시 여쭤보자, 아버지께서는 늪지대 개미집들은 하늘을 향해 땅 기둥을 높게 만들어 생존을 한다고 대답해 주셨다. 난 다시 한 번 자연의 섭리에 놀랐다. 신기하게도 높게 세워진 개미집들에서 내 눈을 뗄 수 없었다. 다들 이리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구나. 저 개미들의 지혜로 쌓아 올린 저 개미집들 얼마나 많은 희생과 실패로 이루어낸, 끊임없는 발전 끝에 이루어낸 지혜의 산물인 걸까? 난 개미보다 몇 백배, 아니 몇 천 배는 더 큰 인간인데, 아무것도 비교할 바가 없던 내 스스로에게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꼈다. 배울 점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를 번갈아가며 달린 끝에 아버지의 집에 도착하였다 온통 주위엔 팜 야자수 나무들이 가득했고, 그 넓이는 내가 여태까지 본 그 어떠한 것보다 넓게 느껴졌다. 시선을 위로 옮기자, 마치 나를 반겨주는 듯 엄청난 자태와 한 폭의 그림같은 하늘이 나를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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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모여들었다 동물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열심히 따라다니는 동물들. 2 주간의 파푸아 생활이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자카르타에서의 방학은 12 시부터 시작하였다. 물론 오후 12 시이다. 늦게까지 게임을 하던 난 새벽에 자고 12 시, 늦게는 1 시에 일어나는 정말 건강하지 않은 삶을 살았었다.
. 집 앞 마당을 건너는 오리떼들,
있다 왔는지 염소 가족 한 무리가 아빠 앞에
아끼고

그러나 기상은 새벽 5 시였다 아버지는 그 넓은 팜 야자수 농장을 기획 및 관리하시는 전문가다 아버지를 따라 일어나 같이 사무실로 간 후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농장과 공장을 견학했다. 얼마나 넓은지 전부 관리하시는 건 아무래도 힘들고 인원들이 꽤 많이 투입된다고 설명해 주셨다. 1 시간을 쉬지않고 달려도 끝에서 끝까지 가는 것 조차 어렵다고 하시니, 그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끝없이 펼쳐진 야자수들의 향연. 이렇게 넓은 곳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아버지가 새삼 더 자랑스러워 졌다 그렇게 첫 날을 마무리 하려던 찰나, 아버지는 나를 부르시고는 잠시 따라 나오라고 하셨다. 갑자기 그러시기에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하며 아버지를 따라가자,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눈 앞에 펼쳐졌던 그 광경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고, 가히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광경 중 최고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기억은 당시 노을의 영향인지, 정말 감격스러웠다 오랜만이었다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들어가 상쾌한 공기, 백지처럼 깨끗한 하늘, 그리고 내 코를 간지럽히는 흙 냄새들이, 전부 나에게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오랜 고향에 돌아온 느낌처럼 편안하고 푸근한 하루였다. 모든 점이 좋고, 모든 점이 완벽했던 나의 파푸아 일지에서 내가 꼽는 최고의 순간은 바로 낚시, 자연 한복판에서 즐기던 바로 그 낚시였다. 아직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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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20 분 정도 간 후 나온 그 강의 모습을 말그대로 자연 그 자체였던 광경은 나를 흥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아버지는 내가 오신다는 말에 낚싯대를 준비해 주셨고, 모든 준비해 놓으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이 강에는 무슨 물고기가 사는지, 얼마나 큰지 등을 설명해 주셨고, 나도 큰 기대감을 가지고 아버지를 따라갔다. 첫 캐스팅이 있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멀리 던졌고, 그렇게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 입질을 기다리던 중, 묵직한 첫 한 방이 나를 반겨주었다. 엄청난 쾌감이었다. 그 손맛,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낚시라는 취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 경험은 쉽게 느낄 수 없었던 경험이고, 특별했다 오래 떨어져 홀로 일하시던 아버지와 함께 하니 더욱 더 뜻 깊은 기억이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릴 땐 뭣 모르고 칭얼대고,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다고 고집만 부리던 철부지였다면, 지금은 떠나 지낼 줄 아는 어엿한 자식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떨어져 지내길 오래, 그 영향인지 아버지와 나는 더욱 더 각별한 사이가 된 것 같다 이제는 직접 찾아가며 시간을 보내고, 그 1 분 1 초가 아깝지도 않을 정도로 그 모든 시간을 즐기고, 사랑한다. 모든 것은 운명을 따르듯, 나 또한 그러했다.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모든 상황이.

인도네시아는 참 특이한 나라다. 15 년째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 난 모를 것 없이 정말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모르는 점이 정말 많았다 특히 아버지에게 갔던 파푸아 방문을 통해 깨달았다. 난 분명 다 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정도에 가까웠다. 그렇게 깨달았다. 내가 보고있던 건 이 아름다운 나라, 심지어 이 아름다운 도시의 작은 일부분이었구나. 아, 깨달으니 마침내 보이니, 그 모습은 내가 모르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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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화음 Akor Tonika

114 학생부
한인니문화연구원장상
최우수상
조규희 (BSS, BINUS School Simprug, 8학년) 수필

‘끼이익’, 문을 열었다 콩닥콩닥 뛰는 마음은 박자를 빠르게 탔다 준비한 곡은 어떻게 불렀는지, 아예 기억도 없다 지정곡인 애국가의 힘찬 전주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 나만 보고 계신 반주자 선생님, 지휘자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친 순간, 얼음이 돼 버려서 그만 입을 떼지 못했다. “자~자, 다시!” 지휘자 선생님 한마디에, 애국가 전주가 다시 시작됐다. ‘ 놓치지 말아야지!’ 눈에 힘이 들어갔다 고개로 박자를 맞추며,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이번에는 딱 맞춰서 노래를 불렀다 우여곡절 끝에 첫 오디션을 통과해 《자카르타 한인 어린이 합창단(JKCC)》의 정식 단원이 되었다.

한국에서 돌잔치를 앞당겨 치르고, 한 살이 되기 전에 자카르타로 이주했다. 여기서 걸음마를 떼고, 옹알이는 ‘엄~마’ 다음으로 ‘아빠 이니(Apa ini, 이거 뭐야)?로 시작했다 애국가보다 인도네시아 라야를 먼저 배워 불렀다 스펀지가 물을 쭉 빨아들이듯 인도네시아 문화를 흡수했다.부모님께서는 한국 문화도 잃어버리지 않게 매년 여름방학이면, 한 달간은 한국 유치원을 3 년간 보내주셨다. 한국 초등학교에서 체험 수업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딜 가든 잠깐 찾아온 손님처럼 환영받았을 뿐, 낯설고, 어색했다 매번 편안한 자카르타 친구들과 집이 그리웠다 나는 김치보다 나시고랭, 깡꿍이 익숙하고, 고추장보다 쌈발이 좋았다

이런 나에게 엄마는 자카르타에서도 한국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주말이면, 놀이 품앗이, 한글 학교에도 참여시켰다. 그리고 한참 ‘트롤’ ‘오페라의 유령’ ‘사운드 오브 뮤직’ 등 뮤지컬에 빠져 주제곡을 입에 달고 살던 나에게 《자카르타 한인 어린이 합창단(JKCC)》의 오디션을 봐 보자고 권하셨다. 한창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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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쾌히 해 보겠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쉬울 줄만 알았던 오디션 준비는 연습할 때마다 지정곡 가사가 헷갈렸다. 결국엔 애국가 4 절의 가사를 종이에 여러
철저히 외웠다. 그 덕분에 오디션에서 지정곡을
.
번 써 가면서
부를 때는 자신이 있었다

‘끼이익’ 문이 열었다 먼저 온 20 여 명의 시선이 밤송이 가시처럼 꼭꼭 찍혀서 따끔거렸다. 나는 서둘러 신입단원 동기들 옆자리에 앉았다. 첫 연습 날 배운 곡운 “바람의 빛깔” 이다.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 없다’는 포카혼타스 여 주인공이 말하는 가사가 아름다운 곡이다. 두 번째 곡은 ‘정선 아리랑’으로 한국 민요를 합창곡으로 편집한 곡이다 내 옆의 흥이 많은 준이는 후렴구에서 절로 몸을 흔들어 모두에게 웃음을 줬다. 준이 덕분에 나는 합창부 연습시간이 재미있고, 즐거웠다. ‘아 에 이 오 우’ 울림이 큰 선생님을 따라 배우는 발성 수업도 좋았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다른 단원들 앞에서 한 명씩 지명에서 ‘해 봐라’ 하실 때면,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당연히 내 차례가 되면, 개미 목소리가 됐다. “무대에 서면 모든 사람이 너희만 바라 볼 거다 주목받을 때 당당하게 노래할 수 있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며 선생님께서는 자주 한 명씩 세워서 노래를 하게 하셨다. 그렇게 연습하니, 점점 용기가 생겼다. 나중엔 잔뜩 굳었던 표정도 웃으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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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들과는 매주 토요일 3 시간씩 연습과 간식을 함께 먹으면서 친해졌다. 공연이 있는 날엔 총연습, 무대 리허설과 의상, 헤어 준비 때문에 대기시간이 길었다. 선배 언니들에게 종이접기도 배우고, 삼삼오오 모여서 보드 게임도 했다. 한번은 또래 친구가 ‘요즘 들어 부쩍 엄마 아빠가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데, 어젯밤에도 부모님이 소리소리 지르며 싸워서 속상했다’는 말을 해서 놀랐다 인도네시아 친구들과는 나눠 보지 못한 속 깊은 이야기라, 왠지 서로의 비밀을 지켜줘야 하는 찐한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문화와 외교를 교환하는 자리다. 이번 공연은 작년과 다르게 인도네시아 어린이들로 구성된 《자카르타 한인 어린이 합창단(JKCC)》과 함께 무대에 서게 되었다 친선을 위해서 서로의 애국가도 함께 부르고, 인도네시아 전통 곡인 ‘Bengawan Solo’와 ‘독도는 우리 땅’을 합동 공연으로 선보였다. 나는 인도네시아 어와 한국어 둘 다 익숙한 상태에서 가사를 암기하기 쉬웠지만, 인도네시아 합창단원들은 한국 어로 된 애국가와 ‘독도는 우리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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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 월이면, 한국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국경일’ 행사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는 공연을 했다. 자카르타에 주재하는 여러 나라의 대사님들과 관계자들을 초청해서 우리의
,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외웠을 지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프로답게 한글 노래를 잘 불러줬다. 대기실에서도 한국에 대해 여러 가지 호기심을 보이며, 질문했다 대사관에서 준비해 준 한식 도시락도 같이 나눠 먹었다. 나는 그 친구들이 맛있어 하는 잡채, 불고기, 된장국 등의 이름을 알려줬다.
‘끼이익’ 문을 열었다 이제는 하나도 낯설지 않은 연습실 야외활동을 좋아해 까맣다는 아현이와 내성적인 다예 언니, 장난꾸러기 현준이와 은찬이, 동생이지만 열심히 하는 준석이와 하은이, 대건이와도 친구가 되었다.
가사를 외우느라 무척 고생했을 것이다 내가 처음 오디션 준비로 애국가를 어렵게 외워 본 경험이 있어

공연을 통해 다른 나라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일도 보람되지만, 이렇게 같은 또래 인도네시아 친구들에게 한국의 음식을 알려주고, 함께 즐길 수 있어 좋았다 특히, <2018 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아 게임> 기간에는 한국 문화를 세계 스포츠 관계자와 기자들 앞에서 선보이는 공연도 했다. 한국에서 온 문화부 장관, 국회의원도 참여하고, 연예인들도 출연하는 큰 무대였다. 다른 공연보다 준비한 곡도 많았고, 연습 기간도 길었다 공연 당일에서는 특별히 합창부 전용 버스로 이동했다 공연장 무대는 높은 단상 위에 세워졌고, 화려한 조명을 보니, 부쩍 설렜다

그런데 가설로 세워진 무대 다 보니, 무대 뒤의 대기실은 열악했다. 전기 배선이 안 들어와서 점심 도시락을 먹을 때는 엄마들이 핸드폰 조명 기능을 켜서 빛을 비춰주었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우린 마지막 연습을 했다. 무대 리허설을 할 때는 한국에서 온 기자들이 사진 촬영도 하고, 취재도 했다 나중에 보니, 노래하고 있는 내 얼굴이 크게 기사와 함께 신문에 실렸다 지금도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자카르타 교민 어린이’라고 검색어를 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사진이 바로 ‘나’다. 한국 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 삼촌들이 모두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이 공연에서는 우리 합창팀이 마지막에 한복을 입고, 나와서 ‘원더풀 코리아’를 불렀다. 모두가 함께 열광해주고,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공연이 끝난 후에 한복을 갈아입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한 외국인이 나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다 나는 그분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 어린이 합창단 공연이 최고였다고, 감동적이었다.”는 칭찬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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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국제올림픽(IOC) 위원이라는 명함과 함께 다음 올림픽 개최지인 도교 올림픽의 마스코트 ‘미라이토와 소메이티’ 기념품을 선물로 주셨다 앞으로 2 년이나 더 남은 올림픽의 기념품을 특별히 선물 받아서 아주 좋았다. <2018 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아 게임> 공연은 앙코르를 받아, 그 다음 주 주말에도 무대에 다시 섰다. 2 회 연속 공연을 한 후에 나는 몸살을 앓았다. 입안이 다 헐고, 열도 났다 아무리 대기 시간이 길고, 힘들어도 이상하게 무대에 서서 노래 할 때면, 방긋방긋 웃음이 나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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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솟는다는 말이 딱
그런데
내려오면, 바로 피곤하고, 등교도 못할 만큼 힘들었다 ‘끼이익’ 문이 닫혔다. 2019 겨울, 한국에 ‘코로나 19’가 극성이란 뉴스를 접했다 《자카르타 한인 어린이 합창단(JKCC)》 이름으로 성금을 모아서 한국 적십자에 위로 지원금을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카르타에서는 ‘코로나 19’가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2020 년 3 월부터 인도네시아에서도 ‘코로나 19’ 팬데믹이 시작됐다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엄마는 마스크, 손 소독제 구매를 못 해서 쩔쩔맸다 모두가 마스크를 꽁꽁 껴야 하는 공포감 밀려들었다 호흡기로 바이러스가 전염된다니, 당연히 합창부 활동도 중단되었다. 예정되었던 공연들도 줄줄이 취소되었다.
맞았다
무대에서

그리고 언제 다시 연습실 문이 열리게 될지 기약이 없었다 여전히 2 년 넘게 합창부 연습실의 문은 닫혀있다 단원으로 활동한 2 년여간의 악보집을 넘겨 보니, 추억이 방울방울 맺힌다.

R-TV 생방송에서 ‘타요타요’ 만화 주제곡을 율동과 함께 부르고, 방송국 더빙 실에서 한국어 녹음도 했다. ‘코로나 19’가 아니라면 더 많은 활동과 추억을 만들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끼이익’ 문을 열고 싶다 외국 생활은 더 넓은 세상을 공유하는 듯하지만, 실제는 단 하나의 세상에도 속하지 못한 주변인 같은 심정일 때가 많다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에서도 어설픈 외국인 대접을 받을 때마다 그랬다. 어쩐지 둥둥 물 위에 뜬 수초처럼 이리저리 뿌리를 못 내리고 부유하던 나의 정체성이 《자카르타 한인 어린이 합창단(JKCC)》 활동을 통해서 한국 문화에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한마디로 ‘으뜸 음’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카르타 한인 어린이 합창단(JKCC)》 활동을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리는 공연을 할 때마다 뿌듯했다

더 중요한 건, 내가 태어난 대한민국과 내가 성장해 온 인도네시아 둘을 조화롭게 ‘으뜸화음’으로 소리 낼 수 있게 되었다. 둘의 문화를 함께 배우고, 노래한 합창부 연습실의 문이 어서 빨리 열리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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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학생부 최우수상 한-인니산림협력센터장상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의 한국인
Bendera pada Hari Peringatan Kemerdekaan Indonesia 신창민 (AIS, Australian independent school, 9학년) 수필
기수 Orang Korea Pembawa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 행사가 있기 하루 전이었다 나는 불안해서 인도네시아 독립 기념일 행사 동안 입을 제복을 계속 입었다 벗었다 하였다. 옷이 너무 작거나 크지는 않은지, 옷에 구멍이 있거나 찢어지지는 않았는지, 계속 확인하였다. 평소처럼 할 숙제 들이 많았지만, 너무 긴장되었는지 따라 숙제도 잘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왕좌왕 하 다가 12시가 넘었고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몇 주간의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날은 1학기가 거의 끝날 무렵의 인도네시아어 수업 시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컴퓨터를 켰고,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창 밖의 햇볕이 뜨거운 날이었다. 선생님께서 는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나는 인도네시아인이 아닌 한국인이자 외국인이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에 관해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나마 알고 있던 것은 한국의 광복절 이틀 후인 8월 17일에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선언했다는 것 정도였다. 선생님께서는 8월에 있을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 행사에 우리 반이 중심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우리 반에서 학교생활을 성실히 한 학생 3명을 뽑아, 행사 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기수로 세울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당연히 다른 학 생들이 기수로 뽑힐 것으로 생각했고, 그렇게 1학기가 끝났다 그리고 방학 동안 독립 기념일 행사에 관해서는 완전히 까먹고 있었었다. 어느덧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했다.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친구 들과 점심을 먹고 있었을 때였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다 부르시더니 기수 3명이 누군 지 발표할 것이라고 하셨다 “보던, 니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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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그 친구들은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은 누구지?’ 친구들을 돌아보는 찰나,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부르셨다 나는 내가
들은 게 아닌지 친구에게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른 게
는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른 게
했다.
이름이 불렸다
평소에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이기 때문 에 속으로 걔들이 뽑힐
잘못
맞는지 재차 확인하였다 친구
맞다고

