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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변곡점을 맞은 치안감 관저 총격전 J 순경 사망 사건 사건∙사고 편집부 2022-08-08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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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순경 사망사건 이후 직위 해제된 전 경찰청 업무안보국장 페르디 삼보 치안감이 8월 6일 오후 데뽁 끌라빠 두아 지역의 기동타격대 본부로 이송되었다.
J 순경 사망현장 처리에 개입해 경찰 윤리강령을 위반한 혐의다.
 
치안감 관저에 CCTV들이 사건 당일 모두 고장나 있었다고 하는데 다른 경찰관들이 이 CCTV들을 모두 회수해 가도록 배후에서 지시해 사건 수사에 혼선을 준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견 증거인멸 시도로 보이나 페르디 치안감의 혐의는 아직 윤리강령 위반일뿐이므로 J 순경 계획살인의 배후로 지목된 것은 아니다.

페르디 치안감 외에도 이 사건처리에 있어 수사방해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찰관 25명이 따로 조사를 받았고 직위해제되거나 전보발령을 받은 것으로 8월 4일(목) 보도된 바 있다.

E 이경 살인용의자로 신분 변경되자 변호인단 사임
한편 일련의 조사를 거쳐 E 이경은 8월 3일 살인용의자로 신분이 변경되었다. J 순경을 사살하는 과정에서 정당방위보다는 고의살인 혐의가 잡혔기 때문이라고 경찰청 범죄수사국장 안디 리안 경무관이 설명했다

이는 E 이경이 당초 J 순경에게 폭행당한 페르디 치안감 부인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정당방위차원에서 J 순경을 사살했다는 당초의 증언을 수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E 이경의 신분이 살인용의자로 변경되자 8월 6일(토) 그의 변호사들이 전격 사임했는데 사임 이유는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이례적인 발언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더 이상 E 이경을 변호하기 어려운 증거가 발견되었거나 E 이경을 변호할 경우 쏟아질 사회적 비난을 감안해 물러났을 것이란 추측을 불러 일으켰다. 말하자면 변호사들은 이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감을 잡고 냄새를 맡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7월 8일 경찰청 업무안보국장(internal affair이니 총무국 또는 경찰내무국 정도의 위상) 페르디 삼보 치안감 관전에서 벌어진 총격전으로 J 순경으로 알려진 노쁘란샤 요수아 후타바랏 순경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국가인권위원회(Komnas HAM)가 조사한 내용은 7월 11일 경찰청 대변인 아흐맛 라마단 경무관이 발표한 초동수사 결과와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당초 경찰은 경찰청 업무안보국장 페르디 삼보 치안감 관저에서 치안감 부인을 성추행하려 했던 J 순경이 총격전 끝에 E 의경에게 사살되었으며 이는 정당방위에 의한 것이라며 E 의경에게 면죄부를 주고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

하지만 E 이경이 살해용의자로 신분이 변경되면서 정당방위로 J 순경을 사살했다는 최초 주장과 발표는 깨진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내용들이다.

페르디 치안감은 부인보다 하루 일찍 자카르타 도착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초 페르디 치안감이 부인 일행보다 한 시간쯤 일찍 자택에 도착했다고 알려진 바와 달리 중부 자바 마글랑에서 부인과 경호원 등이 그와 함께 움직인 사진들을 분석하여 사실은 페르디 치안감이 일행보다 앞서 관저 총격전 하루 전날이 7월 7일 마글랑에서 비행기편으로 자카르타에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 그들이 마글랑에 간 것은 치안감 부인 뿌뜨리 짠드라와티(Putri Candrawathi)와 결혼기념일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치안감 부인은 J순경 E 이경과 함께 7월 8일 마글랑에서 자카르타로 돌아왔고 그날 관저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J 순경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격전 직전 상황
J 순경 사망 직전 당일 오후 CCTV에는 페르디 치안감이 두렌 띠가, 사굴링로(Jalan Saguling) 자택에 도착하는 장면이 찍혔다. 경호원이 그와 동행했고 그들 말고도 PCR 검사요원 두 명이 더 있었다. PCR 요원들은 마글랑에서 돌아오는 부인 일행을 위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이후 치안감 부인과 J 순경, E 이경, 리키 라는 이름의 경호원 순경, 그리고 가사도우미가 다른 차량으로 도착했다. 관저에 도착했다는 최초 발표와 달리 그들은 자택에 먼저 도착했고 J 순경와 E 이경이 차에서 짐을 내리는 장면이 찍혔다. 치안감 부인이 집에 들어가 PCR 검사를 받았고 이후 J 순경, E 이경, 가사도우미도 PCR 검사를 받았다.

