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산책 82 > 아침에 꽃을 지고 문인기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금요일 아침, 주말이라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지만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약간 긴장하고 나선 출근길이다. 집에서 출발하여 동네를 벗어나 늘 아침 시간이면 붐비는 네거리를 못 미쳐 있는 짧은 다리를 지날 때였다. 햇살이 정면에서 눈이 부시도록 비추는데 해를 등지고 초로의 한 아주머니가 등에는 바구니를 지고 양손에 무언가 들고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역광으로 인해 실루엣처럼 분명하지 않다가 가까워지자 선명하게 보이기 …
< 수필산책 71 > 빛과 그림자 하연수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감사) 오후 두 시에 만나기로 한 인도네시아 다문화 가정 출신 김현아를 만나러 부산역으로 갔다. 역 광장에 곧 눈이라도 내릴 듯 흐렸고 몸을 움츠린 사람들은 바쁜 개미가 되어 공사 중인 광장 좁은 길을 따라 오고 간다. 나는 이 광장에 설 때마다 오른 쪽 길가 건물 5층 PT. GI 부산 사무소가 있었던 곳을 습관적으로 먼저 보고는 한다. 오늘은 건물 유리창들이 여우 둔갑하듯 회색 금속판이 되어 눈을 번뜩인다. 부산 신발 산업이 인건비를…
< 수필산책 62 > 아름다운 그 소리 김재구 / 한국문협 인니지부 사무국장 인생살이가 다 그런 것 같다. 늘 힘든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늘 기쁜 일만 있지도 않다는 생각이다.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수레 바퀴처럼 기쁜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어려운 때에도 웃을 일이 항상 있기에 사람들이 그래도 인생을 버티고 살아 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내가 유년의 삶을 살던 1970년대 왕십리의 삶이 그랬다. 사실 70년대 가난은 쓰나미처…
< 수필산책 52 > 연당 막걸리와 코코넛 워터 엄재석/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어릴 때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연당 양조장 집이라 불렀다. 도가집으로 막걸리를 제조하는 공장이자 판매까지 하였다. 당시만 해도 면 단위 마다 하나씩 있다 보니 그 동네에서는 가장 큰 집이 양조장이다. 양조장에는 술밥을 쪄서 식히는 보일러실과 누룩 발효균을 배양하는 종국실이 있다. 쌀밥과 누룩을 비벼 옹기 독에 담아서 일주일 정도 숙성하는 숙성실이 있다. 이 숙성실은 항상 온도가 일정해야 하기에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2019년 제3회 적도문학상 수상자 발표 ★수상자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수필산책 42 > 90세 아버지의 자카르타 방문 엄재석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수카르노하따 공항의 1층 입국장 문이 열리자 아버지가 나오신다. 90세 아버지가 7시간이란 긴 여행 끝에 인도네시아 땅을 처음으로 밟는 순간이다. 장시간의 여독에도 불구하고 건강하신 아버지의 모습에 껴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아니 주위에 사람이 없다면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이라도 했을 것이다. 이국 땅에서 연로하신 아버지를 뵙다니 이게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된다. 아버지와 함께 오신 형님과도 진한 포옹을 나누었다.…
< 수필산책 32> 에센스 아파트와 단풍나무들 엄재석/한국문인협회 인니지부 회원 간밤에 내린 비 탓인지 베란다 창문 밖으로 멀리 살락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난 몇 달 동안 흐린 시계 탓으로 자취를 감추더니 이제야 그 자태를 보여준다. 이 얼마만인가? 간만의 살락산이 반갑기만 하다. 해발 2,700미터의 높이의 휴화산으로 자카르타 시민들에게 어머님의 품 같이 아늑함을 느끼게 하는 산이다. 살고 있는 아파트 19층에서 멀리는 살락산을 가까이는 남부 자카르타의 풍경을 바라본다. 눈 아래에 펼쳐진 단층집의 붉은…
< 수필산책 29 > 작은 빈틈 이영미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회원) 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나방의 놀라운 재능에 관한 칼럼을 흥미롭게 읽었다. 브리스톨 대학의 연구팀에서 캐비지 트리 황제 나방(Cabbage Tree Emperor moth, Bunaea alcinoe)의 몸을 둘러싼 미세한 털이 박쥐가 내보내는 초음파를 흡수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아직 대기 오염이 한국처럼 심하지 않은 인도네시아는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박쥐를 종종 볼 수 있다. 어둑해지는 저녁, 딸아이와 산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