나는 내가 뽑힐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 놀랐다 우리는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께서는 이번 독립기념일 축하 행사가 코로나 이후 학교 에서 열리는 가장 큰 행사이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행사에 서 기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행사 전까지 매주 두, 세 시간씩 수 업을 빠지고 연습해야 한다고 하셨다. 친한 친구들이 기수로 뽑힌 나를 무척 축하해주었다. 솔직히 나도 내 이름이 불려서 뿌듯하고 수업을 빠질 생각에 기뻤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기쁜 마음보다 걱정이 더 컸다. 코로나 전에도 여러 행사가 많았지만, 나는 한 번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 본 적 이 없었다. 올해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는 나보다 뛰어난 학생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도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인도네시아인도 아니고 학교에는 나보다 더 키 크고 공부도 잘하는 애들도 많은 데 굳이 왜 나를 뽑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쟤가 왜 뽑혔을까?’ 하고 사람들이 무시하면 어쩌지, 선생님이 나를 뽑으셨는데 내가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 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도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독립 기념일의 국기 게양, 한국에서라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인도네시아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요한 일을 맡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첫 번째 연습 날이 다가왔다 선생님께서 우리 기수 3명을 위한 행사용 제복을 가져 다 주셨다 예전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모자와 스카프도 있었다 제복을 챙기고 행진 연습을 하기 위해서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인도네시아 선생님들께서 운동장에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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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피곤해졌다. 처음에는 설레는 마음뿐이었지만, 쨍쨍한 적도의 태양을 맞으며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순조롭게 흘러갈 줄
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행진할 때 무슨 자세를 어떤 타이밍에 취해야 하는지 등 기초적인 것부터 배웠다. 계속 몸을 움직이다 보니, 땀이 송골송골 나기 시작했고
동안 연습할 생각을 하니
알았던 연습이 그렇지 않았다

연습은 대부분 인도네시아어 시간에 있었고, 우리 기수들이 연습할 동안 다른 학생들 은 인도네시아 국기로 학교를 꾸미거나 행사 때 공연 연습을 하였다. 가끔 인도네시아 어 수업이 없는 날에는 점심시간을 쪼개 연습을 하였다. 점심을 먹고 친구들과 운동을 하거나 게임을 하면서 놀고 싶었지만, 연습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놀지 못하였다 밥을 바로 먹고 배부른 상태로 뜨거운 햇빛을 계속 받으며 오랜 시간 연습을 하니 속이 안 좋았던 날도 많았다. 연습을 시작하고 2주가 지났을 즈음에, 기둥에 깃발을 묶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 과 정은 매우 중요하고 어려워서 꾸준한 연습이 필요했다. 그런데 다른 기수 친구들이 연 습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거나, 종종 연습 시간에 지각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연 습하지 못한 날도 있었고 연습 시간이 길어지기도 하였다 연습을 끝낸 후 다음 수업을 들으러 교실로 돌아갔을 땐 이미 수업이 시작해서, 수업에 늦은 날이 많았고, 숙제가 매 번 더 많아졌으며 가끔은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연습은 생각만큼 재미있지도 않았고 매우 지루했다. 그나마 기수 친구들과 얘기를 하 면서 지루함을 달랬지만 가끔은 나를 끼워주지 않거나 무시하고 둘이서만 얘기하는 것 같았다. 아마 셋 중에 나만 한국인이어서 차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힘든 일이 계 속 일어나다 보니 외롭고 속상했고 내 나라의 독립기념일 행사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나 싶었다. 어쨌든 선생님들께서 나를 믿고 나에게 주어진 일이었기 때 문에, 나는 포기 하지 않았다. 매주 연습은 계속되었고 완벽하진 않았지만, 점점 합이 맞아가고 있었다 많은 우여곡 절 끝에 마침내 마지막 리허설 날이 다가왔다 연습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 리끼리 합도 완벽하지 않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마지막 연습이라니 믿기지 않고 너무 불안했다 평소와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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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리허설이어서 우리 기수들은 축하
덥고 불편했지만 다음 주면 모든 것이
행사 때 입을 제복을 입었다.
끝나기 때문에 꾹 참았다. 리허설이지만 많은 사 람이 우리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실감이 나기 시작했고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실수 없이 우리는 리허설을 잘 마무리 하였다 선생님이 너무 고생하셨다면서 아이스크림을 주셨다. 별거 없는 아이스크림이었지만 그날따라 훨씬 시원하고 달달했다.

눈을 뜨니 아침 6시였다 평소라면 6시 반에 일어났겠지만, 학교에 일찍 가서 준비하 기 위해서 30분 일찍 일어났다. 오늘이 정말 드디어 행사가 있는 날인지 믿기지 않았다. 정신 차리기 위해서 얼른 샤워를 했고 밥을 우걱우걱 먹었다. 마침내 학교에 도착했고 사람들이 행사 준비를 하고 친구들이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아 이제 해야 하는 구나!’ 하고 실감이 들었다. 행사하다가 배가 아프면 어쩌지, 행진하다가 갑자기 넘어지면 어쩌지, 몇 주간에 준비 가 물거품이 되는 건 아닌가 하고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원래 불편했던 제복은 오늘 따라 더 불편했고 태양도 내 마음이 타들어 가는 것을 알았는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행사가 시작이 되었고, 행사장은 엄청나게 붐볐다. 행사장 주변을 보니 인도네시아 국 기가 엄청나게 많이 걸려있었다 ‘이게 진짜 인도네시아 기념일 행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빈석을 보니 어머니께서 다른 어머니들과 앉아 계셨다. 어머니 앞에서 한다고 하니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땀이 났다. 개회사와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끝 나고 우리, 기수가 나설 차례가 되었고 우리는 행진을 하였다 많은 사람의 시선이 전부 우리에게 집중되어 있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떨렸고 주변 반 응이 어떤지 보고 싶었지만 나는 앞만 보고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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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깃발 앞에 도착했고 온몸에서 땀이 뻘뻘 나고 있었다 다른 기수가 줄을 풀었 고 깃발을 기둥에 묶었다. 깃발을 딱 펼쳤는데 줄이 엉켜버리고 말았다. 연습 때도 자주 엉키더니 또 엉켜버린 것이다. 행사 중에 실수가 생기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원상 복귀시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줄을 다시 풀기 시작했다. 깃발을 다시 펼치니 빨강과 하양의 인도네시아 국기가 보였고 이 제 드디어 내 차례였다. 인도네시아 국가가 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깃발을 올리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올려도 안 되고 너무 느리게 올려도 안 되었다. 노래에 맞춰서 올려야 한다. 나는 계속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그렇게 앞만 보며 깃발을 계속 올렸고 2분가량의 국가가 오늘따라 훨씬 길어지고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인도네시아 국가가 끝났을 때 깃발이 기 둥 위에 도착했고 인도네시아 깃발이 빛나며 멋지게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는 깃발을 보고 경례를 하였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또 행진하였다 드디어 끝낸 것이 다. 다리에 힘이 쫙 풀리고 그동안 연습했던 시간이 다 떠올랐다. 힘들었던 기억들 재미 있었던 기억들, 우리가 연습한 시간은 몇 주 동안이었는데 몇 분 만에 끝나버리다니 좀 허무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다 같이 해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전체 행사가 끝나고 나는 모자와 스카프를 바로 집어 던졌다. 친구들과 서로 고생했 다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고 다 같이 제복을 입은 채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보 니 내려간 안경과 젖은 머리 때문에 내가 너무 못생기게 나왔지만 그래도 함께 웃고 있 는 사진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엄마에게 당장 달려가 안겼다 엄마는 나를 기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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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도네시아
소통하며
지고 있었던 것 같다 크고 작은 일들이
결국
이미 인도네시아
.
하셨고 이모들도 엄청 멋있었다고 칭찬해 주셨다. 나는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독립기념일 행사는 정말 나에게 의미 있는 날이었다. 그동안 나는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주로 한국인 친구들과
지냈었다. 어쩌면 나는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는 친해지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가
많았지만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다 같이 해냈다. 나는
, 이 사회의 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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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망고나무

Pohon Manggaku

128 학생부 우수상 한인기업가상 PT. TAEWON INDONESIA
오수아 (SPH, Sekolah Pelita Harapan LIPPO Cikarang, 12학년)
수필

나는 인도네시아의 어느 마을, 까사델라고에 살고 있다. 2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인도네시아에 오게 되었고, 내가 4 살 무렵, 동생이 태어나기 한두 달 전에 이곳에 이사 왔다고 한다. Casa Del Lago, 스페인어에서 번역하면 호숫가의 집,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호숫가에 위치한 아늑한 집이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사할 당시 어머니와 함께 호숫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난 무척 신이 나 있다. 어머니는 사진 속의 그날 이 동네를 처음 와 보시고 한눈에 반했다고 하셨다 주택단지 안에 있는 파란 하늘을 비추는 호수와 집 뒷마당에 있는 정자 위로 흐드러지게 분홍 꽃을 피우는 CEMPAKA 나무는 14 년이 지나 내가 봐도 아직도 매력적인 집이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벌써 13 년이 되었다. 시간은 맑은 날 하늘의 구름처럼 안 움직이는 듯싶다가 어느새 보면 빠르게 멀리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잎이 무성한 동네의 가로수들은 하늘을 뒤덮어 초록 터널길을 만들어 주었고, 노을이 질 때면 붉게 물드는 호수가 아름다워 잠시나마 여기가 발리인가 싶어진다

비록 한적한 동네라 집들이 많지 않아 흰개미도 많고 뱀도 자주 출몰하고 심지어 비아왁이라는 도마뱀도 호숫가에 살고 있지만 나와 내 가족들은 까사델라고 이 집을 너무 사랑한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이곳이 내게는 추억 가득한 고향이다. 이 집에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망고 씨를 심었다 너무 맛있는 망고를 먹고는 이런 망고나무를 가지고 싶다는 나의 소망에 어머니가 직접 땅을 파서 심어 주셨다. 시간이 지나고, 심은 망고 씨를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마당에 새록새록 자라난 조그마한 나무를 자세히 보니 망고 나무였다! 예상치 못한 소소한 발견은 엄청난 행복을 가져와 주었다 너무 맛있어 마당 한구석에 심었던 씨가 이리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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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니 너무나도 반갑고 설레었다 그 망고나무는 쑥쑥 자라 키도 크고 잎도 나름 무성해졌다 하지만 나무는 빨리 열매를 먹어 보고 싶은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십 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열매는 커녕 꽃조차 피워주지 않았다. 열매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땅이 너무 척박해서 열매가
않는 것인 것 같아,
쌀뜨물과 계란껍질같이
주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열매는 열리지 않았다
열리지
지극정성으로
비료로 좋다는 것들을 나무에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상기된 목소리로 나를 2 층 발코니로 불렀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열매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을 알던 어머니가 자랑하시듯이 망고 꽃을 보여주셨다 많지는 않지만 분명 하얗고 아기자기한 꽃들이 피어 있었다. 나는 매일 너무나 설레는 마음을 안고 발코니에 기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망고 꽃이 열매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망고가 탐스럽게 무르익을 때쯤, 나는 더 이상 그 망고나무를 쳐다볼 수도 없게 되었다. 끔찍하고 가슴이 아팠던 그날 그날 나는 나의 소중한 가족을 망고나무 아래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나는 이 일이 나에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7 살이 되었을 무렵 2 개월밖에 안 된 닥스훈트 강아지가 우리 집에 왔다 긴 몸에 겨우 달린 듯한 짧은 다리가 너무 귀여워 어머니에게 감사합니다! 을 몇 번이고 외쳤다. 까맣고 기다란 몸에 짤막한 다리와 코끼리같이 큰 귀를 가진 강아지에게 우리는 SHort legs and BIg ears 의 뜻으로 쇼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쇼비는 우리와 함께 자랐다. 우리는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쇼비는 자기만 예뻐 해달라고 떼를 쓰다가도 밖에서 낯선 소리가 나면 귀청이 떨어져라 짖었다 짖는 소리가 너무 커서 밖에서 들으면 “저 집에는 아주 큰 개가 있겠구나. ” 하며 쉽게 우리 집에 도둑이 들어올 일은 없을 것이라며 어머니가 참 좋아하셨다. 그렇게 쇼비는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파수꾼이 되었다. 쇼비가 한 살이 되었을 즈음에는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마당에 나타난 뱀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고 멀리 날려버린 후 자랑스러운 듯 꼬리를 신나게 흔들었다 쇼비 덕분에 우리 가족은 걱정 없이 마당에서 분홍 꽃을 주워서 소꿉놀이도 하고 행복한 나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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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놀아주는 것 밖에 해주는 게 없는데 쇼비는 우리를 도둑과 뱀에게 지켜주었고
때마다 꼬리가 떨어져 나가라 엉덩이를 흔들며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과 행복을 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잘도 흘러 나와 동생은 훌쩍 컸고, 쇼비는 여전히 짧은 다리로 우리를 쫓아다니느라 뒷마당에서 늘 분주하지만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보낼
있었다

그날은 어머니와 함께 해가 지기 전 쇼비와 호숫가로 산책하러 갔다 들어오는 길이었다 르바란 전날이라 많은 사람이 집을 비워 한층 더 고즈넉한 까사델라고에 다홍빛 노을도 어둠이 섞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거의 집에 도착했을 때, 쇼비는 갑자기 옆집 화단의 작은 나무들 사이로 뛰어 들어가 무언가를 쫓기 시작했다. 예감이 좋지 않아 “안돼!”를 외치며 개의 목줄을 급하게 잡아 끌었지만, 사냥개의 본능대로 수색하다 줄이 꼬여 버렸다. 그 안에서 옴짝달싹 못 하게 된 개와 난리 속에서 나는 뱀의 일부를 본 듯했다 이대로 라면 목줄 때문에 쇼비가 위험해질 것 같아서 줌을 놓아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뱀이 나무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보니 여태 본 적 없는 크기의 킹코브라였다 쇼비는 꼬인 줄을 피해 맹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얼마 후 쇼비의 맹렬한 공격에 뱀의 몸은 두 동강이 났지만, 그 상황에서도 뱀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덤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개를 말릴 수도, 남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근데 갑자기 쇼비가 싸우다 말고 날 향해 다가왔다. 영화의 한 슬로우 모션 장면처럼,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위험한 상황에 덤비는 뱀을 두고 갑자기 나에게 오다니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오던 쇼비는 휘청거리다 그만 내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쇼비가 쓰러지고 숨이 멈추기까진 십 분도 안 걸렸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울며 쇼비를 안고 있는 것뿐이었다 르바란 전날이라 문을 연 병원도 없고 의사 선생님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소중한 생명이, 함께 보낸 그 많은 세월이,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다. 나는 발끝부터 점점 차가워지는 쇼비의 몸을 끌어안고, 현실을 부정하며 소리 내 울었다. 정신을 놓고 우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러 오신 사람들은, 바로 묻어야 한다며, 망고나무 아래 땅을 파기 시작했다. 망고나무 앞에서 우리들은 쇼비를 안고 소리 내 울고 또 울었다. 쇼비를 겨우 놓아주어, 땅에 묻어주었다. 해는 이미 지고 buka puasa 를 알리는 이슬람 기도 소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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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울음소리는 한참을 까사델라고 하늘을 맴돌았다 그 후 망고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닌 쇼비를 대신하는 우리에게 아프고도 소중한 나무가 되었다. 한동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당에 나가 망고나무를 잡고 쇼비를 그리워하며 지켜주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가족들 몰래 울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리움이 옅어 질 때쯤, 망고나무에 하얀 꽃이 피었고, 곧이어 탐스럽게 무르익은 망고가 열렸다 나는 망고가 열렸다는 기쁨에 잠시나마 쇼비를 잊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쇼비가 거름이 되어 망고 꽃이 피었을지도 모른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그 후 난 더 이상 그 망고 열매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망고나무를 잊고 살았다. 다음 해부터 망고 꽃은 다시 피지 않았고, 난 그 사실이 더 속상하고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어 있던 옆 땅에 새로운 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난감하게도 망고나무는 옆집과 우리 집 마당 사이에 애매하게 서 있었다 망고나무 반은 옆집으로 가지를 뻗고 있어 가지를 자르면 이상한 모양새가 될 것 같고, 나무를 옮기기에는 너무 컸다. 옆집에서 가로등만큼 자랐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않는 쓸모 없는 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르자고 항의가 들어올 것만 같았다. 나무를 그냥 저렇게 보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맘이 급해졌다

옆집에서도 좋아할 만한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 제발 열매가 열리기를 바라며 옛날에 어머니가 하셨던 대로, 열심히 쌀뜨물과 계란 껍질로 비료도 만들어 주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 주었다. 그러나 올해도 꽃이 피는 시기가 지나고 옆집은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난 기도한다 쇼비야, 힘을 내줘! 망고나무를 살릴 수 있게! 한 번만 더 나를 도와줘! 나는 이렇게 해서라도 너를 곁에 두고 싶어! 오늘도 망고나무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쇼비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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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학생부 우수상 인문창작클럽회장상 흔한
수필
한국학생인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산다는 것은 Saya, Seorang Pelajar Korea Biasa di Indonesia 한어진 (JIKS, Jakarta Indonesia Korean School, 11학년)

나는 현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거주 중인 고등학생이다 인도네시아라는 나라가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 나라일 수도 있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살아오면서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는 고정관념이라 볼 수 있 던 내 생각과는 다른 나라임을 많이 느꼈다 지금부터 내가 인도네시아에 정착하여 몸 소 느낀, 경험한, 어떻게 보면 찬란한, 어떻게 보면 진부할 수 있는 내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언젠가는 해외에 나가 살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을 이룰 기회가 찾아왔다. 몇 개의 선택지 중에 엄마께서 택한 곳은 인도네시아였고 처음 그 소 식을 들었을 땐 잘 알지 못하는 생소한 나라에 조금 내키지 않았던 것도 같다. 친구들 에게 얘기하자 친구들 역시 잘 모르는 나라에 이름도 헷갈려 ‘어진아 방글라데시 잘 갔 다 와’, ‘인도 갔다 오면 너 이마에 점 찍고 오는 거야?’ 등 엉뚱한 나라를 언급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라는 나라가 궁금해 인터넷에 쳐보고, 내가 다니게 될 자카르타 한국 국제학교 JIKS를 밤낮없이 찾아보았다 천천히 떠날 준비를 하고 친구들과 인사도 잘 나눈 뒤 우리는 드디어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로 떠나게 되었다. 마치 환영식 같은 느낌 이었을까, 우리가 떠날 즈음엔 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 심각했던 상황이라 떠나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여러 서류가 필요했고, 준비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막상 떠나는 날 이 다가오자 실감도 나지 않고 여행을 가는 듯한 기분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아무래 도 살아오던 지역, 나라 자체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간다는 것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한국이 너무 그리우면 어쩌지 등 걱정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비행기를 타서도 실감이 안 나긴 마찬가지였고, 잠도 잘 오지 않아 준비했던 영화들만 연달아 보면서 왔다 인도 네시아에 도착하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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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하고 더운 공기가 훅 덮쳐왔는데, 그제야 ‘아 나 도착했구나 여기가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도네시아구나’라고 느꼈다 입국심사를 기다리고 짐을 찾으려 기다리는데 처음 든 생각은 ‘답답하다’였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탓인가, 느려도 너무 느린 절차가 그때의 나에겐 굉장 히 답답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괜히 짜증만 늘어가고 짐이 안 나와도 너무 안 나오자 따지듯 물어보는 나에게 직원은 활짝 웃으며 마음의 평화를 갖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는 말만 할 뿐이었다. 마음의 평화를 가지라니.