그런 후 그들은 치안감 자택에서 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웃으며 담소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후 4시 31분 J 순경이 잠비의 애인에게 전화 통화를 했는데 그때 주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고 증언했다. 그들은 오후 5시 1분경 관저로 가기 위해 다시 자택에서 차량에 탑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디가 자택에서 나오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다시 몇 분 후 치안감 차량이 관저를 향하는 모습이 찍혔다. 이때 페르디 치안감은 부인으로부터 총격전으로 J 순경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차량 안에 페르디 치안감이 타고 있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페르디는 사건 당시 자신은 현장에 없었고 이후 자카르타 남부 경찰서에 조사를 지시했다고만 알려져 있다.

그후 부인이 관저에서 나와 자택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그녀는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J 순경이 총을 들고 있던 모습
페르디 치안감의 부관 리키는 당시 아래층 방에 있다가 비명소리를 들었고 J 순경이 총을 꺼내 윗층을 겨누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위층에 누가 있는지는 보지 못했다.

그는 냉장고 뒤에 숨어 있다가 총소리가 멈춘 후 밖으로 나와 방금 전 총격전을 벌인 이들이 리차드와 요수아란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경찰발표와 다른 내용들을 알게 되며 부각되는 부분은 페르디 치안감이 하루 일찍 마글랑에서 돌아온 사실을 왜 지금까지 숨겼는지, 그 사이 CCTV를 손본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이며 J 순경이 치안감 부인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것은 오직 치안감 부인 혼자의 증언이고 J 순경과 총격전을 벌였다는 내용과 그 전개 및 결과는 모두 E 이경의 증언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자리에 있던 리키도 J 순경이 실제로 E 이경과 (또는 그 한 명과만) 총격전을 벌였는지 직접 보지 못한 셈이다.

▲법집행정의옹호연대(TAMPAK)활동 참석자들이 7월 22일(금) 자카르타 호텔인도네시아 로터리에서 열린 촛불기도행사 중 고 노쁘란샤 요수아 후타바랏 순경의 사진이 실린 포스터를 들고 있다. 그들은 페르디 삼보 치안감 관저에서 벌어진 총격사망사건에 대한 투명한 수사를 촉구했다. (ANTARA FOTO/MUHAMMAD ADIMAJA)

한편 경찰 수사에서도 7월 8일의 최초 수사발표를 뒤집는 증거와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E 이경은 경호원이 아니라 운전사
E 이경으로 알려진 리차드 엘리저르(Richard Eliezer)는 당초 경찰이 페르디 삼보 치안감의 부관부 경호원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치안감 운전사였던 것을 증인-피해자 보호국장 에드윈 빠르토기가 직접 확인해 주었다.

당초 경찰의 최초 발표에서는 E 이경이 페르디 치안감의 경호원, J 순경은 페르디 치안감의 운전사로 모두 경찰청 업무안보국 소속이라고 했고 7월 11일(월) 경찰청 공보국장 아흐맛 라마단 경무관은 J 순경이 페르디 치안감 부인의 운전사라고만 정정한 바 있다.

