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ISBN 오남용, 교수들과 인디 출판사들의 문제 > 정치∙사회

본문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사이트 내 전체검색

정치∙사회 인도네시아의 ISBN 오남용, 교수들과 인디 출판사들의 문제 문화∙스포츠 편집부 2022-06-04 목록

본문

▲ISBN

최근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 ISBN 관리기구(The International ISBN Agency)가 인도네시아 국립도서관에 보낸 경고서한 내용을 보면 지난 5년간 인도네시아의 ISBN 사용이 급증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당초에 출판하겠다면서 신청한 ISBN 번호가 나중에 실제로 출판된 책에 붙었지만 책 내용이 신청 당시의 내용에 비해 완전히 달라진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외에도 도서출판을 위한 보조금 지원을 받지 못하는 등의 사유로 ISBN을 신청하고서도 출판이 무산된 경우도 포함되었다. 결국 출판사의 역량이 부족한 경우다.
 
인도네시아 출판협회(IKAPI)가 회원사들에게 송부한 공지문에 따르면 최근 출판사들 스스로 ISBN 사용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해 이에 대한 우려로 ISBN 발급이 지연되거나 출판사들의 ISBN 서비스 접속이 차단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ISBN 블록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ISBN 한 블록은 10개의 ISBN을 뜻하는데 초보 출판사들이나 재단, 국가기관 등이 원래 10권을 출판하겠다며 ISBN을 블록으로 받아 놓고 실제로는 그 중 한 두 개의 ISBN만 사용한 후 나머지는 사장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외에도 ISBN 사용규정을 위배한 경우는 아직도 많다. 최초 제안했던 책 제목을 실제 출판 단계에서 변경하거나 기 출판된 도서들을 제출, 보관할 의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책을 달랑 4-5권만 출판해 대중들은 해당 도서가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등의 경우다.

한 국가 당 할당된 ISBN 번호가 100만 개에 불과하다는 발표가 나오자 국립도서관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2017-2021년 사이의 5년 동안 인도네시아는 이미 599,250개의 ISBN 번호를 발행했다. 결국 향후 5년간 발행할 수 있는 ISBN 번호는 40만 개 정도만 남은 셈이다.
 
하지만 2021년 이미 15만 개를 발행했으므로 남은 ISBN 숫자가 이후 턱없이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100만 개 ISBN 번호라는 것이 한 국가가 10년간 사용하기 위한 양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규정된 바가 없어 국제 ISBN 관리기구에 문의해야 할 사안이다.

2014년에 ISBN 번호를 가장 많이 사용한 국가는 중국으로 44만4,000개를 사용했고 그 다음은 미국이 30만4,912개이었고 영국이 18만4,000개로 그 뒤를 이었다. 인구 6,700만 명에 불과한 영국이 그 정도 도서를 출판하고 있는 것은 2억7,550만 명이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연간 15만 개 정도 ISBN 번호를 사용한 것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인도네시아의 도서출판 편수가 매우 적은 것이다.

사실 ISBN 쿼터 100만 개가 5년만에 소진된다 해도 국립도서관과 국제 ISBN 관리기구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주어진 기간 안에 ISBN 할당량이 먼저 동날까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ISBN 없는 도서는 상상하기 힘드니 그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것이다.
 
오히려 ISBN의 오용, 특히 처음에 제안된 책의 제목 변경, 최소한의 인쇄 부수, 약속한 책 출판을 중간에 중단하는 기관, 단체, 출판사들의 문제를 어떻게 방지하고 통제할 것이냐가 걱정해야 할 부분이다.

ISBN 신청서류와 최종 출판물 사이의 일관성이 깨지는 문제는 책의 초안이 충분히 완성되기도 전에 출판사가 너무 성급하게 ISBN을 신청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립도서관이 지금까지 책의 첫 페이지(제목, 저작권, 작가의 말, 목차)만 첨부하면 되도록 했던 ISBN 신청방식을 바꿔 ISBN을 신청하려는 도서의 내용 전체를 PDF 형식으로 제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국립도서관이 이렇게 수속방식을 바꾸면 ISBN을 신청한 도서나 출판사가 정말 출판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학술서적의 딜레마
도서를 최소 수량만 인쇄하여 유통하는 것이 교수나 교사, 분석전문가와 같은 교육인력들 책의 격을 올리려는 방편 중 하나로 사용되곤 한다. 그들은 저렴한 출판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디 출판사들을 많이 찾는다.

현재 자기 경력을 위해 책을 찍어 내야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교수, 강사들은 인도네시아 전국에 30만 명 정도 있다. 이들 중 20% 정도가 일년에 책을 한 권 내려 한다면 6만 개의 ISBN 번호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50%라면 일년에 15만 개가 필요하고 50%가 두 권씩 책을 내려 한다면 그 숫자는 30만 개가 된다.

교수와 강사들이 책을 내는 것은 교수업무할당량(Beban Kerja Dosen – BKD)를 채우는 현실적인 방편 중 하나다. 그들은 Scopus나 Web of Science 같이 인덱스로 검색가능한 국제적 저널에 자기 원고를 한 번 싣기 위해 수 백만 루피아쯤은 얼마든지 지출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다.

교육문화부는 교수와 연구원들의 저작물을 SINTA (Science and Technology Index-과학기술 인덱스) 사이트에서 통합운영 하는데 SINTA에서 도서저작물을 검색하는 것도 ISBN을 사용한다. 따라서 만약 교수들의 저작물들이 ISBN 번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면 교육문화부는 교수들의 저작물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할 방법이 없다.

이들 교수들을 돕는 인디 출판사, 배니티 출판사(Vanity Publisher)*들도 ISBN 번호 동기화를 저해한 공범들이다. 하지만 이는 학술도서를 시장에서 판매하기 어려운 현실의 벽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욱이 학생들은 새 책을 사지 않고 대개 복사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아직 형편없던 시절 교과서나 참고서, 학술서적을 복사하는 것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학생들의 특권이자 전통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문화적 환경 속에서 아무리 대단한 학술서적이라도 인도네시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반면 국제적 학술지에 실릴 만한 학술도서는 그 양이 크게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Oxford University Press (OUP)에 실리는 전공논문은 300부 정도를 인쇄한다. 하지만 OUP는 전세계적인 시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높은 명성을 가진 학자 또는 국가적, 세계적 레벨의 전문가가 쓴 학술서적은 꽤 많은 판매량을 보이므로 300부의 몇 배를 찍어 내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그 정도 수준이 되는 교수들은 전체의 5% 정도라고 한다.

국립도서관장은 관련 규정을 내놓기에 앞서 인디 출판사들과 교수협회, 교육문화부 등을 초청해 ISBN 문제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드띡닷컴/ 배동선 작가** 번역 제공]
 
* Vanity press, vanity publisher는 주로 작가가 자비출판을 하는 출판사를 뜻함. 저자에게 더 많은 독립성이 부여되는 반면 인쇄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는 상업출판보다 높고 계약상 여러가지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이름 자체가 ‘허영출판’인 만큼 저자의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목적의 출판인 경우가 많고 따라서 소수의 독자,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하며 자기만족의 도구인 만큼 저자가 출판물 상당량을 스스로 구매하기도 한다.
 
 
**배동선 작가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PT. Inko Sinar Media. All rights reserved.