안 그래도 화나는데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을성이 없어 보이지만 처음 접한 이해할 수 없는 문화에 나는 답답함을 느꼈었다. 긴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드디어 격리할 숙소로 출발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은 캄캄했 고, 차가 많아 복잡했지만, 택시를 타고 나서야 인도네시아의 야경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각과는 다른 높은 건물들에, 반짝거리는 수많은 불빛. 생각했던 것과는 다 른 모습에 나는 감탄을 자아내며 가는 내내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한 채로 달렸던 것 같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말이 안 통하는 직원의 답답한 모습은 그대로였으나 피곤했던 우리는 얼른 올라가 짐을 풀고 쉴 준비를 하였다. 그렇게 인도네시아에서의 첫날 밤은 지나갔고, 다음날부터 나는 앞으로 다니게 될 학교의 실시간 화상 수업을 들어야 했다. 6시 50분부터 학교 수업이 시작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에 나는 슬퍼하며 내 가 수업을 듣는 건지 조는 건지 모를 정도로 학기 초 수업을 꾸역꾸역 들어왔던 것 같 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의 적응을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 걱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실제로 난 적응을 잘하지 못하였다 심지어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수업이었으니 더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였고 선생님들에게도 수업을 잘 따라 오지 못하는 학생으로 찍힌 것 같았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격리 기간이 끝나고 우리는 앞으로 살게 될 집으로 향했다 한국과는 다른 화려한 로비와 수영장, 테니스 코트, 농구장, 헬스장까지 갖춰져 있는 인 도네시아의 아파트들은 나를 설레게 하였다. 덕분에 그날은 모든 걱정을 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새로운 곳을 돌아다니며 알아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 와 엄마는 주변 마트와 길가를 바로 탐색하러 나가기 시작했고, 수많은 오토바이와 거 리의 많은 구루마에 놀라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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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로 인해 갈 수 있는 장소가 제한되어 있음에 도 불구하고 자주 산책을 하며 동네를 탐방했다 그리고 한국엔 없는 인도네시아 도마 뱀 ‘찌짝’이 가끔 집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는데 기겁하는 엄마와 다르게 파충류를 좋아 하는 나는 종이컵으로 잡아, 밖에 풀어주었다. 새로운 집에 익숙해지고 인도네시아에 많은 쇼핑몰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엔 정말 하루에 한 곳씩 쇼핑몰들을 돌아다녔던 것 같다 쇼핑몰에서 밥도 먹고 쇼핑도 하 며 인도네시아 음식도 접할 수 있었는데.

호불호 갈린다는 의견에 비해 인니 음식은 한국에 돌아가면 생각날 정도로 우리에게 아주 잘 맞았다. 여전히 말이 잘 통하지 않고 복잡한 도로와 길가는 똑같았지만, 처음과 달리 그 광경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반면 한국과 다른 문화에 시트콤 같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였는데,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하자 나의 이름을 물어보는 한 남자 직원 의 태도에 나와 엄마는 직원을 거의 째려보다시피 쳐다보며 ‘이 사람이 내 이름을 왜 물어보는 거지’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해외에선 음료가 나올 때 이름을 불러주며 고객을 찾아주는 방식의 문화가 존재했고 나와 엄마는 후에 서로 웃으면서 부끄러워했 다. 또 어떤 날에는 택시를 타고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멀리 나가게 됐는데, 그 무렵 우리 는 한국인들에게 일명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를 들어 항시 경계 중이었 다. 그런데 때마침 택시에서 내리려 하자 택시 기사가 우리를 붙잡으며 뭐라 말하기 시 작했고, 인도네시아어를 모르던 우리는 ‘돈을 더 받아 가려는 속셈이구나’ 생각하여 한

참 실랑이를 벌였다 꽤 시간이 지나고 택시 기사가 체념한 듯 내리라고 손짓하자 우리 는 그제야 택시에서 내린 뒤 ‘우리는 당하지 않았어’하고 뿌듯해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택시 기사는 고속도로 톨 비를 요구한 것이었고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우리는 그저 바가지를 씌운다고 생각해 결국 톨 비를 내지 않은 체 내린 후 뿌듯해한 것이었다 이 처럼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 상황도 존재했었고 우리는 아직도 그때 일을 꺼내면 부 끄러워하며 웃곤 한다. 얼렁뚱땅 한 학기가 무사히 지나갈 무렵, 나에게는 인도네시아에서의 첫 친구가 생기 게 되었는데, 같은 반의 한 친구에게 나는 용기를 내어 먼저 연락하였고, 그 친구는 나 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전학을 와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비슷한 점이 많아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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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바로 옆 아파트에 산다는 사실에
했다
친구 덕분에 자신감이 생겨서인지 나는 학교 수업 역시 점차 적응을 할 수 있었고, 따라가기 힘들었던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늦게나마 적응을 할 수 있었던 나는 곧 있을 시험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인도네시아에서의 첫 시험에서 만 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놀라 자주 만나기도
.
수업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자 나는 테니스, 골프 등 한국과 다르게 싼값으로 배울 수 있는 스포츠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밖을 자주 돌아다니고 여러 스포츠를 즐긴 덕분인지 온라 인 수업 기간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가끔 친구와 만나 쇼핑몰 들을 다니기도 했고, 엄마와 같이 버스와 MRT(인도네시아의 지하철) 등을 타보며 새로 운 경험을 겪기도 했다. 그렇게 슬렁슬렁 시간이 흘러 방학이 찾아왔고, 우리 가족은 방 학 동안 한국에 갔다 오기로 했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하여 절차를 거치는 도중 나는 차가운 한국인들의 태도에 무척 놀랐다 마치 화가 난 듯 사람들에게 안내하는 직원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비교가 됐다. 어떠한 상황에도 웃으면서 살갑 게 대처해주던 인니 사람들이었는데, 처음엔 답답하던 그 모습이 한국에 가니까 그리워 지던 것이다 한국에 잠시 머무는 동안 인니 문화에 익숙해진 나는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자 짜증 을 내는 친구 앞에서 평온하게 음식을 기다릴 수 있었고, 차가운 사람들의 태도에 인도 네시아가 그리워졌다. 그렇게 다시 인니로 돌아올 땐 처음과 달리 집에 돌아간다는 생 각에 기분이 좋았고, 도착하여 습하고 더운 공기와 복잡한 도로에 ‘그래 이게 내가 살던 곳이지’라는 생각을 하며 격리하러 들어갔다. 개학 후 2학기도 1학기와 같이 온라인 수업이었지만, 그때의 나와는 다르게 수업에 잘 참여할 수 있었고, 선생님들에게 ‘어진이가 저번 학기보단 많이 달라졌네’라는 칭찬 도 들었다. 한국에는 없는 원어민 수업은 알아듣지 못해 아직 힘들기는 하였지만, 병아 리 다루듯 나를 지도해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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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며 본분 때문이라도 인도네시 아의 곳곳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많은 소식을 알아갈 수 있었다. 1학기보단 조금 순탄하게 돌아갔던 2학기는 또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렸고, 학교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꽃 같은 시절인 고등학교 1학년을 제대로 지내지 못했다고 생각 할 수도 있으나 덕분에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고
원어민 Ian 선생님 덕분에 조금이라도 집중하려 노력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인도네시아 한인 기자로서 활동해
학교를 나갈 적엔 잘하지 못했 던 가족과의 대화 역시 오늘은 수업 도중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선생님의 어떤 꾸 짖음과 칭찬이 있었는지를 공유하게 되며 가족과의 사이가 더 돈독해지고 서로 더 의지 할 수 있었다.

학원을 나가기 시작하면서 친구들도 꽤 사귀게 되었고, 한국어 자막이 없는 영화를 보거나 외국인들만 가득한 카페에서 편하고 신나게 수다를 떠는 등 나름 한국에서는 경 험하지 못할 추억들을 만들어가며 인도네시아에서의 나의 1년은 그렇게 지나갔다. 고등학교 2학년을 준비하는 기간에 나와 엄마는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여행을 나가기 시작했다. 많은 섬이 존재하는 인도네시아는 섬 여행뿐 아니라 지역 자 체가 넓어 자잘한 여행을 다니기에 안성맞춤이었고 우린 반둥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휴 양지 발리까지 다양한 여행지를 방문했다 특히 발리의 바다는 너무 환상적이었고, 코로 나로 인해 유명 관광지들은 방문하지 못했지만, 바닷가 앞 카페에서 여유롭게 엄마와 수다를 떨고, 아무도 없는 쪼가리 해안가에서 즐기는 휴가는 너무 행복했다. 두 번 방문 하는 나라는 쉽지 않은데, 발리는 한 번 더 가고 싶은 섬 중 하나이다 사실 한국에 있 었을 땐 발리가 인도네시아의 섬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나와 같이 몰랐던 친구들도 꽤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섬인 만큼 많은 사람이 발리가 인도네시아에 속해있는 섬임 을 알았으면 한다 꿀 같은 방학이 지나고 우리 가족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작년에 살던 곳과 달리 이곳은 많은 아파트가 모여있으며 쇼핑몰이 붙어있기에 전보다 더 편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또 신기한 점은 마치 짠 것처럼 옆 아파트에 살던 친한 친구가 나와 동시에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우리는 신나서 전보다 자주 만나 노는 일이 잦아졌 다. 또한, 온라인 수업이 끝난 우리 학교는 새 학기를 맞아 오프라인 수업으로 변경되었 고 예전 같았으면 적응하지 못해 가기 싫다고 느꼈겠지만, 지금의 나는 오히려 다가올 학교생활에 기대가 됐었다 한국과 달리 급식 제도가 없는 우리 학교는 도시락을 싸 가 야 했는데, 요리하거나 도시락 싸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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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나는 도시락을 엄마께 부탁하지 않 고 손수 싸가면서 다음날부터 나가게 될 학교를 기다렸다. 6시 50분까지 학교에 가야 했기에 이른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6시에는 출발해야 했지만, 다행히도 학원에서 친해진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고 기대했던 대로 학교생활은 재미있었기에 일찍 일어나 야 하는 것쯤은 상관없었다 조금 쑥스러운 얘기이지만 학교를 나가게 되며 나에겐 남자친구도 생겼다

한국과는 다른 느낌에 옆에서 영어와 인니어를 도움을 받으면서 서로 좋은 영향을 받 을 수 있었고 국어를 어려워하는 그 친구에게 나는 국어를, 영어를 어려워하는 나에게 는 영어를 알려주어 옆에서 도와주며 서로의 성적이 오를 때면 기뻐하며 내 일같이 행 복해했고 조금 떨어진 과목엔 응원해주며 힘이 돼주었다 인도네시아에 오래 산 남자친구를 따라다니며 도전하지 못했던 길거리 음식도 먹어보 고, 인도네시아의 놀이공원, 워터파크 등 더 다양한 장소도 즐길 수 있었다. 친구가 엄 청나게 많지 않은 나는 덕분에 의지할 곳과 좋은 경험을 누릴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 학교 친구들 역시 하나같이 너무 맑고 순수하여 보는 나마저 스며드는 느낌 이었다. 부끄럽지만 한국에서 약간의 방황을 거쳐온 나는 마음속이 하얀 이 친구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나도 덩달아 이 친구들에게 스며든 것일까, 요 며칠 전엔 한 친구에게 서 ‘처음 너를 봤을 땐 낯설고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너도 드디어 인도네시아에 물든 것 같다. 많이 순수하고 맑아진 것 같아 너무 보기 좋다’라는 말을 들었다. 왜일까, 그 말 을 듣자 나는 너무나 행복했고 이렇게 지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까지 느꼈다 앞으로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이 시간이 나에겐 엄청 소중하고 남은 시간 동안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 처음 왔을 때 비해 인도네시아 회화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인니 문화에 익숙해진 나는 이제 지금의 인도네시아 생활에 너무나도 만족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벅찬 교육 방식도, 스트레스 가득한 청소년기의 인간관계도 얽매이지 않고 정말 말 그대로 뛰어놀며 살아갈 수 있는 이 삶에 너무 감사하다. 물론 언제나 이렇게 놀며 즐길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대학을 앞두고 있는 만큼 필요 수준 의 공부도 해야 하고 학교생활 중에 챙겨야 하는 일도 많듯이, 앞으로의 나에겐 수많은 도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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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무너지고 슬퍼하는
고정관념이 깨졌으며 이젠 알게 됐다. 누구는 평생 누리지 못할 수 있을 일 상을 나는 경험하고 있으며 해외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일이 후에 얼마나 좋은 경 험으로 나에게 다가올 것인지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때론 느리고 답답하지만, 사실 이들 은 언제나 웃음을 지으며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임을 인도네시아에 오지 않았더라면 느 끼지 못했을 감정들과 나의 변화들.
존재할 것이다.
일도 있겠지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가지 않고 지금의 나는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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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정착하며 몸소 느낀 추억과 경험이 돼 주었던 시간이며, 나는 앞으로 더 발전할 인도네시아와 내가 기대된다. 그렇기에 예 전의 나처럼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르고 편견이 있을 한국인들에게 내가 느 낀 경험을 들려줌으로써 인도네시아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를 알려주고 싶다
인도네시아는 비록 날씨가 항상 덥고 교통이 혼잡하지만, 사람들이 편하고 여유롭다 모기가 많지만 귀여운 찌짝이 많고 아름다운 자연 광경에 많은 스포츠를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의 행동은 느리지만, 나시고랭과 미고랭이 맛있고 값이 매우 싸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내가

수필

느림의 미학

Estetika Kelambatan

이수안 (JIKS, Jakarta Indonesia Korean School, 10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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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상 Lembaga Kebudayaan Betawi

바야흐로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일 때로 돌아간다 여느 날처럼 미술 학원에서 조금은 우울한 얼굴로 묵묵히 수채화를 그리던 내게 한 친구가 익살스레 묻는다.

“너 어디로 간댔지? 인도? 인도네시아였던가?”

“인도는 ” 대답을 채 하기도 전에 친구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내 끝말을 낚아챈 다.

“아, 인도! 거긴 왼손으로 똥 닦는다고 하지 않았나?” 문장 끝은 분명 물음표로 끝나 는 의문문이었으나, 확신에 찬 감탄문과 평서문의 조합과 같은 느낌을 받는 건 내 착각 인가. 아무튼, 나름 잘못된 건 꼭 고쳐줘야 하는 피곤한 성격이라 조심스레 친구의 확신 을 꺾어본다. “인도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인도와는 다를 걸 아마도 ” 이제 이주해서 살아야 할 당 사자인 나조차도 잘 모르는 이 나라는 세계에서 섬이 가장 많은 적도의 푸른 보석, 인 도네시아다.

“우리 이제 인도네시아 가서 살아야 해 그렇게 하기로 했어 ” 이게 무슨 고양이가 알 낳을 소리인가. “왜? 그냥 한국에서 계속 살면 안 돼? 거기 가서 어떻게 살란 말이야. 학교는 어쩌 고?” “가서는 국제학교 입학시험 치르고, 합격하면 거의 다 외국 애들이니 영어로만 소통 하겠지. 오히려 네 먼 훗날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이런 기회 흔치 않아. ” 자그마치 12년 째 부산 토박이로 살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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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웬 인도네시아
아끼던 주변인들과 이별을 고하며 울 시간도 없이 얼떨결에 인도네시아로 오게 됐다. 약 7시간 30분가량의 긴 비행을 마치고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내리니 새삼 적도의 나라인 게 순식간에 체감이 될 만큼 습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사람이 하도 북적대서 그런 건가. 복잡한 공항 속에서
유학을 하란 말인가
길을 잃지 않으려, 먼저 인도네시아에 가서 오랫동안 생 활해 이미 현지화된 아빠만 졸졸 따라다닌다 그 와중에 대상이 누구든 세심하고 면밀 히 관찰하는 걸 즐기는 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나보다 조금 더 까 무잡잡한 피부, 뚜렷한 쌍꺼풀, 게다가 히잡을 쓴 다수의 여성이 확, 눈에 들어온다.

