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책 185> 남해여행에서 깨달은 행복 김준규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운영위원) 쫓기듯 젊음의 의욕이 끝없이 넘쳐나던 적도의 황혼이 붉게 물들고 있다. 인고를 쌓아 올리며 하늘 끝을 점령한 기다란 야자수처럼 석양에 비치는 역정의 그늘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그리움들이 있다. 인도네시아 생활에서 잊고 살아온 고국에 대한 애착과 친지나 친구들과의 그리 많지 않을 만남의 기회에 대한 후회, 곰곰이 시간을 저울질하기에는 조급함이 먼저 앞선다. 잡다한 집착을 내려놓고 짐을 챙겨 한국으로 떠나는 일이 부…
<수필산책 184> 빈 페인트 통에 대한 감상 문인기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세월은 참 빨리도 흘러간다. 코로나와 몸부림치며 씨름한지도 2년, 세월이 흐르는 속도는 언제나 같으련만 전 세계가 갑자기 부닥뜨린 펜데믹과 씨름하는 동안 뉴스마다 코로나 전쟁의 진퇴에 대한 보도라 그것에 신경 쓰며 보낸 세월인지라 더욱 빨리 지나가버린 것 같다. 나는 매월 한번 지인들에게 카톡이나 메일로 조금 긴 편지를 월 초에 띄운다. 이렇게 나의 소식을 보낸지도 벌써 20년째다. 어떤 분은 받은 편지를 유심히…
<수필산책 183> 연탄 집 복실이 이재민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나의 유년 시절, 살갗 따가운 바람 한 점이 휙 불기 시작하면, 변두리 우리 동네 사람들은 월동 준비로 분주했다. 아줌마들은 이집 저집을 차례로 돌며 김장 김치를 함께 담갔다. 간혹 200포기 300포기를 담그는 집이 있으면 모두가 그 집이 잘 산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창고에 연탄 수백 장을 들여놓으면 그 집이야말로 정말 부잣집이라고 생각했다. 연탄트럭을 대어놓고 좁은 골목길을 삥 돌아가며 사람의 띠를 따라서 연탄이 옮겨지는 장면은 그야말로…
<수필산책 182> 질밥 스카프와 마스크 하연수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감사) 소리 없는 번개가 멀리 서쪽 하늘에 흔적만 보여주고 사라진다, 하늘 가득한 구름 가장자리에 언뜻언뜻 은빛 테두리가 보인다. 사람들은 곧 코로나 공존시대가 온다고 한다. 이곳 인도네시아 땅그랑 반튼 여인들의 질밥 스카프도 짙고 어두운색에서 밝고 다양한색으로 변화를 시작했다. 코로나로 억눌려있던 욕구가 질밥 스카프와 마스크 변화로 표출 되는 것 같다. 한물가는 코로나도 이제 변화의 바람을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 …
<수필산책 181> 존재하지 않는 가치에 대한 매료 이병규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튤립이라는 꽃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리라 믿는다. 튤립은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다 년생 화초로 아름다운 꽃을 가진 식물이다. 오늘 갑자기 튤립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이 특정 대상에 대한 매혹이 불러오는 사회 현상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고 싶어서다. 우선 튤립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 보자. 튤립은 놀랍게도 네덜란드가 원산지가 아니다.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 지역이 튤립의 진짜 고향이다. 더 넓은 황…
<수필산책 180> 나의 운수 좋은 날 강인수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은 제목과 다른 반전에 반어로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로 패러디 화 되었다. 그만큼 이야기 거리를 만들기에 참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내가 겪은 나의 운수 좋은 날은 비극적 반전이라기보다는 그냥 재미있는 콩트에 해당되어 같은 제목 아래 가벼운 소재로 이렇게 몇 글자 적어 보려 한다. 작년에 한국에 장기간 머물 때 일이다. 약속이 있어 급하게 뛰어가는 길에 남들이 잘 안 다니는 뒷길…
<수필산책 179> 렉터 박사의 저녁 식사 하승창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붉은 토마토소스 위에 올려진 하얗고 거대한 통 새우들, 식탁에 놓인 '새우 파스타'를 보고 있는 내 머릿속에 숱한 의혹들이 교차한다. '좀 작은 새우를 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면 새우를 길게 한 번 잘라 줬어야 했을텐데?' 포크로 면을 두어 번 돌려 감고, 뾰족한 끝으로 새우를 푹 찌른 다음 한입에 넣고 씹으며 또 생각한다. '이 새우, 혹시 밑간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양념이 잘…
<수필산책 178> 격리의 기억 이병규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출국 날 아침, 공항버스 안의 나는 항상 불안과 초조로 가득하다. 온갖 출국에 관련된 서류들을 잘 챙겼는지 빠뜨린 물품은 없는지 굳게 입을 다문 캐리어를 열어서 내 눈으로 확인하고픈 욕구와 이 버스 안에서 저 큰 캐리어를 열었을 때 벌어질 몹시 불편한 상황의 경계에서 머리속에서는 몇 번을 캐리어 잠금 장치를 풀었다 열었다 하곤 한다. 이미 별도 개인 기내 가방은 10분에 한번 씩 여권과 지갑이 잘 있는지 접종증명서와 PCR 결과지를 확…
< 수필산책 177> 추석날의 단상 서미숙 / 시인,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장) ‘코로나 19’ 덕택에 작년부터 한국에서 추석을 보내게 되어 기쁘지만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명절 때면 맏이로서 조상을 모시고 차례를 지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인도네시아에서 우리식으로 제수(祭需)를 구하려면 몇 군데 슈퍼를 돌아야하기 때문에 꼼꼼히 체크하지 않으면 간혹 빠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에는 L그룹의 대형마트가 들어와 한국음식이 많이 다양해졌다. 내가 처음 인니에서 차…
<수필산책 176> 초심자의 길 전현진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어느 해 가을, 친구들과 함께 부산행 기차 안에서였다. 절에 가자는 건 순전히 내 제안이었다.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기차에서 내려 사찰이 있는 산으로 향했다. 등산로 입구의 안내도는 명료했다. 길 따라 오르면 도착이었다. 갈림길도 딱히 없고, 어려울 것 없는 코스였다. 산 입구는 공원 산책로로 양쪽에 꽃과 나무가 나란히 이어졌고, 평평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중간 중간 쉬어갈 수 있는 긴 벤치도 놓여있고 오가는 사람들도 여유롭게 거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