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산책 135 > 작은 여유 송민후 / 시인, 문인화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봄과 여름사이 남쪽의 아침바람은 지나온 계절을 닮았다. 달리는 차창을 헤집고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운 실크 스카프가 뺨을 스치고 가듯 부드럽다. 비개인 하늘에 구름이 무겁게 매 달려있다. 늘 아쉬움이 남는 고향 방문이 이번에는 유난스레 아쉽다. 하루 더 쉬었다가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삶의 터전으로 가고 있다. 우리가족은 가는 길에 좋은 곳 있으면 쉬어가기로 하고 도로 표지판을 읽어가며 갔다. 1시간쯤 달리다 평소 가보…
< 수필산책 134 > 마음의 이사 한화경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올해 6월, 현재 살고 있는 집 계약기간이 다가오면서 이 나라에 온지 2년이라는 세월을 실감하게 되었다. 세월의 흐름은 정말 빠르다. 지금의 집은 처음 살아본 2층집인데다 방마다 화장실이 있고 풀퍼니처로 모든 가구가 구비되어 있었기에 우리에게는 과분한 집이었다. 그렇게 인도네시아에서 첫 생활을 시작했다. 다섯 식구가 적도나라에 적응하는 과정을 지켜준 고맙고 추억이 많은 정든 집이다. 남편이 발령을 받아서 준비단계로 남편 홀로 이 나…
<수필산책 133 > ‘발리’에서 한 달 살기 강희중 / 제4회 적도문학상 시 부문 특별상 수상자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든 행사나 모임이 취소되어 각자의 시간을 갖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 기회에 뜻있는 지인과 둘이서 발리에서 한달 살기를 추진하였다. 나는 20여년간 모아온 골동품과 공예품들로 발리에 갤러리를 열고 싶었고 자카르타 윈드오케스트라 백단장은 발리에 음악학교를 열고 싶어 함께 대지나 건물들을 살피기 위하여 한 달 간 발리생활을 하기로 합의…
< 수필산책 132 > 살락 씨처럼 반짝이는 눈 하연수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감사) 딴중까잇(Tanjung kait) 신전 옆 열대 나무들이 깊은 그늘을 내리고 있었다. 그곳 나무 뒤에 숨어 얼굴을 내미는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은 여느 시골 아이들 얼굴처럼 흙먼지와 묵은 때로 가득했지만 눈은 방금 갈색 살락 씨가 흰 속살을 벗고 나온 듯 반짝거렸다. 마치 보문 호수 서북쪽 북천 한센병 환자 공동체 마을 희망촌 마당에서 본 미감아 소녀의 그 눈 같았다. 신전 앞 소녀의 반짝이는 갈색 눈…
<수필산책 131> 안경 동지 김재구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사무국장) 요즈음 나는 아내를 ‘동지(同志)’ 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아내를 동지라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갑자기 그렇게 부르고 싶은 것이다. ‘동지’ 라는 말에는 원래 좋은 의미가 담겨있다. 같은 뜻이나 목적을 공유하는 친한 사람들 간에 쓰는 호칭이다. 꼭 정치적인 뜻이나 목적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만 쓰이는 말은 아니다. 같은 마음, 같은 뜻 그리고 같은 삶의 목적을 향해 간다면 …
<수필산책 130> 아름다운 이별에 대한 연습 강인수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한 달 전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큰 이모가 ‘암’이란다. 추석 후에 수술을 할 예정이야, 병 간호를 조카들이 부탁하네. 노인네가 울먹이더라.” 어머니께서는 본인 할 말만 마치시고 툭 전화를 끊으셨다. 연세 79세의 이모는 평생 술 같은 것도 안 드시고 음식을 꼭꼭 씹어 드시며 매사 서두르지 않는 차분한 성격이었다. 100세도 끄떡없다고 우리끼리 속삭였던 말들이 무색하게 위암이었다.…
<수필산책: 한국문단 특별기획> 춘향에게 송명화 / 수필가 춘향! ‘탈선’은 매력적인 낱말이거든, 만약 연극 제목이 「춘향전」이나 「열녀 춘향」이었다면 나는 표를 사지 않았을 테지. 「탈선 춘향전」이란 제목에 끌렸었거든. 아름다운 네 모습이 빛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손에서 놓기 싫을 정도로 재미있게 네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심지어는 남원을 찾아 광한루를 거닐면서도 2% 부족하던 이유가 아마도 그것이 아니었나 싶어. 여성의 남성 의존적인 삶의 모습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듯한 분…
< 수필산책 128 > 아름다운 섬나라 한하은 / 제4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수상자 낯선 곳이 내게 다가왔다. 수 만개의 섬을 보유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나라, 인도네시아였다. 그 곳에 가야하는 이유도 모른 채 내 나이 3살 무렵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너무 어렸기에 어릴 적 한국 생활조차 기억이 제대로 나진 않지만 당시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나 멀리 가야 한다는 말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만은 기억난다. 처음 보는 비행기를 타는 것부터 낯설게 느껴졌다. 심지어 비행기엔 한국 사람보다 인도네시아…
< 수필산책 127 > 안동산 정상에서 이태복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다. 어려울 때 일수록 사건도 더 생기고 사람 관계에서 실망하는 일도 많다. 사람에게 실망했을 때 이성과 감정을 공유한 인간은 진실을 밝힌다고 대화를 하다가 끝장토론이 되어 이기적 속성을 갖고 있는 인간의 감정은 악감정으로 치우칠 수 있고 이성을 잃어버리는 실수도 할 수 있다. 한 방향으로 쏠릴 때 그렇다. 일을 하기 위해 수레를 끄는 말들에게 좌우시선을 가리는 안대를 …
< 수필산책 126 > 달팽이와 유목전사 하승창 / 제4회 적도문학상(수필부문)- 최우수상 수상자 나는 아침마다 약 40분간 동네를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첫 30분은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땀을 내고, 이후 10여 분은 천천히 걸으며 땀을 식힌다. 아침 산책길에는 매번 마주치는 존재들이 있다. 밤새 길가에 쌓인 낙엽과 낙화들을 쓸어담는 청소부들, 항상 씩씩하게 걷는 이웃집 할아버지, 불편한 한쪽 다리를 끌고 도우미와 함께 산책하는 할머니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울창한 나무들과 야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