사실 예전에도 일찍이 주재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있던 아빠를 보러 인도네시아에 몇 번 갔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저 아빠가 보고 싶었던 어린아이일 뿐이었기에 ‘무주의 맹시’가 적용돼서 다른 주변 사람들은 간과하기 마련이었다. 살게 될 거라 하니, 그제야 내 시각이 인지한 그들이었다 주변은 온통 알 수 없는 센 발음의 언어로 가득했고, 나 와는 조금 다른 생김새를 가진 이 사람들과 잘 생활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긴장과 설 렘이 반반, 아니 약 7:3 비율이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집 근처 국제학교 면접에 합격한 상태여서 오자마자 약 한 달간은 새 로운 인도네시아의 이층집에서 아주 푹, 쉬었다. 한 달이 이렇게 짧았나. 어느새 눈 떠 보니 등교 첫날이었다 미리 조금 크게 맞춰둔 교복을 멀끔히 차려 입고,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며 휴대폰을 드는 엄마의 귀찮은 요구에 나름 정성스레 임했다. 엄마의 열정 만이 가득한 포토 타임이 끝나고, 드디어 차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가는 와중에도 너무 긴장한 탓인지, 복통이 지속되었지만 학교에 도착하니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보였다. 난 전학생이라 따로 줄을 섰다. 계 단을 올라 P5B를 찾는 데에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반 문 앞에 가서 쭈뼛쭈뼛 서서 기존 친구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애써 무시했다. ‘영어도 못 하는데, 눈 마주쳐서 어 떻게 할 건데? 괜히 어색해지지 말고, 가만히 있자. 가만히. ’ 지금 돌아보면 정말 어리 석은 생각이 아닐 수가 없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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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도 영어를 못할 거라 추측한 건 완전한 오산 그 자체였다
단어, 아 니 알파벳 하나가 나올 때마다 내 자신감과 자존감은 떨어졌다. 마침내, 내 차례가 성큼, 다가왔다. 이미 내 안의 세상은 규모 8 정도의 지진이 발생해서 자존감, 자신감 부근 지역에 안 전 재난 문자가 보내진 뒤였다. 새끼 염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이름을 내뱉었다.
첫 교시가 시작되고, 나 포함 3명의 전학생이 자기소개를 했다. 입을 열기 전까지 그
그들 입으로부터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작은 시도였는데, 내 이름이 잘 안 들렸는지 수안(Suan)이 아 닌 백조(Swan)만을 장난스레 외쳐대는 남자애들이 짜증 났다. 3시간처럼 느껴진 3분의 자기소개 시간이 끝났다.

자기소개를 시원하게 말아먹은 나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의 친구들이 내 자리로 우르르 몰려와 이른바 ‘물음표 살인마’에 빙의해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문장이 문장으로 들리지 않고, 문장에서 몇몇 단어만 쏙쏙 귀 에 꽂혔다.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턱을 괴고 고민하고 있던 날 두고, 시간이라 도 주듯이 서로 대화했다. 정말 부러웠던 건 그들은 즉각적으로 V2, 과거 동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름 대형 영어 학원에서 V1, V2, V3 표 만들어서 외우면 뭐 할까, 말로 적용하지 못하는데.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고 볼 수 있 다. 첫날엔 그렇게 점심을 먹고 끝이 났다.

첫날 이후로도 종종 반 친구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알아듣는 것은 서툴고, 대답 하는 것은 벅찬 나의 숨겨지지 않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단번에 눈치 챈 친구들은 할 말 을 해야 할 때가 아니면 굳이 말을 걸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한류 의 영향력을 활용해 새 친구들을 사귀었다. 확실히 그 친구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 는 것만으로도 리스닝 실력은 일취월장 했고, 대부분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게 된 나는 스피킹에 한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간 결과, 지금 은 V2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분사까지도 바로 만들 수 있는 5년 차 인니 유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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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할 만큼 영어, 인도네시아어는 더더욱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벌써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이 나라의 특성과 분위기 등에 체화된 채, 두려운 입시를 치르고 있다 인도네시아 에서 몇 해를 겪으며,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
당시 ‘이렇게 가다간, 다시 한국으로 귀국해야

우선, 이 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이 느린 경향이 있다 누군가는 비교를 무조건 부정적 인 행위로 여기지만, 난 비교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비교가 나쁜지, 혹 은 괜찮은지’의 여부는 대조를 거듭해 분명한 우위를 매기는 행위가 존재하는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일 뿐 어쨌거나, 한국은 일 처리가 매우 빠르지만, 인도네시아는 행정업무 처리 속도가 느리다. 이뿐만 아니라, 그냥 다수의 인도네시아인은 급박함 없이 느리게 행동하는 데에 익숙한 느낌이다. 식당에 가도, 단순한 반찬 리필을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오지 않아 다시 일러주면

“Oh, lupa. Maaf(아이고, 깜빡했네요. 미안해요)~.” 하며 머쓱한 미소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인들은 ‘빨리빨리’ 문화가 발달해 조금이라도 늦는 걸 참지 못하는 경향 이 있다. “어휴,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느린지 몰라. 아니, 한국이었으면 벌써 끝내고도 남았겠다. ” 한국에 거주하다 인도네시아로 오게 된 주변 한인 분들에게 꼭 한 번씩은 들어본 말이다 글쎄 물론 나도 이들의 느린 행동에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적이 있다 예를 들면, 목이 말라서 좋아하는 음료를 주문하러 줄을 섰는데, 계산이 느려 꽤 오랫 동안 서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과 같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의 선천적 ‘빨리 DNA’를 물 려받은 지라 속에선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도 있다 ‘아니, 저거 계산하는 데 5분 이나 걸리나?’ 하며.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느려서 이 국가는 더욱 아름답다 이것이 바로 ‘느림의 미학’ 이다 무슨 소리냐고 물으면 장황한 과학적 증거로 입증할 수는 없다 단지 여기 살면서 내 살결로 고이 느낀 나만의 생각일 뿐이니까.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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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속 ‘빨리빨리’는 우리를 앞서 나가게 함과
만든다 인도네 시아는, 느린 만큼 사람들이 모두 평온해 보인다. 필자의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5년간 살면서,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물론, 이건 내가 소 위 말하는 ‘집순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내가 겪은 거의 모든 인도네시아인은 순수하고, 상냥했으며 이상할 만큼 차분했다.
날을 거듭할수록 치열해지는 한국
동시에 우리를 뒤처지게

이러한 사실을 온 지 한 3년 만에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러게 이상해 내가 이때까

지 봐왔던 우리 한국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바삐 살아가던데, 여기 사람들은

왠지 다 여유로워. ’ 당연히 ‘빠름의 미학’도 있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에 ‘빠름’이 있었기에 1960년부터 지금까지 대단히 놀라운 성공을 거머쥐지

않았는가. 다만 현재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속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즉, 인도네시아 의 느린 분위기와 태도를 수용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빠르게 쫓아가야 한다는 강 박에 치여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분명 본질을 잃는다

자랑할 만한 학벌을 가져야 하고, 대기업에 취업해야 하고, 결혼까지도 잘해야만 하는 우리 한국의 편협한 사회적 강박을 생각하다 보면, 여기 사람들처럼 필요 이상의 느림 을 자신에게 부여하며 다시 생각할 시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 반찬 리필을 까먹어버 리는 등의 것들이 필수로 필요하다. 가끔은 너무 느려서 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이 나라, 인도네시아는 느리기 때문에 온화하며 빛이 난다. 그렇기에 정반대 성향을 보유한 한인들이 이곳에 여럿 거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톱니바퀴처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살아갈 수 있으니 까.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모든 한인 여러분들은 인도네시아의 느림의 단편적인 부분만 보지 말고, 더 나아가 인도네시아의 숨겨진 느림의 아름다움을 찾아 자신에게도 평화로 운 느림에 스며들 수 있게끔 기회를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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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웃음꽃

Hujan dan Senyum Bahagia 이지안 (JIKS, Jakarta Indonesia Korean School, 10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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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 특별상 인니예술가 Bambang Gunawan Santoso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표정 없는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한

왠지 모르게 우울해지는 그런 날

고요히 달리는 차 안에서

창 밖 너머로 보이는 파아란 인형 탈

등 뒤에는 비를 맞고 있는 아이 하나

아이를 업고 터벅터벅 걷기만 하는 인형 탈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야속한 세월을 탓하는 것만 같다 그의 보이지 않는 얼굴은

땅바닥을 향해있는 것만 같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수록

커져만 가는 쓸쓸함의 그림자

두꺼운 인형 탈 속에 숨어버린 모든 감정들

내뱉는 한숨들 속에 섞여버린 모든 이야기

아이는 바위처럼 무거워서

그의 마음을 짓누를 테지만

아이를 향한 손에는

따뜻한 온기만이 남아있네

더 세차게 내리는 비가

누군가의 얼룩과 상처를 지워 내주길

더 거세게 부는 바람이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을 몰고 사라져 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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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비는 멈추고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해가 나타나

그들의 젖어버린 마음을 비추어

따스하게 말려줄 터이니

그제야 고개를 들어 푸르른 하늘을 보는

그들의 입가에는 그 무엇보다도 환하고

싱그러운 웃음꽃이 활짝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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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언제나 여름

Indonesia Selalu Musim Panas

나는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

소복소복 쌓이는 백색의 눈

걸을 때마다 들리는 뽀드득거리는 소리

말할 때마다 나오는 하얀 입김

데굴데굴 굴려 만드는 눈사람까지

온 세상이 먼지 한 점 없는

구름으로 뒤덮인 것만 같은 느낌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인도네시아는 1년 내내 여름

이곳에는 겨울이 다녀간 흔적조차 없고

늘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어

사람들의 턱 끝에서 우기에 내리는 빗방울 같은

조그마한 땀방울들을 흐르게 만드는 이곳은

바로 내가 사는 인도네시아

다들 한 번쯤은 상상해보았겠지

인도네시아의 겨울은 어떨까

나를 덥혀주던 햇살은 저 구름 너머로 숨어버리고

나를 식혀주는 차디찬 공기가 나를 감싸게 될 거야

손을 내밀면 조그마한 눈발들이 내려앉아 내게

인사할 틈도 없이 녹아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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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역시 겨울이 좋아

눈을 처음 보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표정은 어떨까

마치 하늘에 둥둥 떠 있는 UFO를 본 것 같은 모습일 거야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추위를 막아줄 옷이 없고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견뎌낼 튼튼한 집이 없고

꽁꽁 얼어버린 거리를 지나게 해줄 자동차가 없겠지 나는 겨울을 좋아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환한 미소와 맞바꿀 만큼은 아니야 나는 여름을 싫어하지만

인도네시아에 사는 모두가 따뜻하고 행복하길 바라 평생 이곳에 겨울이 찾아올 일은 없겠지만

어느 날 설탕 같은 하얀 눈송이들이 흩날린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꾸는 달콤한 꿈 또는 상상이기를

인도네시아는 언제나 여름일 때가 어울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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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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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INNEKA (Bhinna+Ika) TUNGGAL IKA

산스크리트어(범어)로 ‘다양한 것이, 하나인 것이다’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흡사 불교에서 얘기하는 ‘色卽是空 空卽是色(색즉시공 공즉시색)’이나, 노자가 말하는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처럼 그 뜻을 여러 번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하나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조각들이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일을 하면서 욕심에 성급해 질 때마다 이 문장을 되뇌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특이하고 다양한 경험을 갖게 해주는 것이 창조적 사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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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더 필요한 경험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 조각들을 퍼즐처럼 흩어놓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인도네시아라는 주제로 받아들이시거나, 곤충의 다양성에 흥미를 갖거나, 아니면 읽는 분에 따라서는 환경과 진화라는 주제로 조각을 맞추어 멋진 이야기를 완성하실 것이라고 기대하면서요 곤충에 관련된 이야기를 썼습니다. 자카르타에 온 지 10 년이 되어갑니다. 한국과는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 살면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고, 제 글이 인도네시아의 특별함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수필 로젠베르기 황금귀신사슴벌레 일반부 대상 주인도네시아대한민국대사상 류은우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할리문 곤충 캠프에 참가하였지만,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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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으로
아닌지,
합니다.
치면 저도 외래종인데 토종생태계에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니면 제가 하나의 다양성 인자로써, 진화의 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진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지 어떤 고정된 중심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단지 무수한 중심들이 모여 대립과 화합과 융합을 반복할 뿐 이라는 것을 쓰기의 영역을 접하며 절감했습니다. 중심에서 벗어난다는 건 내 안에 갇힌 시선을 타인에게 잠시 둬보는 것 입니다. 중심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보는 것, 아니면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 하지 않는 주변인이 되어보는 것, 이질감에서 비롯된 혼란을 의도적으로 경 험해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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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이야기란 의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여야 한다고. 저는 쓰는 사람이기보다는 읽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지나치게 느리게 읽 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쓰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다독을 할 수 없었 고, 저 같은 사람에게 쓰는 행위가 허락된다면 그건 쓰는 분들에 대한 모독 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작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잘 읽고 잘 쓰는 사람 이 너무도 많아 힘이 빠지지만, 우리를 낙관으로 이끄는 한 가지 사실은 우 리 모두의 경험은 개별적이고 독특한 것이라는 것. 일반부 최우수상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상 황영은 소설 라스미
중심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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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철저한 ‘주변인’으로 느껴질 때마다 이 말을 상기했고 삶에 대한 이 러한 지침은 커다란 동력이 되곤 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감정들이 이렇게 이야기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에 경이와 희열을 느낍니다. 서툴고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 다. 소심하고 느린 독자에서 쓰기의 영역으로의 작은 도약의 기회를 주신 주 최측에도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BHINNEKA (Bhinna+Ika) TUNGGAL IKA

오늘도 여느 다른 날처럼 작은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와 그림 앞에 앉습니다.

보석 같은 눈망울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시아를 옆에 두고 붓을 들며 아침을 시작합니다 여전히 따뜻하고 안락한 발리의 공기와 평화로움 속에서 이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오늘도 감사한 하루입니다.

