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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식민지 시대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인니 형법개정안 정치 편집부 2022-07-1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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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4일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하원 앞에서 대학생들이 시위 도중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대는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인도네시아 법과 부패방지법 개정을 취소할 것을 촉구했다.(사진=자카르타경제신문/Aditya)
 
자카르타포스트는 13일자 기사를 통해 만일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가 형법의 식민지 잔재를 털어내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그건 완전 착각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형법개정안을 찬찬히 살펴보면 정부가 극복하겠다는 식민지 시대의 법령보다 딱히 더 나아 보이는 게 없기 때문이다.
 
형법개정안의 218, 219, 240, 241조에서는 대통령과 부통령, 정부에 대한 모욕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1918년 식민지 형법 웻북 반 슈트라프레흐트(Wetboek van Strafrecht)가 발효된 후 100년도 더 지나고 수하르토의 권위주의 독재정권도 무너진 지 오래인 민주주의 시대의 인도네시아에 이런 법규정이 남아있는 것은 한 마디로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규정들은 인도네시아 대통령이든, 네덜란드의 동인도 총독이든, 고무줄처럼 제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며 자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쉽게 깔아 뭉개는 도구로 사용되기 쉽다.
 
정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발언이나 정당당위 차원의 발언이 모욕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하는 예외적 조항을 새로이 넣어 해당 법령의 지나친 폭압적, 자의적 성격을 줄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해당 법령을 덜 자의적, 덜 고압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누군가 대통령을 모욕했다는 것이 대통령 기분 좀 상하라고 그저 한 마디 던진 것인지, 그 이상의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담은 심각한 범죄인지 누가 어떻게 판단한다는 것일까?
 
정치인에 대한 명예훼손죄와 같은 전근대적 규정들을 그대로 존치한 것이 매우 실망스러운 것 못지 않게 모든 종류의 혼외정사를 범죄로 규정한 부분 역시 국가 기관 또는 국가적 차원까지는 아닌 기관 및 단체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물론 자카르타포스트가 식민지시대의 형법이 더 나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형법은 비유럽인들, 특히 당시 인종차별적 사회질서에서 사회 밑바닥을 이루고 있던 현지인, 즉 인도네시아 토착민들에 대한 가혹한 차별이 입법 정신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개정 처리가 연기되고 있는 현행 형법이 식민지 시대의 그 원형에 비해 인류애적, 이성적 시각과 철학을 얼마나 담아 더욱 진화해 왔느냐 하는 부분이 아니라 ‘분열과 통치’ 전략으로 인도네시아 전반의 정치경제적 주도권을 확보하려 했던 식민지 시대의 입법정신과 취지를 과연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나 했냐는 점이다.
 
식민정부나 독재정부에게 있어 법이란 정의와 사회질서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였다. 그래서 식민지 입법정신의 잔재가 현대 인도네시아 형법 속에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서 현재 권력자들의 마음가짐이 과거 식민종주국 총독들에 비해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런 의혹과 질문을 대체로 개의치 않았다. 해당개정안 초안을 만든 팀이 전국을 돌며 민간의 의견을 취합했다고 하나 사실상 그 초안 작성 과정은 오히려 전혀 투명하지 못해 그 초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국민들이 비로소 알게 된 것은 법무인권부가 국회에 해당 개정안을 상정할 때였다. 사실상 국민들의 감시와 참여가 완전히 배제된 것이다.
 
법안 초안 작성에 대한 2011년 관련법은 신속한 법안 검토 과정에서 납득할 만한 민간 참여를 보장하라고 명령하고 있고 최근 헌재에서 다시금 이를 강조된 바 있지만 그런 조치나 보장은 이번 형법개정안 상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논란을 피하기 위해 국민적 의견을 묻는 절차를 일부러 우회했고 법안 입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인 국민유권자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배제한 것이다.
 
