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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모든 열쇠 쥔 軍 , 쁘라보워 비밀문서 논란 정치 최고관리자 2014-06-1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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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에 퍼진 DKP 문서사본.  인포그래픽 = 아딧야(Aditya)
 
인터넷에 떠도는 DKP 문서 사본···대통령 “그건 비밀 아니다”
           <명예장교위원회>
 
하비비 대통령 임기였던 1998년 명예장교위원회(DKP, Dewan Kehormatan Perwira)에 발급된 대통령결정문의 사본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이 대통령결정문이 승인 없이 외부에 유출된 것에 대해 매우 난감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줄리안 알드리안 빠쌰 대통령 대변인은 지난 10일 “유도요노 대통령은 쁘라보워 수비안또(얼굴) 전 전략사령관의 임무 등이 기록되어 있는 본 DKP문서가 나돌고 있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그 문서 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승인없이 기밀을 누군가 대중에 유출했다는 사실에 유감을 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조꼬 수얀또 정치법률안보 장관과 유출 통로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전 인도네시아통합군(ABRI·현 TNI의 전신) 중장이자 98년 당시 명예장교위원회 소속이었던 파흐룰 라지는 그 문서가 DKP 문서가 거의 확실하다고 밝혔다. 현지언론 꼼빠스 TV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몇일전 구글에 나돌던 문서를 유심히 살펴보니 내용 및 직인 등을 미뤄 봤을 때 해당사본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모두 기억하고 있지 않아 100% 확신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발급일자가 1998년 7월 24일로 되어있는 이 DKP 문서에는 당시 쁘라보워 수비안또 전략사령관의 강제전역 조치 내용이 담겨있다. 이 문서에는 11가지의 강제전역 이유가 명시돼있다. 대부분의 내용은 당시 ABRI 내 규정을 무시했다는 내용이다.
 
이 논란의 문서에 대해 루마디 아흐맛 정보위원회의 위원은 TNI 측에 DKP문서의 원본을 공개할것을 요청했다. 원본을 공개함으로써 국민들의 오해를 풀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문서 내용에 따라 대선을 코 앞에 두고 만약 쁘라보워 후보의 인권탄압 여부가 밝혀지게 된다면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루마디 위원은 “TNI는 정확한 사실을 대중에게 밝힐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인권단체들은 DKP 문서의 원본이 공개되길 기다리고 있으며 TNI 측이 이를 거부할 시 소송까지 불사할 예정이다.
 
한편 인도네시아 인권 비정부기구인 '임파르샬'(Imparsial)의 알 아라프 프로그램국장은 인권운동그룹인 스따라 이스티튜트(Setara Institute) 운동가와 당시 인권탄압피해자인 수미아르시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무고한 수 많은 이들이 TNI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며 “쁘라보워의 행각이 담긴 DKP 문서를 즉각 공개하라”고 TNI에 촉구했다.
 
한편 쁘라보워 수비안또 대선후보는 10일 군 장성들 앞에서 본인을 지지해줄 것을 부탁하며 “나는 당시 군 장성으로서 34개 보병 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는 자리였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국가 법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며 무고함을 호소했다.
 
쁘라보워-하따 후보 측 대변인 누룰 아리핀은 “1998년도 당시 많은 사회운동가들이 납치되는 등 인권탄압이 있었지만 이 책임을 쁘라보워 후보에게 묻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쁘라보워는 당시 상부의 지시를 따랐을 뿐 자신은 인권탄압행위를 한 적이 없다는 대답을 무한반복하고 있지만, 실제 구체적인 상부조직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우마르 압두 정치분석가는 이번 DKP문서 유출사건은 명퇴한 인도네시아 군 장성들 내부의 분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하르또의 셋째 사위인 쁘라보워는 지난 98년 5월 폭동 당시 전략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 고문과 조직적인 성폭행을 배후 조종했다는 증언이 입수돼 고문방지협정에 따라 미국 입국이 거부되기도 했다.
 
1998년 5월 폭동으로 수하르토가 권좌에서 물러난 뒤 반정부 시위를 과잉 진압한 혐의로 군사법원에 회부돼 강제 전역조치된 쁘라보워는 요르단으로 망명했다가 지난 2000년 5월 귀국, 보스턴에서 유학중인 아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 비자를 신청했으나 거부됐다.
 
임관 후 미국과 독일에서 특수전교육을 이수한 뒤 줄곧 특전사에서 근무한 그는 44살인 지난 95년 이리안자야 독립세력에 억류된 유럽인 등 11명을 구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연소로 육군 준장에 진급했다.
 
그는 또 이듬해인 96년 소장 진급과 함께 특전사령관으로 취임한데 이어 98년에는 육군내 최고 요직인 전략사령관으로 승진, 수하르토의 뒤를 이을 인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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