붓으로만 세상과 소통하던 제게 글을 쓴다는 것은 새로운 부담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전혀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도전할 때의 첫 붓질과도 같은...... 글을 쓰는 것이 몹시도 부자연스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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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작업이었지만 먼 훗날 이곳의 자유와 안락한 날들을 그리워하고 있을 미래의 나를 위해 조금이나마 용기를 내어보았습니다 하나하나 색을 쌓아 올리는 저의 붓질처럼 한 자 한 자 신중히 단어를 고르고 글을 다듬어 가면서 글 쓰는 것이 그림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발리에서의 일상과 더불어 저의 작품들에 묻어있는 사랑하는 발리의 모습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미소 지을 수 있는 순간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그동안의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었고 이곳에서 내가 얻은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길 수 있었던 경험이 제게는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수필 발리의 꿈 일반부 최우수상 한인니문화연구원장상 김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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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적어 내려간 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귀한 수상 소식으로 응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과 함께 준비했던 11 월의 전시를 잘 마무리하고, 이제 다시 손가락으로 분채를 녹이며 이곳의 따뜻한 공기와 함께 완성될 저의 이야기를 새로운 그림에 담아보려 합니다. 인도네시아의 생활을 마무리하기 전에 이곳에 오롯이 스며들어있는 지금의 저를 기록하게 해주신 《한인니문화연구원》에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산책에 나선 길이었습니다. 막 이사를 와 아직 익숙지 않은 동네입니다.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방향도 모르는 갈림길에서 무작정 사람들이 가고 있는 것과 반대로 걸어보았습니다 괜한 짓을 했다 후회가 들어 돌아설까 머뭇대던 순간 혼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만났습니다. 바람에 헝클어진 갈대밭, 드문드문 혼자 핀 꽃 틈바구니에서 앙상한 가지는 늦은 오후 햇살 을 저 혼자 마음껏 즐기는 듯 안분해 보였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은 아무도 없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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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홀로 자신만의 공기를 만들어 내는 것 말입니다 그러다 문득 같은 결로 대답해주는 귀한 선물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부끄러움을 삼키며 꺼내놓은 이야기에 눈길을 주시고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너무 먼 도착 지점 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다음 걸음에 집중하여 징검다리를 놓아 가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조만간 봄소식이 찾아오겠지요 저의 다음 이야기도 봄 햇살 닮은 보드라 움으로 무르익도록 꽃망울의 더딘 머뭇거림에 의심을 거두겠습니다. 수상의 영광을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저의 고요함을 믿고 기다려 주는 가족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수줍은 마음을 보냅니다 일반부 최우수상 한-인니산림협력센터장상 김아람 수필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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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도네시아어 라곤 전혀 할 줄 모르는 한국어 선생님으로 몇 개월을 지냈습니다. 인도네 시아 사람들과는 약간 다른 피부색에 영어로만 이야기하는 저를 마주칠 때 면 저를 태운 고젝 기사는 제게 여기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묻곤 했습 니다. 한 번은 택시 기사에게 발리에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누사 두아 한 번 가본 적이 없냐는 농 섞인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어딘가 멀리서부터 날아왔다가 연고도 없는 나무에 묶 여 버린 연을 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꿈과 소망을 가지고 온 발리에 서 이리저리 고생만 하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가게 된다면 저도 그 연처럼 날 수 없게 되어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왜 이곳에 왔는지, 제가 여기서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저의 다 일반부 우수상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장상 도지현 수필 누구를 위하여 바람은 부나
출퇴근 길에, 어느 날부턴가 연 하나가 나무 꼭대기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예 구멍이 뚫려 나뭇가지에 꿰였던 건지, 아니면 실이 대차 게 묶였던 건지 바람이 불면 당장이라도 날고 싶어 퍼덕거리다가도 결국은 날지 못한 채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연이 종종 시선을 끌곤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의기양양하게 봉사자로 발리한국학교에 오게 되었지만
163 짐과 바람을 담아 쓴 글이 바로 「누구를 위하여 바람은 부나」입니다. 수상 소식을 전달받고 오랜만에 그 나무를 찾았습니다. 눈앞에 놓인 일에 바빠 하늘과 나무 보는 일을 게을리했던 동안, 늘 그곳에 걸려 있던 연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더군요 원래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바람결에 살랑 살랑 흔들리는 빈 나뭇가지를 보면서 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수많은 걱 정과 불안도 결국은 연처럼 잠시 머물렀다 가는 것이고 늘 그 자리에 버티 고 서서 나를 괴롭게 하다가도 어느 순간 사라져 있을 거라고요 그리고 세 상은 이런 것을 일컬어 성장했다고 하는 거겠지요. 바람이 불고, 새로운 연이 뜨는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연을 높이 띄 워 주신 《한인니문화연구원》 과 제 마음을 한 뼘 넓혀 준 인도네시아 《발리 한국학교》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여러분에게 짧은 글로서 작은 바람을 실어 보내드립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고 게다가 귀한 상까지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 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시절을 제외하고 누구에게 상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듯한데 쉰이 넘어서 상도 받고 참 복도 많은 사람입니다. 한 자 한 자의 글자가 모이고 떨어지면서 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 이 되기도 합니다. 이번 공모 시는 최대한 멀리서 나를 바라보려고 노력했 던 연습과 같은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친절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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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멋진 상을 주시니 꿈만 같습니다. 지난해 11회 문학상 공모전에는 회사에서 잘렸다는 글로 수상했기에 창 피해서 아주 가까운 지인들한테만 수상 소식을 알렸습니다 이번에는 더 많 이 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한 공모전을 개최하시고 심사까지 해주신 《한인니문화연구원》 의 모 든 분께 감사드리고 어려운 시기에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마다하지 않으 신 모든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반부 우수상 한인기업가상 PT.TAEWON INDONESIA 윤세귀 시 말랑의 잠자는 공주 아들이
답게 쓰지 않으려 해서 사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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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 적응하면서 숨어있는 보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새롭고 신기하던지요 매일 지나는 길에서 만나는 매일 같은 풍경이 다 르게 펼쳐졌습니다. 낯설어서 불평하던 것을 내려두고 인도네시아를 찬찬히 둘 러보았습니다 적도의 태양 아래에서 온갖 나무들이 팔을 뻗고 왕성한 생명력 을 뿜고 있었습니다. 나무 세상 안에는 개미같은 작은 곤충들이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었고요 보지 못했을 뿐이지요 코로나와 함께 시작한 인도네시아살이였기에 자연스럽게 착륙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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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오겠죠. 막히는 차에서도 도로는 열심히 제 할 일을 하니까 요. 막힘 덕분에 느리게 도로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요. 앞으로 비 오는 날, 해 뜨는 날, 구름 많은 날을 하루에 다 볼 수 있는 인도 네시아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을 꺼냈다 폈다 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그 마 음들을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 막히는 길에서 툴툴대는 마음도, 차창 밖으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나무의 경이로움도요. 제12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인도네시 아 곳곳을 살펴보고 생각을 풀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공모전을 주최하고 장을 열어 글쓰기의 마음을 달래준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담당자님들과 심사 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족 언제나 고맙고 사랑합니다 일반부 우수상 인니갤러리 F.Widayanto상 전현진 수필 6 시 51 분엔 막히는 게 성실한 도로의 일
덜컹거렸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봅니다. 어쩌면 또 훗날, ‘필요했던 시간이었구 나’라고 할

갑각류의 마음으로 언젠가 갑각류의 성장에 관해 매우 인상 깊게 읽은 글이 있다 겉보기에 매우 단단한 갑각류도 성장하기 위해선 반드시 허물을 벗어야 하는데, 그 직후는 가장 약해져 있는 상태라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취약하고 상처받기 에도 매우 쉬운 때라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갑각류가 성장하는 때는 오직, 상처받기 쉽고 가장 약해져 있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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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을 기다리는 순간, 99도의 물이 단 1 도를 위해 인고하는 순간, 이런 순간순간들이 모여 마침내 완미한 성숙을 이뤄낸다. 그래서 내가 발리 생활을 하며 마주한 외로움과 괴로움의 시간들 도 갑각류가 성장을 위해 잠시 머무르는 때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약해서 부서지고 무너지고 우울할 때도 있다 그러 나 우리가 추락과 낙하를 거듭하며 강인해질 수 있는 이유는 인생에 언제 나 행복한 일들만, 또 서글픈 일들만 생길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 문이다. 내게 언제 또 예고 없는 갑각류의 성장통이 찾아 올지는 모르겠다. 일반부 우수상 Historika Indonesia상 김유림 수필 인도네시아에서 찾은 마음들
갑각류가 허물을 벗어 던지고 유약한 생명체로 지구를 견디는 순간, 꽁꽁 언 땅속 열매가 자신을 녹여줄
168 다만 그럴 때마다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질 갑각류의 경건한 마음으로 한껏 말랑해진 나를 애틋하고, 다정하게 아껴주고 싶다

나에게는 많은 목표가 있습니다. 많은 목표 중 하나인 글쓰기. 해마다 글쓰기에 도전해 보았지만 항상 포기해왔던 지라 우연히 접한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은 저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글을 제출한 후부터 수상자 발표 전까지 매일매일 흥분된 기다림의 연속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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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가며
만들어준 소중한 추억들과 인연들에 감사했습니다 저에게 글쓰기라는 목표를 이루어지게 해준 《한인니문화연구원》과 문학상 공모전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인생은 50 부터입니다! 반 백세 50 세 ‘발리 시조새’는 앞으로도 글쓰기에 계속 도전하려 합니다. 많은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용기 내어 도전한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고 저의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 한 분 한 분께 감사드립니다. 일반부 특별상 Indonesia Korea Friendship Association상 김수은 수필 시조새
행복했습니다. 글을 써가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생활을
정말 행복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제가 인도네시아에 온 지 30년째 되는 해에 공모전에 응모한다는 것 자 체가 개인적으로 뜻 있는 기회였는데 수상까지 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하늘나라에 먼저 가 계신 부모님께도 마음으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제 와 뒤돌아보니 ‘인도네시아에 와서 살아온 나의 삶이 값진 기회였고 또한 축복이었다.’라고 믿습니다. 지리적, 환경적 요인 외에도 사회적, 문화

적 차이 또한 과거와 달리 현재의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지역에서 나아가 세계무대에서도 주목받는 나라로 성장했고 더욱 가속화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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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라 생각합니 다. 또한, 대한민국과 인도네시아와는 해를 더할수록 경제, 외교, 문화 등 다 방면으로 긴밀해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계묘년 새해에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며 각 분야에서 한국인의 긍지를 가지고 일에 전념하 시는 동포 여러분 모두의 건강과 성공을 기원합니다. 일반부 특별상 한국국제협력단(KOICA)사무소장상 김형석 수필 추석 선물 밍크코트

가족은 나의 궁 안녕하세요 한동훈입니다 수상 소식에 아직도 제 가슴은 떨림과 큰 기쁨에 가득 차 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 때 한국방문은 코로나로 갇혔던 일상의 답답함을 해소해주고, 저에게 많은 경험과 추억으로 가득 채워주었던 특별한 방학 이였습니다 그 중에서 청와대와 보고르 대통령 궁에 다녀온 경험을 수필로 적어보았습니다. 작년에 동생이 <생태 문학상>에서 동시로 입상한 모습을 보고,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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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동안 돌아다니고 글을 쓰며 두 달 동안 준비해서 너무나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어릴 때부터 자란 저는 부모님과 한국어로 말하지만, 학교에서 영어와 인도네시아어 중국어까지 다양한 언어를 접하고 배우면서, 한글도 배워야 하는 새로운 언어로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모국어를 강조하시는 부모님은 꾸준히 한글을 가르쳐 주셨고, 함께 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중학교 7 학년때부터 학교에서 국어 수업을 하며, 한국 문학 작품들을 읽고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웠습니다. 학생부 대상 주ASEAN 대한민국대표부대사상 한동훈(ACS Jakarta, 8학년) 수필 무궁화와 연꽃 - 청와대와 보고르 대통령궁 방문기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공모전에 도전하고 싶어 일 년간 좋은 소재를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줄 글 쓰는 것조차 막막하고 많이 어려웠지만 계속 연습을 하다 보니 조금씩 성적도 오르고 글쓰기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말마다 엄마와 같이 학교에서 배운 문학작품을 보면서 새로운 어휘를 배우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쌓았던 배움에서 시작해서 이렇게 큰 상까지 받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아직은 서툰 저의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보고르 대통령 궁 내부에 들어가지 못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언젠가 보고르

글로 써보고 싶습니다. 내가 자라고 생활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의 경험을 한 줄 한 줄 글로 남기는 것은 저의 역사 기록과 같습니다. 늘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멋진 나로 성장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같이 경험해 주고 글쓰기 배움에 함께해 주신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의 응원이 제게 큰 힘이 되어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평안함과 안전을 지켜주는 대통령 궁처럼, 가족은 저의 든든한 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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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궁 개방하는 날이 오면 직접 본 그 감동을

제 모든 생활은 인도네시아였습니다. 어려서부터, 거의 태어나자마자 인도네시아로 넘어온 후 살았던 탓인지, 인도네시아에 대한 기억뿐 입니다. 그러나 제 기억은 남들과는 좀 다른, 특색 있는 추억들이라고 생각하여 이 글을 적었고, 이 글로 이렇게 수상을 하여 굉장히 영광스럽습니다 많은 분들께 제 최우수상의 공로를 돌리고 싶네요. 우선 이 글을 적을 수 있도록 저에게 남들과는 다른 색다른 경험을 시켜주시고 항상 물신양면에서 저를 위해 노력하시고 아껴주시는 저희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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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부족한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시고 수상해주시는 심사위원들분들과 다른 관계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조금은 미숙하고, 부족했지만 저의 최선을 다해 적어본 글이었고, 이 글이 이렇게 잘 되니 같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답고 깨끗했던 그런 추억들을 많은 분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최우수상이라는 어쩌면 완벽한 마무리로 이 기회를 끝마쳐서 행복합니다 정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학생부 최우수상 재인도네시아한인상공회의소회장상 송지섭(JIKS, 10학년) 수필 파푸아
174 수상소감을 이렇게 짧게 마무리하기에는 아쉽지만, 정말 제 마음을 이 글로 쓰기에는 아직 부족한가 봅니다 앞으로 더 노력해서 발전해나가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다음 번에는 더 아름답고, 행복했던 인도네시아에서의 추억들에 대하여 적어보고 싶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 인사 드리며 제 수상 소감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JIKS 10 학년 송지섭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상 소식에 설레고, 반갑고,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2022 년 제 12 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된 조규희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돌잔치 전, 바로 인도네시아로 이주해 한국보다 자카르타의 집과 친구들이 더 익숙하고, 친근합니다. 이런 제가 ‘자카르타 한인 어린이 합창단(JKCC)’ 단원이 되어 한국 문화를 배우고, 나아가 한국 문화를 널리 홍보하는 활동을 하면서 느낀 자긍심을 글로 써 봤습니다. 미흡한 이 글이 <인도네시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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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저는
어설픈 외국인 대접을 받을 때면 ‘주변인’ 같고, 환영 받는 손님일 뿐 어디에 서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합창부 오디션을 보고, 합창 단원이 된 후론 달라졌습니다. <으뜸 화음>은 합창단 연습과 공연을 통해 제가 성장한 과정을 기록한 글입니다. 이 글을 쓰려고, 그 동안 연습한 악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글을 쓰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학생부 최우수상 한인니문화연구원장상 조규희(BSS, 8학년) 수필 으뜸 화음
>에서 의미 있는 상을 받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인도네시아 일상에서, 방학 때 방문하는 한국에서도

두근두근했던 첫 오디션과 첫 연습날이 생생히 기억났습니다 자카르타에서 또래 한국인 친구들이 이렇게 많은 것에 놀랬던 일 내 잘못이 아닌데, 모두의 책임이라며 두 팔을 들고, 단체 벌을 서게 한 지휘자 선생님. 그땐 단체 벌이 처음이라 너무 무서워 펑펑 울었는데, 이제는 미소가 절로 나는 추억입니다. 물에 둥둥 떠 사는 수초 같던 나의 정체성을 한국 문화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게 해준 합창부 활동 그곳에서 나 만의 ‘으뜸 음’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내가 태어난 대한민국과 내가 성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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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인도네시아 둘을 조화롭게 ‘으뜸 화음’으로 소리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쉽게도 코로나 19 로 닫힌 합창부 연습실의 문. 수상 소감은 다시 합창부 연습실의 문이 열리기를 소망하는 걸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이렇게 좋은 상을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하다고 말 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올해가 인도네시아에서의 마지막 해인데 인도네시 아를 떠나기 전에 이렇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도네시아에 4년 동안 살면서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처음 인도네시아에 살기 시작했을 때는 소외감도 많이 들고 모든 것이 어 려웠습니다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힘들진 않을까? 많 이 두려웠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이 터졌을 때는 인도네시아에 온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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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후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적응하게 되었고 외 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오지 않았다면 결코 얻지 못할 기회였겠죠 제가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 기수로 뽑혔을 때도 같았습니다. 인도네시아 인도 아닌 내가 왜 기수로 뽑혔지? 솔직히 기쁘기도 했지만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힘들긴 했지만 주어진 일에 열심히 임했고 마침내 해냈을 때는 정말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어쩌면 내가 그동안 잘못 생 각하고 있었구나, 나도 인도네시아의 일원이었구나. 학생부 최우수상 한-인니산림협력센터장상 신창민(AIS, 9학년) 수필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의 한국인 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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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 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항상 믿어주시고 좋은 기회를 주신 우리 가족께
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족들 덕분에 인도네시아에 올 수 있었고 이렇게 좋 은 상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좋은 상을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일을 통해 글을 쓸 동기를 얻게 되었고, 글을 열심히 썼습니다. 마침
상을 받게 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고 스스로에게 뿌듯했습니다. 4년 동안 한국학교가 아닌 국제학교를 다닌 제가 한국어로 쓴 글로 상을 받게 될 것 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정말 이 추억은 한국에 돌아가서도 평생
못할
고맙다

문학 공모전에 처음으로 참가한 것이라,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는데, 상까지 받아 영광입니다. 우선,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저의 이야기를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되었을 때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 조금 망설여졌었는데 오히려 글로 다 적어 내리니 제 인생의 한편을 기록한 것 같아 오히려 이 공모전이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에게는 그냥 일반적인 나무일 순 있어도, 저에겐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이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말 한적 없는 저만의 추억을 처음으로 공유한 것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수상 받는 것이 더욱 큰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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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 글을 즐겨 쓰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어설프고 서툴지만,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 중에 겪은 일을 진솔하게 적어낸 저의 진심이 전해진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때문에 이번 공모전을 준비하며 문학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인도네시아에서의 삶에 감사함을 느낀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부족함 많은 저의 글에, 이렇게 좋은 상을 주셔서 영광입니다. 앞으로 문학에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도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생부 우수상 한인기업가상 PT.TAEWON INDONESIA 오수아(SPH Lippo Cikarang, 12학년) 수필 나의 망고나무

인도네시아 오게 된 것부터, 제가 쓴 글로 이런 영광의 자리에 서게 된 것까지. 정말 예상 가능한 일이 하나도 없네요. 너무 영광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너무 솔직하게 쓴 것은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제 글을 보면 아시다시피 평소에도 주변에서 제 글을 보면 ‘마치 야생마같이 폭풍질주하는 느낌이다’, ‘정리가 되지 않은 날 것 같은 느낌이다’ 라는 평을 받아왔고, 이런 매우 솔직하고 거침없는 글을 선호하지 않는 분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심사위원들께서 보시기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글을 보낸 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실제로 생각보다 늦어진 연락에 떨어진 줄 알고 있었어요 제가 한국에서 인도네시아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담고 싶었기에 수필 속엔 거짓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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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모두 제가 겪어온 일 그대로 느낀 것 그대로 써 내려갔습니다. 처음에는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에 대해 편견 아닌 편견이 존재했고, 제 편견을 깨는 수많은 모습에 반하기도 또 많이 반했습니다. 전 앞으로도 얼마 남지 않은 인도네시아에서의 삶을 즐길 수 있는 만큼 후회 없게 다 즐기고 가려고 합니다 어쨌든, 지금 인도네시아, 이 자리에 서서 수상 소감을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네요.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학생부 우수상 인문창작클럽회장상 한어진(JIKS, 11학년) 수필 흔한 한국학생인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산다는 것은

