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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란 데폭 돼지요괴 사건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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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6,592회 작성일 2021-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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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폭 돼지요괴 사건 정리
 
배동선 작가 /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바비 응예뻿은 한 밤중에 이웃의 재물을 훔쳐간다고 알려진 돼지요괴다.
 
자카르타의 위성도시인 서부자바 데뽁(Depok) 지역 느릿느릿 시간이 흐르던 한가한 버다한(Bedahan) 마을이 힌동안 시끄러웠다. 지난 몇 달간 강도와 절도사건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패물과 2백만 루피아(약 15만원)쯤 되는 현금이 사라지는 사건들이 벌어졌다. 주민들은 이 모든 것이 바비 응예뻿(Babi Ngepet)의 소행이라고 믿었다. 그건 사람이 변신한 돼지요괴로 이제 이 모든 기묘한 절도사건을 근절하려면 그 돼지요괴를 반드시 잡아죽여야만 했다.
 
그리하여 벌어진 극적인 멧돼지 사냥이 인터넷을 달궜다. 현지 주민 루크만 누르자말(Lukman Nurjamal)의 틱톡 계정에 등록된 동영상이 일파만파 퍼져 나갔는데 거기엔 잡힌 바비응예뻿을 보겠다고 몰려든 수백 명의 버다한 주민들 모습이 찍혔다. 또 다른 동영상에서는 몸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할 만큼 지친 작은 돼지 한 마리가 장방형 철망 우리 안에 갇혀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 바비응예뻿에 대해서 주민들이 지난 4~5개월 동안 얘기해 왔어요. 이 돼지요괴가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면서 사람들 재물을 털어 도망갔다고요. 그래서 이 놈이 버다한 마을에 나타났을 때 우린 이미 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이 놈을 그동안 눈여겨 보아왔던 사람이 있었거든요.” 루크만은 그 돼지가 바비응예뻿 돼지요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이 번잡한 상황이 끝나갈 무렵 사람들 사이에 자랑스럽게 선 한 남자가 돼지의 잘린 머리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가난에 깃든 망령
인도네시아 민속에 등장하는 돼지요괴 바비응예뻿은 미스터리와 함께 폭력, 가난 등을 그 배경으로 한다. 흑마술을 익숙하게 다루는 도둑들이 괴물같이 거대한 멧돼지로 변신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이 멧돼지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인가에 들어가 재물을 훔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음습한 능력을 얻기 위해 행하는 의식은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의 거래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자카르타 관광문화국에서 엮어 낸 버타위 지역 민속서에 따르면 두 사람(대개는 한 쌍의 부부)이 두꾼이라 불리는 무당을 찾아가 흑마술의 힘을 얻기 위해 피의 제물을 바치는데 대개 그 제물은 그들의 가족이나 아이인 경우가 많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바쳐야 더 큰 힘을 얻는다는 이치다. 그 제물이 받아들여지면 악마가 그들이 원하는 바대로 돼지요괴 바비응예뻿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한다.
 
그리하여 때가 되면 남자는 멧돼지로 변해 목적했던 지역을 돌아다니게 되는데 그 전에 날이 지면 먼저 검정색 망토를 걸쳐야 한다. 멧돼지가 몸을 부딪히는 집에 값나가는 물건들이 사라지는데 그 물건들은 흑마술을 시전하는 부부의 집에 즉각 옮겨져 나타난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그 망토에 주머니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도둑이 변한 돼지가 이웃 주민의 집 담벼락에 돼지가 엉덩이를 벅벅 긁어 대는 것만으로 그 집안의 패물과 현금이 망토 안 주머니 속으로 저절도 들어온다고 한다.
 
남편이 돼지로 변한 사이 아내는 집에서 촛불을 지켜야 한다. 만일 촛불이 솟아오르며 꾸불꾸불 요동치면 그것은 돼지가 위험에 처했다는 신호다. 돼지가 그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아내가 빨리 촛불을 불어 꺼야 한다. 하지만 아내가 촛불을 끄기 전에 스스로 촛불이 꺼진다면 그것은 돼지로 변한 남편이 예상치 않았던 위험에 부딪혀 횡사하고 말았음을 뜻한다.
 