지난 2020년 일자리창출법 국회통과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정치인들이 형법개정안도 같은 방법으로 강행 처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상정된 형법개정안이 포함하고 있는, 시민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조항들에 대해 시민인권단체들은 이미 오랫동안 반대 시위를 계속해 왔다. 2019년에는 이전 버전의 형법개정안이 국회심의를 통과하려 하자 전국 대학생들이 몰려와 연일 항의집회를 열어 법안 제정을 연기하게 만들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가장 신랄하게 공격했던 부분은 2006년 헌재에서 이미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낸 대통령 모욕죄가 해당 형법 개정안에 버젓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인데 이는 과거 수하르토의 신질서 시대에 기생했던 세력들이 다시 힘을 얻으면서 1998년 시작된 개혁시대가 이미 그 수명을 다하고 전복되기 시작하는 전조로 읽혔다.
 
새 개정안이 단지 극렬 시위자들만 범죄자로 특정한 것이 아니라 일반 시위자들까지 모두 처벌 대상에 포함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시위를 당국에 사전 통지하지 않거나 시위가 의도치 않게 반정부 폭력양상으로 흐를 경우 일반 시위 참여자들도 모두 같은 법령에 의해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결국 누가 어떤 마음으로 시위에 참여하든 당국이 얼마든지 형사범으로 잡아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형법개정안의 해당 조항들은 법기술을 발휘해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을 기소하기 편리한 문구들로 구성되었다. 더욱이 당국이 군중통제 전략에 입각해, 평화로운 시위를 언제 갑자기 극렬 폭력시위로 변질되도록 유도하거나 몰래 주도할 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독재자가 하야하고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왜 갑자기 고압적이고도 권위주위적인 형법개정안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 어쩌면 과거 식민지시대 총독부 실력자들이 당시 이미 만들어 놓은 관행과 방식이 오늘날의 권력자들에게도 너무 편해 여전히 거기 안주하려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권력을 풀스윙하여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무조건 잡아넣던 식민지 시대 무소불위 권력남용에 향수를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강점이 종지부를 찍은 것은 벌써 7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인도네시아 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 질서를 바로 세울 사회적 역량을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 전체의 정치경제를 장악하고 궁극적으로 국가권력 세습을 기도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한 줌도 안되는 엘리트 집단들이 사실상 아직도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래서 식민지 시대의 가혹한 규정들이 작금의 형법개정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일까? 문제의 형법개정안이 밀실에서 몰래 초안이 만들어졌고 해당 법안의 문제 조항들을 수정해 달라는 시민단체의 요구가 번번히 묵살되는 작금의 상황은 그런 추정이 거의 사실에 가깝다고 느끼게 만든다.
 
현재까지 상황을 미루어 보면 정부와 국회는 시민단체들의 저항이 있다고 해서 현재 형법개정안을 추가 수정하려 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재선임기 후반에 들어, 요원해 보이는 신수도 이전 프로젝트를 임기 내에 어느 정도 진행하여 현 정부의 업적으로 남기기 위해 특단의 조치들이 불가피한 조코위 정부로서는 더 이상 손발이 묶일 시간도 없고 예상되는 비난을 모두 감수하기도 버겁다. 비난의 입을 다물게 하고 국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하기 위해 모욕죄든 명예훼손죄든 전부 동원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더욱이 이 법안은 얼마전 보로부두르 입장료 인상안을 전면 철회하도록 만든 것처럼 전국민이 반대에 부딪힌 것이 아니라 해당 법령의 문제를 이해하는 얼마 안되는 대학생들과 사회단체들의 저항만 돌파하면 될 일이다. 현 정부는 앞서 일자리 창출법을 국회 통과시키면서 이미 상당한 경험치를 획득한 상태다. 요령이 생긴 것이다.
 
결국 이 형법개정안은 앞으로 인도네시아인들의 실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겠지만 특히 인터넷 상 가짜뉴스와 거짓정보를 처벌하는 정보통신거래법(UU ITE)과 맞물려 잘못된 정부 정책을 시위현장은 물론 사이버 공간에서 지적, 비난하는 개인이나 시민단체를 점점 더 어렵고 위험한 궁지로 몰아가게 되기 쉽다.[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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