인도네시아에 거주한 지 6년 차이며, 바쁘게 진로를 탐색하고 있는 꿈 많은 17살 이수안이라고 합니다 우선, 귀한 특별상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우연히 엄마의 권유로 인해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주제 중 하 나가 ‘인도네시아 유학 생활’인 만큼, ‘인도네시아에서의 내 삶을 한 번 되 돌아보고 기록해보자’는 취지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인도네 시아에서 여러 해를 생활하며, 제가 본 것, 경험한 것, 느낀 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일을 진솔하게 기록했습니다 많은 애정을 가지고, 제가 가진 각양 각색의 추억들을 진심으로 한 자 한 자 작성하다 보니 의미 있는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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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연 내 마음이 잘 전달될까’라는 조바심도 있었지 만, 그 조바심이 무색하게 제 글을 심사위원들께서 좋게 평가해 주셨다는 사실에 무한히 기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인도네시아에서의 6년 삶 속에서 크고 자잘한 기억의 파 편들이 모여, 함축된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할 뿐 아니라, 제가 보낸 나날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뜻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 시 한 번 더 특별상 주셔서 감사드리며, 항상 ‘느림의 미학’을 생각하며 발 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학생부 특별상 Lembaga Kebudayaan Betawi상 이수안(JIKS, 10학년) 수필 느림의 미학

우선 특별상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가족들과 외식 하러 가는 길에 창 밖 너머로 보이던 인형탈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끄적여 본 시가 수상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누가 봐도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는 인형탈을 보면서 처음에는 호기심을 느꼈고, 두 번째에는 동정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차가 지나가는 그 빠른 순간에도 보이던, 때가 타서 더러워진 인형탈을 쓴 부모와 그런 부모의 등 뒤에 업혀 있던 아이의 모습. 제가 봤던 그 아이 의 표정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장면이 우리 가족의 모습과 비교되어서 순간 마음이 불편해졌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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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린아이가 불쌍했 고, 무거운 인형탈을 쓰고 모든 것이 녹아내릴 듯 무더운 날씨에도, 세차게 비가 내릴 때도 마다하지 않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 은 길고 긴 거리를 수 없는 날 동안 걸어야 했던 부모의 마음이 느껴져서 안타까웠습니다. 아마 인도네시아에 살고 계시는 많은 분들도 길거리를 걷고 있는 인형탈 을 한 번씩은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형탈을 모습 을 보고 가엾게만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런 모습을 봐도 마 냥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기보다 진심으로 그들의 행복을 빌어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열심히 응원해주는 것이 어떨까요? 학생부 특별상 인니예술가 Bambang Gunawan Santoso상 이지안(JIKS, 10학년) 시 비와 웃음꽃
이 납니다 저는 부모를 따라 하염없이 걸어야 했던
183 저는 누구에게나 제 뜻대로 되지 않는 힘든 시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형탈을 쓴 부모와 그 아이를 본다면 그들에게 더 큰 행운과 행복이 찾아 올 수 있도록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 세상을 보다 더 따뜻하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 람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184 강 율 초파리 생존기 이두아 맹그로브 숲의 정화 기능 이은솔 자바 코뿔소를 구해 줄게 임서호 고양이, 맹그로브 김민솔 별 모양의 열매 박승우 가루다(GARUDA), 비밥 2022 년 제 2 회 ■ 후원: 제 2 회 인도네시아생태이야기 문학상 수상작품집
185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수상작품
수상소감

동화

초파리 생존기

강율 (JIKS, Jakarta Indonesia Korean School, 5 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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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한-인니산림협력센터장상

내 이름은 초파리다 나는 15 살이다 나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 있는 거대한 나무

옆에 산다. 최근 내가 사는 이 곳에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내가 여덟 살 때쯤 난 거대한 나무 주위에서 내가 좋아하는 냄새를 맡고 그 냄새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다섯 잎을 가진, 높이는 30 센센치미쯤 되는 작은 새싹을 봤다 처음에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지만, 그 작은 새싹은 점점 커졌다 나는 7 년동안 매일 그 곳으로 갔다. 지금도 그 곳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순간, 난 깜짝 놀랐다. 7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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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란 그 새싹은 온데간데 없고 커다란 동그라미 같은 것만 놓여 있었다 난 그 새싹에게 정도
그렇게
모르는 것을 찾아내고 말 테다!” 그 생명체가 말했다 생명체는 그 말을 하고 흥얼거리면서 이곳 저곳을 뒤졌다 나는 그 생명체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기를 한 시간 그 생명체가 내가 7 년 동안 봐 온 커다란 동그라미 모양을 한 것에 어떤 기계를 대며 말했다 “역시 할아버지가 개발하신 건 정말 대단해! 이 기계로 이게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지!” 그러자 기계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안 5 미터까지
들었는데
한 순간에 사라지니 아쉬운 맘이 들었다. 그 때 어떤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 부스럭” 그것은 미지의 생명체였다 그 생명체가 점점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겁이 나서 얼른 나무 뒤로 숨었다 “드디어 도착했군. 나도 꼭 할아버지처럼 지구에 있는 인도네시아를 탐험하고 그것에 대한 책을 꼭 쓸 거야! 난 새로운 것, 아무도

“이것은 알뿌리입니다 타이탄 아룸은 7 년동안 모은 영양분을 이 곳에 저장해 놓습니다”

“타이탄 아룸? 그게 뭐지?”

생명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알뿌리? 내가 7 년동안 봐왔던 것의 영양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생명체가 어떤 물체를 나에게 겨누며 말했다

“자, 이제 네가 누구인지 말해 보실까나?”

깜짝 놀란 나는 도망치지도 못한 채, 물체에서 나온 그물에 잡히고 말았다. 도망갈 방도를 찾지 못한 나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나는 초파리라고 해 네가 내가 궁금해 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많은걸 알고 있는 것 같기에 널 쫓아왔어. ” 그러자 그 생명체가 다시 말했다.

“그래? 내 이름은 쿠미 난 할아버지를 따라 지구를 탐험하고 새로운 생명체에 대해 연구하지 마침 내가 동료를 찾고 있었는데 나랑 같이 갈래?”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나는 같이 가겠다고 했다. 우린 그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하룻밤 새 정이 든 걸까? 쿠미는 다시 외계섬으로 빠진 준비물을 챙기러 간다고 4 개월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쿠미를 4 개월 동안 간절히 기다렸다 드디어 오늘, 쿠미가 지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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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는 날이다. “안녕! 오래간만이야!” 쿠미가 나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 옆에 있는 한 커다란
가리키며 물었다 “저 꽃은 뭔데 이렇게 커? 족히 3
걸. ”
꽃을
미터쯤 되어 보이는

“너에게 말해주려던 참이야 그 알뿌리가 4 개월이 지나자 이렇게 변해 있었어 꽃이 이렇게 멋지게 변신하다니 놀라워!”

“우리 어쩌면 새로운 꽃을 발견한 것일 수도 있어!”

들뜬 목소리로 말한 쿠미가 지난번에 봤던 신기한 물건을 꺼냈다. 거대한 꽃을 향해 물체를 대자 기계에서 설명이 흘러 나왔다

“이것은 타이탄 아룸입니다. 4 개월 후 알뿌리는 거대한

3 미터 꽃으로 변합니다. 타이탄 아룸은 36 도 열을

발산하여 상승기류를 만듭니다. 타이탄 아룸의 냄새를

사방에 퍼지게 해서 주변에 있는 모든 파리들을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

거대한 꽃이 파리들을 빨아들여 다 먹어치울 기세였다 난

재빨리 그 꽃에서 도망쳤다. 한참 도망치다 숨을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던 중, 예쁜 빨간색 꽃을 발견했다. 지름이

1 미터쯤 되어 보이고 무게는 끙! 내가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그 때 뒤에서 쿠미가 다가왔다.

“이 봐, 대체 어디 갔었어?” “그 거대한 꽃이 날 유인해 잡아먹을 것 같아서 도망쳤어. ” 비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핫, 그 꽃은 널 먹으려는 게 아니야 그냥 네가 그 냄새를 맡고 타이탄 아룸에 있는 꽃가루를 묻혀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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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으로 이동할 때 그 꽃가루도 같이 옮겨져서 번식을 하려고 하는 거야! 그런데 타이탄 아룸은 이틀 만에 시들어서 쓰러진대. ” “힝, 그랬군. 좀 불쌍한 걸. ” “내 생각엔 타이탄 아룸과 가장 비슷한 지구의 꽃은 아마도 라플레시아 같아 ” “라플레시아가 뭔데?”

“어! 마침 네 뒤에 있네 ”

쿠미가 손가락으로 내 뒤를 가리켰다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아까 내가 봤던 아름다운 빨간색 꽃이 있었다. 쿠미는 라플레시아에 탐지기를 대었다.

“이것은 라플레시아입니다. 수마트라의 3 대 보물이며

꽃의 지름은 1 미터에 달하고 무게는 10 키로가 넘습니다

꽃이 다 피는데 일주일이 걸리죠 줄기나 잎이 없는 라플레시아는 주변의 덩굴식물에 기생해 양분을 섭취하고

꽃을 피웁니다. 라플레시아는 3 일에서 일주일간 꽃을

피웁니다. 또 라플레시아는 파리가 좋아하는 냄새를 풍겨 파리를 유인합니다. 파리는 라플레시아 꽃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꽃가루를 온몸에 묻힙니다. 파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꽃가루도 다른 장소로 옮겨가 번식을 하게 됩니다 ” “와, 진짜 타이탄 아룸과 비슷하잖아. ” 난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게나 말이야 ” 쿠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쿠미의 시계에서 띠띠띠. 하는 알림음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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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더니 전화를 끊고 흥분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어떤 외계인 형을 잡았대!” “외계인 형이라고? 그 외계인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한 거야?” “음, 나쁜 짓을 했으니까 잡혔겠지? 자세한 건 가서 확인해야 알 것 같아 일단 할아버지께서 그 곳으로 오라고 하셔서 난 가봐야 될 것 같아”
“앗, 할아버지 전화야. 잠깐만!” 쿠미는 5 분 동안 할아버지라는 사람, 아니

어쩐 일인지 쿠미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나는 외계인 형이란 자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궁금했지만,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그래 또 와!”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쿠미는 자신의 나라로 떠났다 나는 쿠미와 함께한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한 일기를 썼다. 그 일기의 제목은 바로 <초파리 생존기>이다. 쿠미와 함께 했던 짧지만 강렬한 모험을 영원히 기억하려 한다. 그건 소중한 추억이니까. 또한 지금 당장은 헤어져 아쉽지만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아름다운 기다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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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JIKS 에 다니는 5 학년 1 반 강율입니다.

사실 제가 처음에 글을 제출할 때는 제가 상을 탈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거의 두 달 동안 결과를 기다렸죠.

그런데 저는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대상을 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분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는 초파리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 있는 파리로 묘사했고, 쿠미는 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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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 인도네시아에 새로운 꽃을 찾으러 온 외계인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시간이 나면 책을 쓸 것이니 기대해 주세요. 모두 모두 건강하세요 - 강율 올림 동화 초파리 생존기 초등부 대상 한-인니산림협력센터장상 강율(JIKS, 5학년)
193 최우수상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장상
맹그로브 숲의 정화 기능 이두아 (JIKS, Jakarta Indonesia Korean School, 5 학년) 수필

토요일에 가족 다 함께 맹그로브 숲에 가기로 했다

드디어 토요일이다! 우리 가족은 맹그로브 숲으로 출발을 했다. 출발을 할 땐 신났었는 데 길이 너무 복잡해서 계속 잘못 가는 바람에 기분이 점점 안 좋아지고 늦을까 봐 조 마조마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드디어 맹그로브 숲에 도착했는데 앞에 사원이 있었다. 하필이면 우리가 도착한 시간 이 기도 시간이어서 차에서 3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다음부터는 12시30분에서 1시 사 이에는 방문 하는 것을 피해야 될 것 같다. 30분 후에 우리는 드디어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를 지나 들어가서 바로 내 양 옆이 나무로 둘러 싸여 있다 평소에도 나무를 보 지만 이렇게 웅장하고 멋있는 나무가 내 ‘최애 나무’로 하고 싶었다. 차안에서는 편하게 에어컨을 틀고 가고 있어서 몰랐지만 막상 걸으니 엄청 더웠다. 걸으면서 중간 중간에 나무 사진을 찍었는데 실물만큼은 아니지만 나무가 엄청 멋있게 잘 나왔다 걷다 보니 다리도 나와서 다리를 건넜는데 알고 보니 다리는 출렁다리였다. 다리를 건너 갈 때 다리가 벌벌 떨릴 정도로 무서웠다 아~ 다행히 다리를 건너는 것 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옆에 나무들이 많아서 왠지 모르게 공기가 맑은 것 같았다. 조금 더 걷자, 대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어서 다리 위에서 예쁘게 가족사진도 찍었다. 다리를 다 걸어서 나오는 곳은 작은 식당이었다 도시락을 싸와서 밥은 안 시켰지만 레모네이 드와 커피는 시켰다 식당에서 마신 레모네이드는 지옥에서 나를 살려 준 사람 같은 존 재였다. 언제 더웠나 싶을 정도로 시원하고 더욱 아름다운 맹그로브 숲을 천천히 감상 할 수 있었다 식당 창문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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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호수를 볼 수 있는데 그 때 호수에 배가 떠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나랑 동생은 엄마, 아빠에게 빨리 배를 타자고 재촉했다 음료를 다 마시고 밖에 나갔는데 조그만한 포토존이 있었다 거기서 언니 와 동생은 같이 사진을 예쁘게 찍었 다.

드디어 배를 탔다. 우리는 배를 타기 전에 안전하게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갔다. 배를 타면서 호수에 악어가 살아서 갑자기 배를 덮치는 걱정까지 했다 배에서는 맹그로브나 무와 처음 보는 새를 봤다. 새는 약간 펠리컨처럼 생겼다. 물위에서 보는 맹그로브 나무 는 땅에서 본 것 이상으로 멋있었다. 솔직히 나는 땅에서 보는 나무 보다 물에서 보는 나무가 더욱 멋있는 것 같다. 더욱 멋있게 여긴 이유는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사실 때문이었다.

열대 지역의 하구 기수역의 염성 습지에서 자라는 관목이나 교목으로 조수에 따라 물 속에 잠기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면서 특수한 호흡근이 있고 어떤 종은 종자가 모체에서 발아하는 태생 종자를 가지며 맹그로브 숲을 홍수림이나 해표림으로 부르기도 하며 인 도네시아가 세계 1위의 면적의 맹그로브나 숲 분포지이며 그 자체를 서식 장소로 삼는 동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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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류의 일종인 색깔총알고등이나 바위게상과의 홍수바위게등이 서식한다. 실제로 그날 맹그로브 주위에서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인터넷 검색에서 찾은 동물들 보다 물위를 헤엄치는 커다란 도마뱀과 먹이를 찾기 위해서 물속으로 잠수하여 들어가는 새들을 많이 보았다. 동물들에게는 숨을 곳을 제공해 주고 이끼나 지의류가 번식하며 포유류나 조류, 곤충류 등도 살고 있다. 마치 정글에 와서 살아 있는 자연을 느끼는 것 같았다

자욱한 공해와 정화가 잘 되지 않은 하천들로 인도네시아 수도인 도시 한가운데에서 자주 보아서 인지 이곳에 자카르타가 아닌 마치 외곽에 있는 밀림에 와있는 기분도 들 었다. 이렇게 좋은 자연이 환경이 최근 세계 각지에서 맹그로브 숲의 파괴가 일어난다 고 한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숯의 원료로 쓰기 위한 벌채, 그리고 해안가의 습지를 블랙 타이거등 새우 양식장으로 개발하는 것이 원인으로 뽑히고 있다. 그뿐 아니라 가축 사 료로 쓰기 위해 나무를 벌채를 하여서 숲이 사라지고 있다. 아마 사람들이 맹그로브 숲 의 장점을 일찍 깨달았으면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하여 무자비 하게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2004년의 수마트라 대 지진 이후 맹그로브 숲에 의한 해일 피해를 줄여 주었다. 숲이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여 인명피해를 유발하는 표류 물체를 막아주는 것 이다 이렇게 숲의 좋은 기능들이 맹그로브 생태계 보호를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서 유네스 코 총회에서는 매년 7월 26일을 국제 맹그로브 생태계 보존의 날로 지정 되었다고 한 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면 자연은 우리에 게 그만한 보답으로 많은 것을 우리에게 내어 주는 것 같다.

짧은 순간이지만 우리 온 가족이 도심 안에서 밀림을 경험하고 뱃놀이 체험도 하고 배 에서 내렸다. 만약에 내가 맹그로브 숲을 또 갈 수 있다면 그때는 맹그로브 나무에 대 해 더 공부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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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 숲의 정화 기능을 읽으면서 작은 희망과 지구를 어떻게 보존해서 다음 세대에 넘겨 주면 좋을지에 대해 고려해 볼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환경오염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다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자꾸 올라가고 자연의 위대함을 다양한 경험으로 알 수 있다. 2022 년 11 월 찌안주르에서 발생한 지진만 해도 그렇다. 진도 5.6 의 강한 지진으로 무려 271 명이라는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내진 설비가 잘되어 지진에도 끄떡없는 건물을 만들어야 하겠지만,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재앙으로부터 대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기도 하다. 오존층이 파괴되고 기후변화로 인해 폭우와 폭염 등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제 수돗물을 함부로 먹을 수도 없고 정수가 된 물이 아니면 마실 수도 없다 우리는 아직 피부로 잘 못 느낄 수도 있지만 우리 다음세대에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한 환경오염으로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폭염으로 단수와 폭우로 인해 많은 피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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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나무의 정화 기능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에게도 희망이란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지진이 발생해서 쓰나미가 발생 했을 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식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다음 세대가 함께 할 수 있게 더 망가지지 않고 보존하고 지켜서 물려 주어야겠다. 인도네시아에서 볼 수 있는 맹그로브 숲의 좋은 순기능을 많은 사람이 알고 이것을 무분별하게 벌목하고 개발해서 훼손해서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필 맹그로브 숲의 정화 기능 최우수상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장상 이두아(JIKS, 5학년)
발생할 수도
맹그로브

코뿔소를 구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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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상
자바
이은솔 (BSS, BINUS SCHOOL Simprug, 5 학년) 동화

“아빠가 왔다!”