사격 초심자가 저격수를 사살
LPSK는 E 이경이 알려진 바와 달리 특등사수가 아니라고 밝혔다. 사격술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드윈 국장은 E 이경이 총기를 소지하게 된 것도 몇 개월 되지 않아 3월부터 사격훈련을 시작해 사격실격이 보통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가 총기를 접한 것은 페르디 치안감 운전사로 발령된 후의 일이다. 즉 총기를 배정받은 것은 작년 11월, 그걸로 첫 사격연습을 시작한 것이 올해 3월이란 얘기다.

그런데 치안감 관저에서 벌어진 총격전에서 J 순경은 7발을 쐈으나 모두 빗나갔고 E 이경은 다섯 발을 쏴 네 발을 맞췄다고 보도되었다.

하지만 J 순경의 아버지인 사무엘 후타바랏에 따르면 J 순경은 파푸아에서 저격수로 근무한 적이 있다며 아들이 일곱 발을 쏴서 한 발도 맞추지 못했다는 발표를 의아하게 여겼다. J 순경은 파푸아에 근무할 당시 르바란 기간이 되면 저격수로서 가장 위험한 곳에 배치되곤 했는데 이는 그가 명사수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근접 사격 정황
E 이경이 LPSK에 한 증언에 따르면 처음 총격전은 6미터 거리에서 벌어졌으나 J 순경이 쓰러진 후 E 이경이 2미터 거리까지 근접해 머리를 쏘았다고 한다. 상당히 근접해 총을 쏜 것이다.

근접 총격 사실은 국가인권위원회(Komnas HAM)의 아흐맛 따우판 다마닉 위원장이 밝힌 사항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E 이경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므로 그것만으로 결론을 지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7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Komnas HAM)에 도착한 E 이경 리차드 엘리저르 뿌디항 루미우(Richard Eliezer Pudihang Lumiu). (ANTARA FOTO/M Risyal Hidayat)
 
아흐맛 라마단 경무관이 7월 11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관저 2층에 있던 E 이경이 페르디 치안감 부인의 비명을 듣고 방에서 나왔다가 1층의 J 순경과 총격전을 벌였다. E 이경이 접근하자 J 순경은 계단으로 가면서 갑자기 총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당시 두 사람의 거리는 10미터였고 E 이경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J 순경이 E 이경에서 총격을 가했고 이는 J 순경이 폭행과 강도범죄를 범하고 도주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J 순경은 7발을 쏘았으나 모두 빗나갔고 E 이경은 5발을 발사했는데 E 이경의 위치가 유리한 높은 곳이었으므로 총에 맞지 않고 J 순경을 제압했다는 것이 최초 발표 내용이었다. 즉 모든 사격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총격전이 있었고 최후 두 발은 2미터 정도 거리에서 근접 사격한 것이란 증언이 나온 것이다.

일각에서는 J 순경이 뒤통수에서 총을 맞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고장난 CCTV가 의미하는 바
최근 리스티요 시깃 쁘라보워 경찰청장도 페르디 치안감 관저의 ‘고장난’ CCTV를 누가 왜 그리고 어떻게 가져 갔는지 알고 있다고 8월 4일(목) 경찰청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 있다. 결국 이 일로 페르디 치안감이 8월 6일 구금되었으니 리스티요 경찰청장은 당시 페르디 치안감과 그 일에 연루된 이들에게 경고를 날린 셈이다.

CCTV를 가져간 경찰들은 이미 조사를 받았고 그들이 단순히 경찰윤리강령 위반으로 제재를 받을지 형사범으로 처리될지는 특별수사팀의 조사결과에 달려 있게 되었다.

고장난 CCTV를 가져간 경찰들이 조사받았다는 대목은 사실 CCTV가 고장나지 않았는데 이를 가져간 경찰관들이 실제 치안감 관저에서 벌어진 총격전 전말과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증거인멸을 시도했기 때문이란 의혹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이다.

처음 정당방위로 발표되며 죽은 이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 씌웠던 이 사건은 이제 계획살인 의혹을 진하게 풍기며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다.[꼼빠스닷컴/ 기사 제공=배동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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