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산책 125 > 마법의 원탁 하연수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감사) 얼마 전 해외에서 공부를 마치고 온 딸이 또 공부하러 간다는 말을 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던 우리 가족에게 취업 소식은 생명수 같은 선물이었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이 어렵게 들어간 큰 회사에서 윗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그만두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말들도 많아서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사람들은 요즈음 젊은이들이 인내력 없어서 그렇다고 했고, 나약하게 키운 부모들의 책임이 크다고 말들도 하지만, 왜 젊은이…
< 수필산책 124> 고등어의 눈물 최순덕 / 수필가 시퍼런 바다가 쏟아진다. 탱글탱글 터질 것 같은 싱싱한 고등어가 배에서 바로 집으로 왔다. 스티로폼 박스에 얼마나 꾹꾹 눌러 담았는지 박스가 미어터진다. 고등어 사이사이에 신문지 뭉치를 쑤셔 넣듯 쿡쿡 박아 넣은 한치는 또 얼마나 많은지, 쏟아놓으니 큰 대야에 가득하다. 제매가 오징어 좋아하는 줄을 어찌 기억하고 있는지 제철 만난 한치를 많이도 보냈다. 맙소사, 작은 오빠가 바다 한 귀퉁이를 툭 때어 보낸 것 같다. 막내 오빠는 고등어 잡이 선단의 …
< 수필산책 123> ‘빨리빨리’에 대한 고찰 김준규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운영위원) 서양 식당에 가보면 어리 둥절 할 때가 있다. 한 끼 식사를 위해서 하얀 식탁보 위에 수북이 쌓인 포크와 나이프, 스푼 등은 다 어디에 쓰이는지 헷갈린다. 수저와 젓가락 하나면 해결되는 우리의 식사 문화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식사를 빨리하기로 말하면 우리나라 사람을 빼 놓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단일민족이면서도 끊임없는 전쟁을 겪으며 외세의 잦은 침략에…
< 수필산책 122 > 고난에 대한 단상(斷想) 문인기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살다보면 밝은 길을 걸을 때도 있지만 어둡고 답답한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지금은 세상이 뒤숭숭하고 어둡다. 전염병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받는 압박감으로 인해 마음이 각박해지고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뉴스 시간마다 전 세계적 코로나 확진자와 희생된 사람의 숫자가 어제보다 늘었다는 근심된 소식으로 시작한다. 정치적으로는 서로를 탓하며 끝없이 서로를 비난하며 남 탓하는 가시 돋친 말도 퍼붓는다. 경제…
< 수필산책 121> 머라삐산 화산석 하연수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감사) 인도네시아 중부 자와 땅에는 수많은 석탑과 사원들이 기러기 떼처럼 점점이 내려와 앉아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짠디’라고 부르는 사원, 석탑 돌에 경전, 문화, 풍습 등 온갖 내용들을 조각해서 담아 놓은 것들이 장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특히 대승불교의 보로부두르와 힌두교 프람바난 돌조각들은 정말 정교하고 섬세하다. 돌조각 속에는 흔들리는 나무 잎들이 있고, 바람 같은 숨결이 있고, 천 년의 돌 향기들…
< 수필산책 120 > 소(牛)에 대한 단상 김준규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운영위원) 동물 중에서 소처럼 사람과 친숙하고 고마운 동물이 또 있을까? 소는 힘이 세고 온순하여 길들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인류의 조상들은 일찍이 소의 이러한 장점을 터득하고 농사일에 필수적인 밭갈이와 각종의 이동수단에 적극 활용하여 식량 생산을 도모하였다. 요즘의 농촌에는 기계화의 보급으로 소가 하는 일이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농사일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일꾼이었다. 소는 집안 대대로 물려받는 재산의 일…
< 수필산책 119 > 편안함에 대하여 이태복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내겐 마음 편한 현지인 두 친구가 있어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들은 모두 도시에 나갔다가 싫어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이고 돈은 없지만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이다. 첫 번째 친구가 10억을 한국 사람에게 떼였다. 그것도 빌린 돈이다. 10억을 떼이고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 친구, 욕심이 없었던 친구는 이제부터 돈을 벌기 위해 고통의 세월을 감내하며 빚을 갚아야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 원인을 내가 …
< 수필산책 118 > 신(酸)박소와 신(酸)두부 김신완/제4회 적도문학상 장려상 수상작 처음 인도네시아에 와 가장 적응이 안되는 것 중 하나가 ‘신 음식’이었다. 나에게 우리나라 음식이 맵고 달다면, 인도네시아 음식은 시고 달다. 단맛이야 익숙한 맛이고, 그러려니 하면서 먹을 수 있지만, 신 음식을 그러려니 하고 먹기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만한 게 한국 사람들은 신 음식에 익숙하지가 않다. 한국에 신 음식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신 김치와 오이냉국, 초고추장 정도. 신 음…
< 수필산책 117 > 땅구반 쁘라후(Tanguban Perahu)보다 고사리 이재민 / 제4회 적도문학상-성인부 수필 부문 우수상 수상작 " 너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고 세상은 즐거워했다. 너가 죽었을 때 세상이 울고 너는 기쁠 수 있도록 삶을 살아라." -인디언 격언- 땅구반 쁘라후(Tanguban Perahu)로 향하는 2차선 굽은 도로, 구김 없이 쭉쭉 자란 나무들이 도열하여 한낮에도 서늘한 그늘을 드리운다. “엄마, 저기서 사진을 찍으면 간혹 그 뒤…
<수필산책 116 > 놋그릇 원앙에 내리는 비 전현진 / 제4회 적도문학상-성인(수필 부문) 최우수상/㈜인니한국대사상 수상자 기도 시간을 알리는 확성기 소리에 뒤척이던 몸을 일으켰다. 지난밤, 다래끼 난 눈이 껄끄러워 잠을 통 못 잤다. 며칠간의 이삿짐 정리로 몸은 물먹은 솜뭉치 같은데, 요란한 빗소리가 이불까지 파고들어 기어이 잠을 내쫓았다. 비는 나만 괴롭히는 게 아닌지, 어느 차에선가는 경고음이 소스라치게 울어댔다. 낯선 타국의 비 오는 밤은 내 마음을 흔들어 불안과 두려움, 겁남과 걱정을 끄집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