흥분한 목소리가 들리며 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은성이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문으로 달려갔습니다. 은성이를 뒤따라 남동생인 제희도 아빠를 부르며 뛰어갔습니다 아빠는 커다란 상자를 안고 끙끙대며 집에 들어왔습니다

“어?”

은성이가 아빠의 상자를 툭 건드리며 물었습니다

“아빠, 이게 뭐야?”

제희도 은성이를 따라 상자를 톡 건드려 보았습니다.

“아, 이건 바로“

아빠가 대답하려던 그 순간, 상자가 중심을 잃고 떨어질 뻔 했습니다.

“아!”

모두의 한숨과 함께 상자는 테이블을 ‘툭’ 건드리며 뒤집어진 채로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아빠는 서둘러 상자를 챙겨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은성아, 제희야. 이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은 아주 귀해서 가지고 놀면 안돼. ”

“네, 아빠. 그런데 이 상자에는 뭐가 들어있어요? 혹시 보물?” 은성이가 흥분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제희가 상자를 계속 건드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케이크면 좋겠는데. 아빠, 케이크야?” 아빠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상자 뚜껑을 조심스럽게 가위로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엄마도 다가와서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바로 바로 ” 아빠가 상자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잡고 꺼냈습니다 “코뿔소 뿔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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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이와 제희의 눈 앞에 회색과 갈색인 길고 뾰족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의 눈도 순간 커졌습니다.

“어? 코-코뿔소 뿔? 케이크가 아니잖아. ”

제희가 울상을 지었습니다

“제희야, 이 코뿔소 뿔은 케이크보다 훨씬, 훨씬 더 비싼 거야!”

엄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건 미국 돈으로 이십만불에서 사십만불이나 할 만큼 비싸다고! 아, 이해하기

어렵지? 그러니까 금보다 더 비싼 거야!”

엄마의 말에 제희와 은성이 눈이 점점 커졌습니다.

‘이런 코뿔소 뿔 하나가 금보다 비싸다고?’

은성이는 생각했습니다

“와!”

제희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케이크보다 더 좋아?”

“게다가 코뿔소가 전 세계적으로 얼마 남지 않아서 엄청 귀한 거야! 우리는 아주 운이

좋은 셈이지. 이런 물건을 손에 넣었으니 말이야!”

아빠는 집이 떠나가도록 커다랗게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정말이에요? 여보?”

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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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달아 웃으며 물었습니다 엄마도 이건 몰랐나 봅니다 “아빠가 텔레비전 앞에다 이 뿔을 가져다 놓을 거야! 은성아, 제희야, 만지면 안돼!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아주 비싼 거라고!”

그러면서 아빠는 양팔 가득 조심스럽게 뿔을 들고 텔레비전 앞에다 조심조심 살며시 내려놓았습니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과 뿔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스마트폰을 들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연속으로 플래시가 반짝 터졌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스마트폰을 열어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을 뿔 사진으로 바꾸려고 이것저것 버튼을 눌러댔습니다

“엄마, 지금 몇 시야?”

얼마 후, 은성이가 물었습니다 바깥을 보니 깜깜해졌고, 도로의 차들도 대부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

엄마가 얼굴을 들었다. 엄마는 스마트폰의 시계를 서둘러 찾았습니다. 화면에는 크게

‘9 월 26 일, 오후 10:06’ 이라고 써져 있었습니다.

“벌써 10 시네. 빨리 이 닦고 들어가. 제희도 챙기고. ”

엄마가 중얼거렸습니다 그런 후,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통화에 빠져들었습니다.

“응, 진짜, ”

엄마가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어, 어디에서 가져왔냐고? 아, 그건 모르겠네 이따가 물어봐야겠다 ”

엄마가 재잘재잘 말하는 동안, 제희는 눈을 비비고 인형을 바닥에 끌면서 안방으로 하품을 하며 들어갔습니다.

“제희야! 이 닦고 자야지!” 은성이가 제희를 불렀지만, 벌써 자는지 대답이 없었습니다. 은성이는 한숨을 쉬고 칫솔에 치약을 바르고, 이를 닦은 후에 물로 입을 헹궜습니다. 은성이는 나른한 몸을 이끌고 안방에 들어섰습니다 벌써 제희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마 이를 안 닦았나 봅니다 은성이는 졸린 대로 아무렇게나 침대에 누웠습니다 몇 초 후, 은성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딸깍. 한참 뒤, 정확히 새벽 2 시에 불이 켜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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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은성이가 침대에서 내려왔습니다.

“물은 어디 있지?”

은성이가 중얼거렸습니다 사뿐사뿐, 은성이는 거실로 나아갔습니다 훌쩍, 훌쩍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은성이가 재빠르게 눈을 돌렸습니다. 그림자 속에 무언가가 울고 있었습니다. 은성이는 뒷걸음질을 치고 싶었지만, 너무 궁금해서 한 발 한발 앞으로 나갔습니다. “헉!” 작고 까만 눈 한 쌍이 은성이를 노려봤습니다. 그제야 은성이는 그림자 속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코, 코뿔소?”

은성이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도망가고 싶었는데 발이 바닥에 붙은 것 같았습니다

“쉿!”

코뿔소가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자기의 커다란 발로 내 입을 가렸습니다.

“누가 들으면 어떡해!”

은성이는 코뿔소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너, 진짜 코뿔소야?” 은성이가 물었습니다 “뿔이 없잖아 ” 그 말을 들은 코뿔소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은성이만 했던 코뿔소가 은성이보다 30 센티미터 정도 커졌습니다. 코뿔소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코뿔소는 울음을 터트려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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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앙!”

“풉!”

은성이가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뭐가 웃겨?”

코뿔소가 홱 돌아보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은성이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코뿔소가 한숨을 쉬며 소파에 걸터앉았습니다.

“내가 뿔이 왜 없는 줄 아니?”

코뿔소가 은성이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대답이 없었습니다 코뿔소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내 이름은 빅토리아야. 나는 자바 코뿔소야. ”

빅토리아는 자기 뿔이 있어야 하는 곳을 매만졌습니다.

“자바 코뿔소, 들어 본 적 있어?”

은성이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자바 코뿔소는 이제 세상에 65 마리 정도 밖에 없어 그리고 전부 다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어 ” “세상에, 65 마리? 누구가 자바 코뿔소를 멸종 위기에 당하게 한 거야? 혹시 ”

은성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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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색이 변했습니다. 빅토리아가 울상을 지었습니다. “맞아. 사람들이야. 사람들은 총을 가져와서 내 가족과 나를 쏴 버렸어. 그래서 내 뿔도 없고, 내 가족도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빅토리아가 발을 동동 굴렸습니다.

“뭐? 그렇다면 내 텔레비전 앞에 있는 뿔도 자바 코뿔소의 뿔이란 말이야?”

빅토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혹시 이 뿔을 가지고 있는 것도 법을 어기는 거야?”

“맞아 이런 코뿔소 뿔을 소유하는 게 법을 어기는 것이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코뿔소를 사냥하고 있어. ”

빅토리아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코뿔소를 어떻게 구하는 거야? 이렇게 없어지는 거야?”

은성이가 울먹울먹하며 물었습니다. “자바 코뿔소 공원이 있어 ”

빅토리아가 집 한쪽에 걸려 있는 인도네시아 지도에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자카르타 왼쪽에 ‘Banten’ 이라고 작게 써져 있는 곳에 자신의 커다란 회색 발로 가리켰습니다

“Ujung Kulon. 자카르타에 가까운 자바 섬의 ‘Banten’이라는 곳에 있지. Ujung Kulon 에서는 자바 코뿔소를 직접 볼 수 있고, 기부를 할 수 있어. Sondaicus 이라는 자바 코뿔소를 구하려는 하는 프로젝트도 있기도 해. ” 은성이의 눈이 아주 커졌습니다. “자바 코뿔소가 이렇게 멸종위기에 당하고, 코뿔소 뿔을 소유하는 것도 법을 어기는 건데, 이제야 알게 됐다니!” 은성이가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습니다. “맞아 ” 빅토리아가 말했습니다 “사람의 행동 때문에 자바 코뿔소가 사라지고 있으니까, 사람이 코뿔소를 다시 살려야 해. 그렇게 하려면 모두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거야. 그렇지?”

204

“응! 이젠 나 그리고 우리 가족, 내 친구들, 인도네시아 국민들, 전 세계가 너희들을

보호할 수 있게 도와줄게!”

은성이가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휙 바람 소리와 함께 불이 꺼졌습니다 빅토리아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빅토리아?”

은성이가 불렀습니다. 대답이 없었습니다. 빅토리아가 뛰었던 바닥 위의 발자국도 남지 않았습니다.

“빅토리아, 자바 코뿔소에 대해서 더 알아보기로 약속해!”

은성이가 안방으로 달려가 침대에 누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은성이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눈을 비비며, 은성이는 화장실로 하품을 하며 걸어갔습니다 세수를 하자, 갑자기 빅토리아가 생각났습니다

은성이가 쏜살같이 아빠에게 거실로 달려 나왔습니다

“아빠!”

은성이가 헐떡이며 말했습니다.

“어제 아빠가 사온 뿔 진짜야?”

은성이의 말을 듣자 아빠가 갑자기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은성아, 진짜 코뿔소 뿔은 너무 비싸!”

아빠가 웃었습니다.

“게다가 법을 어기기도 해 저기 있는 뿔은 그냥 가짜야 ”

아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은성이는

205
컴퓨터 방으로 뛰어갔습니다 서랍을 열어 컴퓨터를 빼낸 후, 구글 크롬에 들어가 타자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은성이가 ‘엔터’ 키를 누르자, 순식간에 사진과 글이 주르륵 나타났습니다.
206
.
?” 은성이가 물었습니다. 그 코뿔소는
왼쪽 다리에 똑같이 긁힌 자국이 있었습니다 은성이가 사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순간 사진 속의 빅토리아가 은성이를 보고 웃어 보였습니다. “빅토리아, 어제 약속 했었지? 더 이상 아프지 말아 이젠 내가 자바 코뿔소들을 구해 줄게!”
은성이는 ‘사진’ 탭으로 들어가 사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자바 코뿔소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거나, 도망가는 사진이 컴퓨터 화면을 채웠습니다. 그때, 맨 아래쪽에 있던 사진 중 하나에 은성이가 갑자기 집중했습니다 사진에서는 자바 코뿔소가 초원에서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빅토리아
빅토리아처럼 목과 오른쪽 다리에 상처가 있고,

자바 코뿔소를 구해 줄게

이번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문학상에서 우수상을 받아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지내는 3 년에 추억이 많이 있었지만, 자바 코뿔소의 슬픈 이야기가 가장 감동적이고, 마음에 남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읽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바 코뿔소에 대해서 알게 되고, 67 마리밖에 안 남은 자바 코뿔소가 멸종이 되질 않게 바랍니다. 영어가 아닌 한글로 동화를 길게 써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결과로 만족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작가의 꿈을 키워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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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상 이은솔
5
)
동화
(BSS,
학년

동시

고양이

임서호 (SPH, Sekolah Pelita Harapan Kemang Village, 1 학년)

야~옹

엄마 고양이 집 앞에서 반갑게 야~옹

야~옹

아기 고양이

학교 가는 길에 반갑게 야~옹

야옹이도 학교 가나 봐

엄마 나도 다녀올게요

너도 씩씩하게 다녀와 다녀와서 만나자

야~옹

208 우수상 KOICA 소장상

동시

맹그로브

첨벙첨벙

신나는 물놀이

찰방찰방

신나는 물놀이

하지만

이제 그만

자동차는 물놀이를 싫어해

인도네시아의 맹그로브 나무를

한국에 보내주고 싶어

쭉쭉 쪽쪽

넘치는 물을

쫙쫙 쏙쏙 빨아들여서

눈물이 뒹굴지 않게 맹그로브야 도와줘

209
210

안녕하세요 저는 임서호입니다

저는 동물친구들을 참 좋아해요. 자카르타에서는 다양한 동물을 직접 볼

수 있어 기뻐요. 손가락만한 도마뱀, 아빠 허벅지보다 큰 이구아나, 산책하

고 싶은 강아지, 안아주고 싶은 고양이, 똑똑한 오리도 모두 좋아요

학교 근처에 사는 고양이는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살금

살금 가도 금새 달아나 아쉬웠는데......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쓰다듬을 수도 있고 간식을 직접 줄 수도 있어요 신기해요 그 모습을 학교에서 배운 시로 쓰고, 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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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렸어요. 즐거워요.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시고, 상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어나서 처음 받은 글쓰기 상이라 정말 기뻐요 동시
맹그로브 우수상 KOICA소장상 임서호(SPH Kemang, 1학년)
고양이

모양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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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한인니문화연구원상
김민솔 (JIKS, Jakarta Indonesia Korean School, 6 학년) 동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어느 숲에 한 요정*이 살았다. 이름은 소문에 따르면 혼자만 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동물들은 요정을 이름 대신 숲의 요정이라고 부른다 숲의 요정은 숲을 다스리는 가장 위대한 존재이다 힘이 강력하고 자비로운 요정이라고 불리고 말이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요정이지만 딱 한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동물 이였을 적 기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것 이였다 자기가 마지막으로 먹은 열매를 제외하고 말이다. 요정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먹은 열매를 먹게 되면 전생의 기억을 다시 가지게 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어느 날 요정은 동물들에게 말했다. 자신이 무슨 동물이었는지 기억을 하게 만들어주는 열매를 가져온 동물에게 삼대 요정 숲의 요정 열매의 동물 날씨의 요정 중에서 동물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위인 열매의 동물의 자리를 주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열매는 노란 빛깔의 별모양의 열매라고 말이다. 숲의 요정의 말을 들은 야루는 열매를 찾으려고 한다.

난 지금 열매가 어디 있을지 고민을 무진장 하고 있어. 맞다! 내 소개를 까먹어 버렸다니, 나도 참 정신이 없나 보다. 나는 인도네시아산족제비야 이름은 야루 귀여운 이름이지? 우리 숲의 요정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야! 숲의 요정님은 항상 생명이 태어날 때마다 이름을 지어 주셔. 아무튼 나는 꼭 열매의 동물 자리를 갖고 싶어. 왜냐고? 열매의 요정이 된다면 숲의 요정님과 함께 지낼 수 있기 때문이야! 그래 서 그런지 나처럼 열매의 동물 자리를 노리는 동물들이 엄청 많지 하핫 그나저나 숲의 요정님의 기억을 되살릴 열매라니! 얼마나 대단한 걸까! 탐험을 떠나기 전에 나는 몇가지의 준비물을 챙겼어! 혹시라도 다칠 수 있으니 응급 키트를 가져가려고 방수 밴드나 마법의 약물 같은 것 들 말이야 아무튼 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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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을 떠나려 하는데 숲의 요정님의 기억을 되살릴 별의 열매를 찾기 위한 탐험에 함께 하지 않을래? * 요정이나 동물의 영혼이 그 자리에서 새롭게 태어난 존재를 말함

어느 날 별의 나무의 위치를 찾고 있던 야루에게 친구인 모루비가 말해주었다 우리

옆의 옆에 있는 산에 노랗고 별모양의 열매 그게 거기 있다는데?

야루는 저 높이 있는 산 꼭대기를 목표로 산을 뚜벅뚜벅 오르기 시작했다. 산을 올라가다 보면 모루비의 말처럼 별의 열매를 발견할지도 모르잖아

계속해서 헉헉대며 올라가던 야루는 저 멀리 갈빛의 털뭉치를 보고는 가까이 다가갔다. 갈빛의 털뭉치의 정체는 청설모였다. 청설모는 다리가 아픈 듯 보였다. 청설모가 말했다.

“다리가 너무 아파. 커다란 도토리가 내 다리에 떨어졌어. ”

야루는 짐을 싸면서 가져온 마법의 약을 꺼내 뿌려주었다 약의 효과는 굉장히 순식간이었다. 청설모의 다리에 있던 상처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말 고마워! 다리가 아파서 밤이 새도록 여기서 주저앉아 있었지 뭐야. 내 이름은 쿠쿠라고 해! 나는 아주아주 오래전에 이쪽 지역에 있는 산에서 언니를 잃어버렸어. 계속해서 매년마다 찾고 있는데 찾질 못하네 언니는 잘 살고 있으려나 아무튼 너는 왜 이 산에 올라오게 된 거야?”

“나는 저 옆 산의 주민동물인데 우리 숲의 요정님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는 별의 열매가 이 산에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음 별의 열매라고?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열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동물을 알고 있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꼭 도움이 되고 싶어!”