Voi.id와 인터뷰한 역사가 크리스토퍼 레인하트(Christopher Reinhart)에 따르면 바비응예뻿 전설은 식민지시대 인도네시아의 빡빡한 농경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 농부들이 벼락부자가 되는 방법은 현지인들이 경멸해마지 않던 총독부 관리들과 결탁해 고리대금업자가 되거나 사채브로커가 되는 길뿐이었다.
 
“당시 농부들은 부자들을 흑마술을 부려 재물을 모은 악마의 친구들이라 부르며 경멸했어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부자들을 멀리 하여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그들 자신도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거두게 된 거죠.” 레인하트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한 빈곤, 사회적 불평등, 계층 간 이동의 어려움 등의 문제는 식민지시대가 끝난 후에도 남아 이웃의 재물을 훔쳐가는 바비응예뻿이나 뚜율(Tuyul) 외에도 순리를 거슬러 부를 가져다주는 또 다른 악마들에 대한 전설이 인도네시아인들 의식의 수면 밑에서 더욱 몸집을 키웠다. 이런 재물주술에 동원되는 악마들은 이외에도 후손들이 갖게 될 미래의 부를 미리 현세로 훔쳐오는 부토이조(Buto Ijo)도 못지않게 유명한다.
 
2020년 7월에도 데뽁 지역 수크마자야(Sukmajaya) 주택지에도 멧돼지 한 마리가 CCTV에 찍혔는데 사람들은 그때에도 그게 바비응예뻿이라며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2019년에도 중부 자바의 수라카르타(Surakarta), 동부 자바의 좀방(Jombang)에서도 일련의 도난사건이 벌어졌는데 사람들은 이를 바비응예뻿의 소행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 도난사건들의 실체는 훨씬 현실적이다. 좀방과 수라카르타의 집들을 턴 것은 솜씨 놓은 인간 도둑들이었던 것이다. 한편 수크마자야 CCTV에 찍혀 돼지요괴로 오인되었던 짐승은 현지 주민들이 키우다가 우리를 탈출한 몽구스였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사회학자 바공 수얀토(Bagong Suyanto)는 이러한 이른바 바비응예뻿에 의한 도난사건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경제적으로 연약한 많은 지역공동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제적 파국에 대한 집단적 공포가 투영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위계층으로 나아가려는 중하위권 주민들은 그런 요괴들이 자기 재산을 훼손할까봐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들에 비해 더욱 불운하고, 그래서 좌절하고 만 빈민층은 보다 폭력적인 방법으로 상황을 타계하려 하는 분위기가 그런 사회적 상황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회적 상위계층으로 진입할 방법이 없는 이들에겐 이런 주술이 지름길처럼 보이는 거죠. 교육이나 기술습득 같은 이성적 방법으로는 즉각적인 빈곤탈출이 어려우니 사람들은 계층간 사다리를 타고 오를 비이성적인 방법을 찾아 다니는 겁니다. 바비응예뻿은 사실 그런 깊은 절망이 투영된 현상이죠.” 바공은 이렇게 분석했다.

