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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진짜 내 친구 이야기 그리고 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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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2-11-16 11:47 조회 11,66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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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내 친구 이야기 그리고 내 이야기
 
조은아
 
이것은 진짜 내 친구 이야기입니다.
친구가 진짜 내 친구라는 건지, 진짜로 내 얘기가 아닌 내 친구 이야기라는 건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사람 친구 남자 중에 유모 군이 고득점을 해야만 갈 수 있는 서울의 한 명문 대학교 입학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일입니다. 면접을 보고 온 친구는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가 무슨 뜻인거 같니?”
“무슨 뜻인거 같냐고? 너는 모르는 거냐?”
“면접관이 묻는데 갑자가 머리가 하얘지더라. 뭐였지?”
“일하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주장만 하면 배가 엉뚱한 데로 간다 뭐 그런 뜻 아냐?”
“진짜? 아... 나 어떡하지...”
“넌 뭐라고 답했는데?”
 
유모 군은 풀이 죽어 대답했습니다.
 
“뜻을 모아 함께 일하는 사람이 많으면 무거운 배를 들어 산꼭대기를 올라가듯 못할 일이 없다...”
 
순간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유모 군의 대답이 맞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묘하게 유모 군의 논리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삐삐’ 시절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리에서 신속 검색으로 답을 찾지 못하고 거의 모두가 유모 군의 논리에 정신 함락되어 돌아왔습니다.
 
그 만남 이후 교과서, 참고서, 사전 등을 다 뒤져 그 속담의 뜻을 찾아낸 집요한 친구의 단체 삐삐 메시지로 우리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나는 그 속담의 진짜 뜻은 유모 군의 논리가 맞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유모 군은 그 면접에서 합격했고 원하던 그 대학에 당당히 입학했습니다.
 
진짜 내 친구 진짜 이야기입니다.
 
며칠 전 발리에서 있었던 G20 정상회담으로 들썩들썩했습니다.
출발 전부터 한일 정상회담, 한미일 정상회담 등 주요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고 ‘국익을 위해서’라는 큰 그림으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특정 언론사를 전용기에서 배제하며 출발했던 정상회담들이었습니다.
 
G20 기간 내내 나는, 한동안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던 한일 두 정상이 회담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과거사 문제는 거론 되었는지,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도발에 한미일 정상이 어떤 합치를 내었는지, 윤 대통령은 어떤 국익을 도출해 내었는지, 여러 언론사의 뉴스 창을 시간이 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중요 회담에는 동행한 모든 언론사의 취재를 막았다는 소식과 함께 대통령의 행보와 결과물보다 영부인의 행보가 계속해서 뉴스화되고, 이슈화 되고 있었습니다.
 
배우자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나름 이곳저곳 다니며 이미지 쇄신에 공을 들인 티가 역력했습니다. 캄보디아 심장병 아이들을 방문하고 환경 운동가를 만나고 온 국민이 다 알도록 ‘비공개’ 일정을 아주 바쁘게 소화해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G20 정상회담의 성과 뉴스를 보고 싶은데 계속해서 영부인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나는 국익의 성과를 뉴스로 읽고 싶을 뿐인데 자꾸만 영부인의 행보를 읽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설왕설래가 아니라 영부인 관한 이야기와 가십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역대 이렇게 많은 영부인 관련 뉴스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의 잘못인가요? 정치가? 언론? 무책임하게 댓글을 남발하는 네티즌들? 아무도 잘못하지 않은 건가요?
 
나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정치는 일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재외국민입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국제적 이슈에는 가장 먼저 외국 친구들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말 그대로 최전선에 있기도 합니다.
 
한국에 태풍 피해가 있으면 “너희 가족은 괜찮냐?”고 묻는 안부, “북한에서 왜 또 미사일을 쏜거니?” 라는 질문, “이태원 참사는 정말 슬픈 일이다”라는 위로 등의 최전선에서 나도 우리 아이들도 때론 대답을, 때론 감사를 표해야 하는 재외국민입니다. 더구나 요즘은 K-POP, K- 드라마 등에 관한 열기로 연예인들의 가십까지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직접 정치를 하는 공무원들만큼 그 어깨가 무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 나라에서 출렁이는 파도들이 해외로 넘어온다고 그 파도의 크기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사공이 많아 그 배가 순항을 하든, 뜻을 같이 하는 일꾼이 많아 무거운 배가 산 꼭대기에 세워져 멋진 전망대가 되든,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내 나라 소식을 친구들과 얘기하며 기죽지 않을 소식만 들려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너희 영부인이 다니는 성형외과는 어디니?”라는 질문을 또 받았습니다. 매번 “그걸 알면 내가 이 얼굴이겠니?”라는 농담으로 넘기지만 마음은 늘 씁쓸합니다.
 
이것은 내 이야기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의 숨겨진 명 뜻을 알려준 유모 군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사진=조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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