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산책 114 > 우리 삶의 벽에 대하여 서미숙 / 수필가,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장) 내가 살고 있는 자카르타 시내의 아파트에서 외부로 나갈 때나 돌아올 때 눈길을 사로잡고 시야를 잡아당기는 지점이 있다. 그곳은 바로 우리 아파트 앞 훤하게 탁 트인 넓은 공터이다. 옹기종기 모여 살던 현지인들의 작은 동네였는데 지금은 그곳이 철거되면서 넓은 공터에 나무가 무성히 자라서 숲을 이루고 하늘과 마주하고 있다. 아파트 한 동을 더 지으려고 오래전부터 우리아파트 그룹에서 사들인 땅인 듯싶다. 그러나…
< 수필산책 114 > 조용한 전쟁 김준규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운영위원) 어느 날 길거리에는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줄을 잇고 전쟁이 일어났다며 수근거리고 있었다. ‘코로나 19’ 라는 바이러스 군단이 쳐들어 왔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쟁에 대비한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외부로부터 유입될 수 있는 바이러스 군대를 최대한 막기 위하여 모든 공항과 항만을 폐쇄하고 국민들은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써야하며 밖으로의 이동을 자제하라고 명령한다. 티비에서는 연일 지휘관을 내…
< 수필산책 113 > 해당화 열매 하연수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감사)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등대마을 고모님 영전에 올리는 편지를 썼다. “떠나시는 고모님 마지막 길에 꽃 한 송이 뿌려 드릴 수도 없네요.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만은 구만 리를 날아 바다, 소나무, 그리고 해당화가 있는 등대마을로 갑니다.” 나의 이 미안함은 오랫동안 내 가슴 속 어느 구석에 회한의 멍울로 남아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바빠도 등대마을 언덕배기 해당화가 지기 전에 고모님께 인사드리러 가겠다고…
< 수필산책 112 >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기 서미숙 / 수필가,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장)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의 수를 수치로 계산하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선 태어나면서 처음으로 혈연관계로 만나는 부모님과 형제들을 비롯해 성장하면서 만나게 되는 스승과 친구 등, 다양한 인격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연을 맺으며 사회 속 일원으로 성장한다. 그렇게 인연이 된 사람들과 돈독한 정을 쌓고 사랑을 나누고 배려하며 사랑으로 보답하며 삶을 이어간다. 아마도 참다운 인생의 …
<수필산책 111> '고흐'의 전시회에서 얻은 치유의 길 송민후 / 시인, 문인화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지난해 9월이 시작되고 나의 간헐적 지병이 도졌다. 경도의 대인기피증이다. 나에게 매년 9월은 이미 한 해의 마지막 같은 기분이 든다. 내려놓아야 하고 조용한 곳으로 숨고 싶은 달이다. 약속도 미루고 외출하기도 싫어진다. 그냥 음악 듣고 책보고 가끔 드라마도 보며 한껏 게으름을 피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남편과 아이를 보내고 클래식 음반을 꺼내 들었다. 오…
< 수필산책 110 > 그 벽에서 멈추다 하연수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감사) 보로부두르 벽 앞에 선다. 단호한 벽이 여기저기서 숨길을 조이면 나는 그저 신음소리로 무너진다. 내 안의 반란이 인다. 그 벽 앞에 서면 전율과도 같은 쾌감이 세포신경을 자극한다. 아마 8~9세기 고대 중부 자와 조각가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신의 손을 가진 예술가들이었음이 틀림없다. 이들은 칠팔십 년 동안 할아버지, 아들 그리고 손자들까지 대를 이어가며 보로부두르 벽에 수많은 이야기와 의미 있는 …
< 수필산책 109 > 진지 잡수셨슈? 김준규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운영위원) 설움 중에 배고픔처럼 큰 설움이 없고 하루 밥 세끼의 해결을 위해서 목숨 걸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근대화 이전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외치며 농사일을 지상의 제일 과제로 여기던 때가 반세기 전의 일이었다. 오죽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했을까? 생존이란 간절하고 애처로우며 두려운 경쟁이기도 했다. 아기는 태어나서 눈도 뜨기 전에 엄마 품에서 젖 달라고 보채며 운다. 생존의 본능이다. 염소들은 온종일 풀…
< 수필산책 108 : 한국문단 특별 기고 > 묏버들 권대근 /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당신을 움직인 한 편의 시조를 뽑으라고 하면, 나는 숨도 안 쉬고 홍랑의 ‘묏버들’로 시작하는 시조 한 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궁극적 목적이 진정한 사랑을 한 번 해 보는 데 있다면, 한 번쯤은 사랑의 진정성에 대해 생각을 놓아 보아야 하리라. 홍랑의 시조야말로 사랑과 인생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이것이 사랑이다”, “이것이 인생이…
< 수필산책 107 > 초원의 여백 김준규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운영위원) 몽골하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중에 혈통에 관련된 우리 민족과의 유관설이다. 동북아의 다른 인종과 모습을 비교하더라도 일본이나 중국인의 골격보다도 몽골인의 모습에서 친근감에 기인한 남다른 유사성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둥글 넙죽한 얼굴과 약간 뭉툭한 코에 작은 눈, 볼그스름하게 솟은 광대뼈까지,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DNA조사에서도 이미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유사성이 깊다는 결론을 내린바 있다. 한때는 세계지도를 새로 그…
< 수필산책 106 >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서미숙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장 (수필가, 시인) 최근 인도네시아의 풍경은 펜데믹 ‘코로나19’의 영향 탓인지 거대한 빌딩숲인 자카르타를 비롯한 시내 곳곳과 주변 도시들이 저녁노을처럼 처연하면서 무겁고 힘든 느낌으로 다가온다. 적도의 햇살조차 삼켜버릴 것 같은 경제적 불황을 온몸으로 맞서고 있는 느낌이랄까. 멈출 줄 모르는 루피아의 약세로 물가는 계속 치솟고 있고 외국인인 우리 교민들의 생존에 대한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