사냥이 끝난 후
이런 절망은 데폭 지역에 실존한다. 수도 자카르타의 위성도시로 부각되던 데폭은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적 파국을 맞았다. 지난 2월말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많은 신규확진자들을 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비응예뻿이 그들 사회를 휘젓고 다니는 것은 그들이 가장 원치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요괴 멧돼지를 잡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처음엔 실패를 거듭했다. CNN인도네시아 보도에 따르면 그러다가 아담 이브라힘(Adam Ibrahim)이란 우즈탓(ustad=이슬람교사)이 지난 달 데뽁 사왕안 구의 버다한 마을에서 이 돼지요괴를 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잡힌 지 얼마되지 않아 다른 마을 주민들이 보러 왔을 때 이 돼지요괴는 털덩어리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브라힘은 자신의 영적 존재에게 자문을 구한 바 돼지요괴를 잡을 때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옷을 입은 채로 돼지를 잡은 게 틀린 것이다. 돌아다니는 바비응예뻿을 제대로 잡으려면 모든 사람들이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고 알몸상태로 돼지를 덮쳐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화요일 밤 이브라힘은 자기 마을에서 그 새로운 전술을 펼쳤다. 그는 용감하고 힘센 주민 여덞 명을 발가벗겨 돼지를 포획틀로 몰아넣고 그 지역 종교지도자 소유의 특별한 겉옷으로 멧돼지를 감싸 잡았다. 그의 도박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다음날 새벽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이 잡힌 요괴를 보려고 그의 집에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돼지 포획과정과 이후 벌어진 소동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불과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전국에서 이 사건을 입에 올렸다.
 
인도네시아 과학연구소(LIPI)의 동물 연구가 타우픽 뿌르나 누그라하(Taufiq Purna Nugraha)는 바비응예뻿이 과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건을 수사한 사왕안 경찰서장 리오 또빙(Rio Tobing) 경위장은 그 돼지는 주술에 의한 것도, 인간이 변신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설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버다한은 이 기이한 돼지를 보러 몰려온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성지가 되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많은 외지인들이 몰려드는 것을 우려한 마을 사람들은 돼지를 도살해 파묻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브라힘이 나서 저 돼지의 원래 정체인 도둑의 가족이 죽은 돼지의 시신을 가지러 올 것이란 언급을 내놓았다. 화요일 저녁 늦게 멧돼지로 변한 도둑의 가족이 익명으로 이브라힘에게 연락을 취해 아들의 시신을 가져가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다. 수요일 아침 경찰들이 버다한으로 돌아와 매장한 돼지의 시체를 다시 발굴했다. 바비응예뻿 전설이나 이브라힘의 주장에 따르면 죽은 바비응예뻿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사람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얕은 무덤에서 발굴된 것은 썩기 시작한 작은 돼지였고 사실 별로 놀라는 사람들도 없어 보였다.
 
여기서 생각지도 않은 반전이 벌어졌다. 사삼들이 이브라힘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우스탓은 처음으로 주민들에게 바비응예뻿에 대해 경계심을 심어주고 그 포획작전을 진두지휘한 사람이었다. 경찰이 심문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사실이 드러났다. 이 모든 것은 이브라힘이 스스로 종교적 명성을 떨치기 위해 교묘하게 꾸민 가짜 사건이었다.
 
그는 당시 인근 마을에 횡횡하던 절도사건을 보고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자신이 속한 종교그룹에 보다 많은 회원들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그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소셜미디어를 통해 동물애호가 그룹으로부터 새끼돼지 한 마리를 90만 루피아에 사와 집에 준비해 놓은 특별한 우리 속에 숨겨두었다.
 
그런 후 사냥이 벌어진 날 밤, 그는 돼지를 풀어놓고 자신은 알몸이 되어 돼지를 잡으러 온동네를 죽어라 달렸던 것이다. “그는 더 유명해지고 싶었던 겁니다. 그는 이미 그의 마을에서 존경받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그리 유명하진 않았죠. 그는 이런 일을 벌여 세간의 주목을 받으려 했던 겁니다.” 데폭 경찰청장 임란 에드윈 시레가르(Imran Edwin Siregar)는 이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알몸상태로 돼지를 잡아야 한다는 기묘한 디테일들도 모두 이브라힘의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의 말로가 늘 그럿든 이번 데폭의 기묘한 돼지요괴 이야기도 사실은 욕망과 거짓, 그리고 덧없는 야망이 빚은 한바탕 코미디에 지나지 않았다.

*출처: RAKA IBRAHIM Thu, April 29, 2021  
https://www.thejakartapost.com/life/2021/04/29/the-boar-demon-hunt-that-shook-the-interne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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