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화씨 451」, 의미의 발생황영은(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레이 브래드비리의 소설 「화씨451」. 불의 온도를 가리키는 말인 것 같았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보면 책이 사라진 시대 속에서 고뇌하는 이들, 책과 함께 했던 지난 시대를 다시금 복구해 내려는 그들의 어떤 시도를 그려내는 내용이다. 책이란 마음의 양식이며 내면의 변화를 끌어낸다는 것. 그 의미와 가치가 상실된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런 현실을 타개해 보려는 이들의 심리적 변화를 따라가 보는 것 또한 이 소설의 묘미다.주인공 …
기다림의 끝Bunga Shafa Aziizah그렇게 밖에 신뢰를 못 줬다고?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던지 김도권은 귀가하는 내내 핸들을 끊임없이 때렸고 또 때렸다. 자기도 그걸 아는지 불안정한 그의 운전을 멈출 생각으로 도로 한복판에 주의를 보면서 차를 근방 편의점에 세웠다.새벽 2시 23분. 그는 차에서 내려 편의점에 들어섰다. 그 안에 졸고 있던 알바생이 종소리에 일어나 도권에게 인사를 했다. 그 인사를 들을 리 없는 도권은 계산대를 지나 냉장고 쪽으로 직진했다. 냉장고문을 열어 캔커피 세 개를 집어 계산대에 갔다. 알바생은 김도권을…
승리의 도시, 자야카르타최하진탁 트인 공터를 둘러싸고 새까만 대포가 눈을 거스른다. 선글라스를 끼고 발걸음이 가벼운 낯선 사람들이 지나쳐간다. 따가운 햇볕은 나의 인내심과 줄다리기를 하고, 체면 따위는 접어두고 더위를 피할 곳을 찾는다.털그덕 털그덕 더위에 지친 말이 꼬리를 힘없이 흔든다. 터벅터벅 걷는 것인지 뛰는 것인지 모를 발걸음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든다. 갈기의 윤기를 잃은 갈색 말, 목 주위에 달린 종만 정적을 깨는 소리를 낸다.화려한 조화를 단 모자를 건네는 상인을 뒤로하고 그늘을 찾아 길을 재촉한다. 광장을 바라보는…
빈 상자김형석우리는 저마다의 삶 속에서 무수히 많은 인연의 연속에서 살아간다. 인연이란 인간관계 말고도 포괄적 의미에서 사물뿐 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서 언급하려는 것은 살면서 어떠한 물건에 대하여 많은 관심과 애착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그것들은 각자의 취향이나 기호에 따라 부담 없는 것부터 값이 나가는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무수히 많은 물건들 중에서 어떠한 것은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고르고 또 골라서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가는 도중에 실수나 부주의로 잃어버리는…
나의 아저씨, 나의 기사님, 나의 고젝양범은핸드폰의 액정이 8시 39분을 가리킨다. 로비에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며, 구글 지도앱을 켠다. 액정에 나타난 예상시간 48분, 출근시간과 겹친 도로는 마치 붉은 정맥 같은 길을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예상했던 시간과 무려 30여분이나 차이가 난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카르타의 교통체증 때문이다.‘오늘이 짝수 날이라서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구나.’ (자카르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가장 번잡한 오전과 오후 시간대 각각 4시간 동안, 주요 도로에서 홀짝제를 운영하고 있다.) 뒤늦은 현타와 함…
에바, 애바.황영은호텔 관리인인 듯한 사내는 호텔을 관통하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산으로 향하는 문이 나온다고 안내해줬다. 하루 식비로 부족하지 않을 뒷돈을 받은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몇 주 전,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의 말에 따르면 호텔 관리인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돈을 좀 쥐어주면 호텔 입구로 출입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선배의 말을 믿고 자카르타에 도착한 다음 날 블루버드(blue bird)를 타고 곧장 호텔로 들어선 참이었다.넓고 완만한 계단을 오르자 양쪽으로 객실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도열해 있었다. …
PANDEMIC 터널을 지나온 우리한지영지난 3년간 우리는 한 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는 감염병의 공포를 실감하며 살아왔습니다. 비단, 저만 느꼈던 것은 아니겠지만, 메르스나 사스가 발생했던 과거 시절에 경험하지 못했던 극한의 공포를 실감했고 일상의 상실을 경험했던 3년간의 팬데믹이었습니다.처음 우한 폐렴이라는 말을 뉴스에서 들었던 2019년 말, 이전처럼 나와 가깝지 않은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로 스쳐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여느 때처럼 한국을 다녀온 후 인도네시아에서 일상을 살아가던 2020년 1월 …
계절의 여왕, 5월장소연이렇게 5월이 오기를 기다렸던 적이 있었을까? 부모님의 결혼기념일과 그 결과로서 세상에 나왔을 나의 생일과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봄의 계절이 어렸을 적의 나의 생일은 어린이날과 내 생일 하루 전에 있는 큰아버지의 생신 날 사이에 껴있는 덕분에 따로 생일상도 선물도 받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아마도 어린이 날 선물은 따로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일 년에 두세 번(어린이 날, 생일 날, 크리스마스이브)선물 받는 기분을 챙기는 건 중요했다고 본다. 큰아버지의 생신날에는 할머니 댁에서 큰…
작고 어린, 곤졸조은아1.새소리가 시끄러웠다.짹짹 짹 짹짹짹 짹- 유일하게 소리만 들어도 알만한 놈들이었다. 작고 동그란 얼굴에 새끼손톱만 한 부리를 가진 갈색의 새. 밤새 목을 아낀 탓인지 아침의 참새 소리는 더 높고 짱짱했다. 유나는 잠에서 깨며 동시에 얼굴을 찡그렸다. 고막이 그 작은 부리에 쪼아지는 듯했다.“아 시끄러…….”꿈속 너머 아련했던 새소리가 실제 볼륨으로 현실화하니 따갑고 아팠다. 손으로 귀를 감싸며 일어나 앉은 유나는 눈꺼풀이 반 정도 내려앉은 얼굴로 방을 둘러보았다. 유나가 자고 있던 아랫목을 제외하고 다른 이…
끝이 아니었다양경실학창 시절,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책상 앞에 책을 펼쳐 두고는, ‘이 지긋지긋한 공부는 언제 끝나지?’ ‘얼마나 커야지 공부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고민을 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쓸데없는 생각하지 않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하면 되었던 건데, 그땐 그랬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나보다 두 배는 더 살았는데, 과연 공부와 헤어질 수 있었을까?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선 사회에서 일괄적으로 해야 하는 공부에서는 해방되었다. 더 이상 정규교육 과정이라는 틀 속에서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