“진심이지? 정말 고마워” “어서 가자, 그럼 ” 야루와 쿠쿠는 요정의 기억을 되찾아줄 별의 열매를 찾기 위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쿠쿠가 말했다. “동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늪지대가 나올 거야 그 다음 강을 건너면 강아지 할아범을 만날 수 있을 거야. ”

214

동쪽으로 계속 걷던 야루와 쿠쿠는 늪지대를 발견했다. 늪지대 옆은 모두 돌로

막혀있었다 쿠쿠가 말했다

“돌이 언제 생겼담. 돌이 예전엔 없어서 옆으로 지나갔는데. 이렇게 되면 늪지대를 꼭

지나갈 수 밖에 없잖아!”

야루는 고민을 해보았지만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끙 끄응끙 ”

끙끙 앓는 소리를 따라 가보니 곰이 있었다. 곰은 우릴 보더니 말했다.

“고슴도치의 가시가 내 발에 박혔어. 피는 안 나지만 따끔거려서 걷지를 못하겠어. 날 도와줄 수 있니?”

야루는 곰의 사정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슴도치 가시를 쑥 빼 주었다. 가시가 빠져나옴과 동시에 곰의 울부짖음이 산에 울렸다

“윽, 고마워! 늪지대를 건널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던데 내가 도와줄까? 늪지대 따윈 한번의 점프로 넘어갈 수 있거든. 너네 같은 작은 동물들은 나처럼 한번에 넘을 수 없겠지! 내 도움을 받는게 어때? 고슴도치 가시를 빼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동물들은 서로 돕고 사는 거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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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도와준다면 우리야 좋지!” 곰은 두 마리의 작은 털뭉치을 소중히 안고 점프를 했다. “고마워!” “별말씀을!” 곰은 뿌듯해 하며 말했다 “그럼, 잘 가!”

곰은 인사를 하고 저만치 멀리 가버렸다. 우리는 또 계속해서 걷기 시작했다.

“저기 보이지? 저 강을 넘으면 강아지 할아범이 살아”

두 마리의 동물은 강을 건널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야루가 말했다

“강의 폭은 좁은데 물살이 너무 세 잘못 하다가는 휩쓸려 내려가 버리겠어!”

그때 악어 한 마리가 강에서 첨벙거리며 튀어나오더니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야루가 소리쳤다.

“무슨 일이니?”

“등껍질이 벗겨져서 쓰라린데 딱 거기에 물이 들어갔어! 너무 따가워 으악!”

야루가 다가가면서 말했다

“조금 따가워도 참아 내가 도와줄게. ”

야루는 약통을 꺼냈다. 휴지 뭉치를 손에 칭칭 감은 후 등껍질이 벗겨진 부분에 톡톡 두드렸다 “윽... ”

악어는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야루는 등껍질이 벗겨진 부분에 약을 바르고 방수가 되는 밴드를 붙여주었다 그러고는 아픔을 줄여주는 마법 약을 뿌려주었다 “아픈 게 다 나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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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걸! 고마워! 이 강을 건너려고 하는 것 같던데 나를 밟고 가면 쉽게 갈수 있을 거야! 조심히 걸어가렴. ” 악어의 도움을 받아 야루와 쿠쿠는 강을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저기 빨간 지붕에 빨간 벽돌집! 저기야. ”

동물들은 벽돌집에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한 10초쯤 지나니 털이 군데군데 빠져서 누군들 나이가 들었다는 걸 한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늙은 개 한 마리가 문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누구냐?”

“저는 근처 산에서 온 족제비라고 합니다. 별모양을 한 노란색 열매를 찾고 있습니다. 혹시 아시는가요?”

“홀홀홀.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엔 과일장수 옆에서 일을 했었지. 그 정돈 모를 수가 없는 거 아니겠느냐?”

“그럼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음...... 예전에...... 그 물 웅덩이...... 그래, 그 거기에 물고기 몇 마리가 사는 둥근 물웅덩이 옆에 딱 한 그루 있었어.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그루. ”

“그럼 그 웅덩이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 아시나요?”

“글쎄다. 그건 잘 모르겠네. 마지막으로 본 게 한 5년 됐나? 그 나무도 살아 있으려나 모르겠군. 홀홀홀. 웅덩이도 말라 없어졌을 수도...... 홀홀. ”

“그럼 할말은 다 한 것 같으니 들어가마. 운이 따라주길 빌게. 홀홀. ” 끼이익, 쾅. 문이 닫혔다. 야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난 별의 열매를 찾지 못하는 걸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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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니가 따준 목도리란 말이야!” 쿠쿠와 야루는 목도리를 잡기 위해 뛰어갔다. 한참을 뛰었더니 한 나무에 걸쳐 졌다. “휴 ” 쿠쿠와 야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쿠쿠의 목도리가 바람에 날려갔다 휘이이이이잉 “안돼! 저건

둘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바로 목도리가 걸쳐진 나무에 별모양의 열매가 달려있던 것이다. 야루는 열매를 찾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긴장이 풀려서 털썩 주저앉았다. “못 찾을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야 ” 야루는 나무에 부드럽게 올라가 별모양의 열매를 조심스럽게 톡 땄다 혹시라도 잃어버릴지 몰랐기 때문에 세 개쯤 따서 가져가기로 했다. 열매를 따니 상큼한 향기가 나서 한참을 둘이서 킁킁거렸다. 둘은 열매를 따서 다시 산 밑으로 내려갔다. 두 친구는 한참을 걸어 숲의 요정이 사는 나무궁전에 들어갔다. 숲의 요정은 노란색 반짝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숲의 요정님! 별의 열매를 가지고 왔습니다!”

“정말? 열매를 가져왔다고? 이리 보여줘봐. ”

야루는 계곡물에 뽀득뽀득 씻어 빛이 나는 열매를 내밀었다. 숲의 요정은 말했다.

“정말인 거야? 내 기억이 곧 돌아오다니!”

숲의 요정은 기뻐하며 열매를 한입 물었다

와사삭, 맛있는 소리가 들렸다. 요정은 그 자리에서 눈에서 눈물을 흘린 채로 가만히 있었다 두 친구는 영문을 모른 채 동그래진 눈으로 요정을 바라보았다 요정은 눈물을 손으로 닦은 뒤 쿠쿠에게 다가가 아무 말 없이 꼭 끌어안았다. 야루는 뜬금없는 요정의 행동에 의문만 느꼈다. 요정은 말했다. “내 동생아, 미안해. 너랑 꼭 붙어 있었어야 하는데...... ” 깜짝 놀라 멍하니 서있던 쿠쿠가 입을 떼었다 “정말 언니야?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쿠쿠야!” “흑, 언니,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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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

믿기지 않는 상황에 고개만 갸웃거리던 야루는 쿠쿠와 요정의 설명으로 이해를 하게 되었다. 쿠쿠와 요정은 사실 자매 간이었다. 숲의 요정은 숲에서 떠돌다가 죽음에 이르렀고, 요정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요정은 동생을 만난 것과 자신이 동물이었을 때의 기억을 되찾았다 모두 기뻐했다 요즘 쿠쿠는 요정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 숲을 위해 봉사를 하며 다 함께 궁전에서 지낸다. 열매의 동물이 된 야루는 숲의 열매들을 관리하며 아주 바삐 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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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의 열매

안녕하세요.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에 다니는 6학년 김민솔이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글쓰기 공모전에 참여하였는데 이렇게 상을 받게 되어 정말 기 쁩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더 열심히 참여 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자연 동물 주위환경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을 쓰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지역과 숲들, 그리고 동물들을 찾아보는 과정 에서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어 더욱 뜻 깊은 경험 이었습 니다 제가 쓴 「별 모양의 열매」는 족제비 야루가 숲의 요정을 위해 열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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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한인니문화연구원상 김민솔
)
찾으러 여행을 떠나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 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동화 별
(JIKS, 6학년

동시

장려상 한인니문화연구원상

가루다(GARUDA)

박승우 (ACS Jakarta, 3 학년)

신의 새 가루다

독수리 머리에 인간의 몸

황금 날개 쫘악 펼치고

우주의 신 비슈누를 태우고

악령과 사악한 뱀을 물리쳐

우주를 지키는 수호자

신화 속 태양의 신 가루다

지금은 승객들을 태우고

푸른 하늘을 날아오른다

엄마가 깨끗하게 다림질한

하얀 태권도복을 입은 나는

우리 집을 지키는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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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배우는 태권도장에서 팔 다리 쫘악 펼치고 품새를 겨룬다 “이얍!” 기합 소리에 맞추어 태권도장을 날아다닌다

동시

비밥

한국문화의 달 행사가 시작되면

인도네시아에 가을이 온다

한국문화원에서 연

비밥 공연 일본 스시

중국 치킨누들

이탈리아 피자 인도네시아 나시고랭

한국은 비빔밥

비밥 비밥 비밥 비빔밥~

내 꿈은 셰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비빔밥

주물주물 스트레스

길게 늘이고 짧게 잘라 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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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요리하는 비밥 셰프

엄마는 우리 집 최고 요리사

우리 가족의 행복 비법은

조물조물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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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ACS Jakarta 박승우입니다

가루다 하면 많은 사람들은 비행기 가루다를 생각 하겠지만 가루다는 새 이름입니다. 동시를 적기 전에 인터넷에서 가루다에 대해 찾아 보면서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비밥은 얼마 전 자카르타에서 무료로 보게 된 공연입니다 공연을 보고 느낌 점을 동시로 적었습니다. 요리사들이 악기를 두드리듯 신 나게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공연 내내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공연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의 하나인 비빔밥이 나와서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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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 공연을 본 인도네시아인들과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비빔밥을 좋아하게 되겠지요? 동시를 적는 동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힘들었지만 상을 받게 되어 기쁩니다. 상금으로 평소에 사고 싶었던 장난감을 살 생각을 하니 행복합니다! 엄마한테는 비밀이지만, 사실 이 상을 받으니 다른 글쓰기 공모전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시 가루다(Garuda) 비밥 장려상 한인니문화연구원상 박승우(ACS Jakarta,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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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 Kebudayaan Korea dan Indonesia (Asosiasi Korea) Indonesian & Korean Culture Study (Korean Association) 《한인니문화연구원》 소개 및 연혁 한국·인도네시아 문화의 허브센터 주소 Gedung Asosiasi Korea Lt.1 한인회문화회관 1 층 (대사관과 메디스트라 병원 사이) Jl. Gatot Subroto Kav 58, RT.1/RW.4, Kuningan Tim. Kecamatan Setiabudi, Kota Jakarta Selatan, Daerah Khusus Ibukota Jakarta 12950 홈페이지 www.ikcs.kr 인원 한국인 봉사자 10여명, 인도네시아인 1명 - 원장 1명, 부원장 1명, 수석팀장 1명, 팀장 2명

- 석좌교수 1명, 수석연구원 1명, 책임연구원 1명, 특임연구원 2명 - 객원연구원(서울대사회과학연구원 소속) 3명 - 특별부서: 자카르타 역사연구팀 4명 - 국제교류팀(한국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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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명 주요사업 문화탐방: 인도네시아 유적지와 문화예술 탐방 열린강좌: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문화, 유적에 대한 연구와 이론 공유 자카르타 역사 연구: 자카르타 옛 도심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과 문화 연구, 현재 한인 언론사에 기고하며 책자 발간 예정 문학상: <인도네시아 이야기> 및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문학상 개최 출판: 출판권 약정, 번역협력, 출판기념회, 섭외, 총괄 문화예술관련 전시회 및 세미나 개최

2022.08~12 제12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제2회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문학상 공모전 《한-인니산림협력센터》와 공동개최

2021 03 서울대학교사회과학연구원 VIP신흥지역연구사업단-재인도네시아한인회 공동학술대회 참가 및 후원: ‘한인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사’

2020 ‘자카르타 역사 연구팀’ 결성, 한인 언론사에 칼럼 연재

2019~2021 『막스 하벨라르』, 『인도네시아 위안부 이야기』, 『쁠라우 라뚜 해안의 고양이』, 『내가 품은 계절의 진언』,『판데르베익호의 침몰』, 『Pemahaman Budaya Korea dan Indonesia』 외 7권, 출판기념회 주최·협력, 출판권 약정·번역협력 2019. 08 재인도네시아한인회, 히스토리카인도네시아, 우이(UI)와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 양칠성 세미나’ 공동 개최 2019 08~2020.12 재인도네시아한인회 제작 『인도네시아한인100년사』 연구원 팀리더 3인 집필 및 편집 참여, 한인100년사 기획탐방

2019 03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 세미나’ 주관(주최: 한국문화원)

2018.10~11 한국문화원 초대전 ‘복주머니’, ‘소망을 담은 민화’ 한국퀼트페스티벌, 주관 기획 후원, 한국문화원과 서울예술대학교 장애인올림픽 축하공연 개최

2016~2017 인도네시아 융합형 아티스트 하리다르소노 한국 초청 강연 5회 기획 주관

2016~현재 <바틱, 느린 영혼의 여행> 전시회 6회 개최(한국 4회, 자카르타 2회)

2016~2018 서울예술대학교 인니아티스트 초청 교류협력추진

2014~현재 서울예술대학교, 서울대학교 VIP신흥지역연구단, 한국천연염색박물관, 여성인권진흥원 일본'위안부'연구소 인한친선협회, 부산외국어대학교 등 15개 기관 및 단체와 업무협약 체결 2014 재인도네시아한인회 산하 《한인니문화연구원》으로 새롭게 시작 2012 <누산따라에서 한반도까지> 음악회 개최, EBS 세계테마기행 <앙끌룽>, <사만가요>현장진행, Apa Kabar Indonesia 발간

2011~2012 한국문화원 한국문화주간, JIKS 한국의 날 참여 2011~2014 사단법인 《한인니문화연구원》(이사장 김상태(2011~2013), 송재선(2014))으로 개원 2010~현재 ‘열린강좌’ 75차례 개최. 양승윤, 가종수, 김문환, 노경래, 서울대연구원 등 강의 2010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공모전 신설 및 개최 2009 『서부자바의 오래된 정원』(사공경저)

2005~2006 <Korean Ways>, <자카르타 아리랑(한국전통문화전시회)> 기획·주관 2005 『자카르타 박물관 노트』(사공경저)

2001·2002·2004 <인니 풍물 사진전>, <100회 문화탐방 기념> 사진 전시회 개최 2001 《한인회 문화연구회》로 거듭남 1999~현재 ‘문화탐방’ 336회(족자 솔로 스마랑 반둥 숨바 등) 개최, 인도네시아 관련 칼럼 기고 1999 재인도네시아한국부인회의 문화탐방반에서 시작한 비영리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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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Indonesia Forest Cooperation Center (KI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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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니 산림협력센터》 소개 및 연혁 대한민국 산림청과 인도네시아 환경산림부가 공동 설립한 한-인니 양국 간 협력을 위한 핵심 센터(Center of Excellence) 양국간 산림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공동 산림 프로젝트를 개발 · 이행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임업기업의 활동 지원 주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환경산림부 청사(Manggala Wanabakti) #723,WingC, 7thFloor, Block4,ManggalWanbakti,Jl.GatotSubroto,Jakarta,10270,Indonesia 홈페이지 www.kifcjakarta.org 인원 양국 공동센터장 및 인니 자문관 등 한국인 3명, 인니인 3명 주요사업 잠비 이탄지 복원 프로젝트 센툴생태교육모델숲 프로젝트 룸핀양묘장 지원 프로젝트 롬복 뚜낙 산림휴양 생태관광 사업 프로젝트 산불재난관리시스템구축 (신규) 기타 양국간 산림분야 협력 프로젝트

11 잠비 이탄지 복원사업, 국무조정실 공적개발원조 우수사례 선정

2022. 05 제15차 세계산림총회 참석-센터 사업 사례 및 논문 발표 08~10 <인도네시아 이야기>,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문학상 공모전 공동 개최 09 한-인니 산림협력센터 개소 10주년 기념식 04 센툴모델숲 대강당(Millennials Hall) 이전 및 소강당(K-Forest Hall) 준공 06 산림비디오 공모전 개최

2021. 03 이탄지 잠비 사무소 개소, 세계 산림의 날 기념 온라인 산림사진 공모전 개최 11

조코 위도도 대통령 룸핀양묘장 시찰, 국제 열대양묘장 및 연구센터 조성 계획 발표

2020. 08 이탄지 복원 및 보전 사업 LoA 체결 10 센터 설립 RoD를 개정하여 Arrangement 체결

2019. 06 센툴생태교육모델숲 다리개설 준공

2018. 03 롬복 뚜낙 산림휴양·생태관광센터 개장 2017 뚜낙 생태관광 센터 2차 시설물 조성 06 뚜낙 산림휴양 생태관광 사업 이행합의서 체결, 뚜낙 생태관광 센터 1차 시설물 조성

2016. 05 이탄지 복원 및 산불관리협력에 관한 MOU 체결 12 롬복 뚜낙 산림휴양 및 생태관광 센터 설계 완료 2015. 03 센툴생태교육모델숲 신축 다목적 강당 준공 2014. 07 센툴생태교육모델숲 운영에 관한 RoD 체결 10 한-인니 산림휴양 및 생태관광 활성화 관련 MOU 체결 2013. 07 센툴생태교육모델숲 개장 2012 함발랑(센툴생태교육모델숲) 녹색협력단지 조성 착수 07 산림부 내 한-인니 산림협력센터 개소

2011. 05 KOICA 사업 종료 후 룸핀양묘장 지원에 관한 RoD 체결

2010. 06 한-인니 산림협력센터 설립에 관한 RoD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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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제 12 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 제 2 회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문학상 수상작품집 『따로 또 같이』 발행처 한인니문화연구원, 한-인니 산림협력센터 발행일 2022 년 12 월 19 일 제작·편집 이영미 교정 교열 이영미 사공경 표지 디자인 김현경 이 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하시려면 발행처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제 2 회 <인도네시아 생태이야기>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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